Monthly Archives: July 2020

중국 시안(西安, Xian), 역대 가장 많은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도시

시안(西安, Xian)은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으로 삼았던 유서깊은 고장이다. 시안(西安)이라는 명칭은 서쪽에 있는 수도란 의미의 서경(西京)과 한(漢)의 수도 장안(長安)이 합쳐진 이름이다. 서주(西周)의 도읍 풍호(豊鎬)와 진(秦)의 함양(咸陽)이 인근에 있다. 중국을 통일한 진(秦)은 위수 이남에 아방궁을 세웠으며 한(漢)의 장안성을, 수.당이 현재 위치에 수도 장안을 건설하면서 국제도시로 크게 번성했다. 당 이후 크게 타격을 받고 침체하였다. 명나라 때 둘레 12 km 정도의 시안 성벽이 건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6년 제2차 국공합작의 계기가 된 시안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시안은 섬서성(陝西省) 성도이자 중국 서부의 중심도시로 과학연구, 고등교육, 국방 과학기술과 첨단기술 산업기지, 중국의 중요 우주비행, 항공공업센터, 기계제작센터와 방직공업의 중심이기도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대안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안 도심>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심>

시안은 황하(黃河) 중류 관중평원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진령산맥이 둘러싸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고대 중국 5대강 중 하나인 위수(渭水)가 흐른다. 중국 6대유라시아대륙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교통이 발달되었고 동.서문화교류가 활발했다. 관중평원의 농업생산력, 산맥과 강으로 둘러싸인 지형적인 잇점, 서역 유목민과의 접점이라는 특징으로 고대 이래 중국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History_of_Xi'an<시안과 주변 고대 도시들,  위키백과, 2020년>

풍호(豊鎬), 서주(西周)의 도읍 풍경(豊京)과 호경(鎬京)

주(周) 문왕(文王)은 중원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풍수(豊水) 서쪽에 도읍을 건설했는데 이를 풍경(豊京)이라 한다. 왕위를 계승한 무왕(武王)은 도시를 강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를 호경(鎬京)이라 하며 두곳을 합해서 풍호(豊鎬)라 부른다. 기원전 1046년 무왕(武王)은 상을 멸망시킨 후 서주(西周)를 건국하고 호경(鎬京)을 수도로 삼았다. 풍경에는 종묘와 정 등의 건축물을 배치하였으며, 호경에는 궁궐과 관청 건물 등이 세워졌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도시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조선의 수도 한양 건설에도 적용되는 등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맹궤(孟簋), 서주, 시안시 장가파(張家坡) 출토>

함양(咸陽, 셴양), 전국시대 진(秦)과 통일제국의 수도

함양(咸陽, 셴양)은 기원전 350년 진효공(秦孝公)이 도읍를 동양(棟陽, 시안시 옌량阎良구)에서 함양으로 옮긴 이후 143 년 동안 진(秦)의 수도 역할을 했다. 셴양은 위수(渭水) 양안에 강둑을 따라 건설되었는데, 전통적인 도시 배치와는 달리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국시대 다른 국가의 도읍과 함께 셴양은 대규모로 잘 계획된 도시로 건설되었다. 진시황은 황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2궁전, 제3궁전이 회랑으로 연결된 웅장한 궁궐로 바뀌고 화려한 아방궁을 다시 건설하였다. 함양궁과 아방궁 궁궐터에서 화려했던 옛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秦)의 궁궐이었던 함얌궁과 아방궁>

여산(驪山)이라 불렸던 진시황릉

여산(驪山)이라 불리는 웅장한 진시황릉으로도 후세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진시황릉은 그가 13세 일때 시작하여 37년 동안 수많은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무덤은 높이 76 m의 여산을 중심으로 당시 수도였던 함양을 본떠서 둘레 2.5 km 의 내성과 둘레 6.3 km의 외성으로 구성되었다. 1974년 여산 동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병마용갱이 발견되었다. 이후 병마용갱 주변 일부에서만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엄청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진시황릉은 후대 왕조의 왕릉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OLYMPUS DIGITAL CAMERA<1974년 우연히 발견된 병마용갱.>

장안(長安), 한(漢)의 수도 

서한(西漢) 제국이 수도로 장안에 정착하면서 고대 중국 역사상 첫번째 전성기를 누렸다. 실크로드(Silk Road)가 개척된 이후 동서 무역로의 출발지였던 장안(長安)은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자 세계적인 대도시가 되었으며 중국은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웅장한 궁궐, 잘 계획된 도로와 도시기반 시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읍성 등을 잘 갖추고 있다.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이 있던 장안성은 수.당 때 형성된 현 시안시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장락미앙(長樂未央) 와당, 한, 시안시 한(漢) 장안성 유적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 <교육기관인 태학의 벽옹(碧擁)과 미앙궁 전전(前殿)>

한나라 황제 능역

한(漢) 황제 능역은 무덤이 봉분, 사당, 능역 주변의 성벽과 망루 등으로 구성되며, 황제를 호위했던 주요 관리들과 장군들, 가까운 친척들의 무덤도 같이 조성되었다. 서한시대 황릉 11곳중 9곳은 위수(渭水) 북쪽에 있으며 2곳은 장안 동쪽과 남쪽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한나라 황제 능역들>

OLYMPUS DIGITAL CAMERA<셴양 싱핑시에 있는 곽거병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한무제 능역(漢茂陵) 곽거병 무덤 앞에 있는 마답흉노(馬踏匈奴) 석상>

수당(隋唐)시대 장안성 

수당(隋唐)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기로 여겨진다. 수도 장안(長安, 현 시안시)은 동시대 셰계에서거 가장 크고 번성했던 대도시였다. 장안은 수(隋) 우문개가 공사를 맡어 건설된 대흥성(大興城)이 모태가 되었다. 도시는 남북 약 7 km, 동서 약 7 km의 규모로 중앙 주작대로를 중심로 양쪽에 시장과 54방씩을 두었었다. 후대 도시건설의 모범이 되었으며 신라의 경주, 발해 상경, 일본 교토가 장안을 모방하여 건설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당시대 장안성>

당 대명궁(大明宮) 유적

대명궁(大明宮)은 당고종 때(662년) 처음 지어져 220년 동안 당나라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당나라 초기에는 장안성 안에 있는 수나라 때 정궁으로 지은 태극궁을 사용했으나 습하고 벌레가 많아 이궁(離宮)으로 건설되었는데 당 고종 때 대대적을 수리하면서 정궁이 되었다. 대명궁은 궁궐배치의 기준이 되는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의 원칙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 ’3문3조(三門三朝)’의 원칙에 따라 황실가족의 생활공간인 내조(內朝), 집무공간인 중조(中朝), 신하들이 집무공간인 외조(外朝)가 담장으로 분리되어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당나라 말 황소의 난(875 ~ 884년) 이후 지방 병마절도사들의 반란으로 파괴된 후 황궁의 기능을 상실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 대명궁 유적>

OLYMPUS DIGITAL CAMERA<대명궁 정전인 함원전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대명궁 한림원터에서 출토된 벽돌들>

당나라 황릉(皇陵)

장안 북서쪽에는 18곳의 당왕조 황릉(皇陵)들이 있다. 황릉들은 위수(渭水) 북쪽 강둑을 따라 평지나 구릉에 배치되어 있다. 황릉은 대부분 산으로 큰 규모의 산으로 만들어지며 세계적으로 큰 규모를 하고 있다. 흉노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로에 황릉을 배치한 한(漢)왕조 황릉의 사례를 따르고 있는 듯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 <측천무후 순릉 앞에 있던 사자상(順陵石走獅,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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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남장사녀도벽화(紅衣男裝仕女圖壁畵), 당. 시인시 정순황후(貞順皇后) 경릉(敬陵) 출토>

비림(碑林),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전시한 곳

비림(碑林)은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전시한 곳으로 송나라 때(1087년) 처음 조성되었다. 당나라 말 혼란기에 중요한 비석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문묘에 집중시켰으며 북송 때(1087년) 유교 주요 경전을 새긴 개성석경비(开成石经碑)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비림에 있는 비석들을 시대 순서가 완전하고 각종 서법의 모범이 되었던 중요한 비석들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고대 문헌들을 살펴볼 수 있는 도서관 성격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문묘(文廟)의 모습이 남아 있는 비림>

비림박물관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石臺孝經)이다. 당 현종이 효경에 주석을 달고 글과 글씨를 쓴 것으로 745년에 세워졌다. 비석은 4면으로 되어 있으며, 머리에는 용과 구름이 조각되어 있으며, 3층 석재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북송 철종 때(1087년)에 문묘였던 이곳에 옮겨왔다. 비림에 있는 많은 비석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수집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碑林)”이라 적힌 현판이 있는 정자와 석대효경>

개성석경(開成石經)은 사회규범의 기본이 되었던 유가 경전을 돌로 새겨놓은 것이다. 당나라 문종 때(837) 전해오던 여러 유가 경전을 모아 돌에 새겨 여러 경전들의 착오를 바로잡는 표준이 되게 하였다. 북송 철종 때(1087)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석경들을 다시 모아 문묘(文廟)였던 이곳에 옮겨 놓았다. 당대에 <논어>을 비롯하여 12경이 새겨졌으며 청나라 강희제 때 <맹자>가 추가로 새겨 13경이 완성되었다. 비석이 처음 새겨진 연대가 당나라 문종 때여서 그 연호(開成)를 따라 개성석경이라 부른다.

OLYMPUS DIGITAL CAMERA<개성석경을 모아 놓은 제1전시실>

OLYMPUS DIGITAL CAMERA<명필 구양순이 글씨를 쓴 황보탄비>

OLYMPUS DIGITAL CAMERA<명필 안진경이 쓴 다보탑감응비>

OLYMPUS DIGITAL CAMERA<사마방잔비(司馬芳殘碑), 서진>

OLYMPUS DIGITAL CAMERA<회소초서천자문(懷素草書千字文), 명 1470년, 회소 글씨>

당나라 장안의 불교 사찰

수당(隋唐)시대 수도 장안에는 수많은 사찰들이 있었다. 또한 많은 사상적으로 다른 다양한 종파가 당대(唐代)에 생겼으며 주요 종파의 근본도량을 장안 도심에 두고 있었다. 당대 불교 6개 종파와 근본도량으로 법상종(法相宗) 대자은사(大慈恩寺), 진언종(眞言宗, 밀종) 대흥선사(大興善寺), 율종(律宗) 정업사(淨業寺), 화엄종(華嚴宗) 천복사(薦福寺), 법성종(法性宗) 초당사(草堂寺), 정토종(淨土宗) 향적사(香積寺)가 있다. 의상, 혜초 등 한반도 불교 역사를 이끌었든 승려들이 젊은시절 유학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장안불교육대조정(長安佛敎六大祖庭)>

OLYMPUS DIGITAL CAMERA<패엽경(貝葉經, 복제품),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

대자은사(大慈恩寺)와 대안탑(大雁塔)

대자은사(大慈恩寺)는 당고종이 어머니 문덕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되었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 등을 보관하기 위해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을 세웠으며, 이곳에서 신라 승려 원측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과 함께 많은 불경들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현장의 제자 규기(窺基)가 법통을 이어받으면서 법상종(法相宗) 중심 사찰이 되었다. 당나라 장안에서  으뜸이 되었던 사찰로 대명궁에서 남쪽을 7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입구 현장법사 동상>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대웅보전과 대안탑>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은 당고종 때인 652년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어졌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무너진것을 수리하면서 10층으로 증축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7층으로 바뀌었다. 1959년에 현재의 모습을 수리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장안(長安)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유서깊은 탑으로 통일신라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일본 헤이안시대 교토 도지(東寺) 오층목탑과 함께 동시대를 대표하는 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대안탑>

천복사(荐福寺)와 소안탑(小雁塔), 당나라 장안 화엄종 중심 사찰

천복사(薦福寺, Jianfu Temple)는 당나라 장안 6대 종파 중 화엄종 근본도량이었다. 당나라 황실을 후원을 받았던 중요 사찰로 중요한 불교 의식들이 거행되었으며 국내외에서 많은 승려들이 불교연구를 위해 모여 들었다. 번경원에서는 많은 불교경전들이 이곳에서 번역되었으며 당나라 장안에서 불경을 번역했던 사찰 중 3번째로 손꼽혔던 중하한 사찰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전경>

종루에는 금나라 때(1192년) 때 만든 높이 3.35 m의 철종이 있었다. 소안탑과 함께 새벽에 울리는 종소리를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 하여 관중팔경 중 하나로 손꼽이는 명승이었다. 지금은 복제품이 종루 앞에 세워져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종루 옆 마당에 있는 금나라 철종(복제품)>

소안탑(小雁塔, The small wild goose Pogoda)은 당나라 때 (707년) 처음 세워졌으며 천복사탑(薦福寺塔)이라 불렸는데 천복사가 화엄종 중심 사찰이었기 때문에 화엄탑(華嚴塔)으로도 불렸다. 벽돌로 쌓은 15층 전탑(塼塔)이었는데 여러차례 지진으로 손상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1965년 옛방식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나라 전탑(塼塔)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소안탑>

대흥선사(大興善寺), 당나라 밀종(密宗)의 중심 사찰

대흥선사(大興善寺)는 서진(西晉) 때(266년) 준선사(遵善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당나라 때 인도 승려 선무외(善無畏), 금강지(金剛智), 불공(不空)이 인도에서 밀교들 들여와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많은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당나라 불교 6대 종파 중 밀종(密宗)의 총본산으로 여겨지며 많은 불경이 번역되어 대자은사, 천복사와 함께 당나라 장안의 삼대역경장(三大譯經場)으로 불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흥선사 전경>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에 있는 밀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금강저(金剛杵)>

당나라 도교(道敎)

당나라 황제들을 자신의 지위를 신성시하기 위해 도교의 신으로 받들어지는 자신들과 성씨가 같은 노자(老子) 이이(李耳)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겼으며, 후기에는 도교와 연금술을 크게 숭상했다. 대명궁 북쪽에 있는 황실정원 태액지(太液池)에는 작은 섬을 두어 신선이 사는 봉래산을 구현했으며 연못 북쪽에 황실 도교사원 등이 있었다. 비림박물관에 있는 당경운종은 황실 도교 관청인 경룡관(景龍觀)에서 만들어 ‘경룡관종’으로 불렸다.

OLYMPUS DIGITAL CAMERA<당대명궁 후원 태액지.>

OLYMPUS DIGITAL CAMERA<당 경운종(景雲鐘)>

OLYMPUS DIGITAL CAMERA<노군상(老君像), 시안 비림박물관>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교류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동서양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던 장안(長安)에는 당시 서역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적들과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중국산 비단, 차, 종이 등이 서역으로 나갈때 이에 비례하여 다량의 교역품들이 장안으로 들어왔다. 수당(隋唐)시대 문화는 문화의 융합과 무역으로 크게 번성할 수 있었다. 이슬람사원인 대청진사(西安大淸眞寺)와 주변 회족거리에서 서역과 교류했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비림박물관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The Nestorian Stele)는 당나라 때 기독교가 전래되어 활동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재악낙타용(三彩載樂酪駝俑), 당, 시안시 출토, 섬서역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The Nestorian Stele)>

대청진사(西安大淸眞寺, The Great Mosque of Xi’an)

시안 중심부 종루(鐘樓)와 고루(鼓樓)를 지나 회족거리에 들어서면 중국에서  회교사원인 대청진사(西安大清真寺)를 볼 수 있다. 당현종 때(742년) 처음 세워졌으며, 송,원,명,청대에 여러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나라 초에 중건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중국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슬람사원(Mosque)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진사 선례루>

OLYMPUS DIGITAL CAMERA<예배대전>

 시안 성벽(西安 城墻)

시안 성벽(西安 城墻)은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도성(都城)이다. 수(隋) 때 현재의 위치에 도성을 처음 쌓았으며 당나라 말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의 성곽은 명(明) 때 주원장 둘째 아들이 진왕으로 봉해지면서 다시 쌓았는 당나라 황성 터의 성을 연장하여 다시 쌓았으며 그 후 여러차례 수리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운벽돌로 성벽을 쌓은 것으로 명.청대 중국 도성(都城)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명.청대 중국 도성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시안 성벽>

전체 둘레 13.74 km로 남북으로 2.6 km, 동서로 3.5 km 정도의 직사각형을 하고 있다. 성벽은 높이이 12 m 정도이며, 상부 너비 12 ~ 14 m이다. 성벽 바깥에는 땅을 파서 만든 호성하(护城河,해자), 성벽 위에는 갑루, 전루, 성루 등의 누각과 여인장, 타구 등의 방어시설을 두고 있다.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인 장락문, 안정문, 영녕문, 안원문을 비롯하여 18곳의 성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문에 해당하는 영녕문>

OLYMPUS DIGITAL CAMERA<갑루와 옹성>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에서 동쪽 건국문으로 이어지는 해자>

OLYMPUS DIGITAL CAMERA<치성과 적루>

OLYMPUS DIGITAL CAMERA<마차 2대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넓은 성벽 상부>

시안 종루(钟楼)는 명나라 때(1384년)에 처음 세워졌다. 건물은 높이 40 m 정도 이며, 성문 형식의 벽돌로 지은 정사각형 기단 위에 3층 목조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남문인 영녕문 안쪽으로 600 m 정도 떨어진 도심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260 m 정도 떨어진 곳에 고루가 있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종루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당나라 때 만들어진 경운종(景雲鐘, Jingyun Bell) 등이 걸려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종루>

시안 도심 회족거리라 불리는 옛 시장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고루(鼓樓)이다. 건물은 성문 형식의 기단 위에 3층 누각을 올려 놓은 형태로 명나라 초기인 1380년에 처음 세워졌다. 저녁에 북을 쳐서 하루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곳으로 시안 시민들이 북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높은 건물로 세워 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고루>

섬서역사박물관(陕西历史博物馆)

섬서역사박물관은 1,100년 동안 고대 중국 왕조의 수도였던 역사적 배경으로 많은 문화유산들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170만 여점에 이르는 많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시대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3,0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제1전시실은 선사시대 이래 주(周), 전국시대,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유물들을, 제2전시실은 동.서양 교류를 통해 통일된 중국문화를 정립한 한(漢), 남.북조시대 유물들을, 제3전시실은 남.북조 혼란기를 마감하고 화려하면서 국제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수.당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섬서역사박물관 정문>

OLYMPUS DIGITAL CAMERA<본관 로비에 특별전시 중인 서한류금동마(西漢鎏金銅馬), 한, 싱핑(兴平)시 무릉(茂陵)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리방준(盠方尊), 서주, 바오지(宝鸡)시 출토 >

OLYMPUS DIGITAL CAMERA<금괴수(金怪獸), 전국 ~ 서한, 선무(神木)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석가불조상(釋迦佛造像), 북위,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류금철심동룡(鎏金鐵芯銅龍),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삼화마(三彩三花馬), 당, 셴양시 출토>

<출처>

  1. 안내문,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섬서역사박물관(陕西历史博物馆),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박물관

섬서성(陝西省)은 황하강 중류에 위치한 고장으로 다양한 풍경과 지정학적 특징, 풍부한 자원,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관중이라 불리는 중앙의 넓은 평원, 북부의 황토고원, 남쪽 진령산맥(秦嶺山脈)의 웅장함 등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주나라 이래 1,100년 동안 14개 왕조가 수도를 삼았으며 중국을 대표하는 주(周), 진(秦), 한(漢), 당(唐)왕조가 시안(西安)에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또한 서역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특징으로 수요였던 장안(長安)은 동.서문화가 만나서 새로운 문화로 융합되는 국제도시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섬서역사박물관 정문>

섬서역사박물관은 1,100년 동안 고대 중국 왕조의 수도였던 역사적 배경으로 많은 문화유산들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170만 여점에 이르는 많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시대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3,0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제1전시실은 선사시대 이래 주(周), 전국시대,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유물들을, 제2전시실은 동.서양 교류를 통해 통일된 중국문화를 정립한 한(漢), 남.북조시대 유물들을, 제3전시실은 남.북조 혼란기를 마감하고 화려하면서 국제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수.당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섬서역사박물관 본관>

OLYMPUS DIGITAL CAMERA<본관 로비>

OLYMPUS DIGITAL CAMERA<본관 로비에 특별전시 중인 서한류금동마(西漢鎏金銅馬), 한, 싱핑(兴平)시 무릉(茂陵) 출토>

제1전시실, 선사시대.서주,전국시대,진(秦)

제1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춘추시대 서주(西周), 전국시대 진(秦)나라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섬서성은 서주(西周)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중심 지역이다. 소설 삼국지에 진창성(陳倉城)으로 잘 알려진 바오지(宝鸡)시는 주나라와 진나라의 발상지로 많은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위수(渭水) 북쪽에 위치한 셴양(咸陽)은 전국시대 진나라의 수도였고, 서주 문왕(文王)이 건설한 수도 풍경(豊京), 무왕이 건설한 호경(鎬京)이 시안시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청동예기(靑銅禮器)는 고대중국을 대표하는 유물로 조형미나 제작기술이 뛰어난 걸작들이 발굴.전시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1전시실 입구>

위수(渭水) 주변에 존재했던 앙소문화(仰韶文化)는 선사시대 중국 문화적 통합을 보여주고 있으며, 룽산문화(龍山文化) 시기에는 국가형태로 발전하는 거대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거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앙소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기형의 토기들>

주(周)는 후직(后稷)이 태(邰, 현재 함양 양링구杨陵区)에서 터를 잡으면서 국가로 성장했으며, 또 다른 조상 공류(公刘)가 일족을 이끌고 빈(豳, 오늘날 쉰이旬邑현)에 터를 잡았다.기원전 12 세기에 상(商) 무왕 통치기에 동안 단부(亶父)가 주원(周原)에 이주하면서 번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궁궐이 있는 성벽 도시를 세웠으며, 통치시스텝을 만들었다. 상(商)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단부(亶父)의 주(周) 고유의 문화를 만들면서 강력한 제후국으로 발전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외쌍정판와(外雙丁板瓦, 서주, 바오지(宝鸡)시 출토>

기원전 1046년 무왕(武王)은 상을 멸망시킨 후 서주(西周)를 건국하고 호경(鎬京)을 수도로 삼았다. 상(商)의 체제를 기반으로 서주는 후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예악(禮樂)에 정립하였다. 한반도에도 철학, 문화,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주가 정립한 예악(禮樂)이 큰 영향을 끼쳤다.

OLYMPUS DIGITAL CAMERA<맹궤(孟簋), 서주, 시안시 장가파(張家坡) 출토>

고대 중국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던 섬서성은 “청동예기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한대(漢代) 이래로 서주 시기에 많들어졌던 많은 청동예기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발굴과 관련된 고사(古事)와 관련 장면을 표현한 한대화상석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리방준(盠方尊), 서주, 바오지(宝鸡)시 출토 >

진(秦)나라 사람들은 현재 감숙성(甘肅省) 텐수이(天水) 주변에 살았던 화화(華夏) 민족에 속한다. 기원전 770년 경 서주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관중지방에 터를 잡고 전국칠웅을 대표하는 강대국으로 발전했다. 병마용으로 대표되는 진(秦)의 유물들은 웅장함과 군사적인 특징으로 대표되는 전국시대 문화와 시대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봉조문와당(鳳鳥紋瓦當), 전국시대, 바오지(宝鸡)시 펭시안(鳳翔)현 출토>

진석고(秦石鼓)는 북모양을 하고 있는 글자가 새겨진 돌로 베이징 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금석문으로 전국시대 진나라에서 만들어졌으며 당나라 때(627년) 섬서성 바오지(宝鸡)시 펭시안(鳳翔)현에서 발견되었다. 전체 10개로 돌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경詩經>의 사언시 형태로 사냥 활동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700자 정도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발견 당시에도 많이 손상되었으며 지금은 272자만 남아 있다. 옛 탁본에서도 470여 자 정도만 읽을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석고(石鼓, Drum-shaped stone, 복제품)>

전국시대 초기다른 경쟁국들은 진(秦)을 약소국으로 여겼다. 기원전 356년 경 진 효공(孝公)의 명령에 따라 상앙(商鞅)의해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조치인 변법(變法)이 시행되면서 진은 전국칠웅 중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으며, 진시황에 의한 중국통일을 토대를 마련했다.

OLYMPUS DIGITAL CAMERA<농기구, 전국시대, 바오지(宝鸡)시 치산(岐山)현 출토>

진시황(秦始皇)으로 잘 알려져 있는 진왕 영정(嬴政)은 기원전 221년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중앙집권적 제국을 세웠다. 이는 춘추시대 이래 많은 국가와 정치가, 사상가들의 열망적인 꿈이었다. 사상의 통일을 위해 일으킨 분서갱유처럼 부정적인 면모도 있지만 만리장성의 건설, 도량형을 비롯한 제도와 사회의 통일, 군현제의 실시 등 중국 역사에서 통일 국가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병마용(兵馬傭, Terracotta army). 진, 시안시 린통(临潼)구 진시황릉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 “오십년” 동과(五十年 銅戈), 전국시대, 수집품. 창에 진소왕(秦昭王) 50년 (BC 257년)이라는  제작연대가 새겨져 있다.>

진(秦)은 중국통일 후 사회 통합을 위해 일련의 조치를 시행했다. 잘 조직된 중앙정부와 군현제는 향후 2,000년 동안 중국 국가 제도의 기반이 되었다. 공식언어, 통화, 법률, 도량형 통일 등은 후대 중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노동화석권(高奴銅禾石權), 진, 시안시 출토>

진시황릉은 그가 13세 일때 시작하여 37년 동안 수많은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무덤은 높이 76 m의 여산을 중심으로 당시 수도였던 함양을 본떠서 둘레 2.5 km 의 내성과 둘레 6.3 km의 외성으로 구성되었다. 1974년 여산 동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병마용갱이 발견되었다. 이후 병마용갱 주변 일부에서만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엄청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진시황릉은 후대 왕조의 왕릉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학(靑銅鶴), 진, 시안시 린통(临潼)구 진시황릉 출토>

제2전시실, 한(漢).삼국.위.진.남북조

제2전시실은 진나라 이후 통일된 한나라부터 삼국,위,진.남북조시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실크로드(Silk Road)가 개척된 이후 동서 무역로의 출발지였던 장안(長安)은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자 세계적인 대도시가 되었으며 중국은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장안과 주변지역에 있는 황제들의 능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당시 한(漢) 사회의 번영, 다채로운 삶, 예술의 다양성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답흉노(馬踏匈奴) 조각상(복제품), 한무제 능원 곽거병 무덤에 있는 조각상이다.>

장안(長安, 현 시안시)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왕조가 가장 오래 기간 수도로 삼았던 도시이다. 웅장한 궁궐, 잘 계획된 도로와 도시기반 시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읍성 등을 잘 갖추고 있다. 서구 사회의 로마에 비견되는 중국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라 할 수 있다.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이 있던 장안성은 수.당 때 형성된 현 시안시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장락미앙(長樂未央) 와당, 한, 시안시 한(漢) 장안성 유적 출토>

한(漢)나라 때에는 사후 세계를 현실세계의 연장으로 생각해 진시황릉처럼 무덤 조성은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능역은 무덤이 봉분, 사당, 능역 주변의 성벽과 망루 등으로 구성된다. 능역에는 황제를 호위했던 주요 관리들과 장군들, 가까운 친척들의 무덤도 같이 조성되었다. 서한시대 황릉 11곳중 9곳은 위수(渭水) 북쪽에 있으며 2곳은 장안 동쪽과 남쪽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황후옥새(皇后玉璽l), 한, 셴양시 장릉(長陵) 유적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기좌여용(彩繪跽坐女俑), 한, 시안시 바차오(灞桥)구 출토>

진(秦)의 멸망이후 혼란기를 보낸 후 다시 중국이 통일되면서 점차 농업생산력이 회복되고 기술도 발전하게 되었다. 철제 농기구와 소를 이용하여 깊게 땅을 가는 심경(深耕)이 보편화되고, 제방을 쌓아 수리시설을 만드는 등 농업기술이 이 시기에 크게 발전하였다. 이에 따라 단위 토지당 농업생산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와함께 말사육을 비롯한 축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창고를 비롯하여 농업에 필요한 여러 시설들과 가축을 축소하여 만든 모형들이 한나라 무덤 부장품으로 많이 출토되고 있다. 한반도 고대사회 무덤에서 볼 수 있는 상형토기들도 이런 한(漢)의 풍습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정(陶井, Pottery wells), 한, 시안시 시안구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도창(彩繪陶倉), 한, 시안시 바차오(灞桥)구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녹유대측도저권(綠釉帶厠陶猪圈), 한, 웨이난(渭南)시 퉁관(潼关)현 출토. 녹유도저(綠釉陶猪), 한, 시안시 바차오(灞桥)구 출토>

한무제가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동.서교역로인 실크로드가 개척되기 이전에 많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전 세대와는 달리 서역의 영향을 받은 유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중국은 풍부한 재료와 앞선 기술로 다양하면서 뛰어난 수공예품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공예품인 자기(瓷器)가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섬세한 옥공예, 청동 거울 및 화려한 비단직물 등 한(漢)나라 때 뛰어난 기술과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주제와 표현이 돋보이는 화상석(畵像石)과 화려한 벽화 등으로 장식한 석실형 고분에서 서역과의 활발한 문화교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자종(瓷鍾, porcelain container), 한,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호문섭형옥패(虎紋鞢形玉佩), 용문옥패(龍紋玉佩), 옥선(玉蟬), 한,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사유초협문경(四乳草叶紋鏡), 사유사훼문경(四乳四虺紋鏡), 한,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칠이배(漆耳杯), 한, 수집, 도박산로(陶博山爐), 한,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한병마용(漢兵馬俑), 한, 셴양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차마출행도화상석(車馬出行圖), 한, 위린시 쑤이더(绥德)현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차마출행도벽화(車馬出行圖壁畵, 복제품), 한, 위린시 딩볜(定边)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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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회안어등(彩繪雁魚燈), 한, 한, 위린시 신목(神木)시 출토>

한(漢)대 중국인들은 부를 축적하면서도 섬세하면서도 다채로운 삶을 추구했다. 이들은 다양한 일상 용품 등을 생산했으며 출토된 유물을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지혜와 관심사를 살펴볼 수 있다. 종이, 지진계 및 마취약 등의 발명은 당시 중국이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 발달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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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유도루(綠釉陶樓), 한,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웅형대구(熊形帶鉤), 호형대구(虎形帶鉤), 류금독각수은대구(鎏金獨角獸銀帶鉤), 비파형수수착은대구(琵琶形獸獸錯銀帶鉤), 한>

OLYMPUS DIGITAL CAMERA<반량권전(半兩權錢), 한, 시안시 출토, 동배권(銅环權), 시안시 미앙구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철차구(鐵車具), 한, 시안시 장안구 출토>

전시된 유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 섬유로만들어진 종이이다. 파교지(灞橋紙, Baqiao paper)로 잘 알려진 이 유물은 시안시 파교(灞橋) 부근 한대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대마를 주재료로 하며 찌고 끓이며, 펄프로 바뀌는 제조공정을 통이 종이를 만든다.

OLYMPUS DIGITAL CAMERA<파교지잔편(灞橋紙殘片), 한, 시안시 출토>

흉노를 제압하기 위해 한무제(漢武帝)는 장건을 2번에 걸쳐 서역으로 파견하였다. 실질적인 동맹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장건의 파견은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중국과 서방세계의 교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흉노와 국경이라 할 수 있었던 만리장성 주변이었던 위린(榆林)시 일대에는 당시 흉노를 통해 서역문화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동물모양을 하고 있는 장식 등은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주어 비슷한 형태의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류금동잠(鎏金銅蠶), 한, 안캉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도마(彩繪陶馬), 한, 셴양시 싱핑(兴平)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금괴수(金怪獸), 전국 ~ 서한, 선무(神木)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피양형동호(皮襄形銅壺), 한, 위린(榆林) 선무(神木)시 출토>

중국은 한(漢)이 붕괴된 이후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220 ~ 581년) 시대라 불리는 끊임없는 전쟁이 이어진 혼돈과 불확실의 시기를 겪었다. 중국 북쪽 유목민(흉노, 선비, 강, 저, 갈 등)이 국경을 넘어 관중지방에 정착하면서 농업문화와 유목문화가 융합되었으며,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교역은 여전히 번성했다.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가 동쪽으로 전래되면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루(陶樓), 위진, 웨이난 화인(华阴)시>

OLYMPUS DIGITAL CAMERA<시순무사용(侍盾武士俑), 서위, 셴양시 출토, 채회시순무사용(彩繪侍盾武士俑), 북위,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점금채회시순무사용(點金彩繪侍盾武士俑), 북조,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재사낙타(載丝駱駝), 서위, 셴양시 출토, 궤기낙타(跪起駱駝), 북주,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북주무제효릉묘지(北周武帝孝陵墓志), 북주, 셴양시 효릉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독고신다면체매정조인(獨孤信多面體煤精組印), 서위, 안칸시 출토>

이 유물은 중앙아시아 출신 관리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관리는 장안에 거주하는 외국인과의 거래, 종교 업무를 담당했다. 56개의 금잎으로 장식된 얕은 부조는 여행, 연회, 사냥, 오락 등 무덤 주인이 생전에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채회점금안가묘위병석갈(彩繪點金安伽墓圍屛石楬), 북주, 시안시 출토>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 여러 민족의 융합은 사화와 문화의 발전을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게 하였다. 섬세한 수공에품이나 “위비(魏碑)”의 힘찬 글씨체, 생동감 넘치는 무용을 보여주는 인형들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예술품들이다. 조각, 서예, 음악과 무용 등 여러 분야에서의 성취는 수당(隋唐)시대 문화적 번영의 토대가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가불조상(釋迦佛造像), 북위,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사자형연대(靑瓷獅形燭臺), 남조, 안캉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진묘수(鎭墓獸), 남조, 안캉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도우차(彩繪陶牛車), 십육국, 셴양시 출토>

제3전시실, 수당(隋唐)시대

수당(隋唐)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기로 여겨진다. 수도 장안(長安, 현 시안시)은 동시대 셰계에서거 가장 크고 번성했던 대도시였다.수당(隋唐)왕조의 정치,경제, 문화는 다른 문명과의 넓은 교류속에서 발전했으며 수당시기 유물들은 시대의 포용성, 혁신과 창의성을 통해 성취했던 빛나는 업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나라의 국제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유물>

장안은 수(隋) 우문개가 공사를 맡어 건설된 대흥성(大興城)이 모태가 되었다. 도시는 남북 약 7 km, 동서 약 7 km의 규모로 중앙 주작대로를 중심로 양쪽에 시장과 54방씩을 두었었다. 후대 도시건설의 모범이 되었으며 신라의 경주, 발해 상경, 일본 교토가 장안을 모방하여 건설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보원년(大寶元年) 명문전, 당, 수집. 서방천보(西坊天寶) 명문전, 당, 육관소(六官昭) 명문전, 당, 시안시 대명궁 한림원터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원락(三彩院落),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류금동쇄(鎏金銅鎖), 당,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솔마용급삼채마(三彩率馬俑及三彩馬), 당, 웨이난시 태자묘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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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계지여의사녀도벽화(高髻持如意仕女圖壁畵), 당, 시안시 정순황후(貞順皇后) 경릉(敬陵) 출토>

수당(隋唐) 시기 농업은 급속히 발전했다. 경작지는 크게 확장되었으며 인구는 증가했으며 이주정책은 더욱 진보했다. 철쟁기나 수차 등 획기적으로 개량된 농기구들은 곡목 수확량을 증가시켰다. 수나라 때 건설한 대운하의 영향으로 강남지역과 물자, 사람 등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전 시대에 비해 인구나 생산력이 크게 증가했다. 반면 관중지역 생산력으로 수도 장안 인구를 부양하기 어려웠고 서쪽 이민족의 이민족의 위험이 감소하여 당대 이후 정치, 경제의 중심지는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창(三彩倉), 당, 한중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황유우(黃釉牛), 황유구(黃釉狗), 도와구(陶卧狗),  채회자모저(彩繪子母猪), 채회유도자모저(彩繪釉陶子母猪), 황유저(黃釉猪), 수.당>

OLYMPUS DIGITAL CAMERA<채회마(彩繪馬), 당, 시안시 출토>

상(商)대 이래 발전해 온 비단의 직조는 당(唐) 왕조때 크게 발전하였다. 612년 중국인들은 위금(緯錦)으로 잘 알려진 화려한 꽃무늬로 장식할 수 있는 직조기술을 개발하였다. 그 이후 비단의 색깔과 문양은 더욱 정교해지고 매력적인 제품이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단 , 당, 수집>

수당(隋唐)시대 수공예는 고대 중국에서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공예제작 수준은 시장 수요 증가에 따라 급격히 향상되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방과 개인 공방 모두 번창하였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비단, 금은기(金銀器), 당삼채, 자기, 청동거울 등은 수당시대의 뛰어난 공예 수준을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류금철심동룡(鎏金鐵芯銅龍),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류금배숙진쌍봉문은반(鎏金裵肅進雙鳳紋銀盘), 당, 시안시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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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공전지문은향낭(鏤空纏枝紋銀香囊), 당,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마갈문금장배(摩羯紋金裝金長杯),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사란위수문금은평탈경(四鸞衛綬紋金銀平脱鏡), 당, 시안시 출토>

당삼채(唐三彩)는 납유약을 발라 저온에서 구운 도기이다. 가마에서 구위지는 과정에 유약이 흘러내려 색의 융합을 촉진하다. 표면 색상이 노랑, 녹색, 청색이어서 당삼채라 부른다. 당나라 시기의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로 주로 무덤 부장품으로 만들어 졌으며 건물이나 실내 장식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주요 기형으로는 일반적인 그릇을 비롯하여, 인물상, 신상, 진묘수, 말, 낙타 등이 있다. 당시 사람들의 복식, 생활모습, 취향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삼화마(三彩三花馬), 당, 셴양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쌍어형호(三彩雙魚形壺),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백자완(白瓷碗), 당, 수집, 백자배(白瓷杯),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비색자완(秘色瓷碗), 당, 바오지시 출토>

당대(唐代)에는 농업, 수공예의 발전과 함께 교역이 크게 번창했다. 광범위한 시장의 개설은 당시 상업발전을 잘 보여준다. 장안은 큰시장인 동시(東市)와 서시(西市)가 주작대로 양쪽에 개설되어 전세계 상인들을 불러들였다. 고대 중국 경제의 혁식적인 발명품들처럼 거래세같은 성숙된 과세방식이 적용되었다. 토지세, 주민세도 함께 부과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육릉제량은관(六棱提梁銀罐), 당,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전거(三彩錢柜), 당, 시안시 출토>

천안용간은병에는 제조장소, 시간, 기능, 무게, 제작자 이름 등을 나타내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당 현종시기 영남(嶺南)지방의 과세체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건중이년감판은과” 은정에도 제조부서, 시간, 무게, 사용목적 등을 나타내는 글자가 새겨져 이다. 글자에 따르면 큰 재난 이후 영남(嶺南) 지방의 세금을 절반으로 줄였으며 그 증거로 이것의 무게는 약 2.1 kg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안용간은병(洊安庸澗銀甁), 천보굴과은정(天寶窟淉銀鋌), 영남도세상은정(嶺南道稅商銀鋌), 하동은정(賀冬銀鋌), 건중이년감판은과(建中二年減判銀淉 은정), 당, 시안시 출토 외>

수당시대 복식은 크게 제복(祭服), 조복(朝服), 관복(官服), 일상복(日常服)으로 구분된다. 일상복을 제외한 복식들은 한대(漢代) 이래 예법으로 자리잡은 전통적인 예복이다. 반면에 일상복은 스타일은 북조(北朝)와 북방유목민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옷의 색깔, 패턴, 장신구 등은 사회계층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었다. 수당시대의 복식은 인근 국가와 민족의 복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통일신라 이래 한반도의 복식은 당나라 복식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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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회유도첩금문리용(彩繪釉陶貼金文吏俑), 당, 센양시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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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회유도첩금무관용(彩繪釉陶貼金武官俑), 당, 센양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유모여기용(彩繪帷帽女騎俑), 채회유도대립모여기용(彩繪釉陶戴笠帷帽女騎俑), 당, 셴양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여입용(三彩女立俑), 채회피백여입용(彩繪披帛女立俑),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류금동수수릉추옥벽배(鎏金銅獸首鉸錐玉臂环),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삼채분합(三彩粉盒), 당, 시안시 출토>

당대(唐代) 사람들은 음악, 춤, 스포츠 등 다양한 오락을 즐겼다. 국경 바깥 아시아 국가들의 영향을 받아 당나라 예술은 전성기를 누렸다. 악극단은 가수, 무용수, 연주가로 구성되었는데 자국민 무용수와 외국인이 동시에 공연했다. 폴로(Polo) 경기는 귀족이나 평면 모두에기 인기가 있었으며 축구와 비슷한 축국(蹴鞠)은 많은 인기를 누린 스포츠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채교유기마사작용(三彩絞釉騎馬射猎俑), 삼채기마요수작용(三彩騎馬架鷂狩猎俑), 당, 센양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타마구용(彩繪打馬球俑),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유도악무여용(彩繪釉陶樂舞女俑), 셴양시 출토, 당>

OLYMPUS DIGITAL CAMERA<삼채기마악용(三彩騎馬樂俑),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백자벽옹연(白瓷辟雍硯), 당, 시안시 출토>

수당(隋唐)시대에는 안정적인 사회, 강한 경제와 지배층의 소명의식 등으로 많은 종교들이 번창했다. 도교와 불교가 가장 번창했는 전국적으로 많은 도교사당과 불교사찰이 있었으며 많은 종파들이 형성되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拜火敎, Zoroastriansism)와 마니교(摩尼敎, Manichaeism), 기독교 일파인 경교(景敎, Nestorianism)를 비롯하여 이슬람교까지 중국에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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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불입상(白石佛立像), 수, 바오지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조인범문라라니경주(雕印梵文陀羅尼經咒),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류금노군상(鎏金老君像), 당,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채회십이생초용(彩繪十二生肖俑),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점금천왕용(彩繪點金天王俑), 채회천왕용(彩繪天王俑),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진묘수(彩繪鎭墓獸), 당, 수집>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동서양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던 장안(長安)에는 당시 서역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중국산 비단, 차, 종이 등이 서역으로 나갈때 이에 비례하여 다량의 교역품들이 장안으로 들어왔다. 수당(隋唐)시대 문화는 문화의 융합과 무역으로 크게 번성할 수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이 사용했던 낙타를 표현한 삼채용(三彩俑)들>

OLYMPUS DIGITAL CAMERA<호인(胡人)으로 불렸던 서역출신 여자용(女子俑)>

OLYMPUS DIGITAL CAMERA<서역출신 남자용(男子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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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피양호(白瓷皮襄壺), 당, 시안시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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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리병호(白瓷螭柄壺), 당,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백자호인두(白瓷胡人頭), 채회호용두(彩繪胡俑頭),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녹색유리병(綠色琉璃甁), 당, 시안시 출토>

Welcome to the Shaanxi History Museum
Shaanxi, a province sitting in the heartland of China in the middle reaches of the Huanghe River, aka, the Yellow River, is known for its sublime scenery, strategic location, material abundance and cultural spender. It spreads a dazzling array of natural beauty: the dramatic vistas of the loess plateau in the north, the boundless stretches of the Guanzhong plain in the middle, and the majestic ranges of the Qinling-Bashan Mountains in the south. Shaanxi has few peers when it comes to natural environment that once provided great impetus for civilization advancement and social evolution in this region, which in turn ensured Shanxi was home to the Lantian Man over one million years ago. During the Neolithic Age, primitive tribes flourished in this region. The rise of the Yandi and Huangdi clans, both reputed as ancestors of Chinese nation, ushered in the evolution of ancient Chinese civilization. Shaanxi once remained the center stage during ancient and pre-modern Chinese history. For over 1,100 years 14 dynasties governments had their capitals established in this region. The four most glorious dynasties, Zhou, Qin, Han and Tang, achieved an unprecedented material wealth and spiritual enlightenment, which had a full and enduring influence on their ensuring dynasties. Shaanxi also served as a key hub for China’s cultural exchanges with other countries. The Silk Road, a network of trade routes and cross-cultural contact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was initiated after the Western Regions had been explored by the Chinese during the Western Han Dynasty. China at Tang times was a welcoming empire that embraced ethnicities from many places. Its capital, the Chang’an city, was hailed as an international metropolis charming and attractive to people from near and far. The splendid east-west cultural fusion attracted world attention. The brilliant history of Shaanxi advancement has yield a rich legacy of well-preserved and valuable cultural heritage properties, which showcased the most outstanding achievements of ancient Chinese civilization. This exhibition- Ancient Civilization in Shaanxi-bring together a selection of 3,000 items from the 1.7 million museum collections in an attempt to demonstrate the origin, development and prosperity of ancient Chinese civilization. This selection illustrates the remarkable role Shaanxi played in the advancement of Chinese civilization as well as world civilizations. (안내문, 산동성박물관, 2013년)

<출처>

  1. 안내문,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시안 대흥선사(大興善寺), 당나라 밀종(密宗)의 중심 사찰

중국 시안에 있는 남아 있는 유서깊은 사찰인 대흥선사(大興善寺, Daxingshan Temple)이다. 대흥선사는 서진(西晉) 때(266년) 준선사(遵善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당나라 때 인도 승려 선무외(善無畏, Su­bhakara­simha, 637~735),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 671–741), 불공(不空, Amoghavajra, 705~774)이 인도에서 밀교들 들여와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많은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당나라 불교 6대 종파 중 밀종(密宗)의 총본산으로 여겨지며 많은 불경이 번역되어 대자은사, 천복사와 함께 당나라 장안의 삼대역경장(三大譯經場)으로 불렸다. 당나라 말 회창폐불(會昌廢佛) 때 원래의 대흥선사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그 이후의 내력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의 사찰은 명나라 때 중건된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유적지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는 대자은사나 천복사와는 달리 사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흥선사>

밀교(密敎)는 불교의 삼보인 불(佛), 법(法), 승(僧) 중 부처의 가르침인 법(法)을 상징하는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를 본존으로 하는 종파이다. 인도 힌두교의 영향를 많이 받은 종파로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중국에서는 밀종(密宗), 한국과 일본에서는 진언종(眞言宗)이라 하며 티베트불교도 이에 해당한다. 당나라 때 많은 밀교경전이 이곳에서 번역되었으며 신라 승려 혜통(惠通)은 선무외에게 밀교를 배운 후 귀국하여 진언종을 일으켰으며, 일본 승려 구카이(空海)는 인근 청룡사에서 혜과로부터 밀교를 배운후 일본 진언종을 일으켰다.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慧超, 704~787년)는 당나라 장안에 금강지에서 밀교를 배웠으며 불경번역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에 있는 밀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금강저(金剛杵)>

오늘날 대흥선사는 명나라 때 중건된 사찰을 기준으로 현대에 복원한 것이다. 가람배치는 산문, 천왕전, 대웅보전, 지장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사찰 뒷편에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불경을 번역했던 옛 역경원 건물 형태를 계승하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오랜 세월동안 대흥선사를 중수하면서 세웠던 중수비 등이 많이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천복사의 가람배치와 거의 비슷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흥선사 출입문인 산문>

산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천왕전이 있고, 양쪽에  경내로 출입하는 출입문을 두고 있다. 출입문으로 천왕문을 사용하는 한국 사찰의 가람배치와는 약간 다른 부분이다. 천왕전 앞 마당 양쪽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흥선사 천왕전>

OLYMPUS DIGITAL CAMERA<천왕전 내부에 모셔진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천왕전 앞 마당 오른편에 있는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요사채>

천왕전을 지나면 정면에 주불전인 대웅보전이 중심영역으로 들어선다. 마당 양쪽에는 구고지장전(救苦地藏殿), 평안지장전(平安地藏殿)이 있으며 다음으로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전통적인 사찰 가람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을 중시하는 오늘날 대흥선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보전은 오방불(五方佛)을 모시고 있으며 뒷면의 관음보살, 선재동자, 용녀가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은 궁궐 정전과 비슷한 규모의 건물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이 있는 중심 영역>

OLYMPUS DIGITAL CAMERA<구고지장전(救苦地藏殿)>

OLYMPUS DIGITAL CAMERA<구고지장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평안지장전(平安地藏殿)>

OLYMPUS DIGITAL CAMERA<평안지장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종루>

OLYMPUS DIGITAL CAMERA<고루>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에 모셔진 오방불>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뒷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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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과 선재동자, 용녀>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옆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기와불사를 하고 있는 모습>

주불전인 대웅보전 뒷편은 노천지장전(露天地藏殿)을 중심으로 관음전, 문수전, 보현전이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밀교의 대표적인 신앙대상인 대흑천(大黑天), 애염명왕(愛染明王),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마리지천(摩利支天)을 모신 불전이 자리잡고 있다. 대흥선사를 방문한 신도들이 기도를 올리는 공간으로 현대 불교에서 대흥선사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대흥선사를 중수하면서 세웠던 비석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을 올리는 향로를 중심으로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밀교를 대표하는 신앙대상을 모신 불전>

OLYMPUS DIGITAL CAMERA<어부와 상인의 신으로 숭상받는 대흑천>

OLYMPUS DIGITAL CAMERA<밀교의 신앙 대상인 명왕 중 서쪽을 상징하는 위덕명왕(大威德明王)>

OLYMPUS DIGITAL CAMERA<애염명왕(愛染明王)>

OLYMPUS DIGITAL CAMERA<노천지장전>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앞 향로>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OLYMPUS DIGITAL CAMERA<보현전>

OLYMPUS DIGITAL CAMERA<문수전>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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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세워진 중수비>

OLYMPUS DIGITAL CAMERA<중수비 머릿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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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광지삼장국사비>

관음전 뒷편으로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밀교 경전을 번역했던 옛 역경원(譯經院)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사찰 뒷편에는 전탑형식의 사리탑이 있다. 마당에는 노송이 10그루 이상 있으며 명나라 떄 심어진 등나무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수행공간 중심 건물인 법당>

OLYMPUS DIGITAL CAMERA<법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법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법당 뒷편 역경원을 연상시키는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 소원을 적어 걸어놓은 곳>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작은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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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 1992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흥선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대청진사(西安大淸眞寺, The Great Mosque of Xi’an)

중국 고대 수도였던 시안 중심부 종루(鐘樓)와 고루(鼓樓)를 지나 이슬람 주거지역인 회족거리에 들어서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회교사원인 시안대청진사(西安大清真寺, The Great Mosque of Xi’an)를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현종 때(742년) 처음 세워졌으며, 송,원,명,청대에 여러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공내전 이후 한때 철강공장으로 개조되기도 했으나 1956년 문화유적지로 지정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들은 명나라 초에 중건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중국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슬람사원(Mosque)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청진사(西安大清真寺)>

대청진사는 벽으로 둘러싸인 5개의 안뜰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 메카방향으로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은 높은 첨탑과 웅장한 돔으로 상징되는 아랍의 이슬람사원과는 달리 전통적인 중국 사당 건물형식과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패루(牌樓), 오간루(五間樓), 칙사전(敕賜樓), 선례루(宣禮樓), 일진정(一眞亭), 예배대전(禮拜大展)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양쪽에 부속건물들을 두고 있다. 전체적으로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의 건축양식과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3번째 안뜰에 있는 3층 누각건물인 선례루가 첨탑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성전과 비슷한 형태의 대예배전이 대형돔이 있는 기도실 역할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청친사 가람배치>

오간루(五間樓) 앞 첫번째 안뜰

대청진사는 동.서방향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동쪽에 첫번째 출입문이 오간루를 중심으로 첫번째 안뜰이 조성되어 있다. 넓은 광장과 웅장한 출입문이 있는 전통적인 이슬람사원과는 달리 회족거리라 불리는 상업지구 골목길과 연결된 북쪽 대사정문(大寺正門)을 통해 안뜰에 들어서면 동쪽 방향으로 중국 전통 패루(牌樓)가 있고 정면에는 명대에 조성된 조벽(照壁, Screeen wall)이라 불리는 벽돌담장이 있다. 안뜰 양쪽에는 사무실로 보이는 북전청(北殿廳)과 남전청(南殿廳)이 자리잡고 있다. 손을 씻을 수 있는 수조(水操)가 있는 전통 이슬람사원과는 달리 중국식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패루에서 직선방향으로 중국 사당 출입문 양식을 보여주는 앞면 5칸 규모의 큰 출입문이 오간루를 통해 2번째 안뜰로 들어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회족거리 골목길에서 대청진사를 출입하는 1칸 규모의 작은 정문>

OLYMPUS DIGITAL CAMERA<조벽(照碧, Screen wall), 이슬람양식 문양으로 벽을 장식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패루와 첫번째 안뜰>

OLYMPUS DIGITAL CAMERA<북전청(北殿廳)>

대청진사의 실질적인 출입문인 오간루(五間樓)는 문묘 출입문인 대성문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출입문에는 청진사(淸眞寺)라 적힌 청나라 양식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바닥에는 북모양의 석고(石鼓)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간루(五間樓)>

OLYMPUS DIGITAL CAMERA<이슬람 양식을 보여주는 오간루 내부 벽면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중국적인 석고>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안뜰에서 본 오간루>

칙사전(敕賜樓) 앞 2번째 안뜰

오간문을 지나면 칙사전(敕賜樓) 앞 2번째 안뜰로 들어선다. 2번째 안뜰은 대리석으로 조각한 삼문형식의 패방을 중심으로 충천이룡비(沖天驪龍碑)라 불리는 중요한 비석이 세워져 있어 문묘의 비림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비명에 <칙사(敕賜)>라는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볼 때 국가에서 내린 것으로 보인다. 칙사전 내부에는 여러기의 중요한 비석들이 있으며 가운데 답도에서 볼 수 있는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어 성스러운 공간임을 보여준다. 남쪽편 건물은 목욕실(沐浴室)로 소개되어 있는데 기도실을 출입하기 전 몸을 씻는 공간이 있는 이슬람사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앞 2번째 안뜰>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안뜰 가운데 위치한 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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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안뜰에 세워진 비석>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안뜰 북전청>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안뜰 남쪽 목욕실로 소개된 건물>

3번째 안뜰로 출입하는 문은 가운데 앞면 3칸 규모의 칙사전 건물이 있고 양쪽에 작은 협문이 있다. 신도들은 협문을 통해 출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칙사전 내부 바닥에는 답도로 보이는 조각이 있고 양쪽에 비석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벽면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현판, 칙사예배사(敕賜禮拜寺)라 적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내부 바닥에 있는 답도처럼 보이는 조각상>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내부에 있는 비석들>

OLYMPUS DIGITAL CAMERA<3번째 안뜰로 들어가는 협문>

OLYMPUS DIGITAL CAMERA<3번째 안쯜에서 본 칙사전>

선례루(宣禮樓) 앞 3번째 안뜰

3번째 안뜰에는 모스크 첨탑 역할을 하는 3층 누각건물인 선례루(宣禮樓)를 중심으로 정원이 꾸며져 있다.  선례루는 시안 대청진사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성심루(省心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 문묘 대성전 앞 벽옹(辟雍)이나 행단(杏壇)을 연상시킨다. 기도실에 해당하는 대예배전을 출입하기 전에 예를 갖추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진사를 대표하는 선례루>

OLYMPUS DIGITAL CAMERA<선례루 바닥에 있는 답도 장식>

선례루를 지나면 대예배전이 있는 4번째 안뜰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인 달삼문(達三門)이 있고 그 앞에는 청나라 말(1809년)에 세워진 공덕비가 있다.  남.북으로 부속건불인  남방(南房), 남궁전(南宮殿)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삼문과 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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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1809년)에 세워진 공덕비>

OLYMPUS DIGITAL CAMERA <북쪽 부속건물인 홍경당(洪經堂)>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부속건물>

OLYMPUS DIGITAL CAMERA<협문을 통해 연결되는 통로>

예배대전(禮拜大展)이 있는 4번째 안뜰

4번째 안뜰은 대청진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서방에서는 돔으로 된 지붕이 있는 거대한 모스크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달삼문을 지나면 신도들이 모스크에 들어가지 전에 대기하는 공간인 일진정(一眞亭)이 있고,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마당을 지나면 예배대전 월대를 출입하는 출입문을 볼 수 있다. 문묘 대성전과 비슷한 건물형태로 일반적인 모스크에 비하면 작게 보이지만 중국 사당건물 중에는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삼문을 지나면 보이는 일진정>

OLYMPUS DIGITAL CAMERA<일진정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북청(北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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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 앞 마당에 세워진 비석>

OLYMPUS DIGITAL CAMERA<남청(南廳)>

OLYMPUS DIGITAL CAMERA<일진정을 지나 예배대전으로 연결되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월대 앞 답도>

예배대전(禮拜大殿, Prayer Hall)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올리는 핵심공간이다. 건물은 문묘 대성전과 비슷한 형태로 앞면 7칸, 옆면 9칸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내부는 1,300 ㎡로 1,000명 이상의 신도들이 동시에 기도를 올릴 수 있다. 내부에는 중국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받은 코란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예배대전>

OLYMPUS DIGITAL CAMERA<아랍어로 적혀 있는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예배실 앞, 1칸 정도의 툇간을 두고 있는 대성전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예배실로 들어가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벽면에 새겨진 장식과 화병>

OLYMPUS DIGITAL CAMERA<예배대전 앞 월대>

OLYMPUS DIGITAL CAMERA<월대를 출입하는 출입문>

Introduction to Xi’an Great Mosque
Upon arriving in the ancient capital Xi’an, after passing the Bell Tower and Drum Tower, you will be in the Muslim residential area – Bei Yuan Men. Here, you will see a historic and magnificent ancient architectural complex – Xi’an, Great Mosque, a nationally famous mosque located in Huajue Lane in northwest corner of the Drum Tower. According to the existing inscription records, the Mosque was built in the first year of Tianbao period (742 A.D) under the reign of Emperor Xuanzong LI Long)l in Tang Dynasty, with a history of more than 1,270 years. It was rebuilt and expanded in the Song, Yuan, Ming and Qing Dynasties, especially after the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relevant departments appropriated special funds for renovations year by year under the correct ethnic and religious policies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and the People’s Government. Finally, a large-scale great ancient architectural complex was gradually formed, with buildings, platforms, pavilions and halls standing together harmoniously. Xi’an Great Mosque was announced as a provincial key cultural relic protection unit in 1956 and was included in the third batch of the national key cultural units in 1988. Since its opening in 1978, the Mosque has attracted a large number of tourists from more than 100 countries and regions around the world with a total of over ten million people, including Muslims and compatriots from Hong Kong, Macao and Talwan, and has received many heads of states, senior government officials and other honored guests. We believe that you will know more about this ancient architectural complex and the Muslims’ religious life after your visit. (안내문, 시안 대청진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청진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천복사 중수비

시안 천복사(薦福寺)는 당나라 즉천무후가 당고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제 저택이 있던 곳에 처음 세워졌다. 당나라 화엄종 중심 사찰이었으며 대자은사와 함께 장안(長安)을 대표하는 큰 사찰로 번창하였다. 북송 이후 천복사는 소안탑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중건이 있었는데 그 내력과 당시 가람배치 등을 기록한 중수비가 사찰 곳곳에 남아 있다. 사찰 입구 옛 천왕전터 앞에 있는 북송 때 세운 중수비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소안탑 뒷편 후문에는 1811년에 세워진 것이 있다. 또한 지금은 비림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당나라 명필 안진경의 글씨가 남아 있는 <다보탑감응비>가 천복사에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천복사 전경>

천복사 남산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불전이자 출입문인 천왕문 앞에는 천복사를 대표하는 2기의 중수비가 세워져 있다. 그 중  <대천복사중수탑기>비는 북송 때 (1116년) 세워진 것으로 소안탑을 중수하면서 그 내력을 기록하였다. 현존하는 천복사 중수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비문에는 당나라 때 천복사에 소안탑을 세웠다는 것과 북송 때 신도들의 시주로 수리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옆에는 <칙사천복선사중수기>비가 세워져 있다. 명나라 때(1472년) 세워졌다. 앞면에는 천복사를 중건한 내용을, 뒷면에 중건을 위해 시주한 관리들의 명단을 기록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천왕전터 앞에 세워져 있는 2기의 중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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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복사중수탑기비 (<大薦福寺重修塔記> 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a record of restoration of the Pagoda of the Grand Jianfu Temple)>

OLYMPUS DIGITAL CAMERA<대천복사중수탑기비 탁본, 당대 천복사 중수비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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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사천복선사중수기비 (<勅賜薦福禪寺重修記> 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a record of the renovation of the Imperial Jianfu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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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사천복선사중수기비 뒷면>

천복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앞에는 4기의 비석들을 나란히 세워져 있다. 명.청대에 천복사를 중건하면서 세웠던 비석들이다. <칙사천복선사중건기>비, <예부차부.천복전당도> 비, <중수천복사사비기> 비, <중수천복사비기.천복전당도.천복지량기>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에 세워진 4기의 비석>

<칙사천복선사중건기> 비는 명나라 때(1458년)에 세워진 비석이다. 비문에는 천복사 중건과 소안탑 수리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뒷면에는 천복사 중건과 소안탑 수리에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예부차부.천복전당도> 비는 명나라 때 (1449년)에 세워진 비석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예부로부터 받은 공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천복사 중건과 관련된 내용이다. 뒷면에는 당시 천복사 가람배치를 그림으로 새겨 놓고 있다. 윗부분에 당시 소안탑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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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사천복선사중건기비 (<勅賜薦福禪寺重建記> 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a record of the Renovation of the Imperial Jiafu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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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사천복선사중건기비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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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차부.천복전당도비 (<禮部箚付.薦福殿堂圖>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an Instructional letter from the Ministry of RItes & a Drawing of the Jianfu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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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차부.천복전당도비 뒷면>

<중수천복사사비기> 비는 청나라 때 (1684년) 세워진 중수비이다. 비문에는 심오법사(心奧法師)와 자곡선사(紫谷禪師)가 천복사를 중수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중수천복사비기.천복전당도.천복지량기>비는 청나라 때(1692년)에 세워진 비석이다. 중수기는 천복사 창건과 중수 내력을 기록하고 있으며 윗부분에 천복사 가람배치와 영역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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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천복사사비기> 비 (<重修薦福寺碑記> 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a record of the renovation of the Jianfu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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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천복사사비기비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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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천복사비기.천복전당도.천복지량기비 (<重修薦福寺碑記.薦福殿堂圖.薦福地粮記> 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a record of the Renovation of the Jianfu Temple & a Drawing of the Jianfu Temple & a Record of the Territory and Properties of The Jianfu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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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

OLYMPUS DIGITAL CAMERA<중수천복사비기.천복전당도.천복지량기비 뒷면>

OLYMPUS DIGITAL CAMERA<청대 비석 조각>

소안탑 앞에는 청대에 소안탑을 수리하면서 그 내력을 기록한 2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보수천복사보탑기>비는 청나라 때(1683년) 세워진 비석이다. 청나라 때 소안탑을 수리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다. <천복사래원> 비는 청나라 때(1734년) 세워진 비석이다. 비문에는 청나라 때(1677년) 천복사를 중건한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안탑 앞에 세워진 2기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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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천복사보탑기비(<补修薦福寺寶塔記>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a record of the repairs of the Pagoda of the Jianfu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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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복사래원비 (薦福寺來源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the Origin of the Jiafu Temple)>

소안탑 뒷편에는 청나라 말에 천복사(1811년) 를 수리하면서 그 내력을 기록해 놓은 중수비와 명나라 때 지장전을 중수하면서 세워놓은 비석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후문에 세워져 있는 2기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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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천복사지장왕전비(重修薦福寺地藏王殿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a Renovation of the Ksitigarbha Hall of the Jianfu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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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천복사지장왕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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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천복사비기비 (重修薦福寺碑記碑, A Stone Stele inscribed with a record of the repair of the Jianfu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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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천복사비기비>

당나라 명필 안진경(顏眞卿, 709 ~ 785년)의 대표작으로 서예 교본으로 사용되었던 다보탑감응비(多寶塔感應碑, Stele of Abundant Trearsure Pagoda)이다.  천복사(薦福寺)에 세워졌던 것으로 북송 때 비림이 조성되면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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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감응비>

<출처>

  1. 안내문, 시안 천복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