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August 5, 2020

둔황 막고굴(莫高窟), 혜초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석굴사원

중국 감숙성(甘肅省) 둔황(敦煌)에 있는 대표적인 천불동인 막고굴(莫高窟, Mogao Cave)이다. 명사산 동쪽 벼랑에 남북으로 약 1.6km 걸쳐 약 600 여개의 동굴이 남아 있으며 약 2,400여 개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오호십육국 때 처음 조성되기 시작되어으며 원대(元代)까지 약 1,000에 걸쳐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5세기 북양 때 조성된 것이며 북위 때 조성된 굴에는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북주(北周)와 수당(隋唐) 조성된 굴에서는 중국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명대(明代) 이후 중앙아시아의 교류가 줄여들면서 교역도시로서 둔황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막고굴도 쇠퇴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장경동에서 많은 고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서구에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 막고굴>

들어가는 길

막고굴은 둔황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명사산 절벽에 있는 석굴사원들을 말한다. 자동차로 사막길을 1시간 정도 달리면 사막에 있는 바위산이 보이는데 그 곳에 막고굴이 조성되어 있다. 막고굴이 있는 바위산을 흐르는 강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으며 약 10여분 걸으면 막고굴에 도착한다.  매표소에서 입구에 들어가는 길에는 북송(서하)시대에 조성된 고승들이 사리탑을 볼 수 있고, 다리를 건너면 최근에 만든 중국풍의 목조 패루가 있으며 석굴을 파서 만든 세계문화유산인 막고굴을 볼 수 있게 된다

SANYO DIGITAL CAMERA<주차장에서 막고굴로 들어가는 길>

막고굴이 있는 바위산 앞에는 평소에 강물은 없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녹았을 때만 물이 흐르는 강이 있다.  불교에서 바깥세상과 부처님의 세상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이 곳을 흐른 강물이 절벽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바위산 앞을 흐르는 강>

SANYO DIGITAL CAMERA<주위 흩어져 있는 승탑들>

SANYO DIGITAL CAMERA<강을 건너는 다리>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입구 패루>

 장경동이 있는 북쪽 석굴

막고굴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둔황 도심에서 약 20 km 정도 거리에 있어 걸어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수백개의 석굴들이 오늘날 아파트처럼 좁은 거리에 몰려있어 한적한 곳에 수행하는 선종계열 사찰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 하다. 신라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수 많은 언어로 쓰여진 고문서들이 발굴된 16굴은 막고굴 중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석굴을 조성하는데 종사했던 이름없는 장인들이 거처했던 불상이나 벽화가 없는 석굴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출입문>

막고굴 북쪽에는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수 많은 고문서들이 발굴된 ‘장경동(藏經洞)’이라 불리는 제16굴이 있다. 1900년 둔황 막고굴을 지키던 도사가 제16굴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밀실에 숨겨둔 5만여점의 고문서를 발견하여 영국인에게 넘기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여러차례 유물들이 서 유럽인들에게 넘겨졌다.

SANYO DIGITAL CAMERA<장경동이 있는 16호굴 부근 석굴들>

석굴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제일 큰 것은 10층 높이 정도 되는 것도 있고, 작은 토굴도 있다. 석굴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넓고 시원하다. 현재의 석굴 입구는 석굴 보호와 관람 편의성을 위해 최근에 만들어 졌다. 사다리를 타고 들어가거나 나무 계단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쪽편 석굴들>

석굴들 중 크고, 목조로 만든 출입문과 처마, 벽화가 남아 있는 석굴들은 위층에 있고 아래에는 작은 석굴들이 자리잡고 있다. 석굴들은 지역 유력자의 후원을 받았으며, 규모가 큰 석굴에는 이름난 승려가 기거하면서 수행하였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규모의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벽화, 지붕, 출입문 등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석굴>

SANYO DIGITAL CAMERA<비천상 벽화가 유명한 428호 굴>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 <296굴, 421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벽화, 지붕, 출입문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석굴>

SANYO DIGITAL CAMERA<273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오대산형상도’로 유명한 61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 석굴들>

북대불전

막고굴을 높이 34.5m 의 제96호굴인 북대불전(北大佛殿)이다. 외부에 드러난 처마만으로도 약 10층 건물처럼 보이는 거대한 석굴이다. 내부에는 미륵불 입상이 모셔져 있으며, 외부는 7층 이상의 목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북대불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대십국 때 세워진 석굴이라고 한다. 당시 이지역을 지배한 서하(西夏) 유력자의 지원을 받아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북대불전은 오랜 세월에 유지되어 왔으며, 미륵불상은 수차례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 미륵불상을 모신 장륙전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96호굴>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입구>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앞에 세워진 비석>

SANYO DIGITAL CAMERA<94호굴>

SANYO DIGITAL CAMERA<94호굴 벽화>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북쪽 석굴들>

막고굴에는 벽화와 불상들이 남아 있는 곳은 474개라고 한다. 막고굴에는 전체 4,500 ㎡에 이르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방문객들은 극히 일부분만 볼 수 있다. 막고굴에는 석굴 내부에만 벽화를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외부에도 벽화들을 남겨놓고 있다. 막고굴에 그려진 벽화는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된 프레스코 기법으로 회반죽 위에 안료를 이용해서 벽화를 그렸다.

SANYO DIGITAL CAMERA<북대불전 주변에 남아 있는 벽화>

SANYO DIGITAL CAMERA<벽화>

막고굴 남쪽으로는 와불이 있는 158호굴을 비롯하여 남대불이 있는 130호굴 유명한 석굴들이 많다. 석굴들은 수당(隋唐)대에 만들어진 것이 많지만 서하(西夏) 때 벽화와 불상들이 조성되고 보수되었다고 한다. 현재 볼 수 있는 유물들은 후대에 만들어진 곳이 많고 청대(淸代)까지 보수가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대불전 남쪽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형태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석굴을 오르는 계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둔황 막고굴 유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중앙아시아 석굴사원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을 다수 소장.전시하고 있다.  20세기초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약탈과 구매 등의 방법으로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있다.

<여행하는 승려(行脚僧圖)>는 경전을 짊어지고 여행하는 승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은 노란 점과 붉은 선으로 장식된 검은색 천을 어깨에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그림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현장(玄裝), 보승불(寶勝佛), 티베트 불화에 보이는 18나한(羅漢) 가운데 한명이 달마다라(達磨多羅),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공연하는 이야기꾼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여행하는 승려, 行脚僧圖, 둔황, 9~10세기, 중앙박물관>

둔황에서 발견된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의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南無不休息菩薩)”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OLYMPUS DIGITAL CAMERA
<보살이 그려진 번, 菩薩幡, 둔황(敦煌), 10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보살 그림 드리개, 菩薩立像幡, 둔황, 10세기.>

승려를 표현한 부조 3점은 건축물의 벽면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승려는 감실에 앉아 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의 승려들은 명상에 잠긴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두건같이 감싸며 몸을 완전히 가리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며, 그 옷은 승려마다 각기 다른 색을 띤다. 일부 상에는 금칠의 흔적도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
<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사막에 세워진 승탑들

입구 주차장에서 막고굴까지 가는 중 길가를 비롯하여 멀리 사막 한가운데까지 많은 승탑들을 볼 수 있다.  주로 서하(西夏) 때 승려들의 승탑이라 한다. 목조 건축물을 모방해서 만든 본 한국의 승탑과는 달리 인도 불교 사원의 모습과 비슷하다.

SANYO DIGITAL CAMERA<인도 불교사원 모습을 하고 있는 승탑>

SANYO DIGITAL CAMERA<다른 형태의 승탑>

SANYO DIGITAL CAMERA<사막에 흩어져 있는 승탑들>

둔황 막고굴 앞쪽에는 사막의 모래바람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고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서 많은 방풍림을 심어 녹지를 조성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방풍림을 심어 놓은 정원>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앞 방풍림길>

SANYO DIGITAL CAMERA<막구굴 입구 휴게소>

<출처>

  1. 안내문, 둔황 막고굴유적지, 2010년
  2. 위키백과, 2020년
  3.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례출판, 2006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5. 百度百科,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