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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찬경루(讚慶樓, 보물 2049호), 관아에 운영했던 누각

경북 청송군 청송읍에 있는 찬경루(讚慶樓, 보물 2049호)이다. 조선초 세종 때(1428년) 군수 하담이 객사와 함께 관아에 속한 누각으로 처음 세웠다. 청송군이 세종의 비 소현왕후의 관향임을 들어 당시 관찰사가 찬경루(讚慶樓)라 이름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972년 중건한 것이다. 관아에서 사신접대나 연회 등을 위해 세운 큰 규모의 누각 건물이다. 청송은 작은 고을이었지만 권문세가였던 청송심씨 관향이었던 까닭에 많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큰 규모의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1-20201204<청송 찬경루(보물 2049호)>

건물을 앞면 4칸, 옆면 4칸의 2층 누각으로 강변 경치가 좋은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경치좋은 용전천 주변 풍경과 멀리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무덤이 보이는 방향으로 넓은 대청마루가 있으며 뒷편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2-20201204<정면에서 본 모습. 겹처마에 화려한 단청을 >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11-20201204<찬경루 현판>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12-20201204<자연 암반 위에 올려놓은 건물 기둥>

건물 내부 뒷편에는 2칸 정도의 온돌방을 두고 있다. 온돌방 앞에는 국왕이 앉을 수 있도록 마루바닥을 주변보다 한단 높게 만들어 놓고 있다. 일반적인 관아 누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찬경루만의 특징이다.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6-20201204<찬경루 내부>

건물 내부에는 안평대군이 쓴 송백강릉(松栢岡陵) 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으나 화재로 불타서 없어지고 정조 때 (1792) 한철유가 쓴 액자가 걸려 있다. 유명인사였던 서거정, 김종직, 송시열, 홍성민 등이 시문을 남겼다.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5-20201204 < ’송백강릉(松栢岡陵)’이라 적힌 현판>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8-20201204<뒷편에서 본 모습>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10-20201204<동쪽에서 본 모습>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7-20201204<서쪽에서 본 모습>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21-20201205<주왕산 대전사>

찬경루(讚慶樓), 보물 제2049호
찬경루는 세종 10년(1428)에 운봉관과 함께 청송 군수였던 하담이 2층 16칸 으로 세운 누각이다. 조선시대 때 누각은 객사와 이웃하여 있으면서, 사신들을 위한 연회나 지방 유생들을 위한 백일장 장소로 사용되었다. 숙종 14년(1688)에 손보고 고쳤으며, 화재로 인해 불타서 없어진 것을 정조 16년(1792)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등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008년에 건물을 다시 고치고 단청(丹靑)도 새로 하였다.  경상도 관찰사 홍여방이 찬경루에 대해 쓴 문서에는 “지금까지 왕후와 왕족이 끊이지 않는 복을 누리고 있으니 이 누(樓)에 올라 그 묘(墓)를 바라보면 저절로 우러러 찬미하게 되어 찬경(讚慶樓)이라 이름 지었다.” 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찬경루’ 라는 이름은, 청송 심씨 가문에서 소헌왕후가 탄생하였고 이 누각이 청송 심씨 시조 묘소를 바라보고 있음에 따라, ‘우러러 찬미하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건물 내 사분합문 위쪽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쓴 송백강릉(松栢岡陵) 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으나 화재로 불타서 없어졌다. 지금은 정조 16년(1792)에 부사 한광근(韓光)의 아들 한철유(裕)가 쓴 송백강릉(松岡陵)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건물 안에 조선시대 때 명성을 떨치던 서거정, 김종직, 송시열, 홍성민 등이 남긴 시문이 보관되어 있다.(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청송 보광사(普光寺), 청송심씨 시조와 관련된 사찰

경복 청송군 청송읍 덕리에 있는 보광사(普光寺)이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청송읍에서 남쪽으로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광사의 창건 경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무덤이 사찰 뒷편에 있어 무덤을 지키는 원찰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 규모는 크지 않으며 앞면 3칸 규모의 작은 불전인 극락전(보물 1840호)를 주불전으로 두고 있다. 사찰 내 전각은 많지 않으며 누각인 만세루는 상당히 큰 편이다. 만세루는 청송심씨 재실 건물로 사찰과 재실이 같은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청송 보광사 01-20201204<청송 보광사 전경>

주불전인 극락전(보물 1840호)는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615년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 중건된 불전들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전에는 석조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청송 보광사 08-20201204<수리중인 극락전>

청송 보광사 02-20201204<보광사 극락전(보물 1840호)>

청송 보광사 05-20201204<산신각>

보광사는 요사채로 보본당(報本堂), 추모재(追慕齋)를 두고 있다. 그중 추모재는 청송심씨가 재실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던 건물이다. 최근 바깥쪽에 큰 규모로 2동의 요사채를 새로 지었다.

청송 보광사 07-20201204<추모재>

청송 보광사 06-20201204<아래쪽에 새로 지은 요사채>

청송 보광사 03-20201204<보본당(報本堂)>

청송 보광사 11-20201204<보본당 윗쪽 새로 지은 큰 규모의 요사채>

만세루(萬歲樓)는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제사를 위해 지어진 재실 건물이다. 조선초 세종이 왕비를 위해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무덤 앞에 세우게 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을 1856년에 후손들의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5칸의 2층 누각으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상당히 크게 지었다.

청송 보광사 04-20201204<청송 만세루>

청송 만세루(萬歲樓)
청송 만세루는 조선 세종이 부사 하담에게 명하여 건립한 청송 심씨 시조인 심홍부의묘재각이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전해오는 기록이 없으나, 월막리에 위치한 찬경루와 같이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1856년 후손들이 중수하였고, 1958년 재차 중수되었다. 이 누각은 보광산에 위치한 심홍부의 묘소에 제를 지낼 때 비가 오면 이용되었다고 한다. 만세루의 건축구조는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운 주심포계 누각으로, 상부 가구는 5량가이며, 루의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사방으로 헌함을 돌렸다. 현재 보광사 사찰 경내에 위치하여 극락전(보물 1840호)과 마주하고 있다. (안내문, 청송 보광사, 2010년)

보광사 앞을 지나 300 m 정도 걸어서 언덕을 오르면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신이다. 4대돈 심덕부가 고려말 왜구토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그의 아들 심온이 세종의 장인이다. 청송심씨는 세종의 비 소현왕후를 비롯하여 왕비와 영의정 등 많은 고위관료를 많이 배출면서 조선시대 크게 번창했던 집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홍부의 무덤은 풍수지리적으로 중요한 명당으로 볼 수 있다.

청송 보광사 10-20201204<심홍부 무덤>

청송 보광사 21-20201204<무덤 앞으로 보이는 풍경, 멀리 주왕산이 보인다.>

<출처>

  1. 안내문, 청송 보광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