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March 2021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보 제3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보 3호)이다. 신라 진흥왕이 고구려, 백제와의 경쟁을 이기고 한강유역을 장악한 후 북한산을 방문하면서 그 내용을 새겨 놓은 것으로 황초령, 마운령, 창녕에 세운 비석과 함께 4개의 순수비(巡狩碑) 중 하나이다. 진흥왕의 영토확장에 대한 활약과 강력한 왕권, 당시의 관직제도와 인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 북한산 비봉에 있었는데 현재는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창녕 척경비가 건립된 561년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569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보3호01-20200212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보 제3호), 삼국시대(신라) 진흥왕 16년(555), 서울 북한산 비봉>

비는 직사각형의 잘 다듬어진 돌로 만들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몸의 크기는 높이 1.54 m, 너비 69 cm이다.

국보3호02-20200212
<옆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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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뒤에서 본 모습>

진흥왕 순수비는 조선후기 순조 때(1816년)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여 그 내용을 판독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비에는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의 글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내용은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운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다.

국보3호07-20200212<비에 새겨진 글씨, 윗부분>

국보3호06-20200212<비에 새겨진 글씨, 아랫부분>

국보3호05-20200212
<비에 적혀 있는 글씨>

국보3호04-20200212
<비석 옆면에는 추사 김정희가 이 비석을 조사했다는 내용이 그의 필치로 새겨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비석이 있던 북한산 비봉>

OLYMPUS DIGITAL CAMERA<2014년 전시 모습>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이 지역을 둘러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진흥왕의 영토 확장과 순수의 목적, 순수에 참여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는 원래 북한산 비봉에 서 있었으나 현재는 국보 제3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여기에 전시되고 있다. 비가 있던 원래 자리에는 원형을 본뜬 모형이 세워져 있다. 이 비는 1816년 추사 김정희가 비봉에 올라 조사한 결과 진흥왕순수비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후에도 김정희는 다시 이 비를 찾아 조사하였는데 옆면에 그런 사실이 그의 필치로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0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국보 90호)

국립중앙박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국보 90호)이다. 경주 보문동 부부총에서 일제강점기에 출토된 유물로 태환이식(太環耳飾)이라 불렸다 태환이식이란 가운데를 빈 공간으로 하여 무게를 가볍게 한 귀걸이이다. 전형적인 삼국시대 금귀걸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세부적으로 금실과 금알갱이를 섬세하게 붙이는 누금세공(鏤金細工)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금귀걸이 전체에 누금세공법을 사용하여 화려한 조형미와 세공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보물455호 01-20200212<금귀걸이, 경주 보문동, 국보 90호, 삼국시대(신라) 6세기>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020년
  2. 안내문, 경주박물관특별전, 2015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경주 노서동 금팔찌(보물 454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주 노서동 금팔찌(보물 454호)이다. 경주 노서동 고분군에 있던 노서리 215번지 민가에서 발견된 금팔찌 1쌍이다. 금반지는 지름 8 cm 크기로 바깥쪽에 각각 59개씩 돌기를 내어 옥을 상감하였다. 돌기 좌우에 용을 생동감있게 새겨 놓고 있다. 섬세한 조각수법과 조형미가 뛰아난 신라를 대표하는 금팔찌이다.

보물454호 02-20200212<신라 노서동 금팔찌(보물 454호), 경주 노서동 출토, 삼국시대(신라) 5~6세기>

노서동 215번지 고분은 발견당시 봉분은 없고 민가가 있었던 곳으로 금목걸이(보물456호), 금귀걸이(보물455호), 금팔찌(보물 454호)가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 <유물이 출토된 노서동 215번지 일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020년
  2. 안내문, 경주박물관특별전, 2015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보물 456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보물 456호)이다. 경주 노서동 고분군에 있던 노서리 215번지 민가에서 발견된 금목걸이다. 금판으로 속 빈 구형(球形)을 만들어 금줄로 연결한 장식을 44개 연결하여 만든 목걸이로 끝에 비취 곡옥을 달았다. 제작수법이 상당히 정교하며 조형미도 뛰어나다. 출토 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고 1965년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보물456호 02-20200212
<신라 노서동 금목걸이(보물 456호), 경주 노서동 출토, 삼국시대(신라) 5~6세기>

노서동 215번지 고분은 발견당시 봉분은 없고 민가가 있었던 곳으로 금목걸이(보물456호), 금귀걸이(보물455호), 금팔찌(보물 454호)가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물이 출토된 노서동 215번지 일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020년
  2. 안내문, 경주박물관특별전, 2015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보물 455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보물 455호)이다. 경주 노서동 고분군에 있던 노서리 215번지 민가에서 발견된 금귀걸이 1쌍이다. 하나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65년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주고리, 중간식, 마감장식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5~6세기 신라 귀걸이 형태를 하고 있다. 아랫단에는 나뭇잎형 장식으로 마감하였다. 나뭇잎 모양의 장식은 매우 섬세하며 화려한 느낌을 준다. 제작기법과 조형미가 뛰어나며 신라 금귀걸이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보물455호 01-20200212<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보물 466호), 경주 노서동 출토, 삼국시대(신라) 5~6세기>

노서리고분군은 신라왕릉에서 최초로 금관이 발견되어 세상을 깜작 놀라게 한 금관총을 비롯하여, 스웨덴국왕이 황태자 시절 경주를 방문하여 무덤발굴에 참여하여 금관을 발견한 서봉총, 해방 이후 발굴하여 광개토대왕 이름이 적혀진 청동그릇을 발견하여 이 일대 고분들의 시기적 특성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준 호우총, 봉황대에 비견할 정도로 큰 규모의 봉분이 있는 서봉황대 등 다양한 고분들이 모여 있다. 215번지 고분은 발견당시 봉분은 없고 민가가 있었던 곳으로 금목걸이(보물456호), 금귀걸이(보물455호), 금팔찌(보물 454호)가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물이 출토된 노서동 215번지 일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020년
  2. 안내문, 경주박물관특별전, 2015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