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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1년 08월

  • 경주 신문왕릉(사적), 신라 31대 신문왕

    경북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년)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맏아들로 삼국 통일 후 귀족세력을 제압하고 사회안정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최고교육기관인 국학을 창설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문화를 증진하는 정책을 펼쳐 설총, 강수 같은 대학자를 배출하였다. 고려의 광종이나 조선의 태종에 비유되는 왕으로 귀족세력을 탄압하고 과감한 정치적 숙청을 단행하여 전제왕권을 확립하였다. 문무왕릉이 있는 동해에서 만파식적을 가져왔다고 전해지는데…

  • 경주 헌강왕릉(사적), 신라 49대 헌강왕

    경북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신라 49대 헌강왕(재위 875~886년)의 무덤이다. 헌강왕은 신라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며 뒤를 이은 정강왕과 진성여왕이 동생이다. 불교와 학문을 장려했으며 재위기간 태평성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강왕릉과 함께 경주 남산 북동쪽 구릉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쇠퇴기에 조성한 소박한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 헌강왕릉(사적)> 헌강왕이 즉위하다 ( 875년 07월(음) ), 헌강왕(憲康王)이…

  • 경주 정강왕릉(사적), 신라 50대 정강왕

    경북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신라 50대 정강왕(재위 886~887년)의 무덤이다. 정강왕은 형인 헌강왕에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1년만에 병으로 죽고 여동생 진성여왕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헌강왕릉과 함께 경주 남산 북동쪽 구릉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쇠퇴기에 조성한 소박한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 정강왕릉(사적)> 정강왕이 즉위하다 ( 886년 07월(음) ), 정강왕(定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황(晃)이고 경문왕(景文王)의…

  • 경주 관문성(사적), 왜(倭)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장성

    경북 경주시 외동읍, 울산 북구 범서읍 모화리 등에 있는 통일신라 성벽인 관문성(關門城, 사적)이다. 왜(倭)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길이 12 km에 이르는 장성(長城, Wall)이다. 경주와 울산 경계를 따라 7번 국도와 14번 국도 주변에 성벽을 쌓아 전체적으로 장성을 이루고 있다. 성벽은 잘 다듬을 돌과 자연석으로 쌓았는데 이전에 쌓은 산성에 비해 기술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 경주 원원사지(사적), 통일신라 밀교를 이끌었던 사찰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인 원원사지(遠願寺址,사적)이다. 통일신라 밀교 해동 진언종(眞言宗)을 이끈 안혜, 낭유 등과 김유신 등이 호국사찰로 창건했다고 한다. 절터에는 십이지신상과 사천왕상이 새겨진 동.서삼층석탑과 금당터, 석등 등이 남아 있다. 명랑법사가 세운 사천왕사와 함께 통일신라 밀교의 중심이 되었던 사찰이다. 절터 아래에는 최근 중건된 사찰이 있다. 밀교(密敎)는 비밀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문자나 언어로 표현된…

  • 경주 재매정(사적), 김유신 장군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재매정(財買井, 사적)이다.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한 김유신이 살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이다. 우물은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다. 우물 깊이는 5.7 m이며 넓은 부분의 너비가 1.8 m정도이다. 삼국사기 기록에 남아 있는 유서깊은 우물이다. 우물 옆에는 구한말에 세워진 유허비가 있다. <경주 재매정(사적)> <재매정 우물과 유허비> <재매정 우물> 김유신이 살았던 집터는 신라 왕궁이었던…

  • 경주 양동마을,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혔던 마을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양동마을이다. 안동 하회마을, 천전마을, 봉화 닭실마을과 함께 조선시대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혔던 곳으로 하화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조선 전기에 터를 잡은 전형적인 반촌(班村)이다. 조선 성종 때 손소가 혼인하여 처가가 있는 이 마을에 들어왔으며 회재 이언적의 아버지인 이번이 손소의 사위가 되고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