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ugust 2021

경주 신문왕릉(사적), 신라 31대 신문왕

경북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년)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맏아들로 삼국 통일 후 귀족세력을 제압하고 사회안정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최고교육기관인 국학을 창설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문화를 증진하는 정책을 펼쳐 설총, 강수 같은 대학자를 배출하였다. 고려의 광종이나 조선의 태종에 비유되는 왕으로 귀족세력을 탄압하고 과감한 정치적 숙청을 단행하여 전제왕권을 확립하였다. 문무왕릉이 있는 동해에서 만파식적을 가져왔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여러차례 일어난 반란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통일 후 처음 조성한 왕릉으로 봉분의 규모가 크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신문왕릉(사적)>

왕릉은 문무왕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사천왕사와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왕릉이 있는 지역은 경주와 울산을 연결해주는 7번국도가 지나 가는 주요 교통로이며, 삼국통일 후 적대관계였던 왜(倭)가 울산을 통해서 가장 빨리 공격해 올 수 있는 경로에 있다. 신문왕릉은 왜를 경계한 문무왕의 유지를 이어 받아 이곳에 왕릉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신문왕을 뒤를 이은 성덕왕, 효소왕을 비롯하여 원성왕, 신무왕 등 통일신라 전성기 왕릉들은 대부분 7번국도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왕릉 출입문>

왕릉은 둥글게 흙을 쌓은 봉토분으로 통일신라 왕릉 중에서는 규모가 큰 편이다. 봉본은 규모는 높이 7.6 m, 지름 29.3 m, 밑둘레가 92 m에 이른다. 봉분 밑둘레에는 잘 다듬은 화강석을 5단으로 쌓은 뒤 44개의 사다리꼴모양의 보호석을 설치해 놓고 있다. 삼국 통일 후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던 시기에 조성한 왕릉으로 당나라 능묘제도가 본격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봉분 앞에 상석이 놓여 있고 둘레석을 제대로 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봉분 앞에 있는 제물을 올리는 상석>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상석>

OLYMPUS DIGITAL CAMERA<둘레석>

OLYMPUS DIGITAL CAMERA<뒷에서 본 모습>

신라 신문왕릉(神文王陵, 사적),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453-1
이 능은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 김정명)이 모셔진 곳으로 경주의 동남쪽에 있는 낭산(狼山)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능은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으로 밑둘레 92 m, 지름 29 m, 높이 7.6 m 이다. 밑둘레에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5단으로 쌓은 뒤 사다리 꼴로 생긴 44개의 보호석을 설치하였다. 동쪽에는 크고 긴 돌로 쌓은 상석이 있다. 신문왕은 문무왕(文武王)의 맏아들로 문무왕의 뜻을 이어받아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을 융합하는데 힘썼고, 국학(國學)을 두어 인재를 양성하였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헌강왕릉(사적), 신라 49대 헌강왕

경북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신라 49대 헌강왕(재위 875~886년)의 무덤이다. 헌강왕은 신라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며 뒤를 이은 정강왕과 진성여왕이 동생이다. 불교와 학문을 장려했으며 재위기간 태평성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강왕릉과 함께 경주 남산 북동쪽 구릉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쇠퇴기에 조성한 소박한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헌강왕릉(사적)>

왕릉은 높이 4.2 m, 지름 15.3 m 규모의 원형봉토분이며 둘레석으로 잘 다듬은 화강석을 4단으로 쌓고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무덤은 도굴되었으며 수해를 입어 긴급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내부 형태가 확인되었다. 내부는 관이 놓여 있는 석실이 있으며 천장은 둘글게 모아져 있다. 석실과 연결된 널길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무덤 앞에는 제단이 있던 자리가 남아 있으며 봉문 주위에는 담장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 전성기 통일신라 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며 문,무인상을 비롯한 석물은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봉분 둘레석>

OLYMPUS DIGITAL CAMERA<무덤 앞 제단이 있던 자리>

OLYMPUS DIGITAL CAMERA<봉분 주변 담장이 있던 자리>

OLYMPUS DIGITAL CAMERA<헌강왕릉 들어가는 길, 주변 소나무숲>

OLYMPUS DIGITAL CAMERA<왕릉 입구>

신라 헌강왕릉(憲康王陵, 사적),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5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 김정)을 모신 곳이다. 봉분 높이 4 m, 지름 15.8 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이며, 봉분 하부에 4단의 둘레돌을 돌렸다. 내부 구조는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으며,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 m, 동서 2.7 m이다. 벽면은 비교적 큰 깬돌을 이용하여 상부로 갈수록 안쪽으로 기울게 모서리를 죽이는 방식으로 쌓았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묘도를 갖추고 있으며, 연도의 크기는 길이 142 cm, 너비 128~9 6cm이다. 석실 내에는 서벽에 접해서 2매의 판석으로 된 시상석이 있다. 헌강왕은 경문왕(景文王)의 태자로서 문치(文治)를 잘 하였으며, 이 시기에 처용무(處容舞)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 고 기록되어 있다. 1993년 왕릉 내부가 조사되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정강왕릉(사적), 신라 50대 정강왕

경북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신라 50대 정강왕(재위 886~887년)의 무덤이다. 정강왕은 형인 헌강왕에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1년만에 병으로 죽고 여동생 진성여왕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헌강왕릉과 함께 경주 남산 북동쪽 구릉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쇠퇴기에 조성한 소박한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정강왕릉(사적)>

봉분은 흙으로 덮은 둥근 형태이며 이 4 m, 지름 14 m의 크지 않은 규모이다. 아래에는 잘 다듬은 화강석을 3단으로 둘레석을 쌓았다. 무덤 앞에는 제사를 위해 제단이 있다. 전성기 왕릉과는 둘레석에 십이지신상을 장식하지 않았으며 제단도 아주 간소하게 만들어졌다. 문.무인석을 비롯하여 석상들의 전혀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제사를 올리는 제단>

OLYMPUS DIGITAL CAMERA<둘레석>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담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 

신라 정강왕릉(定康王陵, 사적),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3
이 능은 경주 남산(南山)의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 부분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 김황)이 모셔진 곳이다. 봉분의 높이 4 m, 지름 15 m로 둥글게 흙을 쌓은 봉토분이다. 봉분 하단에는 둘레돌을 돌렸는데, 최하단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장방형 깬돌(割石)을 2단으로 쌓았다. 바로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다듬은 장방형 화강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아우로 886년 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관문성(사적), 왜(倭)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장성

경북 경주시 외동읍, 울산 북구 범서읍 모화리 등에 있는 통일신라 성벽인 관문성(關門城, 사적)이다. 왜(倭)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길이 12 km에 이르는 장성(長城, Wall)이다. 경주와 울산 경계를 따라 7번 국도와 14번 국도 주변에 성벽을 쌓아 전체적으로 장성을 이루고 있다. 성벽은 잘 다듬을 돌과 자연석으로 쌓았는데 이전에 쌓은 산성에 비해 기술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 성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성덕왕 때 39,262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한다. 성벽은 잘 다듬은 돌을 5단 내지 6단으로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쌓았는데, 위로 쌓아 올리면서 폭을 좁혀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는 모벌군성 또는 모벌관문이라 불렀는데 조선시대에 이곳을 관문성이라 부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관문성(사적), 경주와 울산 범서읍을 연결하는 14번 국도를 막고 있는 성벽>

경주 서남쪽 치술령(해발 765 m)과 동남쪽 외동읍 모화리 삼태봉(해발 630 m) 사이를 성벽으로 막고 있다. 가운데에는 있는 순금산(해발 290 m)과 천마산(296 m)과 양쪽에는 산성형태의 성벽을 쌓고 있으며 7번 국도와 14번 국도 주변에 성벽을 쌓아 전체적으로 장성을 이루고 있다.

경주 관문성(사적)
<경주 관문성 일대>

관문성 남쪽으로는 경주에서 발원하여 울산 태화강으로 흘러드는 동천으로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농경지들이 있다. 7번국도에는 높은 고개나 장애물이 없어 왜(倭)가 신라를 침범한다면 울산항에서 하루정도면 경주까지 도착할 수 있는 짧은 거리이다. 삼국통일 이후 백제와 동맹관계였던 왜(倭)에 대해서 문무왕을 비롯하여 많은 통일신라의 집권자들이 고민했던 부분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순금산 정상아래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울산 북구 동천 일대>

관문성<7번국도 동쪽 삼태봉으로 연결되는 성벽>

7번국도를 따라 흐르는 태화강 지천인 동천 주위는 비교적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관문성은 그 중 폭이 좁은 곳에 성벽을 쌓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평지에 쌓은 성벽은 약  km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천 주변 성벽이 있었던 지역>

관문성은 동천 옆 위치한 순금산과 천마산을 지나 치술령까지 연결된다. 순금산 일대에는 방어에 용이하도록 테뫼식 산성처럼 성벽을 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천 서쪽편 순금산 일대>

순금산 일대에는 성벽이 일부 남아 있고 주변 경치와 지형적 조건 등을 살펴볼 수 있어 관문성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순금산 관문성 탐방로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관문성 탐방로>

OLYMPUS DIGITAL CAMERA<관문성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

OLYMPUS DIGITAL CAMERA<탐방로에서 전망이 좋은 지점>

OLYMPUS DIGITAL CAMERA<옛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

OLYMPUS DIGITAL CAMERA<탐방로에서 볼 수 있는 성벽의 흔적>

OLYMPUS DIGITAL CAMERA<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

OLYMPUS DIGITAL CAMERA<순금산 정상부 부근>

삼국시대 박제상의 전설이 남아 있는 치술령 아래 14번 국도 옆 마을에는 관문성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성벽은 잘다듬은 큰돌로 아래부분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쌓았다는데 그 모습이 잘 확인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4번국도를 막고 있던 관문성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 남아 있는 성벽을 쌓았던 큰 돌들>

관문성 성벽에서 10개의 석각이 발견되었는데, 구간별로 축성을 담당한 군현이 작업한 구역 등을 기록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관문성 글자새김돌, 중앙박물관,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관문성 글자새김돌(복제품), 경주박물관, 2012년>

관문성(關門城, 사적),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 외
관문성은 신라 성덕왕(聖德王) 21년(722)에 왜구를 막고자 쌓은 것이다. 이 성은 경주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21 km 떨어진 외동읍 부근의 산에 축조되어 있다. 한 개의 성이 아니라 치술령(鶴述嶺)과 모화리 동편의 산 사이에 길이 12 km 정도의 장성과, 양남면 신대리의 산 정상에 있는 둘레 약 1.8 km 정도의 두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의 규모는 치술령에서 경상북도와 울산광역시의 경계를 따라 신대리 동쪽 산까지 이른다. 관문성을 모벌군성(毛伐郡城), 모벌관문(毛伐關門)이라고도 불렀으며, 마을 사람들은 만리성(萬里城)이라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터로 추측되는 석축이나 창고터, 병사터 등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현존하는 남산성과 관문성의 석벽을 비교해 볼 때, 잘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이용해서 관문성을 쌓은 기술이 훨씬 발달된 것으로 여겨진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문화재청, 2011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5.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원원사지(사적), 통일신라 밀교를 이끌었던 사찰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인 원원사지(遠願寺址,사적)이다. 통일신라 밀교 해동 진언종(眞言宗)을 이끈 안혜, 낭유 등과 김유신 등이 호국사찰로 창건했다고 한다. 절터에는 십이지신상과 사천왕상이 새겨진 동.서삼층석탑과 금당터, 석등 등이 남아 있다. 명랑법사가 세운 사천왕사와 함께 통일신라 밀교의 중심이 되었던 사찰이다. 절터 아래에는 최근 중건된 사찰이 있다.

밀교(密敎)는 비밀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문자나 언어로 표현된 현교(顯敎)를 초월한 최고의 가르침을 말한다. 인도에서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승불교로 다라니(陀羅尼)라 부르는 주문을 중시하며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이 주요 경전이다. 중국에서는 밀종(密宗), 한국과 일본에서는 진언종(眞言宗)이라고 하며 티벳불교도 밀교에 속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원원사지(사적)>

절터 가운데에는 2개의 탑이 나란히 있는  쌍탑이 남아 있다. 2개의 모두 같은 양식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그 양식으로 보아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전성기때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석탑 기단에는 연화좌에 앉아 있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는데 통일신라 석탑 중 처음으로 배치한 것이다. 십이지신은 『약사경(藥師經)』을 외우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이다. 삼국시대에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인 성격을 가졌으나 이후에는 방위신의 역할을 바뀌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기단부>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
<탑 가운데 남아 있는 고려시대 석등>

절터 뒷편에느는 축대부분 만 남아 있는 금당터가 있으며 그 주위로 건물 기둥을 올려 놓았던 석재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기둥을 올렸던 주춧돌>

OLYMPUS DIGITAL CAMERA<주변에 남아 있는 석재들>

절터 아래에는 최근에 중건된 원원사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아래에 있는 원원사>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원원사 절터로 오르는 길>

<출처>

  1. 안내문, 문화재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