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October 5, 2021

경주 효공왕릉(사적), 신라 52대 신문왕

경북 경주시 배반동에 있는 신라 52대 효공왕(孝恭王, 재위 897~692년)의 무덤이다. 효공의 이름은 요(嶢)이며 신라 49대 헌강왕의 서자이다. 신라 말 혼란기에 진성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재위기간 동안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세워졌으며 신라의 영토는 급격히 줄어들고 국력은 쇠약해졌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사자사’라는 절 북쪽에 묻혔다고 한다. 무덤은 둥글게 흙을 쌓은 형태로 규모가 크지 않으며 장식도 거의 없다.봉분 주위에 둘레석으로 사용되었는 돌이 몇개 남아 있다. 신라말 혼란기에 조성된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효공왕릉(사적)>

OLYMPUS DIGITAL CAMERA<봉분에 남아 있는 둘레석으로 보이는 돌>

왕릉은 신라 전성기를 대표하는 선덕여왕릉, 신문왕릉 등이 있는 사천왕사 동쪽 500 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한번 후삼국 혼란기를 수습하고자 하는 바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릉 앞쪽에는 ‘사자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낭산 동쪽 나즈막한 구릉에 위치한 효공왕릉>

OLYMPUS DIGITAL CAMERA<왕릉 앞 절터(?)>

신라 효공왕릉(孝恭王陵, 사적), 경북 경주시 배반동
이 능은 신라 제52대 효공왕(재위 897~912, 김요)이 모셔진 곳이다. 봉분의 높이 4.3m, 지름 22m 크기로 둥글게 흙을 쌓은 타원형 봉토분이다. 봉분의 바닥에는 둘레돌로 보이는 자연석이 노출되어 있으며, 아무런 장식이 없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무덤이다. 효공왕은 진성여왕(眞聖女王)의 뒤를 이어 16년 간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견훤(甄萱)과 궁예(弓裔)가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세우고 신라의 영토를 침범하여 나라가 매우 어지러웠으나 평정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사자사(獅子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1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