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October 19, 2021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보물)

경북 경주시 보문동 절터에 남아 있는 연화문 당간지주(보물)이다.  이 당간지주는 보문사 금당터가 있는 중심영역에서 북쪽으로  5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적인 모양은 가운데 부분이 두드러진 형태이며 윗부분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특히 지주 윗부분에 네모난 틀을 두고 그 안에 연꽃잎을 새겨 놓고 있다. 이런 형태의 당간지는 다른 사찰 당간지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보문사 절터에는 현재 2개의 당간지주가 남이 있어 별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확인되지는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연화문>

보문동 일대는 신라를 건국한 경주 6촌 중 명활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던 명활산 고야촌이 있던 지역이다. 신라가 6촌을 6부로 개편할 때 습비부가 되었으며 설(薛)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설씨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설총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무덤이 마을에 남아 있다. 설씨 집안이나 원효대사와 관련된 사찰로 추정할 수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보문사지 절터>

경주 보문사지(普門寺址) 연화문(蓮華文) 당간지주(보물),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752-1
당간(幢竿)은 절에서 불교 의식이 있을 때 불(佛)·보살(菩薩)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의 깃대를 말하며, 이 당간을 받쳐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 지주라 한다. 이 기둥은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로 높이는 146cm이다. 기둥의 아랫부분이 상당히 매몰되어 있어 간대나 기단부의 구조를 확인 할 수 없다. 현재까지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동서로 62cm정도의 간격을 두고 두 개의 기둥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기둥의 안쪽 윗부분에 있는 너비 13cm의 큼직한 구멍은 당간을 고정시켰던 장치이다. 특히 이 당간지주의 윗부분 바깥 측면에 설정된 방형구획 안에는 지름 47cm의 팔엽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이 당간지주의 원래 소속사원이 동남쪽에 터가 남아 있는 보문사 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제작연대는 8세기 중엽 이후로 생각되며,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 중에서 가장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점에서 주목 되는 작품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위키백과, 2021년

경주 명활성(사적), 신라 경주를 방어하는 주요 산성

경북 경주시 천군동에 있는 명활성(明活城, 사적)이다. 이 성은 경주 동쪽 명활산에 있는 둘레 약 6 km의 신라 산성이다. 남산성, 선도산성, 북형산성과 함께 경주를 방어하는 외곽의 주요 산성 중 하나이다. 성을 쌓은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삼국사기>에 405년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처음 쌓았음을 알 수 있다. 7세기 선덕여왕 때 비담이 이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 명활성은 경주에서 동해안 감포와 연결되는 도로와 불국사를 통해 울산으로 연결되는 국도가 지나가는 주요 교통로에 있다. 동쪽에서 신라로 들어오는 주요 교통로를 지키기 위해 쌓았던 오래된 신라 산성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명활성(사적)>

명활산은 신라 6촌 중 명활산고야촌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높지 않은 산이나 북쪽 악산과 함께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북천이 흐르고 있다. 교통로를 지나가는 군사들을 제압하기 용이한 곳에 산성을 쌓고 있다. 동해안을 통해 경주를 공격하는 왜(倭)를 대비하기 위해 쌓았던 방어시설이다.  고구려의 압력이 심했던 5세기에는 궁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경주 명활성 (사적)
<경주 명활성 위치>

경주는 월성 남쪽의 남천, 서쪽의 형산강, 북쪽의 알천이 자연스럽게 해자를 형성하고 있어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가 쉬운 지형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명활산과 북천(알천)>

성벽은 6세기 이전에 처음 쌓았으며 후대 여러차례 보수를 하면서 견고한 신라 산성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방어가 용이한 능선에는 초기 성벽 형태인 토성을 그대로 두고 계곡이나 방어에 취약한 곳을 석축으로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명활산  계곡에 있는 성벽(복원)>

명활성은 성벽을 쌓은 석축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현재는 남아 있던 일부성벽을 보완하여 옛 모습을 복원하였다.  석축은 꽤 큰 자연석을 다듬어서 2층으로 쌓았는데, 석성과 토성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명활성 석축>

2012년 당시 명활성은 복원이 진행중이었는데 주변에 석축을 쌓은 많은 석재들을 볼 수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복원작업이 진행중인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옛 모습을 복하고 있는 석축>

OLYMPUS DIGITAL CAMERA<복원해 놓은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복원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구역, 돌들이 흩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능선에서 본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안쪽도 석축을 쌓고 있다.>

계곡을 벗어나 능선으로 이어지는 명활성 성벽에는 석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초기에 쌓았던 토축을 계속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능선으로 이어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토축으로 보이는 경사진 언덕(?)>

OLYMPUS DIGITAL CAMERA<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능선에서 보이는 명활산>

명활성은 여러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확장되어다. 진흥왕 때(544년) 다시 쌓았으며 진평왕 때(593년) 성벽을 확장했다. 진흥왕 때 성벽을 다시 쌓으면서 그 내역을 기록한 ‘명활산성작성비’가 발견되었으며 안압지에서 ‘명활산성비’로 추정되는 비석조각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
<경주 명활산성비, 551년, 경주 명활산성>

551년 11월 중에 명활산성을 쌓고, 거기에 관여한 지방관, 역부를 동원한 지방의 촌주, 공사의 실무자와 공사내용, 비의 위치, 공사기간, 비문을 작성한 사람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비는 신라의 금석문 가운데 군郡이란 표기가 나오는 최초의 것으로 군제의 정비와 관련하여 귀중한 자료이다. 이 밖에도 통일기 이전 신라의 신분제와 관등제, 역역동원 관계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안압지 출토 명활산성비, 삼국시대(신라) 551년, 경주 안압지>

명활산성(明活山城, 사적), 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 산 334
이 성은 경주 보문호 남쪽에 위치하는 명활산을 둘러싼 신라시대의 산성으로, 토성(5km)과 석성(4.5km)이 함께 있다. 신라 실성왕(實聖王) 4년(405)에 왜병(倭兵)이 성을 공격해 왔으나 격퇴시켰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산성은 그 이전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자비왕(慈悲王) 18년(475)에는 명활산성을 궁성으로 사용하였다가 소지왕(昭知王) 1년(479)부터 월성(月城) 으로 다시 옮겼다. 선덕여왕(善德女王) 때에는 비담(硏) 등이 이 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金碩信)을 중심으로 한 관군에게 평정되었다. 1988년 성 주변에서 진흥왕(眞興王) 12년(551)에 만든 명활산성 작성비(作城碑)를 발견하여 당시의 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5.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