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January 2022

경주 대릉원(사적) 서봉총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경주 대릉원 129호 무덤인 서봉총(瑞鳳塚)이다. 일제는 1926년 발굴.조사를 하면서, 당시 방한했던 고고학에 조예가 깊었던 스웨덴의 구스타프 황태자를 참관하였다. 고분의 이름도 스웨덴을 의미하는 서(瑞)자와 봉황대를 의미하는 봉(鳳)자를 합쳐서 서봉총이라 불렀다. 서봉총에는 금관을 비롯하여 각종 청동제 그릇과 금.은 장신구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봉분의 조성형식 또한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 형식을 취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 서봉총>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서봉총 금관(瑞鳳塚金冠, 보물)은 높이 30.7 cm, 지름 18.4 cm, 드리개 길이 24.7 cm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스웨덴 구스타프 국왕을 황태자 시절에 초빙하여 같이 발굴한 유물이다. 넓은 관 테 위에 5개의 사슴뿔모양의 가지를 세워 올린 전형적인 신라 금관의 형태를 하고 있다.  천마총, 금관총,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에 비해서는 금세공기술이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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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총 금관(보물)>

OLYMPUS DIGITAL CAMERA<금제 바리, 5세기, 서봉총>

OLYMPUS DIGITAL CAMERA<금귀걸이, 5세기, 서봉총>

OLYMPUS DIGITAL CAMERA<보석장신구, 5세기, 서봉총>

OLYMPUS DIGITAL CAMERA<유리팔찌, 5세기, 서봉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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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잔, 5세기, 서봉총>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한 서봉총의 출토품입니다. 이 무덤에서는 금관과 금제 허리띠를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출토되었습니다. 발굴당시 스웨덴의 구스타브 황태자가 발굴을 참관하였습니다. 출토된 금관에 세 마리의 봉황이 장식된 점에 착안, 무덤 이름을 서전의 ‘서’자와 봉황의 ‘봉’자를 따서 ‘서봉총’으로 지었습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특별전, 2015년)

서봉총은 발굴.조사 후 봉분을 복원하지 않아 그 터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봉총에는 발굴을 참관했던 구스타프 황태자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구스타프황태자는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 했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서 양국 친선을 강조하는 측면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사적) 노서동 고분군>

OLYMPUS DIGITAL CAMERA<서봉총 발굴 이야기 1>

OLYMPUS DIGITAL CAMERA<서봉총 발굴 이야기 2>

OLYMPUS DIGITAL CAMERA<서봉총 발굴 이야기 3>

OLYMPUS DIGITAL CAMERA<서봉총 발굴 이야기 4>

경주 대릉원 호우총 09-20220129<경주 노서동, 노동동 일대 주요 고분들>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5. 안내문, 경주박물관 특별전, 2015년

 

경주 대릉원(사적) 호우총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인 호우총(壺杅塚)이다. 경주 대릉원(사적)에 있는 많은 무덤 중 140호분으로 ‘호우(壺杅)’라는 글씨가 돋을 새김되어 있는 청동그릇(보물)이 출토되어 호우총이라 불린다. 1946년 국립박물관이 해방 후 처음으로 은령총과 함께 발굴하였다. 전형적인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옆에 있던 은령총과 함께 쌍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당시에는 봉분은 없고 주택이 있었으며 현재는 주위보다 약 2 m 높은 대지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 140호분, 호우총, 은령총>

청동 그릇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사후(415년)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무덤주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죽은 후 6세기 초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릉원 일대 무덤의 조성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무덤이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그릇(보물), 환두대도, 금동관을 비롯한 장신구, 도깨비얼굴을 하고 있는 화살통 등이 있다. 무덤의 규모나 출토유물로 볼 때 무덤주인은 최고위급보다 한단계 낮은 신라왕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보물)>

바닥에는 글자가 4행 4자씩 총 16자(乙卯年國罡(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가 새겨져 있다. 이 글자를 통해 고구려에서 만든 그릇이 신라에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뚜껑>

OLYMPUS DIGITAL CAMERA<용문고리자루칼, 신라. 경주 호우총>

환은 대부분 멸실되었으며 환 내붕 용두가 잘 남아 있다. 용두는 청동으로 부조하고 도금하였는데, 별도로 제작하여 환 안쪽에 부착하였다. 금동판으로 제작된 초구금구에 용문이 부착되어 있고, 도신의 단면에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상감하였다. 용은 금사로, 물고기는 은사로 상감한 것이 특징이다. (안내문, 공주박물관 특별전,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화살집,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주 호우총, 복원>

화살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손쉽게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중국의 고서인 『주례』에 귀신을 몰아내는 방상시(方相氏) 모습의 가면으로 알려졌으나 화살집 장식으로 새롭게 알려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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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드리개, 삼국시대(신라) , 호우총>

OLYMPUS DIGITAL CAMERA<귀걸이, 삼국시대(신라), 호우총>

OLYMPUS DIGITAL CAMERA <그릇, 청동, 삼국시대(신라) 6세기>

호우총
호우총은 신라시대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해방 직후인 1946년 3월에 우리나라 고고학자가 발굴한 최초의 고분이다. 호우총이라는 명칭은 고구려의 청동 그릇이 출토되어 붙여졌다. 청동 그릇에는 16자의 명문과 ‘정(井)’자가 돋을 새김되어 있다. 명문은 ‘을묘년(415년)에 광개토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호우’로 광개토대왕을 장사지낸 1년 뒤 이를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되어 고구려와 신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무덤은 함께 출토된 유물의 형식으로 보아 6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청동 그릇은 만들어진 지 약 백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 비로소 무덤속에 부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20년)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사적) 노서동 고분군>

경주 대릉원 호우총 09-20220129<경주 대릉원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주요 무덤>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5. 안내문, 공주박물관 특별전, 2016년

 

 

경주 숭덕전, 신라 시조 박혁거세 제사를 모시는 재실

경북 경주시 탑동에 있는 숭덕전(崇德殿)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곳으로 오릉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초 세종 떄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떄(1600년) 중건하였으며 숙종 때(1694) 다시 수리하였다. 경종 때(1723년)에 숭덕전이라 불렀으며 제사를 모시는 참봉을 두게 되었다. 경주에는 신라 왕위에 오른 김씨, 박씨, 석씨의 시조로 오릉 숭덕전, 미추왕릉 앞 미추왕,문무대왕,경순왕을 모신 숭혜전, 탈해왕릉 앞에 숭신전이 있다. 조선시대 각 문중에서 세웠던 많은 사당이나 재실 중에 하나이지만 신라시조를 모시는데 그 의의가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오릉(사적)>

박혁거세를 모신 숭덕전을 중심으로  그 앞쪽에 상현재와 동재가 있고,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건물이 여러 동 있다.  숭덕전 뒷편으로는 연못이 있고, 그 뒤편에 박혁거세왕의 비가 태어났다는 우물인 알영정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숭덕전 외삼문>

OLYMPUS DIGITAL CAMERA<내삼문과 사당>

OLYMPUS DIGITAL CAMERA<신도비 비각>

OLYMPUS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

OLYMPUS DIGITAL CAMERA<재실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예빈관>

재실 뒷편으로는 박혁거세 알영왕비 탄생지인 알영정과 작은 연못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알영정>

OLYMPUS DIGITAL CAMERA<알영정 연못>

재신(宰臣)을 파견하여 신라 시조(新羅始祖)의 숭덕전(崇德殿)에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숭덕전은 경주(慶州)에 있는데, 시강관 이종성(李宗城)이 문의(文義)로 인하여 치제하도록 주청하고, 또 말하기를, “재신(宰臣)이 바야흐로 명을 받들고 도내(道內)에 있으니, 재신으로 하여금 치제하게 한다면 더욱 성덕(聖德)이 빛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기고 인해서 치제한 뒤에 그 능침(陵寢)을 봉심(奉審)하도록 명하였다. (영조실록 31권, 영조 8년 1월 11일 기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숭덕전(崇德殿), 경북 경주시 탑동 77
숭덕전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朴赫居世王)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건물로 조선 세종(世宗) 11년(1429)에 지었으나 선조 (宣祖) 25년(1592)에 불탔다. 동왕(同王) 34년(1601)과 광해군 10년(1618)에 다시 지었고 숙종(肅宗) 30년(1704)에 고쳤다. 경종(景宗) 3년(1723) 숭덕전이라 편액을 걸었는데 현재의 모습은 영조(英祖) 11년(1735)에 고친 것이다. 홍살문(紅箭門) 안쪽으로 영숭문(永門)과 숙경문(肅敬門)을 지나면 숭덕전이 위치하고 있다. 숭덕전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인 맞배집이다. 왼쪽에 상현재(象賢齋), 오른쪽에 동재 (東齋)가 있다. 영숭문의 왼쪽에 시조왕의 신도비와 비각이 있다. 숭덕전 옆에는 연못이 있고, 그 뒤에 ‘신라시조왕비탄강유지 (新羅始祖王妃誕降遺址)’라는 비와 비각이 있으며 뒤에는 알영정(關英井)이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영조실록 31권, 영조 8년 1월 11일 기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경주 오릉(사적), 신라 시조 박혁거세,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

경북 경주시 탑동에 있는 경주 오릉(五陵, 사적)이다. 신라 궁성이었던 월성 서남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능역에는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 있는데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과 박혁거세의 왕후 알영부인이 묻혔다고 전해진다.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원형 봉토분으로 실제로는 이런 형태의 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에 등장한 무덤의 형태이며, 후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경주 미추왕릉이나 김해 수로왕릉 처럼 주요 성씨 시조 무덤으로 조선시대 이후 제단이 설치되는 등 성역화되어 있다. 조선 선조 이후에는 박씨 종친에서 제사를 주관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오릉(사적)>

앞쪽에 있는 1호 무덤은 높이 10 m로 큰 편이며, 뒷편에 높이 9 m의 2호무덤, 높이 7.2 m 표주박형태의 3호무덤, 높이 3.6 m의 4호 무덤, 높이 1.8 m의 5호 무덤이 있다. 후대 무덤의 형식이며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누구의 무덤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높이 10 m의 1호무덤>

OLYMPUS DIGITAL CAMERA<2호무덤, 3호무덤>

OLYMPUS DIGITAL CAMERA<표주박형태의 3호 무덤과 뒷편 안쪽에 있는 4, 5호 무덤>

혁거세거서간이 죽다 ( 4년 03월(음) )
61년(4) 봄 3월에 거서간이 승하(升遐)하였다. 사릉(蛇陵)에 장사 지내니, 담암사(曇巖寺)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누리가 생기고 남해차차웅이 죽다 ( 24년 09월(음) )
21년(24) 가을 9월에 누리[蝗]가 생겼다. 왕이 돌아가시니 사릉원(蛇陵園) 내에서 장례를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유리이사금이 죽다 ( 57년 10월(음) )
〔34년(57)〕 겨울 10월에 왕이 돌아가시니 사릉원(蛇陵園) 내에서 장례를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파사이사금이 죽다 ( 112년 10월(음) )
33년(112) 겨울 10월에 왕이 돌아가시니 사릉원(蛇陵園) 내에서 장례를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나라 성씨 중 박씨는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파사왕계를 제외하면 대부분 통일신라 말기 경명왕(54대), 경애왕(55대)의 후손으로 밀양.반남.고령.함양 등 전국 각지에 그 본을 두고 있다. 경주 오릉은 박씨들의 시조를 모신 곳으로 조선시대부터 성역화되어 넓은 능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조경도 잘 꾸며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오릉>

오릉 앞에는 조선왕릉 정자각처럼 제사를 올리는 큰 건물이 세워져 있으며 봉분 앞에는 상석 등이 놓여 있다. 주위에는 소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나무들을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릉 앞 제사를 올리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봉분 앞에 놓여진 상석과 간단한 석물들>

OLYMPUS DIGITAL CAMERA<오릉으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오릉 주변 숲>

숭덕전은 신라시조 박혁거세 제사를 모시기 위한 재실건물로 조선초 세종 때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영조대에 지어진 것이다. 그 앞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오릉 숭덕전>

시조묘를 세우다 ( 6년 01월(음) )
3년(6) 봄 정월에 시조묘(始祖廟)를 세웠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신라 종묘제의 시작 ( 6년 (음) )
제사(祭祀), 신라(新羅) 종묘(宗廟)의 제도(制)를 살펴보면, 제2대 남해왕(南解王) 3년 봄에 처음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묘당을 세워 사계절로 제사지냈는데, 친누이 아로(阿老)註 004에게 제사(祭祀)를 주관하게 했었다. (삼국사기 권 제32 잡지 제1 제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신라 오릉(新羅 五陵, 사적), 경북 경주시 탑동 67-1
이 능은 남산의 서북쪽에 해당되는 경주 평야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 무덤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赫居世王)과 제2대 남해왕(南解王), 제3대 유리왕(儒理王), 제5대 파사왕 (婆娑王) 등 초기의 박씨 임금 네 분과, 혁거세왕의 왕후 알영부인(閼英夫人)의 능으로 전해 온다. 내부 구조는 알 수 없으나, 겉모습은 경주시내 평지 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경내에는 혁거세왕의 제향(祭享)을 받드는 숭덕전(崇德殿)과 그 내력을 새긴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경주 오릉 능역 내에는 신라 시조 왕비 알영부인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지는 우물인 알영정(閼英井) 터가 있으며 그곳에는 이를 기념하는 유지비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오릉 알영정 터>

알영이 태어나다 ( 기원전 53년 01월 )
5년(B.C. 53) 봄 정월에 용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났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노구(老嫗)가 보고서 기이하게 여겨 거두어 길렀다.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성장하면서 덕행과 용모가 빼어나니, 시조가 그 소식을 듣고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행실이 어질고 내조를 잘하여 이때 사람들이 그들을 두 성인(聖人)이라고 일컬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 거서간,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신라시조왕비 탄강지(新羅始祖王妃 誕降) 알영정(閼英井)
알영정(閼英井)은 신라시조왕비 알영(英)부인께서 탄생한 곳이다. 기원전 69년에 한 노구(老區)가 이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가에 큰 용이 있어 놀랐다. 그 용 옆구리에서 귀녀가 탄생하기에 수양(修養)한바 용모가 단미(端美)하고 총명(聰明)·지혜(智慧)하여 시조왕비가 되었다. 신라 시조왕 재위(在位) 61년간 내보(內輔)가 지대하였고 권유농상(勸誘農桑)하고 무휼빈민(無恤民)하여 이성(二聖)으로 존경을 받았다. 천강성배(天降聖配)하였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5. 삼국사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경주 교촌마을, 경주 최부자댁으로 잘 알려진 마을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전통마을인 교촌마을이다. 조선중기 이후 경주최씨가 향교가 있는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크게 번창하여 집성촌처럼 보이는 마을이다. 경주향교를 중심으로 경주 만석군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댁을 비롯하여 교동법주 고택, 요석궁 등 대지주들이 살았던 저택들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집을이 모여 있다.  이곳은 통일신라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이 있던 곳이며 경주향교가 있어 교동 또는 교촌마을로 불린다. 신라 궁성인 반월성 서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삼국시대 김유신이 살았던 집터인 재매정을 비롯하여 월정교, 문천교 등 많은 역사유적이 주변에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교촌마을>

경주최씨 집안은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농업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경주를 찾았으며, 최부자집을 비롯하여 교촌마을이나 향교 등에서 묵으면서 경주를 여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씨 집안은 유력 인사들을 접대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겼으며,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집을 크게 지었던 것으로 보이다. 손님접대와 관련된 많은 일화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집안의 전통주인 교동법주는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최부자댁 위상을 보여주는 큰곳간>

교초마을 최씨 종가인 최부자댁은 1700년 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가옥으로 99칸 규모의 대저택이었다. 저택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 곳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남일대에서 손꼽히는 부호이지만 저택의 건물규모가 크거나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황태자시절에 서봉총 발굴에 참여했던 스웨덴의 구스타브 국왕도 이 저택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최부자댁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OLYMPUS DIGITAL CAMERA<옛 절터 주춧돌을 재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주춧돌>

경주법주 고택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8세기 교촌마을 경주최씨 7대 최언경이 향교 옆으로 이사오면서 지은 집이다. 종가인 경주 최부잣집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작은댁이라 불린다. 이집은 최부자집에서 대로 빚어온 경주 교동법주를 계승하고 있다. 교동법주는 숙종 때 사옹원 참봉을 지낸 최국준이 처음 빚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최경이 2대째 기능보유자로 명맥을 잇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법주 명맥을 잇고 있는 작은댁>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교촌마을에 있는 유명한 한정식 식당인 요석궁은 최부자댁 12대 최준의 동생인 최윤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밭가운데 댁’으로 불린다. 식당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부엌이나 광을 온돌방으로 바꾼 것 외에는 원래의 모습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식구가 많지 않은 일반적인 고택과는 달리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 고택의 화려했던 시절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요석궁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최부자댁에서 향교로 들어가는 길은 시골 골목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고택, 1970년대에 지어진 시골집, 최근에 크게 수리한 한옥 등 다양한 형태의 집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최부자댁에서 향교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이 있는 집>

OLYMPUS DIGITAL CAMERA<전형적인 시골집>

OLYMPUS DIGITAL CAMERA<최근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이는 한옥, 교촌마을 체험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외삼문>

경주향교는 통일신라 신문왕 때(682)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을 세웠던 곳이다. 현재의 향교는 조선 성종 때(1492)에 성균관을 본 떠서 다시 지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중건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이 있는 제향공간을 앞쪽에, 명륜당이 있는 강학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묘후학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향교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신삼문이 문화재(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제향공간>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사마소(司馬所)는 교촌마을 동쪽 월정교 터에 있던 것을 1984년 마을 입구로 옮겼다. 사마소는 16세기 초 지방의 사마시 출신 젊은 유림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대체로 관아 부근에 위치하여 지방관의 지방통치를 간섭하는 세력이 되었다. 조선중기 이후 서원이 지역여론을 장악하면서 타지역에서는 없어졌다. 경주를 찾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사마소>

사마소 부근에 있는 재매정(財買井, 사적)은 김유신 장군이 살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이다. 우물은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다. 교촌마을이 통일신라 귀족층 주거지였음을 잘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집터는 1993년에 재매정을 중심으로 주변 집터를 발굴,조사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재매정(사적)>

OLYMPUS DIGITAL CAMERA<재매정 주변 집터>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경주 교촌마을 홈페이지,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