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January 24, 2022

경주 사마소, 지방 유생들이 여론을 형성했던 공간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사마소(司馬所)이다. 향교가 있는 교촌마을 동쪽 월정교 터에 있던 것을 1984년 마을 입구로 옮겼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영조 때(1592년) 중건하였다고 한다. 사마소는 16세기 초 지방의 사마시 출신 젊은 유림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대체로 관아 부근에 위치하여 지방관의 지방통치를 간섭하는 세력이 되었다. 조선중기 이후 서원이 지역여론을 장악하면서 타지역에서는 없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사마소>

경주 사마소는 교촌마을 경주최씨 집안이 관직에 진출하지 않으면서도 지역세력으로 잡으면서 활동공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고도 경주를 찾는 방문객이 머무는 공간으로 활용했던 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쪽에 사랑채 기능의 건물 2동이 있고, 뒷편에 살림집 안채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마소>

사마소 건물은 앞면 4칸으로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바깥주인이 머누는 사랑채와 거의 비슷한 구조로 손님접대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대청마루>

병촉헌은 앞면 2칸 규모로 온돌방으로 되어 있으며 앞쪽에 넓은 툇마루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병촉헌>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살림집처럼 보이는 건물>

경주 사마소(慶州 司馬所), 경북 경주시 교동 89-1
사마소는 조선시대의 과거에 합격한 그 지방의 생원 (生員)과 진사(進士)들이 유학(儒學)을 가르치거나 정치 (政治)를 토론하던 건물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도 자기 수양을 위해 이 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연산군 때에는 생원·진사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고 백성에게 양식을 빌려주기도 하였다는 곳이다. 처음 세워진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뒤 영조(英祖) 17년(1741)에 다시 지어 풍영정(風亭)이라 불렀다. 옆면의 사마소라는 현판은 영조 38년(1762) 당시의 부윤(府尹) 홍양한(洪良漢)이 쓴 것이다. 함께 있는 병촉헌(炳獨斷)은 순조(純祖) 32년(1832) 생원 최기영(崔永)이 지은 것이다. 이 건물은 원래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300 m 거리에 있는 신라시대 월정교(月精橋)터의 북쪽 교대(橋臺) 위에 세워져 있던 것을 1984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건물 안에는 이 건물을 고쳐 온 내용이 담긴 현판들이 걸려 있어 그 내력을 알려주고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경주 경주향교, 통일신라 국학이 있던 자리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이다. 통일신라 신문왕 때(682)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을 세웠던 곳이다. 경주향교의 창건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고려시대 향교가 세워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향교는 조선 성종 때(1492)에 성균관을 본 떠서 다시 지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중건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이 있는 제향공간을 앞쪽에, 명륜당이 있는 강학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묘후학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종2품 부윤(府尹)이 고을수령인 경주부에서 설치한 중등교육기관으로 타지역 향교에 비해 규모가 크고 격식을 잘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 향교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신삼문이 문화재(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외삼문>

경주향교 제향공간은 공자와 선현들을 모신 대성전(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서무(보물)를 배치하였다. 출입문으로 외삼문과 내삼문을 두고 있다.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 중건한 건물들을 보수하면서 유지해 오고 있어 당시 향교 건물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 대성전(보물)>

동무, 서무는 향교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주요 건축물들로 1604년 중건된 이래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12칸 규모의 건물로 향교 동,서무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무(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서무(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신삼문(보물)>

OLYMPUS DIGITAL CAMERA<흙담장>

강학공간은 대성전 뒷편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건물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명륜당(보물)은 1614년 중건된 후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단일건물로는 향교 강당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명륜당(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국학을 설립하다 ( 682년 06월(음) )
6월에 국학(國學)을 설립하고 경(卿) 1인을 두었다. (삼국사기 권제8 신라본기 제8 신문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국학(國學)은 예부(禮部)에 속해 있었는데 신문왕(神文王) 346 2년(682년)에 두었다. 경덕왕(景德王)이 태학감(大學監)으로 고쳐 삼았다가 혜공왕(惠恭王)이 본래대로 되돌렸다. (삼국사기 권제38 잡지 제7 직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부속건물로는 명륜당 뒷편에 서적 등을 보관하던 존경각, 동재 뒷편 관리이 머물던 고직사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존경각>

OLYMPUS DIGITAL CAMERA<관리인의 거처인 고직사>

OLYMPUS DIGITAL CAMERA<고직사 앞 살림집>

OLYMPUS DIGITAL CAMERA<살림집 마당 우물>

경주향교 (慶州鄕校)
경주 향교(慶州 鄕校)는 본래 신라 신문왕 2년 (682)에 창설한 국학(國學)(지금의 국립대학)이 있던 곳이며, 고려 시대에는 향학(鄕學)으로, 조선시대에는 역시 향교로 이어져 지방 교육 기관으로서의 구실을 해 왔다.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臨)·서무(西無)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곳이며, 강당인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東齋)·서재(西齋)는 강학을 하는 곳이다. 경주 향교가 처음 지어진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 23년(1492)에 성균관(成均館)을 본따 중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된 것을 선조 33년(1600)에 대성전(大成殿)과 전사청(典祀廳)을 중건하고, 선조 37년(1604)에 동무 · 서무를 광해군 | 6년(1614)에 명륜당과 동재·서재를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5.  삼국사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경주향교 동무, 서무, 신삼문(보물)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 동무, 서무, 신삼문(보물)이다. 향교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주요 건축물들로 1604년 중건된 이래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서무는 앞면 12칸 규모의 건물로 향교 동,서무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각각 4곳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나머지는 흰색 벽면을 하고 있다. 신삼문은 제향공간 출입문으로 앞면 3칸을 하고 있는 평삼문으로 향교 삼문의 모범이 되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동무>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서무>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제향공간>

OLYMPUS DIGITAL CAMERA<신삼문>

경주향교_신삼문_전면_1<정면에서 본 모습>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2. 위키백과, 2022년

 

경주 경주향교 대성전(보물)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 대성전(보물)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때(1604년)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기단은 다양한 형태의 석재로 쌓았는데 가운데와 양쪽에 석재계단을 두고 있다. 건물을 중건할 때 임해전(臨海殿) 터에 남아 있던 석재들을 가져왔다고 한다. 건물을 중건한 내력을 기록한 상량문이 남아 있으며 당시 건축양식이 잘 반영된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대성전(보물)>

가운데 계단과 정로(正路)는 조선 현종 때(1655) 동,서무를 중건하면서 임해전 터에 있던 석물들을 가져와 만들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기단과 가운데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옆 계단>

정로는 신삼문과 대성전을 연결하는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마당.>

보물_제1727호_경주향교_대성전(2011년_국보,보물_지정보고서)<대성전 내부>

경주향교 대성전, 보물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대성전과 동.서무에 143현의 위패를 모셨는데 이후 몇 차례의 위패 정리령에 따라 현재는 25현의 위패가 대성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선조 33년(1600)에 공사를 시작하여 35년(1602)에 공사를 마쳤음이 1998년 보수공사를 하며 발견된 상량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간결하고 위엄이 있는 목조 건물로 옛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안내문, 경주시청)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

 

경주 교촌마을 요석궁,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고택

경북 경주시 교동 교촌마을에 있는 고택인 요석궁이다. 최부자댁 12대 최준의 동생인 최윤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밭가운데 댁’으로 불린다. ‘ㄷ’자형 안채, 중문채, 사랑채가 붙어 있는 형태로 종가인 최부자댁과 거의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옥으로 지금은 경주를 대표하는 식당인 ‘요석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식당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부엌이나 광을 온돌방으로 바꾼 것 외에는 원래의 모습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식구가 많지 않은 일반적인 고택과는 달리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 고택의 화려했던 시절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채>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서 본 대문채와 문간방>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뒷편 정원>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왼쪽 날개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OLYMPUS DIGITAL CAMERA<사무실로 개조한 중문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 날개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와 연결되는 왼쪽 날개채>

<출처>

  1. 경주 교촌마을 홈페이지,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