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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사적) 서봉총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경주 대릉원 129호 무덤인 서봉총(瑞鳳塚)이다. 일제는 1926년 발굴.조사를 하면서, 당시 방한했던 고고학에 조예가 깊었던 스웨덴의 구스타프 황태자를 참관하였다. 고분의 이름도 스웨덴을 의미하는 서(瑞)자와 봉황대를 의미하는 봉(鳳)자를 합쳐서 서봉총이라 불렀다. 서봉총에는 금관을 비롯하여 각종 청동제 그릇과 금.은 장신구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봉분의 조성형식 또한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 형식을 취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 서봉총>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서봉총 금관(瑞鳳塚金冠, 보물)은 높이 30.7 cm, 지름 18.4 cm, 드리개 길이 24.7 cm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스웨덴 구스타프 국왕을 황태자 시절에 초빙하여 같이 발굴한 유물이다. 넓은 관 테 위에 5개의 사슴뿔모양의 가지를 세워 올린 전형적인 신라 금관의 형태를 하고 있다.  천마총, 금관총,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에 비해서는 금세공기술이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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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총 금관(보물)>

OLYMPUS DIGITAL CAMERA<금제 바리, 5세기, 서봉총>

OLYMPUS DIGITAL CAMERA<금귀걸이, 5세기, 서봉총>

OLYMPUS DIGITAL CAMERA<보석장신구, 5세기, 서봉총>

OLYMPUS DIGITAL CAMERA<유리팔찌, 5세기, 서봉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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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잔, 5세기, 서봉총>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한 서봉총의 출토품입니다. 이 무덤에서는 금관과 금제 허리띠를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출토되었습니다. 발굴당시 스웨덴의 구스타브 황태자가 발굴을 참관하였습니다. 출토된 금관에 세 마리의 봉황이 장식된 점에 착안, 무덤 이름을 서전의 ‘서’자와 봉황의 ‘봉’자를 따서 ‘서봉총’으로 지었습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특별전, 2015년)

서봉총은 발굴.조사 후 봉분을 복원하지 않아 그 터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봉총에는 발굴을 참관했던 구스타프 황태자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구스타프황태자는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 했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서 양국 친선을 강조하는 측면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사적) 노서동 고분군>

OLYMPUS DIGITAL CAMERA<서봉총 발굴 이야기 1>

OLYMPUS DIGITAL CAMERA<서봉총 발굴 이야기 2>

OLYMPUS DIGITAL CAMERA<서봉총 발굴 이야기 3>

OLYMPUS DIGITAL CAMERA<서봉총 발굴 이야기 4>

경주 대릉원 호우총 09-20220129<경주 노서동, 노동동 일대 주요 고분들>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5. 안내문, 경주박물관 특별전, 2015년

 

경주 대릉원(사적) 호우총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인 호우총(壺杅塚)이다. 경주 대릉원(사적)에 있는 많은 무덤 중 140호분으로 ‘호우(壺杅)’라는 글씨가 돋을 새김되어 있는 청동그릇(보물)이 출토되어 호우총이라 불린다. 1946년 국립박물관이 해방 후 처음으로 은령총과 함께 발굴하였다. 전형적인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옆에 있던 은령총과 함께 쌍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당시에는 봉분은 없고 주택이 있었으며 현재는 주위보다 약 2 m 높은 대지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 140호분, 호우총, 은령총>

청동 그릇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사후(415년)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무덤주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죽은 후 6세기 초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릉원 일대 무덤의 조성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무덤이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그릇(보물), 환두대도, 금동관을 비롯한 장신구, 도깨비얼굴을 하고 있는 화살통 등이 있다. 무덤의 규모나 출토유물로 볼 때 무덤주인은 최고위급보다 한단계 낮은 신라왕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보물)>

바닥에는 글자가 4행 4자씩 총 16자(乙卯年國罡(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가 새겨져 있다. 이 글자를 통해 고구려에서 만든 그릇이 신라에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뚜껑>

OLYMPUS DIGITAL CAMERA<용문고리자루칼, 신라. 경주 호우총>

환은 대부분 멸실되었으며 환 내붕 용두가 잘 남아 있다. 용두는 청동으로 부조하고 도금하였는데, 별도로 제작하여 환 안쪽에 부착하였다. 금동판으로 제작된 초구금구에 용문이 부착되어 있고, 도신의 단면에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상감하였다. 용은 금사로, 물고기는 은사로 상감한 것이 특징이다. (안내문, 공주박물관 특별전,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화살집,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주 호우총, 복원>

화살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손쉽게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중국의 고서인 『주례』에 귀신을 몰아내는 방상시(方相氏) 모습의 가면으로 알려졌으나 화살집 장식으로 새롭게 알려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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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드리개, 삼국시대(신라) , 호우총>

OLYMPUS DIGITAL CAMERA<귀걸이, 삼국시대(신라), 호우총>

OLYMPUS DIGITAL CAMERA <그릇, 청동, 삼국시대(신라) 6세기>

호우총
호우총은 신라시대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해방 직후인 1946년 3월에 우리나라 고고학자가 발굴한 최초의 고분이다. 호우총이라는 명칭은 고구려의 청동 그릇이 출토되어 붙여졌다. 청동 그릇에는 16자의 명문과 ‘정(井)’자가 돋을 새김되어 있다. 명문은 ‘을묘년(415년)에 광개토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호우’로 광개토대왕을 장사지낸 1년 뒤 이를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되어 고구려와 신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무덤은 함께 출토된 유물의 형식으로 보아 6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청동 그릇은 만들어진 지 약 백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 비로소 무덤속에 부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20년)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사적) 노서동 고분군>

경주 대릉원 호우총 09-20220129<경주 대릉원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주요 무덤>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5. 안내문, 공주박물관 특별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