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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사적) 미추왕릉 지구

경북 경주시에 있는 대릉원(大陵園) 중 미추왕릉 주변에 위치한 고분군이다. <삼국사기>에 미추왕의 무덤이 대릉(大陵)에 있다고 하여 대릉원(大陵園)이라 불렸으며 1973년에 공원으로 조성된 지역이다. 이곳에는 신라 고분을 대표하는 황남대총, 천마총,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20여기의 봉분이 남아 있는 무덤이 있으며 봉분이 남아 있는 많은 무덤들이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신라 무덤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이 대부분이지만 구덩식돌덧널무덤과 독무덤 등 여러 형식의 무덤이 섞여 있다. 주변 황오동, 노동동, 노서동, 인왕동 고분들과 시기적, 지리적으로 동질성을 갖고 있어 대릉원으로 통합하여 재지정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을 대표하는  황남대총과 주변 무덤들>

경주 대릉원에 있는 무덤들은 월성 아래에 있는 내물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 시작되어 북서쪽으로 노서동까지 연결되어 조성되었으며 이후 왕릉은 서악동으로 옮겨 조성된다. 도심이었던 주변지역과는 달리 대릉원 일대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어 국가 공원 형태로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주민들이 집을 짓고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주 대릉원 미추왕릉지구_<경주 대릉원 미추왕릉 지구>

1973년 대릉원을 공원으로 조성할 때 담장부지에서 많은 무덤들이 발굴, 조사되었다. 무덤들은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이었으며 구덩식돌덧널무덤과 독널무덤들도 섞여 있었다. 도기 서수형 명기(보물), 상감 유리구슬(보물), 뿔잔과 잔받침대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경주 대릉원 입구>

대릉원 입구에서 미추왕릉 사이의 담장을 따라 이어진 숲길 주변은 많은 무덤들이 발굴, 조사된 곳으로 미추왕릉지구 C, D구역으로 분류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미추왕릉지구 C, D 구역>

미추왕릉 부근 무덤에서 출토된 도기로 만든 명기(明器)이다.  거북모양의 몸을 하고 있으며, 머리와 꼬리는 용모양이다. 머리는 S자형으로 높이 들고 있고 목덜미, 등, 꼬레 뿔이 붙어 있다. 몸통은 비어있고 가슴에는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가, 있고 엉덩이에 밥그릇 모양의 주입구(注入口)가 있어 주전자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도기 서수형 명기(보물)>

미추왕릉 부근에서 발견된 길이 24 cm, 상감유리옥 지름 1.8 cm의 옥 목걸이다. 구슬에는 물속을 헤엄치는 오리 16마리와 두 사람의 얼굴이 아주 세밀하게 상감되어 있다. 상감유리구슬은 서아시아나 지중해에서 유행했던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의 상감유리구슬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직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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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유리목걸이(보물), 경주박물관,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뿔잔과 잔받침대, 5~6세기, 미추왕릉 C지구 7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미추왕릉(사적)>

신라 제13대 미추왕(味鄒王, 재위 262 ~ 284년)은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의 후예로 김씨 중 처음 왕위에 올랐다. 경주 대릉원에 있는 왕릉 중 큰 규모의 무덤으로 높이 12.4 m, 지름 15.7 m 정도이다. 경주 김씨 시조에 준하는 위상을 갖고 있는 무덤을 조선시대 이후 성역화되어 있다. 무덤 앞쪽에는 위패를 모신 사당이 숭혜전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미추왕릉>

미추왕릉을 지나면 길 옆 양쪽에 큰 규모의 무덤 5기를 볼 수 있으며 미추왕릉 뒷편에 작은 무덤들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미추왕릉 서쪽편 천마총과 황남대총으로 연결되는 길>

SANYO DIGITAL CAMERA<미추왕릉 옆 105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미추왕릉 옆 103호, 105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103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101호 무덤>

101호 무덤을 지나면 중간 규모의 무덤인 99호 무덤이 있고 안쪽에 황남대총을 비롯한 무덤들이 모여 있다. 황남대총 서쪽편 모서리에 천마총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마총 앞 99호 무덤>

경주 대릉원 155호 무덤인 천마총(天馬塚)은 1973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가 파악되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금관과 관장식, 금제허리띠,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중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天馬)가 그려진 말다래가 출토되어 천마총(天馬塚)이라 부른다. 무덤은 높이 12 m, 바닥지름 47 m으로 대릉원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무덤이다.

SANYO DIGITAL CAMERA<155호 무덤인 천마총>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천마총>

천마총 장니 천마도(障泥 天馬圖,국보)는 1973년 황남동고분 155호분에서 출토되었다. 그림은 말의 안장 안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그림이다. 가운데에는 흰색으로 천마가 그려져 있으며, 테두리에는 여러색의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5~5세기 고구려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신라에서 그려진 그림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말다래(天馬塚障泥), 6세기, 경주 천마총, 복제품>

천마총금관
<천마총 금관(국보)>

천마총_금제_허리띠
<천마총 금제허리띠(국보)>

OLYMPUS DIGITAL CAMERA<천마총 관모(국보)>

OLYMPUS DIGITAL CAMERA<새날개 모양을 하고 있는 금제관식(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천마총 금제관식(보물)>

천마총 목걸이(보물)는 내부 관(棺)에서 출토된 것으로 가슴 윗부분에 있던 것이다. 금, 은, 비취,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화려한 장식구이다. 목걸이는 6줄로 이어져 있는데 좌우와 가운데에는 큰 굽은 옥이 매달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마총 목걸이(보물)>

OLYMPUS DIGITAL CAMERA<봉황장식 큰칼(보물621호)과 큰칼(6세기, 천마총)>

SANYO DIGITAL CAMERA<천마총 앞에서 보이는 황남대총>

경주 대릉원 98호 무덤인 황남대총(皇南大塚)은 길이 120 m의 거대한 쌍분이다. 먼저 조성된 남분이 왕의 무덤이며, 나중에 덧붙여진 북분은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무기둥을 줄지어 세웠던 기둥구멍과 기둥 사이를 연결했던 목재의 흔적이 발견되어 목조가구를 먼저 설치하고 돌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북분에서는 금관, 남분에서는 금동관을 비롯한 수많은 껴묻거리들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들은 신라 고분 중에서 그 수량이 많으면서 수준도 높다.

SANYO DIGITAL CAMERA<98호 무덤인 황남대총 남분>

황남대총 남분 은관(보물)은  높이 17.2 cm, 지름 16.6 cm 크기로 머리띠 위에 3개의 가지가 있는 장식이 있다. 가운데에는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의 은판을 붙였으며 좌우에는 깃털이 있는 반달모양의 은판을 붙였다. 신라 관모에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보물631호-01-20200212 <황남대총 남분 은관(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은제관모, 5세기, 황남대총>

OLYMPUS DIGITAL CAMERA<관꾸미개, 금, 삼국시대 5세기, 황남대총, 보물>

SANYO DIGITAL CAMERA<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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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국보)>

OLYMPUS DIGITAL CAMERA<가슴꾸미개, 5세기, 경주 황남대총>

OLYMPUS DIGITAL CAMERA<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보물), 경주박물관 특별전,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큰칼, 황남대총 남분>

SANYO DIGITAL CAMERA<은제말안장꾸미개와 목심, 황남대총 남분>

국보193호-01-20200212
<봉황모양유리병, 경주 황남대총 남분, 삼국시대(신라) 5세기, 국보>

황남대총 북분 금관(국보)은 높이 27.5 cm이며, 드리개는 길이 13~ 30.3 cm이다. 앞쪽에는 山자형을 연속해서 삼단으로 쌓아 올린 나무모양을 3개 두고 있으며, 뒷쪽에는 사슴뿔모양을 하고 있는 장식 2개을 두고 있다.

국보191호01-20200212
<황남대총 북분 금관(국보)>

SANYO DIGITAL CAMERA<황남대총 북분 은제관식(보물)>

국보192호01-20200212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국보)>

보물623호-01-20200212<팔찌(보물)>

보물623호-02-20200212<반지(보물)>

OLYMPUS DIGITAL CAMERA<금귀걸이(황남대총 북분), 금제 드리개(황남대총 북분)>

보물624호-02-20200212<유리잔, 경주 황남대총 북분, 삼국시대(신라) 6세기, 보물>

보물627호-01-20200212<황남대총 북분 은잔(보물)>

OLYMPUS DIGITAL CAMERA<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보물)>

OLYMPUS DIGITAL CAMERA<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보물)>

OLYMPUS DIGITAL CAMERA<황남대총에서 출토된 토기들>

SANYO DIGITAL CAMERA<황남대총 뒷편 연못>

황남대총 앞으로는 쌍분 형태인 97호 무덤과 95호 무덤이 있고 동쪽편에 중간 규모의 93호, 92호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97호, 95호 무덤과 미추왕릉 사이는 광장이 형성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황남대총 앞 97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97호 무덤과 98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앞쪽에서 본 97호 무덤, 쌍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95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황남대총 동쪽편에 있는 93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97호 무덤 앞 광장과 100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광장 서쪽편에 있는 100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103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미추왕릉>

SANYO DIGITAL CAMERA<미추왕릉 뒷편 108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108호 무덤>

1973년 대릉원 미추왕릉지구를 유적 공원화하는 공사를 하면 옛 경주시청에서 계림으로 연결되는 도로 바깥에 있던 90호 무덤이 공원에 포함되면서 계림로 도로공사가 있었는데 이때 많은 무덤들이 확인되었으며 14호 무덤에서 계림로보검(보물)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90호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계림로>

계림로 보검(보물)은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출토된 길이 36 cm의 칼이다. 철제 칼집과 칼은 녹슬어 남아 있지 않고 금으로 된 장식만 남아 있다. 자루 끝부분은 골무처럼 생겼는데 가운데 붉은 마노를 박았다. 가운데에는 있는 반원형 돌출부는 칼을 허리에 매달기 위한 장치이다. 금알갱이를 붙인 금판의 내부에 붉은 석류석과 유리를 넣었다. 이런 형태의 칼은 동아시아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유럽이나 중동지방에서 발견되는 형태로 당시 동,서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계림로 보검, 보물, 경주 계림로 14호 무덤, 5세기>

미추왕릉지구 계림호 30호 무덤에서 출토된 항아리는 신라 토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높이 34 cm, 윗부분 지름 22.4 cm로 큰 편이며, 위에서 아래로 한번에 5개의 선을 그었고 그 선 사이에 동심원을 새기고 개구리.새.거북이.사람 등의 토우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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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장식항아리 (국보), 5세기, 경주 미추왕릉지구>

경주 황남리 고분군, 사적, 경북 경주시 황남동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안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일련번호 90~114, 151~155호인 원형으로 흙을 쌓아 올린 30기의 무덤이다. 큰 무덤은 돌무지 덧널무덤이고 주변에는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 있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다. 1973년에 발굴조사된 천마총은 지름 47 m, 높이 12.7 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 이름하여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0 m, 동서길이 80 m, 높이 23 m의 거대한 쌍무덤으로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 및 많은 유물이 나왔다. 북쪽 무덤에서도 금관과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있는 은팔찌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020년
  2. 안내문, 경주박물관특별전, 2015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5. Cultural Heritage Wiki, 문화재청, 2022년
  6.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