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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거제현 관아(사적)

경남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에 있는 거제현 관아(사적)이다. 거제현은 고려말 왜구의 침략으로 섬을 비웠다가 조선 초 세종 때(1423년) 피난갔던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사등면에 사등성을 쌓고 관아를 설치하였다다. 이후 지형적인 조건 등으로 읍치를 고현성으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고현성이 함락되고 주요 관아건물들이 사라졌다. 이후 삼도수군통제영 겸 경사좌수영이 통영으로 옮기면서 통영과 가까우면서 방어에 유리한 현재의 위치로 관아를 옮겼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거제시의 중심이 고현성이 있는 신현읍으로 옮기면서 작은 시골 면소재지가 되었다.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01-20220221<거제 거제현 관아(사적)>

거제현 관아터에는 객사였던 기성관(보물)과 하급 실무자들의 업무공간인 질청이 남아 있으며, 동헌과 내아가 있던 자리에는 면사무소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객사는 구한말 이후 초등학교로, 질청은 등기소로 사용되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거제현 관아는 ‘진입로-관아 건물-계룡산(수정봉)’이 남서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특이하게 동헌이 객사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거제현 관아<거제현 관아 공간 배치>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02-20220221<객사 출입문>

객사인 기성관(보물)은 조선후기 현종 때 관아가 있던 고현성을 폐쇄하고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1665년) 지어졌다. 이후 여러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1909년까지 관아 건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초등학교 교시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1976년에 옛모습을 복원하였다. 해체수리과정에서 상량묵서와 상량문 등이 발견되어 창건 내력 등의 내용이 잘 남아 있다. 관아객사이지만 내부는 전체가 넓은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어 통제영 객사인 세병관(국보)과 마찬가지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04-20220221<거제 기성관(보물)>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05-20220221<기성관 내부>

객사 마당에는 조선후기 이후 거제현에 흩어져 있는 역대 고을 수령들의 송덕비들을 모아 놓고 있다. 모두 14기의 비(碑)가 있는데 그중 6기는 철비(鐵碑)이며, 8기는 석비(石碑)이다. 다른 고을에 비해 송덕비는 많지 않은 편이다.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03-20220221<거제현 관아 송덕비군>

거제현 관아 송덕비군 (巨濟縣 官衙 頌德碑群)
현재의 거제면은 거제구읍(巨濟舊邑)으로, 옛 거제현의 치소(治所)가 자리하였던 곳이다.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조선초 거제 현민들은 거창, 진주, 영선 등지로 피난을 갔었는데 1422년(세종 4) 돌아와 사등성(沙等城)을 수축하였으나 협소하고 물이 귀해 이듬해 고현으로 옮겨 9년 만에 고현성(古縣城)을 낙성하여 거제 현아(縣衙)를 두었다. 이후, 1592년 임진왜란으로 고현성이 함락되고, 1664년(현종5) 현재의 거제면으로 현아를 옮겨 조선말까지 거제부의 치소로 기능하게 되었다. 현재 거제현 관아지에 남아있는 기성관(岐城館), 질청(秩廳), 향교 유적 등은 모두 고현에서 이건한 것이다. 원 거제현 관아에는 다수의 송덕비가 있었으나 세월의 변천에 따라 대부분 산실되었고, 현존하는 14기는 향교 입구와 동상리, 서정리 등에 있던 것을 1970년 거제유림과 거제면민이 합심하여 옮겨 모은 것이다. 비들은 1974~1976년 기성관 해체 복원 작업 시 기성관 안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6기는 철비(鐵碑)이며, 8기는 석비(石碑)이다. 이들은 조선 후기 거제의 역사를 반영하는 기념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안내문, 거제시청, 2022년)

객사인 기성관 앞쪽에는 하급 실무자들이 사용했던 관아 건물이 질청(秩廳)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건물은  ‘ㄷ’자형인데 27칸으로 지방관아 건물 중에는 큰 편이다. 건물은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ㅉ고에 작은 온돌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가 넓은 것으로 볼 때 회의 등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06-20220221<질청 출입문>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ㄷ’ 형태를 하고 있는데 원래는 ‘ㅁ’자형 이었다고 한다.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08-20220221<질청>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09-20220221<대청마루>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07-20220221<작은 마루와 온돌방이 있는 왼쪽 날개채>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10-20220221<오른쪽 날개채>

질청(秩廳)
거제현 관아는 조선시대 거제현의 일반 행정과 군사 업무를 총괄하기 위한 지방 행정기구이다. 그 중에서 질청(株廳)은 하급 관리들의 사무실이나 서재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1926년부터는 등기소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4년에 해제 복원한 것이다. 질청은 현재 남아있는 것만 해도 27칸이 넘는 대규모의 건물이며, 전체가 ‘ㄷ’자형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거제현 지도에는 ‘ㅁ’자형으로 나와 있어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화 과정에서 도로와 맞닿은 앞부분이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질청 건물의 중앙부에는 사무를 보는 큰 대청이 있고 양쪽에는 주거용 방이 있다. 기성관처럼 화려한 장식이 없지만 검소하면서도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거제현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던 질청은 기성관과 함께 조선시대 관아의 전형적인 기능적, 구조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안내문, 거제시청, 2022년)

동헌과 내아가 있던 자리는 현재 면사무소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그 앞에 크고 오래된 고목이 남아 있어 이곳이 관아터였음을 알 수 있다.

거제 거제현 관아 (사적) 12-20220221<동헌이 있던 자리>

거제현 관아는 남해안 방어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에 있기는 하나 왜구가 없었던 임진왜란 이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기때문에 읍성을 쌓지 않았다. 구한말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방어를 읍성 축성을 추진했으나 승인받지 못하고 읍치 뒷편에 산성을 쌓아 이를 보완하였다.

거제 옥산성 30-20220221<거제 옥산성>

거제현 관아(巨濟縣 官衙), 사적 제484호
거제현 관아는 조선시대 거제현의 일반 행정과 군사 업무를 총괄하기 위한 지방행정기구이다. 주요 건물은 객사인 ‘기성관’, 수령이 업무를 보던 ‘동헌’, 하급 관리가 업무를 보던 ‘질청’ 등이 있다. 현재는 기성관과 질청이 남아 있으며, 지금 거제면 사무소가 있는 곳에는 당시 동헌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려 말 왜구침략으로 인한 공도정책으로 행정상 공백지였던 거제에 조선시대 세종 4년(1422) 피난 갔던 거제백성들이 돌아오면서 거제현관아가 설치되었다. 최초로 현재 수월동에 설치 되었으며, 사등성을 거쳐 단종 1년(1453)에 고현성으로 거제현관아가 이전되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고현성이 함락되어 관아의 주요 건물이 사라짐에 따라 현종 5년(1664)에 지금의 위치에 새로 지었다. 거제현 관아는 ‘진입로-관아 건물-계룡산(수정봉)’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어 서울의 ‘광화문-경복궁-백악산’과 유사한 지형적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시대 관아의 전형적인 건물 구조와 배치 등을 보여주는 곳으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거제시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거제시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