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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마을에 있는 옛 담장(등록문화재)이다. 남사마을은 18~20세기에 지어진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는 전통마을로 오래된 토담과 돌담이 많이 남아 있다. 양반들이 살았던 큰 고택에는 흙과 돌로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올려 놓은 높은 토담들이, 서민들이 살았던 가옥에는 나지막한 돌담들이 남아 있다. 전통마을에서 경제력과 신분에 따라 다양한 재료와 형식으로 쌓은 담장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7-20220222<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인 이씨고가 앞 돌담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6-20220222<이씨고가 앞 담장과 대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1-20220222<최씨고가 앞 담장과 대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0-20220222<최씨고가 골목길 담장>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3-20220222<사양정사 앞 담장과 골목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2-20220222<마을 중심부 골목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5-20220222<마을 바깥쪽 담장>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3-20220222<골목길 담장>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9-20220222<남사마을>

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
남사마을의 옛 담장은 마을 주민들이 남사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강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담장 하부에 길이 50 ~ 60cm 정도의 큰 막돌로 2~3층을 쌓은 다음 그 위에 돌과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렸다. 담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이다. 지리산 길목에 있는 남사마을은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지은 전통 한옥 40여 채가 남아 있어 담장과 한옥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풍경을 자랑한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고택인 사양정사(泗陽精舍)이다. 1920년대 유학자 정제용의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앞면 7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재실 건물이다. 가운데 2칸 대청마루를 두고 왼쪽에 온돌방 2칸 오른쪽에 온돌방 1칸이 있으며 양쪽에 1칸씩 누마루를 두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종의 개량한옥으로 자재나 건축수법이 뛰어난 편이다.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4-20220222<가운데 대청마루>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5-20220222<왼쪽 온돌방과 누마루>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3-20220222<오른쪽 온돌방과 누마루>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6-20220222<사양정사 마당>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2-20220222<산청 사양정사>

대문채는 솟을대문과 광과 문간방이 있는 7칸 규모의 건물로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8-20220222<대문채>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7-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산청 사양정사(泗陽精舍),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사양정사는 한말의 유학자 계제 정제용(1865~1907년)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종화가 남사로 이전한 후 선친을 추모하기 위하여 마련한 정사로 1920년대에 지어졌다. 정제용은 포은 정몽주의 후손으로 한말의 유학자인 후산 허유와 유림을 대표하여 파리장서를 작성한 면우 곽종석의 문인이다. 사양정사란 ‘사수’ 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사수’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석 곡부에 있는 강이름인데 공자를 흠모하는 뜻으로 남사마을 뒤에 있는 개울을 사수라 부르고 정사가 개울의 남쪽에 있어 사양정사라 이름하였던 것이다. 건립 이후 주로 자손을 교육하고 문객을 맞아 교유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사양정사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천장이 높고 부재가 튼실하며 치목이 정교할 뿐 아니라 다락과 벽장 등 수납공간을 풍부하게 설치하였으며 또한 당시로서는 새로운 건축재료인 유리를 사용하여 근대기 한옥의 변회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4칸의 광을 넣어 7칸의 장대한 규모로 구성한 대문채에는 충절을 상징하는 홍살을 넣은 솟을대문을 달아 사양정사의 풍경과 풍부한 경제력을 나타내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산청 남사리 최씨고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고택인 ‘최씨고가’이다. 남사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중 가장 큰 규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이다. 건물은 안채, 외양간채,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사랑채 양쪽에 중문을 두고 있으며 안채가 있는 마당은 외부와 분리되어 있어 유교적인 격식을 강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남사마을 한옥을 대표하는 고택이라 할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남사마을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큰 저택으로 고즈넉한 담장이 있는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은 담장에 의지해 4개의 기둥이 있는 사주문으로 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2-20220222<대문>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7-20220222<안쪽에서 본 대문>

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앞뒤로 툇마루를 두고 있다. 가운데 마루가 있고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이 있어 가족들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5-20220222<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8-20220222<왼쪽 온돌방>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9-20220222<가운데 대청마루>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10-20220222<오른쪽 온돌방>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6-20220222<사랑채 마당에 있는 창고(외양간)>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4-20220222<사랑채 마당 정원>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12-20220222<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11-20220222<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3칸 규모의 큰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산청남사리최씨고가<안채>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3-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산청 남사리 최씨고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이 고택은 전통적인 남부지방의 사대부 한옥이다. 건물은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익랑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사랑채 좌우에는 중문이 두 곳 설치되어 있다. 동쪽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한 눈에 들어오지만, 서쪽 중문을 지날 경우 ㄱ자 담으로 차단되어 안채와 익랑채가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 따라 남녀의 생활상의 공간 분화를 분명히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에 앞뒤 툇간이 있고, 들보 5량으로 조성된 높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뒤 툇간은 폭이 넓어 수장기능의 벽장이 설치되거나 방으로 분할되고 있으며, 겹집형식으로 변모되고 있다. 건물의 사용 자재들은 견실하고 이중 방문의 조각 장식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에 앞뒤 툇간이 있으며, 들보 5량으로 조성된 팔작지붕 건물이다. 안채와 마찬가지로 겹집형식으로 취하고 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고택인 ‘이씨고가’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으로 18세기에 지어졌다. 건물을 안채, 사랑채, 외양간채, 곳간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공간은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공간을 넓게 사용하여 개방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 보통 사랑채는 집주인이 손님을 접견하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이 집은 가족들의 생활공간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배치를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조선후기 남부지방 상류층 저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고택은 담장이 있는 골목길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골목길에는 ‘부부 회회나무’로 잘 알려진 2그루의 고목이 아치를 이루고 있다. 드라마 ‘왕의 남자’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3-20220222<부부 회화나무>

부부 회화나무, 수령 310년
선비나무로 불리는 두 그루의 회화나무는 서로에게 빛을 더 잘 들게 하려고 몸을 구부리며 자랐고, 부부가 나무 아래를 통과하면 금실 좋게 백년해로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부부나무로 불린다. 중국 주나라 시대에 회화나무 아래 삼공이 모여 정사를 논의한 것에서 유래되어 학자나무라고도 불린다. (아내문, 산청군청, 2022년)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4-20220222<대문>

대문을 들어서면 바깥주인의 생활공간이 사랑채와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곳간채가 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로 주거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이 사랑채에 비해 대청마루가 작은 편이며 오른쪽에 온돌방 2칸, 왼쪽에는 누마루와 온돌방 1칸이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5-20220222<사랑채 마당>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3-20220222<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5-20220222<대청마루와 온돌방, 누마루>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4-20220222<온돌방>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9-20220222<안마당에서 보이는 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2-20220222<맞은편 곳간채>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2-20220222<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0-20220222<안마당에서 본 중문>

안채가 있는 살림공간에는 안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외양간채와 곳간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11-20220222<안마당>

안채는 남부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자형 건물로 앞면 7칸 규모로 건넌방 1칸, 대청 2칸, 안방 2칸을 두고 있으며 오른쪽 2칸은 부엌으로 보인다. 온돌방과 대청마루 앞에는 툇마루를 두어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오른쪽 방 앞에는 툇마루를 높게 하여 누마루처럼 사용하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6-20220222<안채>

아래채는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앞면 4칸 규모이다. 부엌, 방, 대청 등을 배치하고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8-20220222<아래채>

곳간채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그 규모로 볼 때 상당한 부유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07-20220222<곳간채>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2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는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1700년대에 세운 전통적인 남부지방 사대부 가옥이다. 남북으로 긴 대지에 사랑채, 외양간채, 곳간채가 안채를 중심으로 ‘ㅁ’자 모양이다. 안채는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남부지방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일(一)자 모양의 건물이다.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안채와 앞뒤로 나란히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살며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이나, 이씨고가의 사랑채는 안채처럼 주로 주거 용도로 쓰였다. 사랑채의 내부는 안채의 내부와 비슷한데 지붕 아래에 방을 두줄로 배열하여 앞쪽에는 생활하는 공간을 두고, 뒤쪽으로는 생활용품이나 가재도구 등을 보관하는 공간을 둔 겹집으로 꾸몄다. 사당은 담장을 둘러 독립적으로 배치하였다. 사당은 안채의 부엌에서부터 먼 곳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고가에서는 가깝게 둔 것이 특이하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산청 목면시배 유지(사적), 문익점이 처음 목화를 재배한 곳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있는 목면시배 유지(사적)이다. 고려 공민왕 때(1363년) 중국 원나라를 사신으로 방문했던 문익점이 목화 씨앗을 붓통에 넣어 가지고 돌아온 후 장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를 처음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이 태어난 이곳 마을에는 목화를 처음 심었다고 알려진 백여평 밭에는 지금도 그의 업적을 기려 목화를 재배해 오고 있다. 유적지에는 문익점을 기리는 부민각이라는 건물과 그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가 남아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1-20220222<산청 목면시배 유지(사적)>

목화를 재배했던 밭 옆에는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처럼 보이는 ‘부민각’이라는 현판이 있는 한옥이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그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7-20220222<부민각>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8-20220222<부민각에 모셔진 초상화>

부민각과 목화밭 사에는 ‘문익점 효자비’를 볼 수 있다. 문익점은 모친이 돌아가신 후 묘곁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당시 이곳을 침범했던 왜적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정에 알려져 고려 우왕 때(1383) 그에게 표창을 내리고 마을을 ‘효자리’라 이름하도록 하였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9-20220222<효자비 비각>

유적지에는 이곳이 목면시배 유지임을 알려주는 2기의 비석과 그의 업적을 알려주는 기념관이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4-20220222<유적지 출입문>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5-20220222<2기의 비석>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2-20220222<전시관>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3-20220222<전시관 내부>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이곳은 고려말기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은 공민왕 12년(1363)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면화 씨앗을 구해왔다. 그 뒤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과 함께 면화재배에 성공하였다. 면화로부터 얻어지는 포근한 솜과 질긴 무명은 옷감을 향상시켜 백성들의 의생활에 혁명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