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July 13, 2022

산청 목면시배 유지(사적), 문익점이 처음 목화를 재배한 곳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있는 목면시배 유지(사적)이다. 고려 공민왕 때(1363년) 중국 원나라를 사신으로 방문했던 문익점이 목화 씨앗을 붓통에 넣어 가지고 돌아온 후 장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를 처음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이 태어난 이곳 마을에는 목화를 처음 심었다고 알려진 백여평 밭에는 지금도 그의 업적을 기려 목화를 재배해 오고 있다. 유적지에는 문익점을 기리는 부민각이라는 건물과 그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가 남아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1-20220222<산청 목면시배 유지(사적)>

목화를 재배했던 밭 옆에는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처럼 보이는 ‘부민각’이라는 현판이 있는 한옥이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그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7-20220222<부민각>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8-20220222<부민각에 모셔진 초상화>

부민각과 목화밭 사에는 ‘문익점 효자비’를 볼 수 있다. 문익점은 모친이 돌아가신 후 묘곁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당시 이곳을 침범했던 왜적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정에 알려져 고려 우왕 때(1383) 그에게 표창을 내리고 마을을 ‘효자리’라 이름하도록 하였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9-20220222<효자비 비각>

유적지에는 이곳이 목면시배 유지임을 알려주는 2기의 비석과 그의 업적을 알려주는 기념관이 있다.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4-20220222<유적지 출입문>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5-20220222<2기의 비석>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2-20220222<전시관>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03-20220222<전시관 내부>

산청 목면시배 유지, 사적
이곳은 고려말기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은 공민왕 12년(1363)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면화 씨앗을 구해왔다. 그 뒤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과 함께 면화재배에 성공하였다. 면화로부터 얻어지는 포근한 솜과 질긴 무명은 옷감을 향상시켜 백성들의 의생활에 혁명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산청 문익점 효자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있는 문익점 효자비이다.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장인과 함께 목화를 재배했던 마을에 남아 있는 비석이다. 문익점은 모친이 돌아가신 후 묘곁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당시 이곳을 침범했던 왜적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정에 알려져 고려 우왕 때(1383) 그에게 표창을 내리고 마을을 ‘효자리’라 이름하도록 하였다. 비석은 윗변을 살짝 둥글게 다음은 단순한 형태로 ‘孝子里’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앞쪽에 최근에 다시 세운 비석이 같이 놓여 있다.

산청 문익점 효자비 03-20220222
<산청 문익점 효자비>

산청 문익점 효자비 01-20220222<효자비 비각>

산청 문익점 효자비 02-20220222<최근에 세운 비석>

산청 문익점 효자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삼우당 문익점(1329 ~ 1398)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이 세워진 곳은 원래 문익점 선생이 살던 마을이었다. 선생이 모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하고 있을 때 왜적이 침범해 왔다. 지나는 곳마다 분탕질이 심하여 모두 피난을 갔지만, 선생은 홀로 여막을 지키며 평소와 같이 곡하고 있었는데, 왜적도 이를 보고 감동하여 나무를 다듬어 “효자를 해치지 말라”고 써서 세웠기에 일대가 모두 평안하였다 한다. 2383년(우왕9)에 정려를 내리고 이마을을 효자리라 이름지었다. 크기는 세로 160cm, 가로 50cm이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산청 단성향교, 조선시대 단성현 중등 교육기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누강리에 있는 단성향교이다. 옛 단성현 중등교육기롼으로 고려전기 인종 때 처음 창건되었다. 조선초 세종 때 강누리 인근으로 옮겨졌다가 조선후기 영조 때 현위치로 옮겨졌다.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기능보다는 공자와 선현에 제사를 올리는 제향기능 위주로 운영되었던 지방의 작은 향교이다. 단성향교에는 <단성현 호적장부>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조선후기 사회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산청 단성향교 01-20220222<산청 단성향교>

경사진 지형에 건물이 세워져 있는 명륜장을 중심으로 강학공간을 앞쪽에, 대성전을 비롯한 제향공간을 뒷편에 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일반적이 향교와 공간배치는 비슷하지만 누각형태의 명륜당을 두고 내삼문 양쪽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 독특한 건물구조와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단성향교 공간배치>

산청 단성향교 04-20220222<홍살문>

외삼문은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양쪽에 행랑채를 두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05-20220222<외삼문>

산청 단성향교 17-20220222<외삼문과 행랑채>

강학공간은 누각형태의 명륜당이 앞쪽에, 마당과 동,서재가 뒷편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건물인 명륜당(明倫堂, 보물)은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누각형태로 지어진 건물로 공(工)형태의 지붕을 하고 있다. 독특한 지붕형태와 가구형식은 다른 향교나 서원 강당건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산청 단성향교 02-20220222<강학공간>

산청 단성향교 18-20220222<명륜당(보물)>

산청 단성향교 16-20220222<명륜당 내부>

산청 단성향교 10-20220222<내삼문 앞에서 본 명륜당과 강학공간>

산청 단성향교 08-20220222<동재>

산청 단성향교 07-20220222<서재>

제향공간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서무처럼 보이는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 앞 건물은 전사청과 제기고 역할을 하고 있다. 내삼문은 앞면 7칸 규모의 특이한 건물인데 가운데 3칸은 삼문을 달고 양쪽 끝에 1칸씩 일상적으로 출입하는 문을 두고 있다.

산청 단성향교 09-20220222<내삼문>

산청 단성향교 12-20220222<대성전>

산청 단성향교 11-20220222<대성전 마당 동쪽 건물>

산청 단성향교 13-20220222<대성전 마당 서쪽 건물>

산청 단성향교 15-20220222<내삼문>

단성현(丹城縣)은 조선시대 산청군 단성면과 주변지역을 관장하던 지방행정 조직이다. 조선초 세종 때 단계현과 강성현을 합쳐서 단성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개편 때 산청군에 병합되면서 단성, 도산, 생비량, 신등, 북동의 5개 면이 되었다. 단성향교에서는 옛 단성현에서 만든 <단선현 호적장부>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 문서는 조선후기 숙종 때부터 고종 때가 단성현 주민들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산청 단성향교 06-20220222<단성현 호적장부를 보관하던 건물>

단성현호적장부<단성현 호적장부>

산청 단성현 호적장부
호적은 국가에서 인력을 모집하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만든 공문서이다. 조선시대에는 3년에 한번씩 각 군현에서 호적을 만들었는데 주소, 거주 인구, 신분, 연령, 소유 노비 등을 기록한 뒤 여러 권을 만들어 지방관청인 현청과 감영, 중앙관청인 호조에서 보관하였다. 산청 단성현 호적 장부에는 조선 숙종 4년(1678)부터 고종 25년(1888)까지 단성현(현재 산청군 남부) 주민들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단성향교에서 1678년부터 1789년까지 기록한 13책을 보관하다 현재 국립경상대학교 고문헌 도서관에서 보관중이며, 나머지 19세기의 호적 장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갔다. 산청 단성현 호적장부는 17~18세기 당시 단성현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인구, 신분, 재산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당시 단성현의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 (보물) 02-20220222<단성향교>

산청 단성향교 03-20220222<단성향교가 있는 마을>

단성향교, 경남 산청군 단성면 강루리
이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 지금의 강루리 구인동에 창건한 후 조선 세종 때 다른데로 옮겼다가 영조 28년(1752)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고 전한다. 경사지에 배치됨에 따라 외삼문 안에는 학당부인 명륜당을 두고, 내삼문 안에는 문묘부인 대성전을 배치하여 전학후묘의 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대성전 좌.우에는 동.서물, 명륜당 좌.우에는 동.서재를 두었다.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의 수법을 보이고 있으나 명륜당 전면을 누 형식으로 꾸며 중앙칸 밑으로 들어가게 만던 동선처리와 지붕 구조 및 내삼문 좌.우에 편문을 둔 것은 특이한 수법이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단성현(丹城縣)은 조선시대 산청군 단성면과 주변지역을 관장하던 지방행정 조직이다. 조선초 세종 때 단계현과 강성현을 합쳐서 단성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개편 때 산청군에 병합되면서 단성, 도산, 생비량, 신등, 북동의 5개 면이 되었다. 단성향교에서 소장하고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