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봉산로에 있는 대풍헌(待風軒)이다. 조선시대 울릉도를 감독하기 방문하던 수토사들이 머물렀던 건물이다. 대풍헌이 언제부터 있었는제 알 수 없지만 조선후기 철종 때(1851년)에 건물을 중수하고 ‘대풍헌’이란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구산포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가 순풍을 기다리는 곳으로 건물보다는 수토사들이 울릉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감독, 관리하였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건물은 앞면 4칸의 일자형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근대에 들어서 여러차례 수리를 하면서 원래모습을 잃었는데 최근에 옛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하고 있으며, 동쪽편 1칸 온돌방이 있다.
대풍헌에는 1910년 이전에 만들어진 12점의 현판들이 문화재로 선정되었다. 건물 앞에 걸려 있는 <기성구산동사>, <대풍헌> 현판과 대청마루에 있는 <구산동사중수기> 등 10점의 현판이 있다.
수토사는 삼척 진장이나 월송 만호가 그 역할을 맡았는데 수토사 일행의 접대를 위해 소요된 경비를 경감할 수 있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평상시에는 객사처럼 이 지역을 방문한 관리나 유력인사들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풍헌 소장 문서들은 수토사들을 접대하기 위해 소요되었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관아에서 결정했던 내용을 적은 문서로 <완문(完文)>과 <수토절목(搜討節目)>이 있다. 조선시대 국가에서 울릉도를 관리, 감독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울진 대풍헌(待風軒), 경붕 울진군 기성면 구산봉산로
대풍헌은 동해안 해변의 작은 포구 구산리 마을 중심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원래 동사(洞舍)였으나, 18세기 말부터 구산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가 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좌측면 4칸, 우측면 3칸의 일자형 팔작집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51년(철종2) 중수하고 ‘대풍헌’이란 현판을 달았다. 이후 몇차례 보수과정을 거쳐 여러 부분이 변형되어 2010년 해체.,복원하였다. 또한 대풍헌 소장 문서는, 삼척 진장과 월송 만호가 2~3년에 한 번씩 울릉도를 수토할 때 평해 구산항에서 출발한다는 것과 수토사 일행의 접대를 위해 소요되는 각종 경비를 전담했던 구산동민들의 요청에 따라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책에 대해 평해군에서 결정해준 내용의 <완문(完文)>과 <수토절목(搜討節目)>이다. 그동안 문헌사료에 19세기 들어서면서 울릉도에 수토사를 파견했다는 기록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정기적으로 순찰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풍헌은 조선시대 울릉도를 순찰하던 수토사들이 머문 장소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안내문, 울진군청, 2022년)
<출처>
- 안내문, 울진군청, 2022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 한국믽고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