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December 2, 2022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신화, 신의 봉헌물, 점성술

에트루리아 신화(Etruscan mythology)는 고대 에트루리아인의 신화와 전설을 가리틴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8세기경부터 2세기까지 토스카나주를 비롯한 이탈리아 중부지역에 있었던 민족으로 도시연맹체였다. 초기에는 로마왕정에 형성과 운영에 영향을 미쳤으나 이후 로마공화정이 성립되면서 일련의 전쟁을 거치면서 로마에 정복당하면서 로마문화에 흡수되었다. 에트루리아 종교의 요소인 동물의 창자를 이용한 창자점은 로마공화정에서도 받아 들여졌다. 에트루리아 유물에는 3기지 층의 신들이 나타나 있는데 첫번째는 에트루리아에서 기원한 토착의 하위신이며 둘째는 이들을 다스리는 상위신들로 인도-유럽 종교의 체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세번째는 동방에서 받아들여진 그리스 신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디오니소스 행렬이 묘사된 적화 킬릭스(Klix with Dionysian Cortege), 기원전 4세기말, 적화식도기,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킬릭스는 굽이 있는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잔입니다. 컵의 안쪽에는 행렬에 참가하는 세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없으나 사티로스와 마이니데스가 묘사된 것으로 보아 디오니소스의 행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에트루리아 적화식 도기 제작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였던 피토리 디몬테브라도니의 작품으로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천상과 신의 봉헌물
에트루리아인들은 기존의 토착적인 신앙 위에 그리스의 다신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신 사상은 당시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집트, 페니키아 등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티니아(그리스의 제우스, 로마의 유피테르)는 우니(그리스의 헤라, 로마의 유노), 멘르바(그리스의 아테나, 로마의 미네르바)와 함께 3신을 이루었으며, 이들을 모신 신전이 에트루리아의 모든 도시에 세워졌습니다. 신전에서는 의례와 기도를 하고, 봉헌물을 바쳤습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신의 통제 하에 있고 모든 일은 신에 의해 미리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영향력 있는 사제들의 점성술과 예언을 통해서만 신의 뜻을 해석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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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 12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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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름스와 여신이 묘사된 거울, 기원전 4세기 후반, 청동 상아,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전령의 신 투름스(헤르메스/머큐리)가 틴다레오스-레다 부부에게 네메시스의 알을 건네는 신화를 담은 청동거울입니다. 중앙에는 투름스를, 양쪽에는 부부를 배치했습니다. 왼쪽에 있는 남편 틴다레오스는 오른쪽에 있는 부인 레다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성으로 표현했습니다. 에트루리아문화가 그리스에서 유래됐지만 그들만의 특색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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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투란이 묘사된 거울, 기원전 4세기 말, 청동 상아,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세 명의 여성이 묘사된 거울입니다. 중앙의 여성은 에트루리아의 신 투란(아프로디테/비너스)으로, 나체 상태로 등에 망토만 걸친 채,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있습니다. 양 옆의 두 여성은 긴 키톤을 입고 각자 한 손에는 향수병인 알라바스트론을 들고 앉아 있습니다. 왼쪽 여성은 천상을 상징하는 날개를 달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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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디오스쿠리가 묘사된 거울, 기원전 3세기 말 ~ 2세기 전반, 청동,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에트루리아에서 거울은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물건이었습니다. 거울은 상을 비추는 볼록한 앞면과 오목한 청동 원판의 뒷면, 기다란 손잡이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거울의 뒷면에는 에크루리아의 신화 외에도, 종종 그리스의 신화 내용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 거울에는 제우스와 레다의 쌍둥이 아들인 키스트로와 폴룩스를 의미하는 디오스쿠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니아 토착신을 다스리는 상위신들로는 인도-유럽 종계체계를 반영한 하늘에 신인 티니아, 티니아 부인인 유니, 대지의 신인 (Cel)이 있었는데 점차 그리스-로마 신화체계에 흡수되면서 티니아, 유니, 메르바가 삼위일체의 주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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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티니아(Tinia), 기원전 4세기초, 청동>

에트루리아 신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티니아를 표현한 봉헌상입니다. 티니아는 그리스의 제우스와 로마의 유피테르에 해당하는 신으로 에트루리아 최고의 신이었습니다. 티니아의 상징은 번개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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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란(Laran), 기원전 6세기말, 청동>

에트루리아 신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라란을 표현한 봉헌상입니다. 그리스 전쟁의 신인 아레스에 해당되는 라란은 마치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듯 현재는 소실된 창을 휘두르는 무장한 청년으로 표현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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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멘르바(Menrva), 기원전 5세기, 청동, 마르케 페르모>

그리스의 아테나, 로마의 미네르바에 해당되는 에트루리아의 신 멘르바의 청동상입니다. 멘르바는 전략, 전쟁, 예술, 상업의 여신이자 지혜의 여신입니다. 아테나와 마찬가지로 멘르바도 그녀의 아버지, 티니아의 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티니아, 우니와 함께 에트루리아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숭배했던 신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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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헤르클(Hercle), 기원전 5세기, 청동, 토스카나 피렌체 피에솔레>

그리스에서는 헤라클레스, 로마에서는 헤르쿨레스로 불리는 헤르클은 인간이지만 티니아의 아들로 초인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영웅으로 추앙바던 헤르클은 자신의 위업 덕분에 불멸의 생을 얻게 되어 에트루리아에서, 특히 티레니아 해안지역에서 신으로 널리 숭배되었습니다. 이 청동상은 자신이 죽인 사자 가죽을 걸치고 새끼 사슴을 쥐고 있는 헤르클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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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헤르클 두상, 기원전 2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탈라모네>

탈라모네 신전에서 발견된 두상으로 사자 가죽으로 덮여 있는 헤르클의 머리로 추정됩니다. 실제 사람의 머리 크기의 절반인 점을 감안하며, 숭배상이 아닌 봉헌상의 일부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의 신, 날개를 달다
에트루리아의 신들은 그리스의 신들과 거의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이름은 에트루리아 고유어로 불렀습니다. 티니다(Tinia, 또는 Tin, 그리스의 제우스), 투란(Turan,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세틀란스(Sethlans, 그리스의 헤파이토스), 푸플룬스(Fufluns,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투름스(Trums, 그리스의 헤르메스) 등이 대표적입니다. 때로는 아풀루(Apulu, 그리스의 아폴론), 아르투메스(Artumes,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헤르클(Hercle, 그리스의 헤라클레스)과 같이 그리스식 이름에서 약간 변형된 것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에트루리아인에게 헤르클은 영웅이 아니라 신으로 여겨졌으며, 많은 신전에서 경배되었습니다. 그리스 신과 다른 토착신으로는 쿨산스(Culsans, 로마의 야누스)가 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여러 신들은 청동조각상과 청동 거울 등 여러 유물에 묘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신전에는 신앙심을 상징하는 다양한 봏헌물이 두고 나왔는데 자신이나 신을 표현한 청동조각상, 신체의 일부, 동물을 표현한 조각상 등이 있다. 신체의 일부를 표현한 조각상은 질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의도로, 동물 조각상은 살아 있는 동물 대신에 봉헌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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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헌물(머리), 기원전 3세기, 테라코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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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봉헌물(다리), 기워전 3~2세기, 테라코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3. 봉헌물(자궁), 4. 봉헌 인체(성기),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신에게 봉헌물을 바치는 종교적 관습은 숭배 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3~2세기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는 특정 질병을 관장하는 신을 위해 신전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신전에는 신체의 일부분과 장기의 형태를 띠는 인체 봉납물을 봉헌했습니다. 성기는 다산과 자녀출산에 대한 기원을 의미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5. 봉헌물(소), 6. 봉헌물(돼지), 7. 봉헌물(말),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라치오 로마 베이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청동조각상이나 테라코타 동물상을 신전에 바치는 일은 아르카익 시대(기원전 580~480년)부터 이어져 온 관습입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바치는 대신 작은 동물 조각상을 비치는 이러한 특성은 농업이 주를 이루는 내륙지역 신전의 문설주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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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성 봉헌자상, 기원전 7세기 후반, 청동,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머리와 어깨를 덮은 화려한 장식의 긴 망토를 입은 여성 봉헌자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봉헌자는 손을 앞으로 뻗고 있는데, 신에게 봉헌하는 의미로 왼쪽 손바닥은 위를 향하고, 오른손은 지금은 사라진 어떤 사물을 쥐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청동상은 봉헌의 의미로 신전에 헌납한 봉헌물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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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남성 봉헌자상, 기원전 7세기말 ~ 6세기초, 청동,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정면을 향해 있는 남성을 표현한 청동상입니다. 두 다리를 살짝 벌린 채 지면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서 있으며, 팔은 살짝 굽혀 앞으로 뻗고 있습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의 남성은 허리에만 두르는 짧은 의복인 로인클로스(Loincloth)만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칼은 현재 소실되었지만 자세나 머리모양, 의상을 통해 남성이 검투사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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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봉헌조각상, 기원전 4세기말 ~3세기 전반, 청동,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 리보노르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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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봉헌조각상, 기원전 4세기말 ~3세기 전반, 청동,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 리보노르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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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봉헌조각상, 기원전 4세기말 ~3세기 전반, 청동,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 리보노르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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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봉헌조각상, 기원전 4세기말 ~3세기 전반, 청동,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 리보노르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
인간과 신의 관계는 대체로 사제의 중재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인간이 신의 호의에 의지하는 일종의 약속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구체적인 의례와 기도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의례와 기도는 인간이 살아 있는 동물을 신에게 제물로 바칠 때 정점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봉헌물이야말로 신과 인간을 이어 주는 진정한 연결고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봉헌물(Vitive Offerings)
신전에 바쳐진 봉헌물은 숭배 문화의 중요한 증거입니다. 온갖 종류의 물건이 신에게 바쳐졌습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과의 연결고리를 증명하거나 소원, 감사, 혹은 신앙심을 상징하는 물건을 신전에 두고 나왔는데, 봉헌자 자신을 묘사한 청동 조각상, 신을 표현한 청동 조각상, 작은 동물 모양 조각상, 인간의 신체 일부를 표현한 봉헌물, 무기, 그릇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이러한 봉헌물들은 다양한 예술적 가치와 특성을 잘 보여주며, 봉헌 내력을 적은 문자와 함께 새겨진 경우가 많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괴수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에트루리아의 신화와 종교의 내용을 묘사한 유골함입니다. 흉포한 모습의 괴수가 우물에서 나오고 여러명의 전사가 괴수의 목에 사슬을 둘러 단단히 붙잡고 있습니다. 한 남자는 도끼로 괴수에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괴수의 머리 위로 신주를 붓고 있습니다. 이러한 괴수와의 전투 장면은 악한 정령을 물리치려는 정화 의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인들은 신들의 위지는 해석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 신들의 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았으며 대신 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알아내는데 집중하여 정교한 점술체계를 발전시켰다. 신의 의지를 찾아내는 점술은 창자점 점술가 또는 제사장이라 부르는 사제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주 피아센차에서 발견된 청동으로 된 양의 간 모형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각구역에 있는 굴곡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창자점 점술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로마시대에도 계승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피아첸차의 간>

피아첸차의 간(Liver of Piacenza)
산양의 간을 본떠 만든 청동판 윗면에 방위에 따라 선을 긋고 구획된 칸에 여러 신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것을 모범으로 삼아 점성술사는 산양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 산양에서 추출한 간의 구조와 불규칙한 징후를 통해 신의 메시지를 해석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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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사가 묘사된 기념비, 기원전 6세기 말, 사암, 토스카나 피사 산 토마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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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표현된 옆면>

피에솔레 지역에서 발견되어 일명 ‘피에트레 피에솔라네’(피에솔레의 돌)로 불리는 기념비입니다. 앞면에는 무덤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점성술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점성술사는 에트루리아 양식의 옷과 신발을 갖추었으며, 오른손에는 사제임을 상징하는 구부러진 모양의 점술용 막대기를 들고 있습니다. 점성술사는 신이 인간의 행위를 허락하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새가 나는 모습을 관찰하여 길흉을 점쳤다고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점성술사가 묘사된 유골함 뚜껑, 기원전 1세기 초,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동물의 내장을 이용해 예언하는 에트루리아 점성술사가 조각된 유골 단지 뚜껑입니다. 튜닉과 망토를 걸치고 머리에 왕관을 쓴 채로 기대어 누운 남성의 손에는 동물의 간이 들려 있습니다. 이 남성은 에트루리아의 사제로 동물을 재물로 바친 후 내장을 읽어 예언을 합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이렇듯 점성술로 인간의 일과 관련된 신의 의지를 읽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점성술(Diviantory Art)
에크루리아인들은 신의 뜻을 해석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신의 뜻을 잘 풀이하는 일이야말로 우주를 관장하는 여러 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인간이 신으로부터 보호받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신들이 자연 현상을 관장하며, 이를 통해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한다고 믿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신의 예언
동물의 창자를 이용한 일명 창자점은 에트루리아의 독특한 점술입니다. 창자점은 일련의 기술과 자연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제들만 행하는 심원한 의식이었습니다. 이들은 동물의 내장, 특히 간의 형태를 관찰하거나, 번개의 모양을 해석하고, 제비뽑기를 하거나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 불이 붙은 향에서 나는 연기를 해석했습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이러한 복잡한 의식을 통해 우주와 자연에 깃든 신의 의지를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에트루리아 문명과 신전 건축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9년 가을 <로마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그리스, 로마와 함께 고대 지중해 문명의 한축이었던 에크루리아(Etruria)는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100년경까지 고대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지방에 있었던 고대문명이다. 에트루리아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리아아인이었다고 하며, 이탈리아 본토사람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출품된 유물들을 통해 에트루리아인들의 생활모습과 세계관, 종교관, 사후관념 등을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로마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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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트(Vanth), 기원전 4세기말, 응회암, 라치오 투스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저승의 문지기이자, 사후 세계로 향하는 여정에서 죽은 이들을 호위하던 반트의 신상입니다. 짧은 키톤을 허리에 묶어 엉덩이를 가리고, 다리와 배를 드러냈습니다. 정면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스듬히 기울어진 자세로 보아, 아마도 무덤 입구 양옆에 다른 비슷한 조각품과 대칭으로 서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지중해의 가려진 보물, 에트루리아(Historical and Geographical Context, Etruria)
기원전 10세기, 이탈리아의 중북부, 해안을 끼고 있는 광할한 땅에 새로운 문명이 탄생합니다. 로마에 흡수되기까지 약 1천년 간 지중해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문명, 바로 ‘에트루리아 문명’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의 여러 도시들과 교류하였으며, 화려하고 독자적인 문화와 종교, 언어 등을 발달시켰습니다. 에트루리아는 한 때 이탈리아 북부와 코르시카섬까지도 지배했지만, 오늘날까지도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인 신비의 문명이기도 합니다. 에트루리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소아시아의 리디아왕국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는 견해와 이탈리아 원주민이 세웠다는 견해가 있지만 아직도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기록에서 이들을 종종 ‘해적’으로 표기한 것을 보면, 아마도 활발한 해상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 인들은 에트루리아인을 가리켜 티르세노이(Tyrsenoi) 혹은 티레노이(Tyrrhenoi)라 불렀으며, 로마인들은 투크키(Tusci) 혹은 에트루스키(Etrusci)라고 불렀습니다. 이말은 오늘날 이탈리아 중부의 대포적인 지방인 ‘토스카나’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는 고대 그리스처럼 12개의 도시들이 연맹을 결성했으며 처음에는 왕들이 통치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어떤 왕조는 과두지배체제로 바뀌었다. 엘바섬의 철과 에트루리아의 구리를 바탕으로 금속세공업과 무역이 발달했으며 숙련된 세공기술이 있었다. 이들은 그리스, 이집트, 카르타고 등과 무역활동을 했으며 이탈리아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지와 경쟁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농촌지역이었던 로마가 강성해지면서 세력이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에트루리아 주요 도시>

12개 도시 연합체, 에트루리아(City States and City Associations)
기원전 8세기 후반, 에트루리아인들은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인들과 교류하며 번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동방화 시기에는 부유하고 세련된 귀족이 성장했지만, 그 후 아르카익 시기부터는 일정한 형태를 갖춘 정치 집합체를 구성하여 도시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주요 도시들이 번성하기 시작하자, 도시 간에 다양한 연합이 형성되었고 점차 더 큰 연맹체가 등장했습니다. 볼시니(Vosini) 근방의 에트루리아 도데카폴리스(Etruscan Dodecapolis)는 가장 유명한 연맹 중 하나였는데, 이는 ’12개 마을 연합’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곳은 에트루리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성지였던 볼툼나 성소(Fomum Voltumnae)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지중해를 둘러싼 문화의 교류(Cultural Exchange in the Mediterranean)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대륙에 둘러싸인 바다, 지중해는 서구 문명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바닷길을 이용해서 여러 지역의 다양한 정보와 상품이 오고 갔으며,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금과 보석을 수출하였고, 그리스는 올리브를 수출하였습니다. 에트루리아는 올리브와 포도주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치품을 만들어 교역했는데, 특히 엘바 섬의 풍부한 철자원은 에트루리아 번영의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항해술과 금속 다루는 기술을 바탕으로 지중해의 여러 지역과 활발한 문화 교류를 이어 갔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오디세우스아 사이렌이 묘사된 유골함(Cinerary Urn Sarcophagus: Odysseus and the Sirens), 기원전 2세기 후반,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볼테라 네크로 볼리스의 거대한 돌방무덤에서 발견된 유골단지입니다. 호메로스가 쓴 그리스 서사 <오디세이>의 일화 중 사이렌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을 현혹하여 정신을 혼미하게 한 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이렌과, 이에 맞서 현혹되지 않으려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표현한 것입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선원에게 귀를 막고 노를 젓게 한 뒤, 자신은 돛대에 묶어 난관을 헤쳐 나가려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코린트식 컵(Corinthian Kotyle), 기원전 6세기 전반, 테라코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코린트식 도기는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의 최대 무역품이었습니다. 코린트식 도기는 신화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연꽃이나 종려나뭇잎 등 화려한 무늬를 장식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원전 7세기 후반 코린트식 도기가 에트루리아로 유입되었고, 에트루리아 현지에서는 코린트 양식의 장식무늬와 형태를 재현한 이른바 ‘에트루리아-코린트식 도기’가 탄생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암포라(Amphora)는 고대 유럽에서 쓰이는 특이한 형태의 용기이다. 액체와 고체를 막론하고 다양한 물품을 저장하고 운송하던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포도를 담는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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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테나식 흑화 암포라(Attic Amphora with Black Figures), 기원전 530~520, 테라코타,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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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모습>

에트루리아에서는 기원전 6세기 전반부터 그리스 아테네에서 생산된 도기를 수입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흑하식 도기가 유행했지만,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적화식 도기가 유행합니다. 아테네에서 생산된 도기 (아티카 도기)에는 주로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의 아내인 아리아드네가 포도가 가득한 곳에서 황소를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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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테네식 적화 스탐노스(Attic Stamnos with Red Figures), 기원전 5세기 전반,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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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모습>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장면을 담은 스탐노스입니다. 한쪽면에는 디오니소스와 그를 따르는 여신 마이나데스가 양 옆에 서 있습니다. 다른 면에는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두 명의 사티로스 사이에 헤라클레스를 묘사해 놓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에서는 고대 그리스처럼 많은 신전들이 세워졌지만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로마시대 기록이나 건물터, 신전모형 등을 통해서 신전은 사각형태로 지어졌는데 오늘날 지붕이 있는 목조건축물과 비슷한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동양건축물과는 달리 ‘人’자 형태를 하고 있는 방향을 정면으로 사용했으며 다양한 구성요소들로 장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에트루리아 신전>

OLYMPUS DIGITAL CAMERA<에트루리아 신전의 구성요소>

  • 출입계단(Entrance stair): 주로 신전 건축물의 앞면에만 위치하는 계단
  • 포디움(Podium): 사각형의 높은 석조 기단
  • 프로나오스(Pronaos): 열주가 세워진 신전 입구
  • 토스카나 기둥(Tuscan colums): 에트루리아 건축의 전형인 토스카나 기둥은 그리스 도리아 양식의 단순화된 형식
  • 셀라(Cellae): 신상을 안치하는 내부 공간
  • 페디먼트(Pediment): 신전 앞면 위의 삼각형 부분
  • 중심 아크테리온(Main acroterion): 페디먼트의 가장 윗부분에 있는 장식물
  • 아크테리온 조각상(Acroterial statues): 지붕 장식물
  • 장식 기와(Antefixes): 지붕의 기와를 꾸미는 세로형의 건축요소

에트루리아 신전 건축의 흔적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건물의 기단을 제외하고는 풍화되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그의 저서에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사각형의 행태로 지어졌다. 너비는 길이보다 약간 짧고, 앞부분이 반은 돌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뒷부분의 반은 세 명의 신을 위한 세 개의 방으로 나뉜다.”고 적었습니다. 사제들은 정면 계단을 통해 사원을 드나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신전 모양 유골함(Cinerary Urn in the Shape of a Temple), 기원전 3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피사 라파르벨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사각형 몸체에 경사진 지붕을 갖춘 작은 신전 모양의 유골함입니다. 매끈한 벽과 이오니아식 기둥 머리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페디먼트는 개방된 형태로, 수평틀 위에 장식 기와가 일렬로 줄지어 있습니다. 페디먼트의 중앙 윗 부분을 장식한 장식판을 보면 불치의 작은 시전의 구조와 매우 유사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신과 인간의 안식처, 신전(The Temple)
신전은 하늘에 있는 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해 땅 위에 지은 성스러운 건물이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정면성이 중시되었습니다. 계단은 대부분 정면에 설치되었습니다. 돌기둥은 네 개의 기둥만으로 구성되며, 기둥 사이의 간경이 넓습니다. 지붕은 나무로 씌운 후 테라코타로 덮었습니다. 지붕의 마루나 페디먼트에는 큰 장식물이 세워졌습니다. 신전 안에는 다양한 신상을 모셨으며, 이러한 에트루리아 신전 구조는 로마의 신전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고문헌, 신전 터, 장식 기와, 신전 모양의 유골함 등으로 에트루리아 신전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OLYMPUS DIGITAL CAMERA<1. 여성 인물이 묘사된 장식 기와, 2. 여성 인물이 묘사된 장식 기와>

OLYMPUS DIGITAL CAMERA<3. 두 인물이 묘사된 장식 기와, 4. 남성 인물이 묘사된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장식 기와는 신전 지붕보의 가장자리를 보호하거나, 기와의 끝부분을 마감하는 테라코타 장식입니다. 무늬가 새겨진 이 장식 기와는 긴 키톤과 망토를 입은 세 명이 여성과 두쌍의 인물을 표현했습니다.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한 점의 장식 기와에는 왼편에 가슴을 드러낸 남성이 팔로 여성을 잡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른 한 점은 남자 한 명만 남아 있는데, 현재는 다리만 모이는 어떤 인물과 싸우고 있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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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멘르바가 묘사된 장식기와, 기원전 2세기 전반, 테라코타, 라치오 볼세나,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기다란 키톤을 입고 투구와 방패로 무장한 멘르바는 몸통은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나 머리는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옆에는 망토를 두른 또 다른 인물이 있는데, 소조상 아래의 명문을 살펴보면, 이 인물이 치렌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치렌스는 시간과 운명을 관장하는 에트루리아의 여신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가 묘시된 장식판,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라치오 볼치,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신전의 기둥 윗부분을 장식했던 판입니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와 그의 아내 아리아드네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신하에 따르면, 크레타 왕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는 연인 테세우스가 미로의 괴물을 죽이고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나, 그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디오니소스는 그녀를 도와주며, 아내로 맞이합니다. 아리아드네는 나중에 여신으로 추앙받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2~7,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라치오 볼치, 필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신전은 우리나라 사찰 불천처럼 나무로 만든 보에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이다. 나무로 만든 부분에는 채색된 테라코타로 장식하였다. 불전에서 목재에 화려한 단청무늬로 장식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식물문양과 사람의 모습 등이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7,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라치오 볼치, 필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화관을 두르고 그 위로 얼기설기 연결된 종려 나뭇잎이 마치 후광이 비치듯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여서의 머리는 기원전 5~3세기 에트루리아에서 널리 유행하던 양식입니다. 디오니소스와 그의 아내 아리아드네가 묘사된 페디먼트 장식판에 연결됐던 것으로 보아, 이 여성은 이오니소스를 따르는 마인데스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8~15.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16~20. 장식기와 기원전 3~2세기, 테라코타, 라치오 볼치,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볼치 신전의 페디먼트(Pediment of Volci)
볼치 신전의 페디먼트를 장식했던 테라코타입니다.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나무로 제작된 보에 기와 지붕을 얹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부분은 채색된 테라코타로 마감하여 내구성을 갖추었습니다. 디오니소스와 그의 아내 아리아드네가 표현된 것으로 보아 디오니소스를 위한 신전의 장식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로마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

전시를 열며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대 지중해 문명의 한 축이었던 에트루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를 개최합니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100년경까지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 지역에 있던 고대 국가입니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지중해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역사가들은 에트루리아인들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른 태곳적 사람들”이라 여겼습니다. 베일에 싸인 그들의 기원과 언어, 종교는 에트루리아인들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감탄과 매력을 자아냅니다. 로마 문화의 근간을 이루지만 아직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에트루리아. 이번 전시는 에트루리아의 문하를 살피며, 우리의 문화적 시야를 넓히고자 마련 되었습니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약 300여점의 전시품에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세계관, 종교관, 사후 관념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천여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펼쳐진 에트루리아의 다양한 유물들은 죽어서도 현재의 삶이 이어지기를 바랐던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전합니다. 세련되고 신비로운 고대 유럽 문명의 하나로, 로마의 근간을 이룬 에트루리아. 이제 그 문명의 숨결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