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March 2023

충청도 해미현 관아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사적)에 잏는 해미현(海美縣) 관아이다. 해미현은 1407년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합쳐서 설치하였다. 이 지역은 충남 서해안 연안 해로를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중요한 요충지이다.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던 조선초에는 충청병영과 충청수영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이후 충청병영은 청주로, 충청수영은 보령으로 이전하였다. 해미현 수령은 총6품 현감으로 무관을 임명하여 영장토포사(營將討捕使)를 겸하게 하여 주변 고을의 군사적인 업무를 총괄하였다.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11<서산 해미현 관아, 2023년>

해미현 관아 건물로는 읍성내에 동헌, 내아, 객사 등이 있다. 원래 있던 건물들은 아니고 해미읍성을 유적지로 정비할 때 고증을 통해 복원하였다. 충청병영이 있었다고 하나 건물들은 종6품 현감이 수령인 고을의 위상에 걸맞게 아담한 규모이다.

서산 해미읍성(사적)<해미읍성과 해미현 관아>

SANYO DIGITAL CAMERA<해미현 관아,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서문 근처에 본 모습>

조선시대 객사는 관아의 중심건물이다. 특히, 병영이나 수영의 객사는 군사작전 등을 위해 건물규모가 상당히 큰 편인데 비해 해미현 객사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정청과 좌.우익랑의 구분없이 앞면 7칸 규모의 단일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정청이고 좌, 우에 2칸씩 익랑을 두고 있다.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23<해미현 객사>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21<옆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남문 문루에서 보이는 객사>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22<객사에서 보이는 읍치>

해미읍성 객사
객사는 건물의 중앙 정청에 궐(闕)자가 새겨진 위패를 모시고 삭망(매월 초하루, 보름)에 관아의 대소 관원들이 국왕에 대한 예를 올렸으며, 양편 익식은 조정이나 상부에서 파견된 관원 및 귀빈들의 숙소로도 사용했던 곳이다. 해미읍성 객사는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1999년 7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동헌 출입문으로 2층 문루를 두고 있다.  문루에는 ‘충청좌영’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헌 문루>

동헌은 해미현감겸영장의 집무실로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군, 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를 겸한 지위였다. 동헌 건물은 앞면 5칸으로 약간 큰 편이다.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12<동헌 마당>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17<동헌>

동헌 뒷편에 있는 건물은 책방 또는 책사라 불렀다고 한다. 현감겸영장의 사적인 일을 돕거나 그들 자제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하던 곳이다.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15<동헌 뒷편 책방>

동헌 서쪽에는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던 부속건물이 있다. ‘ㄱ’자형 건물로 사무실 용도의 방과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16<동헌 부속 건물>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경영장(縣監兼營將)의 집무실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군, 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討捕使)를 겸한 지위였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동헌 옆에는 해미현감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인 내아가 있다. 앞면 5칸의 일자형 주택 건물로 부엌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다.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18<내아 마당>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20<내아>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19<내아 앞 부속 건물>

해미읍성 내아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로 동헌이 고을의 공무를 수행하는 곳인데 반해, 내아는 살림집이다. 해미읍성 내아는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2000년 11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해미현 관아 뒷편 동산에는 정자 건물이 청허정이 있다. 높지는 않지만 멀리 천수만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장대(將臺) 역할을 했던 공간이다.

SANYO DIGITAL CAMERA<관아 뒷편 동산>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24<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미읍성>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26<청허정>

서산 해미현 관아 20230127_25<정자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서해바다>

청허정
정자는 일반 가옥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특별히 지은 건물이다. 청허정은 조선 성종 22년(1491) 충청도병마절도사 조숙기가 세웠던 것을 다신 복원한 것으로 조선전기 대표학자 성현의 개인문집 <허백당짐>에 그 유래가 정한다. 정자의 이름인 ‘청허淸虛’는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당부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초기의 해미읍성은 충청도 육군사령부 역할을 하는 충청병영성으로 최고 책임자는 병마절도사였다. 조숙기가 병사로 부임하여 해미읍성을 수리하면서 숲이 우거진 뒷동산에 청허정을 지었다. 이후 이곳에 온 관리들은 청허정에서 무예를 익히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시를 짓고 글을 남겼다. 1494년 방문한 충감사 조위는 청허정 주변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바다의 풍경에 대한 시를 남겼고, 권오복의 문집 <수헌집>에 절도사와 수령이 일을 마치고 청허정에 모여 지은 시가 전한다. 1579년 충청병영에서 근무했던 이순신, 1790년 해미로 귀양 왔던 다산 정약용도 이 청허정에 머물렀을 것이다. 1872년 <해미현지도>에는 예터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00년대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자리에 일본식 신사가 세워졌다가 광복 후 철거되었고, 1976년 복원한 후 2011년 다시 정비하였다.(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해미읍성은 구한말 천주교 박해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 옥사에서 투옥되어 문초를 받았다고 하며 옥사 앞 회화나무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해미읍성 옥사>

SANYO DIGITAL CAMERA<해미읍성 옥사>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의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 이다. 교도들을 투옥하고 문초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 있던 옥사를 발굴 작업 뒤 복원, 재현하였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 순교자 약사>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하였으며 내옥과 외혹이 있고, 각각 정면 3칸의 건물로 남녀의 옥사가 구분되어 있다.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수령 300년 이상의 고목으로 이곳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매달아 고문했던 곳 이라 한다.

SANYO DIGITAL CAMERA
<해미읍성 회화나무>

 <출처>

  1. 안내문, 서산시청, 2009년,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실록위키,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신들(힌두교, 불교)

힌두교는 인도의 많은 종파와 신앙을 포함하는 용어이며, 3대 주신으로는 브라흐마, 비슈누마, 시비가 있다. 신도들의 숭배는 그 형체가 있는 비슈누와 시바에 집중되어 왔으며, 이들 신을 표현한 다양한 신상(神像)들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인도에서는 신들을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적이면서 감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신들이 표현된 신상들과 불교의 불상들을 비교하면 같은 맥락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파르바티는 힌두교에서 여성과 생산력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여신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나 불교의 보살상 등에서도 볼 수 있는 표현으로 서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몸에 걸친 장신구의 구슬 하나까지 세부가 아주 정교하게 주조되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01<파르바티(Parvati), 촐라시대 / 13세기>

파르바티는 힌두교에서 이상적인 여성상과 생산력을 상징하는 여신이며, 시바의 배우자이다. 이 상은 왼팔을 우아하게 내려뜨려 몸이 만들어 내는 삼곡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파르바티의 아름다움과 관응미, 생식력은 단지 육체적인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차원에서 신의 본질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정신적 개념이기도 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시바와 배우자인 파르티바, 아들인 스칸다를 표현하고 있는 신상(神像)으로 남인도 지역에서 유행한 형태이다. 시바는 대좌에 앉아 있는데, 4개의 손은 도끼와 사슴을 들거나 화신과 자비를 상징하는 수인을 취하고 있다. 파르바티는 오른손에 연꽃을 들고 있다. 날렵하고 유연한 신체, 섬세한 장신구와 복식이 돋보인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02<시바, 파르파티 그리고 스칸다(Shiva, Parvati and Skanda), 촐라시대 / 11세기>

남인도 지역에서 유행한 소마스칸다(Somaskanda) 도상은 시바와 배우자 파르바티, 아들 스칸다로 구성된다. 현재 스칸다 상은 사라졌으며 중앙에 작은 방석만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가모니의 생애 중 중요한 8장면을 그린 팔상도(八相圖)와 같은 용도의 비상(碑像)이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04
<부처의 생애를 새긴 비상, 필라시대 / 10세기>

석가모니의 생애에서 중요한 8가지 사건을 표현하고 있다. 중앙의 부처는 항마촉지인의 자세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주위로 왼족 하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탄생, 녹야원에서의 첫 설법,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열반, 성난 코끼리를 다스린 사건, 사위성에서 기적을 일으킨 장면, 원숭이가 꿀을 바치는 장면이 배치되었다. 광배에는 연기법송(緣起法頌)이, 기단에는 발원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05
<보관을 쓴 부처, 필라시대 / 10~11세기>

인도에서 보관을 쓴 부처는 6세기경에 등장하여 10세기 이후 보편적인 도상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엄숙하고 육중한 느낌을 주는 얼굴과 섬세하게 묘사된 장신구의 조화에서 필라시대 조각가의 뛰어난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힌두교의 신 비슈누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의 불화(佛畵)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06
<비슈누(Vishnu), 필라시대 / 11~12세기>

비슈누는 힌두교의 3대 주신 중 하나이자 비슈누파의 숭배 대상이다. 이 비상의 중심에는 비슈누가 서 있고, 양측에는 부인인 락슈미와 하천의 여신 사라스와티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비슈누는 높은 보관을 쓰고, 목걸이, 팔찌, 발찌, 귀걸이 등 각종 장신구를 걸치고 있으며, 네 개의 손에은 곤봉, 연꽃, 차크라(원반), 고동을 들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07
<문수보살, 필라시대 / 12세기>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이 비상(碑像)에서는 한쪽 다리를 내린 유희좌(遊戱坐)의 자세로 사자 위에 앉아 있고, 손으로는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문수보살 양측에는 협시보살이, 위쪽에는 5명의 작은 부처가 조각되어 있다. 기단의 중심에는 코끼리 머리가, 측면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신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08
<미륵보살, 태국 드라라바티 / 7세기>

7세경 태국 중부의 몬(Mon)족이 드바라바티 왕국을 세웠고, 이때를 드바라바티 시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태국에서 불교와 힌두교 조각이 처음 등장한 때로, 당시의 조각 양식은 독자적인 특징을 지닌다. 이 청동입상은 머리 장식 정면에 스투파가 있어 미륵보살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09
<연화수보살(蓮華水菩薩像), 인도네시아 /10세기>

연화수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는 신이다. 오른손은 펴서 아래로 내린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왼손은 연꽃을 들고 있다. 머리에 쓴 관의 정면에는 연화수보살이 보좌하는 아미타불을 표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03<타라(Tara), 인도네시아 / 10세기>

타라는 자비를 상징하며, 연화수보살의 다른 모습이다. 연화대좌 위에 오른발을 내려 유희좌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과 여원인의 손갖춤이 타라가 상징하는 자비로움을 전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팔라의 신상
팔라(Pala) 왕조는 기원후 8~12세기 동안 동인도에 위치한 비하르 주와 서벵갈 주, 방글라데시 일대를 지배했다. 팔라 시기는 같은 지역에서 11~13세기에 번성했던 세나(Sena)왕조와 함께 팔라-세나 시기라고도 한다. 팔라 시기에는 불교와 힌두교가 크게 융성했다. 팔라가 지배한 동인도 지역은 오래전부터 불교의 중심지였다. 석가모니가 생전에 주로 활동했던 마가다 왕국과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불교 교학의 중심지인 날란다 사원이 위치한 곳이다. 힌두교의 경우 팔라 시기 전반에 걸쳐 비슈누 숭바가 유행했다. 이 시기의 신상은 인도 조각사의 고전기로 꼽히는 굽타(Gupta) 시대의 조각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형식화되고 경직된 느낌이다. 그러나 기교가 뛰어나며, 복잡한 모티프와 과장된 장식은 독특한 생동감을 전해 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14
<1.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여신, 마디야 프라데시 또는 라자스탄/굽타 시대. 6~7세기>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부조의 중앙에는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인이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모습은 불교의 하리티(Hariti)와 자이나교의 암비카와 같은 여신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리타는 원래 아이들을 잡아 먹는 악귀였으나 부처에게 감화된 후 불교의 신이 되었다. 암비카는 자이나교의 약시이다. 두 여신 모두 아이들을 수호하는 모신(母神)의 역할을 담당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15
<2. 미투나, 사랑을 나누는 남녀, 라자스탄 또는 우타르프라데시/11~12세기>

한 쌍의 남녀가 에로틱한 자세로 표현된 ‘미투나’상은 인도 미술에서 인기 있는 모티프 중 하나로, 풍요와 길상의 의미를 지닌다. 원래 사원의 벽을 장식했던 이 족가에서 남성은 여성의 허리끈을 풀고 있고 여성은 남성의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 당기고 있다. 남녀 모두 도티를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걸치고 있으며, 두툼한 입술과 긴 눈매가 인상적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16
<3. 시바와 파르바티, 라자스탄/9~10세기>

굽타 시대 이후 북인도에서 유행한 시바 상(像) 형식 중 하나로, 시바 사원의 외벽에 마련된 독립된 성소에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황소 난디를 탄 시바와 파르바티를 중심으로, 기단 양측에는 이들의 아들인 가네샤와 카르티케야가 앉아 있고, 윗부분에는 브라흐마, 비슈누 그리고 브라흐마니를 비롯한 7명의 모신(母神)이 등장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촐라의 신상
촐라(Chola) 왕조는 인도의 타밀족이 세운 나라로, 북부의 팔라 왕조와 동시대인 9~13세기에 번영했다. 인도 남부의 타조르와 무두라이 등을 포함하여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까지 영향력을 미쳤고, 해상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척했다. 촐라 시기에는 힌두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드라비다 형식의 힌두교 신전이 조성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앞선 주조 기술이 반영된 예술적으로 훌륭한 청동상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만물의 생동을 조형적으로 구현한 춤추는 시바가 힌두교 신상의 대표적인 예다. 시바의 춤은 세계와 존재의 창조, 존속, 파괴를 의미하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크메르 미술
크메르(Khmer)는 9~13세기 동안 존속했던 왕조로, 전성기에는 캄보디아를 비롯하여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의 일부를 포함한 대제국을 건설했다. 창건자 자야바르만 2세(재위 802~834)부터 크메르의 왕은 스스로를 시바나 비슈누의 화신으로 간주하면서 신왕(神王)을 칭했다. 각 왕은 숭배하는 신을 위해 사원을 건립하고, 사후에 이를 자신을 위한 신전으로 사용하게 했다. 크메르의 수도였던 앙코르에는 궁전, 운하, 저수지, 힌두교와 불교 사원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건물은 앙코르와크이다. 이는 수리야바르만 2세(재위 1113~1150)가 비슈누신을 위해 건립한 힌두교 사원으로, 왕이 죽은 후에는 비슈누와 일체된 왕을 모시는 신전으로 사용되었다.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이곳의 많은 건물은 다양한 신상과 조각으로 장식되었는데, 온화함과 생명력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10
<1.가네샤(Ganesha), 크메르/10세기 후반>

시바와 파르바티의 아들인 가네샤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숭배의 대상이며, 인간의 몸에 코끼리 머리인 것이 특징이다. 신도들은 가네샤가 장애물을 없애주고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 이전 시기부터 가네샤를 숭배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11
<2. 비슈누, 크메르/12세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12
<3. 락슈미(Lakshmi), 크메르/12세기>

비슈누는 여러 화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 재난에 처한 세계를 구제하는 우주의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다. 흔히 하나의 얼굴에 네 개의 팔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비슈누의 배우자인 락슈미도 비슈노와 마찬가지로 정적인 자세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위엄있는 신의 모습을 전달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 20220215_13
<4. 우마(Uma), 크메르 / 13세기>

우마는 시바의 배우자로, 파르바티라고도 불린다. 힌두교의 여신 중 우마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순종적인 부인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이 상은 큰 눈, 낮고 넓은 코, 두툼한 입술 등이 자연스럽게 묘사되었고, 얼굴에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인도(India)는 인도아대륙에 속해 있는 인도공화국을 비롯하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네팔, 스리랑카 등 통칭한다. 인도양과 북족의 산맥으로 분리되어 다른 지역과는 다른 문화적, 역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구아대륙에는 10억이 인구가 살고 있으며, 면적 또한 상당히 넓은 곳으로 역사적 전통이나 종족,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하나의 세계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넓은 지역이다. 인도는 크게 남쪽의 기존 토착민인 드라비다계와 북쪽의 아리안계로 분류할 수 있지만,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크게 뒤섞여 있고, 오랜 세월동안 힌두교,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발생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20220215_21<11세기 팔라와 촐라 왕조 영역>

인간을 닮은 신들
인도 미술에서 인간의 형상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 미술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많은 신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들은 종종 감각적이고 에로틱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현재의 기준으로 상당히 ‘세속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표현이 종교적 맥락에 등장하는 현상은 인도의 미술뿐만 아니라 신화, 문학, 음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 신체의 감각적인 아름다움은 신성(神性)의 고귀함과 초월성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여겨졌고, 신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은 신성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다. 성스러운 커플이 즐겁게 사랑을 나누는 신상을 보면서 신도들은 자신들도 그러한 축복을 받기를 희망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슬람세력인 무굴제국이 들어서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회화 양식이 생겨났다. 경전의 삽화를 그리던 전통에 페르시아 회화양식이 더해지면서 세밀화 전통이 세워졌다. 16세기 이후 유럽이나 이슬람국가와의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문화적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20220215_56<피츠바이(크리슈나 숭배를 위한 벽걸이 그림), 인도 라자스탄/19세기>

피츠바이는 ‘뒤에 거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힌두교 크리슈나 신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인 스리나트지(Shrinathji)의 춤을 묘사한 커다란 벽걸이 그림이다. 스리나트지는 어린 아이으이 모습으로 나타난 크리슈나 신이며 목동들에게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 그림은 9~10월 보름날에 추수를 기념하여 열리는 축제인 사라트 푸르니마에서 스리나트지를 그린 피츠바이이다. 화면 중앙에는 파란 피부에 왼손을 치켜들고 화려하게 치장한 스리나트지가 있고, 양옆으로 각각 3명의 양치기 여인(고피Gopis)들이 그를 향해 춤을 추고 있다. 가장 아랫부분을 제외한 그림의 삼면 테두리에는 총 27개의 네모난 칸이 구획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특정 계절과 축제에서 행해지는 스리나트지 숭배의 여러 장면이 담겨 있다. 피츠바이의 특징인 금색과 원색의 사용, 양식화된 형태가 잘 드러나는 그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20220215_51
<1. 크리슈나와 라다(Krishna and Radha), 인도, 라자스탄 비카네르/1680년경>

크리슈나는 힌두교 비슈누 신의 8번째 화신이다. 특히 라지푸트(Rajput) 지역 문학 전통에서는 크리슈나 숭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시인인 케샤브 다사가 1591년에 쓴 <라시카프리야>는 이러한 전통을 잘 전하는 문학 이론서이다. 이 책은 이상적인 연인의 유형과 그들의 행동, 감정에 해한 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 크리슈나와 그의 연인인 라다가 종종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네 쌍의 연인은 모두 푸른색 피부를 지닌 크리슈나와 라다로, 이들이 보여주는 여러가지 동장은 <라시카프리야>에 묘사된 다양한 감정과 행동 양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20220215_52
<2. 크리슈나의 발을 씻기는 여인, 인도 펀자브 지방/1780년 경>

크리슈나와 세 명의 여인을 그린 그림으로, 특유의 노락색 도티(dhoti)를 입은 크리슈나가 한가운데 앉아 있다. 그 뒤에 선 한 여인은 부채와 수건을 들었고 다른 여인은 물을 붓고 있으며, 또 다른 여인은 금색 용기 위에서 그의 발을 씻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 아래 위치한 펀자브 지역은 18세기에 무굴 세밀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이 지역의 전통적인 서정성과 무굴 회화의 섬세함이 잘 결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20220215_53
<3, 마하바라타(Folio froma Mahbharata Series), 인도 라자스탄/18세기 말>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20220215_54
<3,4, 마하바라타(Folio froma Mahbharata Series), 인도 라자스탄/18세기 말>

<마라바라타>는 ‘위대한 바라타’라는 뜻으로, 바라타족이자 친척지간인 판다바(Pandava) 형제들과 카우라바(Kaurava) 형제들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과 전쟁을 다룬 이야기이다., <라마야나>와 함께 인도의 2대 서사시로 꼽히며, 힌두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사원을 장식하는 부조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이 두 그림은 <마하바라타>의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하나는 판다바 형제들과 카우라바 형제들의 전쟁 중 10일째 전투에서 이들의 큰 할아버지인 비슈마(Bishma)가 아르주나(Arjuna)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는 장면이다. 중앙에 비슈마가 화살에 맞아 누워 있으며 왼쪽에는 푸른 피부를 가진 크리슈나의 인도를 받는 판다바의 아르주나가, 오른쪽에는 카우라바의 유료다나(Duryodhana)가 서로에게 활을 겨누고 있다. 다른 하는 판다바군과 카우라바군이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는 장면이다. 왼쪽에는 푸른 파부의 크리슈나와 아르주나가, 오른쪽에는 카르나가 서로를 향해 대치하고 있고, 그 아래로 말과 코끼리를 탄 각 진영이 치열하게싸우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불교와 힌두교20220215_55<인도 타지마할>

인도-이슬람 미술
12세기 이후 인도에서 이슬람교도가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고 이들을 통해 종이가 소개되면서, 석굴벽이나 야자수 잎에 그려지던 기존 회화와는 다른 형식의 회화가 생겨났다. 특히 경전을 필사하고 삽화를 그리던 인도 재래의 전통에 페르시아 회화 양식이 더해지며 14세기부터 세밀화라는 새롭고 독특한 회화 전통이 꽃피게 되었다. 무굴 제국(1526~1857)의 아크바르, 자한기르, 샤 자한 치세에 사실적인 묘사와 우의적인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세밀화가 발전했다. 역사서와 문학의 주요 장면, 궁정 생활, 전투 모습, 군주나 왕실 인물의 초상, 동식물 등 세속적인 주제가 즐겨 그려졌다. 무굴 제국과 공존했던 데칸, 라자스탄, 파하리 지역 왕국에서 제작된 세밀화도 인도의 세밀화 전통에서 주요 화파를 이루었다. 17세기 말 이후 무굴 제국의 제밀화가 전국으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서도 주제와 마감에서 이들 지역만의 특성이 유지되었다. 무굴 양식은 이 지역 건축에도 반영되어 하얀 대리석이 붉은 사암을 대체하는 변화를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3.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 미술

간다라(Gandhara)는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에 있는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문화가 이 지역을 통해 유입.전파되었다. 간다라 지역에서 불교 신앙의 중심이 부처의 사리를 모신 스투파(탑)에서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동아시아 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대승불교도 이 지역을 통해 전파되었다.  전시된 간다라지역불상과 조각상들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에 큰 영향을 준 간다라미술의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스투코 보살상은 인도 전통의 터번을 쓰고 있는 귀족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왕자일때의 모습이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01
<1. 보살, 간다라/3~4세기/스투코>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02
<2. 부처의 머리, 간다라/3~4세기/스투코>

스투코는 석회, 모래, 물을 섞은 조각 재료이다. 먼저 돌과 점토로 심을 만들고 그 위에 스투코를 씌우거나, 스투코만으로 형태를 만든다. 그 다음 표면에 얇게 회칠을 한 뒤, 그 위에 채색해 완성한다. 현존하는 간다라의 스투코 상은 4~5세기에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탁실라 지역에서는 3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예가 발견되기도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03
<3. 부처, 간다라/2~3세기>

이야기 부조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일반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를 표현하고 이다. 불교 사찰 전각에 모셔진 팔상도와 같은 성격이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04
<4. 출성, 간다라/2~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11
<5. 사냥꾼과 옷을 바꿈, 간다라/2~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12
<6. 부처와 선인, 간다라/2~3세기>

간다라 지역에서 발견된 부조는 원래 불교 사원의 성소(聖所)와 스투파의 표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현존하는 유물에서는 대략 10가지의 본생(本生)과 70가지의 불전(佛傳)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부조들은 부처의 가르침과 보살행의 중요성을 신도들에게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05
<1. 부처의 머리, 간다라/2~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06
<2. 보살의 머리, 간다라/2~3세기>

기원후 1세기 무렵 간다라 지역에 인간의 모습을 한 불상이 처음 나타났다. 동일한 시기에 등장한 마투라 지역 불상과는 달리, 간다라 불상은 헬레니즘 미술의 자연주의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불상은 법의만 입은 모습으로, 보살상은 화려한 장신구를 걸친 세속인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간다라의 불상은 대부분 석가모니지만, 연등불(燃燈佛)과 가섭불(迦葉佛)도 일부 제작되었다. 보살상의 경우 싯다르타, 미륵보살, 관음보살상이 제작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07
<공양자, 간다라 스와트/3세기>

스와트 출토 불상 중에는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에 눈을 크게 뜨고, 홍채와 눈동자가 또렷이 표현된 예가 많다. 이 공양자상 역시 얼굴 윤곽과 눈의 표현에서 스와트 불상의 특징이 확인된다. 오른손에 연꽃 봉오리를 들고 왼손은 허리에 댄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불.보살이 입는 하의인 군의(裙衣)를 입고, 상반신의 숄은 걷어 모아서 오른쪽 어깨에 걸쳤다. 머리 중앙에 큰 장식이 있는 터번을 하고 있으며, 단순하게 표현된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머리에 상투를 하고 있는 미륵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복장이나 인물의 생김새가 서구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강한 인상과 신체적 특징을 하고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08
<미륵보살, 간다라/2~3세기>

간다리 지역에서 제작된 여러 유형의 보살상 중에서 미륵보살은 판별하기가 가장 쉽다. 미륵보살은 머리카락을 리본 모양이나 커다란 상투 모양으로 묶고 왼손에는 물병을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보살상은 왼손이 파손되어 물병은 확인할 수 없지만, 미륵보살의 전형적인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보살의 뚜렷한 이목구비,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는 옷자락, 사실적으로 표현된 장신구는 간다라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13<보살과 숭배자, 미투라, 3세기>

마투라는 간다라와 함께 초기 불상의 탄생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담황색 반점이 있는 붉은 사암이 조각의 재료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 부조는 스투파 등의 표면을 장식하는 판석으로 추정된다. 장방형의 판석 사방에 구획선을 도드라지게 조각했다. 원래는 보살을 중심으로 양측에 공양자와 천인(天人)이 대칭으로 배치되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간다라 부조에는 지중해 지역에서 영향을 받은 내용 등이 표현된 경우도 있다. 부조상에서는 지중해 문화가 반영된 복식, 그리스.로마 신화의 내용 등을 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14<1. 꽃줄을 든 동자, 간다라/2~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15
<2. 세명의 여인, 간다라/2~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09
<3. 악기를 연주하는 젊은이, 간다라/2~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16
4. 트리톤(Triton), 간다라/2~3세기

간다라 미술에는 인간 모습의 상반신에 물고기 꼬리를 지닌 그리스계 신 트리톤이나 디오니소스 계열의 모티프인 술이 담긴 가죽 보따리를 든 젊은이, 꽃줄을 든 동자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다양한 문화를 수용한 이 지역 미술의 특징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젊은이와 세 명의 여인의 경우 신체 표현, 자세, 복식에서 고대 지중해 미술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전 모습을 표현한 보살상이다. 화려한 옷차람의 귀족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리스 조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10
<보살, 간다라/2~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인도 간다라미술 20220215_17<얼굴 부분>

‘보살’은 원래 깨달음을 얻기 전의 석가모니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대승 불교가 널리 세력을 떨치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며 다른 중생을 구제하는 존재를 가리키게 되었다. 보살은 세속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차림새를 한 왕공 귀족의 모습을 모델로 한다. 이 상은 ‘도티(dhoti)라고 불리는 하의를 걸치고, 상반신에는 숄을 두르고 여러 가지 장신구를 착용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간다라 미술
넓은 의미의 간다라(Gandhara)는 오늘날 파키스탄에 속하는 페샤와르 분지, 스와트, 탁실라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분지와 잘랄라바드 일대를 포괄한다. 이 지역은 서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여러 왕조의 진출과 교역활동을 통해 일찍부터 다양한 문화가 소개되었다. 이 지역에서 기원후 1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제작된 미술을 ‘간다라 미술’이라고 한다. 간다라는 마투라(Mathura) 지역과 더불어 인간의 모습을 한 불상이 처음으로 제작된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동서 문화 교류의 중심지답게 이 지역의 불상은 인도, 헬레니즘, 로마, 파르타아적인 요소가 복합된 양상을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실크로드 경계의 삶

고창국(高昌國)은 투루판분지를 5~7세기 동안 한족이 지배했던 정권을 말한다. 고창국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현장법사 일행이 방문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유적으로는 현 투루판 도심에서 동쪽으로 40여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창고성이 남아 있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하지만 한족문화와 중앙아시아문화가 혼합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남북조시대에 서역을 통해서 불교가 전래되면서 크게 번성한 지역이기도 하다.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은  고창고성 부근 포도밭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고창국과 당나라 때의 무덤들이다. 약 456기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무게가 총 6톤이 넘는 2,700여 건의 문서가 출토되었다. 출토문서들 중에는 소그드어, 위구르어로 쓰인 불교, 마니교, 경교 등의 종교 문서가 있어 사료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1<2. 당 중앙정부가 서주로 보낸 전국의 예산 집행 지침에 관한 문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당 676년/종이, 먹>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2<2. 당 중앙정부가 서주로 보낸 전국의 예산 집행 지침에 관한 문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당 676년/종이, 먹>

당 고종 시기에 중앙정부가 전국 각 지방관청에 내려 보낸 679년도 예산편성과 집행 지침으로, 투루판의 서주(西州) 관청에서 하위 5개 현에 배포하기 위해 베낀 문서의 일부이다.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박물관과 일본 류코쿠대학이 소장한 문서 조각과 함께 본래는 하나의 문서였으나, 1912년 오타니 탐험대가 무덤 속 부장품을 거두어 가는 과정에서 뜯겨 나갔다. 이 문서 조각은 현존하는 한.중.일 소장 문서 가운데 가장 앞부분에 해당한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문서에는 당 제국 각지에서 거둔 조세의 배분.보관 및 운송, 외국 사신의 접대 비용, 호랑이 등 맹수를 죽인 자에 대한 포상 재원 등에 관한 지침이 담겨 있다. 다른 사료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당대 제도 전반의 다양한 항목을 담고 있어 당 전기 국가 재정 운용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문서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3<3. 고창현의 도주 위사 처분 보고에 대한 서주 창조사의 지시 문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당 675~676년 추정/종이, 먹>

시신깔개를 덮고 있던 또 다른 종류의 문서 조각이다. 당이 투루판 지역을 점령한 시기에 고창현에서 신고한 도주한 병사(衛士)의 처분에 대한 안건을 서주도독부의 창조사(倉曹司)에서 처리한 문서이다. 2020년 중앙아시아 고문자 조사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에 소장된 같은 문서 두 점을 찾았고, 그중 한 조각과 연결되는 것을 확인했다. 투루판에서 출토된 당대 관문서 중에는 문서를 검사한 관리의 서명 또는 이름이 적혀 있는 것들이 있다. 중국 측 조각에 있는 문서 결재자의 서명이 ‘장원리’라는 인물의 것임을 확인하여 문서의 작성 연대가 그가 해당 직위에 있던 675~676년 무렵으로 밝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4<1. 시신깔개, 투루판 아스타나 230호 무덤/ 당 703년/초제>

시신을 눕히기 위한 장례용품이다. 보통 투루판 지역에서는 국씨고창국시기부터 당왕조 지배기에 걸쳐 관 대신에 갈대 줄기를 엮은 자리를 사용하였다. 무덤의 주인인 장예신은 국씨고창국 최고 가문의 후손이다. 이 시신깔대의 앞뒷면에는 당이 이 지역에 설치한 서주도독부에서 폐기한 문서가 감싸고 있었다. 문서 뒷면에는 테두리를 따라 기(綺)라는 자주색 직물 조각이 붙어 있다. 이처럼 문서와 직물을 덧대어 꾸민 시신깔개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부장품을 만드는데 사용된 투루판 문서
투루판 문서는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까? 여기 있는 신발과 인형은 모두 투루판 무덤에서 발견된 부장용품으로 문서를 재료로 사용한 것들이다. 문서는 투루판의 건조한 기후 덕분에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었다. 당시 투루판에서는 관청 등에서 폐기한 문서를 재활용하여 장례용품을 만들었다. 문서를 꼬아서 무덤에 넣을 인형의 팔을 만들거나 신발의 안감 등으로 종이 문서를 사용하였다. 문서는 장례용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재단되어 대다수가 파편으로 남아 있다. 이런 문서는 일부 조각들을 접합하여 대략의 내용을 파악할 수 이다. 문서는 공문서가 많지만 일부 매매 계약서, 편지, 처방전, 글씨기 연습장 등도 있다. 투루판 문서는 편집되지 않은 당대의 기록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동시기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높은 지위에 있던 관리의 무덤에서는 시종, 무사, 관리, 무용수나 약사를 표현한 인형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이래로 이어온 순장의 풍습이 남아 있는 부분으로 죽은이를 사후세계에 보필할 수 있도록 껴묻거리로 묻은 것으로 보인다. 투루판 지역에서는 건조한 기후 때문에 종이로 만든 인형이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종이는 문서를 재활용한 것으로 그 내용은 자료로서 큰 가치가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3
<1. 문인, 투루판 카라호자/7~8세기>

당대의 정형적인 관식인 복두를 쓰고 있다. 팔 부분은 종이를 꼬아서 만들었으며, 이는 투루판에서만 볼 수 있는 제작 방식이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는 부장품을 만들 때 폐기된 문서를 재활용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료는 ‘투루판 문서’라고 불리며, 당시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4
<2. 여인, 투루판 카라호자/7~8세기>

7~8세기 당대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보여주는 인형들이다. 납이 섞인 흰색 안료인 연백(鉛白)을 바른 후 채색을 하여 색이 매우 선명하다. 머리 부분에는 금박의 장식이 있어 고위층의 무덤에 매장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5
<3. 환관, 투루판 카로호자/7~8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7<4. 신발, 투루판/6~7세기,>

신코 부분이 구름 모양을 솟은 전형적인 당대의 신발이다. 겉감으로 녹색 계통의 마름모꼴 능화(菱花紋)이 표현된 견직물을 사용했다. 신의 안쪽은 줄무늬가 있는 견직물로 장식했고, 밑창에는 종이를 대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8<5. 신발, 투루판/6~7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9
<6. 신발, 투루판.6~7세기>

여덟 겹의 종이로 신발을 만들었고, 안쪽에는 붓글씨의 흔적이 나아 있다. 남가 귀한 투루판에서는 장례 때 죽은 이의 신발을 종이로 만들어 함께 묻는 예가 많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묘표(墓表)는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이나 전돌 위에 죽은 이의 이름과 관직, 사망일자, 사망 당시의 나이 등을 간략하게 기록한 것으로, 무덤 입구에 매장했다. 관직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관인과 그의 가족의 무덤에만 매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인의 이주와 함께 유입된 문화로 5~8세기까지 제작되었으며, 당시의 제도와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무령왕릉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것이 발견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1<1. 가매구의 부인 삭겸의 묘표, 국씨고창국/582년(연창 22년)/벽돌, 진사>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0
<모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3<2. 가매구의 묘표, 국씨고창국/586년(연창 26년)/벽돌, 진사>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2<묘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5<3. 범숭경의 묘표, 국씨고창국/592년(연창 32년)/벽돌, 연단>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4<묘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7<1. 국효숭의 부인 장씨의 묘표, 국씨고창국/600년(연창 40년)/벽돌, 연단>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6<묘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9<2. 후륭관의 부인 장씨의 묘지, 당 677년(의봉 2년) 추정/벽돌>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18<묘표 내용>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1<3. 장ㅁㅁ의 묘표, 국씨고창국/583년(연창 23년)/벽돌, 먹, 산화철>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0<묘표 내용>

투루판 출토 묘전
묘전(墓塼)은 무덤 주인의 이름과 이력 등을 기록한 판 모양의 벽돌을 말한다. 당시 사람들은 먼 훗날 무덤이 허멀어진 뒤라도 무덤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묘전을 제작하여 두덤의 널방 입구나 통로에 두었다. 중국에서는 주로 돌에 글자를 새겼지만 돌이 귀했던 투루판에서는 흙을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묘전은 국씨고장국 시기인 530년대부터 확산되었다. 동시기를 전후로 이 지역에는 한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무덤에서도 복희여와도, 진묘수 등 중국문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투루판 묘전은 투루판 문서와 더불어 다른 문헌에서 볼 수 없는 국씨고창국의 독자적 연호와 관제 및 동시기 사람들의 생사관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고창고성에서 발견된 당나라 비에서는 주인공인 강거사가 대장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 사업을 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이다.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부분으로 상당히 오래된 비(碑)이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8<강거사의 대장경 조성 업적을 새긴 비석 조각, 투루판 고창고성, 당 무주 695~697년 추정, 돌>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6<아래 부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7<윗 부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6
<탁본>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2<비에 대한 설명>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23<측천 문자>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고창고상 대불사 절터>

도성유적인 고창고성에서 발견된 당나라 비의 조각이다. 비문에 따르면 주인공인 강거사(康居士)는 강국(康國, 현 사마르칸트) 출신의 소그드인 지도자였으나, 7세기 중반에 당나라로 귀순하여 투루판에 터전을 잡고 높은 지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불교 신자였던 그는 말년에 공덕을 쌓기 위해 대장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 사업을 벌이고 그 경전 목록을 새긴 이 비를 세웠다. 비의 글자 가운데는 당의 측천무후가 창제하여 반포한 측천문자가 있기 때문에 무주(武周) 시기의 비로 여겨진다. 중앙아시아 고문자 조사에서 비에 새겨진 경전 목록이 당시 널리 유통된 불교경전목록인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 제8권 전체와 <대주간정중경목록>의 일부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혔다. 나아가 비 전체에 적혀 있던 사경목록의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이 두 목록에 근거하면 온전했을 당시의 비면에는 818부 4,039권이 넘는 경전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비는 6~7세기 투루판 지역의 비 가운데 실물로 현존하는 유일한 예로, 이 비에 새겨진 대장경의 실제 경전들을 향후 투루판 지역에서 찾아낼 수 있는 기초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5<말을 탄 여인, 투루판/7~8세기>

당대 전형적인 상류층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인상이다. 얼굴 전체에 하얀 분을 바른 후 뺨에는 붉은 색을 칠하고, 이마에는 붉은색 꽃문양을 그렸다. 이것은 사홍(斜泓)과 화전(花鈿)이라고 불리는 당시 유행한 화장법이다. 말에는 안장, 고삐 등이 묘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2
<새머리가 있는 장식병, 투루판 카라호자/7~8세기>

물 따르는 곳과 손잡이가 만나는 부분에 새의 눈을 표현하여, 물을 따르는 부분이 새의 부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기형은 그리스의 오이노코에(oinochoe)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중해 지역, 사산조 페르시아, 중국에서 금은기, 유리기, 도자기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신라의 황남대총 남쪽 능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유리병이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인 진묘수(鎭墓獸)는 시신을 안치한 널방 입구에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 또는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널방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돤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동물 진묘수가 발견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06<진묘수(鎭墓獸), 투루판 아스타나/7~8세기/흙에 채색>

투루판의 아스타나 카라호자의 무덤에는 시신을 안치한 묘실 입구에 상상의 동물 한 쌍이 배치된 경우가 많다. 이 동물은 흔히 ‘진묘수’라고 불리며 묘실 내부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이 못하도호록 막는 기능을 ㅎ나다. 전시된 진묘수는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이 결합된 모습이며 머리 위쪽에 잘려 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진묘수는 성당(盛唐) 시기에 유행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아스타나 고분은 투루판시 도심에서 35km 정도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해당하는 국씨 고창국과 당나라 지배기에 조성된 지배층들의 무덤이다. 유적지에 있는 2층 누각에 올라서면 남쪽편에 넓게 고분이 펼쳐져 있다. 봉분을 크게 만들지 않아 무덤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아스타나 무덤>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0<투루판 주요 유적>

중앙박물관 세계관 투루판 한문자료 20220125_31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시크로드 경계의 삶>

투루판 지역이 한문자료, 실크로드 경계의 삶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는 1912년 일본 오타니 탐험대의 대원 요시카와 고이치로(1885~1978년)가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 북동부의 투루판 지역에서 수집한 것이다. 이 한문자료들은 투루판의 한인왕조였던 국씨고창국 시기인 6세기 말부터 당 왕조 지배기인 7세기 말에 작성된 것들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먼저 투루판의 독특한 장례용품인 시신깔개에 붙어있던 당나라 문서가 있다. 이 문서를 조사한 결과, 같은 문서의 읿부가 현재 중국과 일본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중국 소장 문서 조각과 서로 연결됨을 확인하였다. 이 문서는 7세기 후반 당 고종 때 국가 재정 전반과 군사 제도에 관한 당나라 관문서이다. 한편 죽은 자의 존재를 후세에 기억하기 위한 묘전도 전시한다. 특히 일부 묘전 조각을 새롭게 확인하거나 접합하여 복원한 해석문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투루판의 중심지였던 고창고성에서 출토된 소그드인 불교 신자의 대장경 조성 업적을 새긴 비편을 소개한다. 비문에 새겨진 경전들이 당대 장안 서명사(西明寺)에서 조성한 대장경 목록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 비교하여 사라진 부분을 포함한 전체 비의 형식을 복원했다.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는 국내외 관련 연구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며, 실크로드 경계에서 한인과 서역인이 공존했던 삶의 흔적을 살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3. 위키백과,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로프노르와 누란 수집품, 중앙아시아 선사문화

누란(樓蘭, Kroraina)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작은 고대 도시국가였다. 실크로도 남도의 로프노르(Lop Nor) 서안에 위치하고 있다. 한나라 때 장건 등을 사절단으로 보내고 이곳을 선선(鄯善)이라 불렀다.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로프노르.누란 수집품은 일본인 오타니의 탐험대가 20세기 초에 수집한 문화재들이다. 로프토르 지역 샤오허 무덤 출토 유물은 기원전 17~15세기의 것으로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실크로드 상 고대 도시와 국가가 있었던  중심지였던 니야, 누란, 호탄, 투르판 등지에서는 많은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당시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샤오허(小河, Xiaohe) 무덤은 ‘떠도는 호수’라고 알려진 로프노르 호수에서 약 60km 떨어진 사막에 위치한 무덤이다. 메마른 건조기후 덕분에 사막에서 수천년이 지난 직물, 가구, 문서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21
<1. 사람 형태의 막대,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15세기/나무, 털실, 깃털 등>

사람 형태의 막대 2점은 형상과 구조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제작 방법을 추정해 보면, 먼저 나무를 깎아서 상중하 3단의 형태를 만든다. 상단 정면에는 동물성 아교를 사용하여 뼈로 만든 인면(人面) 조각을 박아 넣고, 뒷면에는 깃털을 붙인다. 중단 안쪽에는 동물의 힘줄을 이용하여 마황의 잔가지와 동물의 털을 넣고, 바깥쪽에는 끝이 탄 붉은색 버드나무 가지를 고정한 후 갈색 끈 등으로 묶는다. 하단은 어딘가 꽂을 수 있도록 끝을 뾰족하게 다듬는다. 인면 조각의 과장되게 튀어난 코는 샤오허 묘지 출토 얼굴 조각의 코와 유사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1<2. 가죽 신발,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 ~ 15세기/가죽, 털실 등>

가죽 신발은 바닥, 앞면, 뒤꿈치 세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세 부분의 가죽은 갈색 털실로 연결되었는데, 신발의 앞면에는 털실이 남아 있지 않고 구멍만 뚫려 있다. 가죽 신발을 세 개의 가죽으로 이어 붙인 점, 신발의 정중앙에 붉은색 선을 칠한 점, 신발 끈의 위치 등이 샤오허 묘지 출토 가죽 신발과 유사하다. 샤오허 묘지 출토 가죽 신발의 경우, 바닥은 소가죽을 , 나머지 부분은 오소리 가죽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청동기시대 가죽 신발의 출현은 당시 목축업의 발달과 함께 가죽이나 털실을 정교하게 꿰맬 수 있는 뼈나 금속 바늘의 사용이 주요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바구니는 풀의 뿌리로 짜서 만들었으며, 표면에는 계단 모양의 무늬가 있다. 이러한 용기는 식량 등을 넣고 천으로 입구를 덮은 후 시신의 머리맡 등에 안치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2<3. 바구니,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 ~ 15세기/풀>

‘풀로 만든 바구니’는 샤오허 묘지에서 대량 발굴되었고, 형태나 크기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거의 동일하다. 또한 씨대와 날대를 이용한 직조 방식과 광택이 나는 씨대를 이용해 수평무늬, 삼각형무늬, 계단무늬를 장식한 점도 서로 유사하다. 이와 같은 바구니의 기하학적 무늬 구성은 시베리아 지역의 청동기문화인 안드로노보(Andronovo) 문화의 토기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계단무늬는 안드로노보 문화를 규정하는 가장 특징적인 문양으로, 샤오허 묘지 출토 바구니의 무늬와 유사하다. 바구니 안에서는 보리, 기장 등의 마른 음식물 외에도 액체 유제품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3<4. 모자,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 ~ 15세기/펠트, 털실 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샤오허 묘지 출토 모자는 펠트로 속을 채우고, 그 위에 여러 가닥의 붉은 색 꼰 줄과 주황색 꼰 줄이 가로로 연결되어 있다. 황갈색과 갈색 펠트로 모자의 중단에는 각각 작은 나무 막대와 말라버린 동물 가죽이 매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샤오허 묘지에서 발견된 모자 중단에는 족제비 가죽이 한 바퀴 둘러져 있고, 모자 앞쪽에 족제비의 머리가 위치한다. 모자 좌측에는 조류의 깃털을 동물 힘줄로 묶어 나무 막대에 고정시키고, 나무 막대기 위헤 세밀한 선을 새긴다. 남성의 모자는 여러 개의 깃털로 장식한 반면, 여성의 모자는 한 개의 깃털로 장식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가면은 나무에 가죽을 씌워 만든 것으로 눈과 치아에는 뼈를 부착하였다. 눈을 부릅 뜨고 있고, 치아를 모두 드러낸 다소 위협적인 표정으로 보아, 무덤을 지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4<5. 얼굴조각, 로프노르 샤오허 묘지/기원전 17 ~ 15세기/나무, 가죽 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얼굴 조각은 높게 돌출된 눈두덩과 작은 눈구명, 높이 솟은 코와 커다란 이빨이 특징이다. 과학조사 결과, 눈은 마그네슘의 함량이 높은 활석 혹은 해포석이고, 이빨은 인산칼슘이 주성분인 뼈나 상아일 가능성이 높다. 얼굴 조각 중에는 이마와 턱에 얇고 작은 주석판이 부착된 예도 확인된다. 안면에는 얇은 가죽이 붙어 있고, 그 주위로 붉은색과 자주색 안료가 칠해져 있다. 얼굴 조각을 의식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어떤 의식을 거행할 때 얼굴에 가면처럼 착용했다는 것인데, 상의 크기가 작아 실제로 착용했을 가능성은 낮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샤오허(小河, Xiaohe) 묘지
샤오허 묘지는 콘체강(孔雀河) 중류에서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사막지대에 위치하며, 동쪽의 누란고성(樓蘭古城)과는 약 170km 떨어져 있다. 묘지의 전체 면적은 2,500㎡이고, 가운데 목책을 기준으로 남구와 북구로 구분한다. 샤오허 묘지는 1934년 스웨덴 고고학자 폴케 베리만의 조사로 학계에 알려졌으며, 2002년에서 2005년까지 중국 신장문물고고연구소 발굴팀이 이곳에서 167기의 무덤을 조사했다.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자료 조사 사업을 통해 로프노르 일대의 수집품을 정리했다. 당시에 여기 전시 중인 ‘바구니’, ‘얼굴 조각’, ‘모자’등을 조사했다. 이 수집품은 오타니 탐험대가 1909년에서 1910년 사이 차르클르크에서 현지인에게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의 기록으로 보아 샤오허 묘지에서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로프 노르(Lop Nur) 호수는 타클라마칸 사박 북동부에 존재했으나 20세기 말라버린 호수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실크로드 상에 위치한 이 호수를 <염택(塩澤)> 또는 <포창해(蒲昌海) 등의 이름으로 알려져 이었다. 기원전 1세기경 ‘가로세로 모두 300리의 함호(鹹湖)로 겨울이나 여름에도 그 수량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서》 서역전 서문에 기록된 광대한 호수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22
<1. 기둥, 누란, 1~4세기, 나무>

곧게 뻗는 긴 원통형 나무를 회전시켜서 홈을 내고, 표면을 깍아 조각한 기둥 2점이다. 이 중 길이가 긴 기둥은 난간의 부재로 사용되었다. 이 기둥과 유사한 형태의 문화재가 누란 L.A.III유적에서 발견되었고, 현재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최근 과학조사 결과, 제작에 사용된 나무는 1~3세기 버드나무과 사시나무류로 확인되었다. 이 수종은 오늘날에도 신장 일대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으며 가공성이 좋아 건축자재로 활용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향로는 중국 한대 박산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세발 단지 또한 중국의 영향받은 형태로 보인다. 당시 중국과 실크로드 국가들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5<2. 향로와 세발 단지, 차르클리크(Charklik)/3~4세기/토제>

차르클리크 출토 향로와 세발 단지이다. 향로는 한대 크게 유행했던 박산로(博山爐)의 영향을 받았고, 향을 담는 몸체와 뚜껑, 원형 그릇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발 단지는 짐승다리 형상을 본떠 만든 세다리가 특징적이다. 뚜껑과 그릇 안쪽 중앙에 날카로운 도구로 표면을 긁어낸 흔적과 검은 얼룩이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6<3. 대접과 시루, 로프노르/1~3세기/토제>

대접과 시루는 그릇 모양이 거의 동일하며 전반적으로 회색에 가깝다. 로프노르 일대에서 중국식으로 만들어진 추기 중원식 토기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벼루는 형태가 둥글고 다리가 3개인 것으로 3~4세기 중국의 도제 벼루와 유사하다. 한나라 때 누란과 교류한 이래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교류관계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7<4. 벼루, 차르클리크/3~4세기/토제>

원판 모양의 연반에 3개의 짐승다리형상 다리가 달려 있다. 이 벼루는 중앙에 지름이 다른 동심원을 연속적으로 구획한 것이 특징이다. 먹을 가는 벼루의 중앙은 볼록하지 않고 편평하며, 다리는 붙인 후 대칼 등으로 깎고 물손질로 마무리했다. 형태가 둥글고 다리가 3개인 점은 3~4세기에 유행한 중국의 도제 벼루와 유사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8<5. 대접, 차르클리크/3~5세기/토제>

중앙이 넓고, 굽이 낮은 회색의 무문토기이다. 유사한 형태의 대접이 4~5세기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출토품에서 확인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10<6. 토기편, 누란/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토제>

완형이 원통형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황회색 토기편 1점과 소성도가 매우 높은 회색의 경질토기 4점이다. 황회색 토기는 다른 경질토기에 비해 무르고, 소성상태도 양호하다. 2점이 경질토기의 표면을 장식한 작은 동그라미와 삼국형 무늬는 영국박ㅁ루관 소장 누란 출토 토기편에서도 확인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09<7. 합, 로프노르/1~3세기/토제>

회전판에서 바닥면을 만든 후 점토대에 덧붙여 형태를 만들었다. 표면은 거칠고 기포와 가공의 흔적이 난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가죽주머니는 유목민들이 물이나 술을 담기 위해 사용한 휴대용 주머니이다. 유목민의 삶을 보여주는 유물로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형태의 유물들이 도기, 자기 등으로 만들어져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선사시대 20220125_11<8. 가죽주머니, 누란/시대미상/가죽, 털실>

아래쪽은 넓게 벌어지고 위쪽은 좁은 형태로 상부와 하부에 바느질 자국이 남아 있다. 이런 형태의 가죽 주머니는 <사기> 제66권<오자서전(伍子胥傳)>에 등장하는 치이(鴟夷)와 유사하다. 치이의 모양이 올빼미의 배처럼 불룩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술을 담기 위해 말가죽을 이용하여 만든 휴대용 주머니이다. 유목민들이 소금이나 물을 담는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누란(樓蘭)
누란은 옥문관에서 서역으로 나아갈 때 가장 먼전 만나게 되는 실크로드상의 주요 거점이며 ‘크로라이나(Krorain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 권110 <흉노열전>에서 존재가 최초로 확인되며, 기원전 1세기 한(漢)의 영향으로 국명을 선선(鄯善)으로 바꿨다. 선선국은 기원후 2세기 이후 로프노르에서 니야(尼雅)에 이르는 서역남도의 동쪽 지역 전체를 장악했고, 기원후 5세기 북위(北魏)의 공격 후 쇠퇴했다. 20세기 초, 누란/선선이 존재했던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카로슈티 문서와 채관 등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재가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로프노르(羅布泊, Lop Nor). 누란(樓蘭, Loulan) 수집품
로프노르.누란 수집품은 오타니 탐험대의 대원인 다치바나 츠이초(1890~1968년)가 1909년에서 1910년 사이에 수집한 문화재이다. 로프노르 일대 샤오허(小河) 묘지 수집품은 기원전 17세기에서 기원전 15세기 사이의 문화재로 추정되며, 로프노르의 선사문화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누란국 영토 수집품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에 동서교역의 주요 거점이었던 선선(鄯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3.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