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March 2, 2023

[중앙박물관특별전, 조선의 승려장인] 화승, 불화를 그리는 승려 장인

불화(佛畵)는 불교적인 내용을 그린 그림으로 불전에 모셔 놓고 예배를 드리거나 신도들을 교화하기 위해 그렸다. 불화를 언제부터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교 경전에 부처의 형상을 그려 예배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그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불화는 인도 아잔타석굴의 벽화들로 기원전 2세기 작품들이다. 화승(畵僧)은 불화를 전문적으로 그리거나 회화작업에 종사하는 승려를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전문적인 장인들이 그 작업을 수행한데 반해 우리나라는 출가한 승려들이 불화를 그리는 역할을 도맡았다. 불화를 그리는 승려들은 단체로 사찰을 옮겨다니면서 불화를 그리면서 집단을 형성했으며 빼어난 작품을 그린 걸출한 화승들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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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초본, 불화의 밑그림, 여래도 밑그림, 조선 19~20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종이에 목탄으로 여래의 전체 형태를 그리고, 옷 주름 부분만 먹으로 그린 밑그림입니다. 여래의 무릎 아랫부분을 먹으로 그리면서 수정한 흔적이 확인됩니다. 초본은 불화나 단청을 제작하기 위한 밑그림입니다. 초본을 그리는 것을 ‘초를 낸다’는 의미로 출초라고 합니다. 초본을 그릴 때는 먼저 목탄으로 큰 형태를 잡은 다음 먹으로 세부를 표현합니다. 세부 묘사를 해낼 수 있는 필력이 요구되기 떄문에 기량이 뛰어난 화승이 맡았습니다. 이 초본은 어떻게; 화승이 밑그림을 그렸는지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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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화승 약효가 그린 인물도 밑그림, 인물도 밑그림, 약효, 조선 19~20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약효(?~1928년)는 50년 넘게 활동하며 100여 점이 넘는 불화를 그린 한국 근대 대표 화승입니다. 그는 공주 마곡사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약효는 18세기에 뛰어난 화승이었던 유성의 밑그림을 모방하며 수천수만 장을 연습했다고 전합니다. 이 초본에서는 매우 가는 선으로 인물의 얼굴을 능숙하게 표현했고 거친 붓으로 옷 주름을 자유롭게 그렸습니다. 불화 제작에 실제로 사용했다기보다 제자의 학습이나 참골르 위해 약효가 그린 밑그림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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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색을 일일이 적어둔 지장보살 밑그림, 지장보살도 밑그림, 조선 19~20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연화좌에 앉은 지장보살과 그를 보좌하는 두 인물을 그리고, 색을 참조하도록 각 부분에 한글로 ‘양녹’, ‘옥석’, ‘삼청’, ‘장단’, ‘진흥’을 적거나 한문으로 ‘백’, ‘황’ 등을 적어 두었습니다. 보살의 어깨 주변에는 입고 턱수염을 연습한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이 밑그림은 1917년에 <자수지장보살도>를 조성하려고 보현(1890~1979년)이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보현은 서울 경국사에서 출가하여 화승으로 입문했고, 사찰을 책임지고 주관하는 주지직을 맡아 사회 주요 인사와 교류하는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 승려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화승20220125_01<여래도, 59. 불화 밑그림 첩, 초본첩, 종선후기, 종이에 먹, 통도사성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화승20220125_02<보살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화승20220125_03<신중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화승20220125_04<사천왕도>

도상 연습과 전승을 위해 실제보다 작게 그린 소형 불화 밑그림을 엮은 초본첩입니다. 소형 초본은 실물 크기의 초본을 작성하기 전 연습할 때 교본으로 사용되었으며 지역 간 도상 교류와 사제 간의 도상 전승, 실제 불화 제작에도 적극 활용되었습니다. 근대에 이름을 날렸던 화승 철유(1851~1917년)는 금강산 유점사에서 사천왕도를 조성할 때 유점사 노스님의 사천왕 초본 중 한 점을 확대해서 그렸다고 전합니다. 초본의 각 면에는 아미타여래와 석가여래, 사자를 탄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보주를 든 용왕과 코끼리관을 쓴 야차, 사자관을 쓴 건달바, 탑을 든 사천왕과 여의주를 든 사천왕이 그려져 있습니다. 작은 화면에도 불구하고 불보살과 신중의 모습을 유려하고 세밀하게 표현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초본: 설계도이자 또 하나의 작품
불화 밑그림인 초본은 완성될 불화 모습을 미리 구현한 일종의 설계도입니다. 누군가 그린 초본 위에 다른 이들은 오색을 펼쳐 냈습니다. 화승의 초본은 단순한 밑그림이 아니라 오랜 수련 시간과 부처를 향한 평생의 신심이 함축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들은 필선을 연습하고, 불화를 구상하고, 도상을 전승하기 위해서도 초본을 그렸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전승된 초본은 앞선 화승들의 정신과 기술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렇기에 초본은 로 밑그림이라는 본래 성격을 넘어 완성된 불화에 버금가는 수준 높은 면모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팔상도(八相圖)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8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팔상전이나 영산전에 봉안된다. 영산회상도와 함께 많이 그려진 불화의 주제로 신도들이 불교를 해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쉽게 표현하고 있다. 통도사 팔상도(보물)은 8장면이 그림이 밑그림과 같이 남아 있어 당시 화승들이 작업한 내력들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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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석가모니의 탄생, 1. 통도사 팔상도 밑그림(비람강생상),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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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도사 팔상도, 포관 등 2명, 조선 1775년, 비단에 색, 통도사성보박물관, 보물>

팔상도의 두 번째 장면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는 현장을 담았습니다.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고, 아홉마리 용이 신성한 물을 뱉어내고 있습니다. 갖가지 색으로 이들이 완성한 불화에서는 불교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통도사 팔상도>는 화승 수십명이 열덟 화폭을 함께 조성했는데, 이 화폭에는 해당 화면 제작을 주도한 포관과 유성의 이름만 적혀 있습니다. 통도사에 전하는 <팔상기문>과 팔상도 첫번째 화폭인 <도솔래의상>에는 두훈이 수화승으로 적혀 있어, 두훈이 전체 불사를 주관하고 실제 불화 제작은 포관을 중심으로 유성과 여러 화승이 담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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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출가를 결심한 싯다르타 태자, 1. 통도사 팔상도 밑그림(사문유관상),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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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도사 팔상도(사문유관상), 포관 등 5명, 조선 1775년, 비단에 색, 통도사 성보박물관, 보물>

팔상도 중 세번째 그림입니다. 왕궁 밖을 나선 싯다르타 태자가 노인과 병자, 죽은 이의 시신을 보고 삶의 고통과 죽음을 깨달은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북문에서 수도자를 보고 출가를 결심합니다. 화면 중앙의 소나무를 중심으로 상하좌우에 중요한 네 장면을 배치했고, 오른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밑그림은 먹선으로 대담하게 그린 소나무 두 그루가 서로 얽혀서 화면의 중심을 이룹니다. 뒷면에는 철유가 스승에게 전승받은 이 밑그림에 필획을 더하여 쓴 묵서가 남아 있습니다. <사문유관상> 화폭에는 포관과 유성을 비롯해 화승 다섯명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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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눈 덮힌 산에서 수행하는 석가모니, 1. 통도사 팔상도 밑그림(설산수도상),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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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도사 팔상도(설산수도상), 포관, 조선 1775년, 비단에 색, 통도사 성보박물관, 보물>

팔상도 중 다섯 번째 그림입니다. 출가 후 궁으로 돌아오라는 청을 거절한 채 설산에서 수행하는 석가모니 모습을 그렸습니다. 출가한 후의 이야기를 그렸기에 이제 궁궐은 등장하지 않고 나무나 바위, 산 묘사가 중심을 이룹니다. 밑그림 속 바위나 나무 기둥의 거친 묵법으로 석가모니의 극적인 수행장면을 속도감 있게 전달합니다. 채색본에는 포관의 이름만 적혀 있습니다. <팔상기문>에 수화승으로 기록된 두훈보다 포관의 이름이 여러 화폭에서 가장 많이 확인됩니다.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18세기 화승 의겸 역시 불사를 총괄하면서 각 화폭을 책임지는 화승을 따로 지정해서 그리게 한 사례가 있어 당시 화승들의 분업체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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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마왕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부처, 1. 통도사 팔상도 밑그림(수하항마상),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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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도사 팔상도 (수하항마상), 조선 1775년, 비단에 색, 통도사 성보박물관, 보물>

팔상도 중 여서번째 그림입니다. 나무 아래에서 마군에게 항복을 받고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부처를 그렸습니다. 마왕 군대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얼굴 표현이 돋보입니다. 원라 중국 팔상도에서는 뇌신(雷神)이 부처의 수행을 방해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이 팔상도에서는 오히려 뇌신이 마군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화승이 새롭게 도상을 바꾼 덕분에 석가모니 부처의 힘을 강조하고 마군을 물리치는 ‘항마(降魔)’ 주제를 더욱 강조한 것처럼 보입니다. 채색된 불화에는 마왕의 세 딸 중 한 명의 모습이 훼손되었는데, 밑그림으로 원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초본과 완성본
낱장의 밑그림에서 불화가 완성되기까지 화승들은 얼마나 많이 고심하고 열과 성을 다했을까요? 1775년 통도사에는 화승 수십명이 모여 석가모니부처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렸습니다. 이 불화를 위해 그린 것으로 보이는 밑그림이 함께 전합니다. 밑그림을 그린 화승들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각 구조와 인물의 모습,나무와 암석 윤곽은 물론 배치 간격도 거의 동일합니다. 밑그림과 완성된 불화를 비교하는 것은 단순히 어디가 같고 다른지를 보기 위함이 아닙니다. 함께 놓인 밑그림과 완성본을 대하며 그 사이에 화승이 마주했을 수많은 고민과 인내의 과정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화승의 스튜디오
화승의 작업공간은 부처의 모습을 조성하는 신성함과 여러 승려의 분주함이 공존했습니다. 경건한 자세로 그림을 그리는 화승 곁에는 증명(證明)을 맡은 승려와 불교의 주문인 진언을 염송하는 송주(誦呪)가 함께 있었고, 일반인은 이 공간에 드나들 수 없었습니다. 불화를 그리는 데 필요한 삼베, 비단, 종이, 면과 같은 바탕 재료나 채색 안료는 시주를 받거나 다른 승려에게서 조달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은 재료는 화승의 손끝에서 부처의 세계로 변모했습니다. 또한 불사 현장은 보조 화승이 한무리의 우두머리로 성장하는 배움터이자 문화가 전승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조선의 승려장인] 복장물, 생명력을 불어넣다.

복장(服裝)이란 불상과 불화에 안치하는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 물목으로 생명력과 신성성을 갖게 해 준다. 복장물의 핵심은 후령통으로 사리를 비롯해 오보병, 오곡, 오보, 오약, 오향 등 오방과 진귀한 물품이 들어간다. 이외에도 각종 다라니를 적은 진언과 경전, 비단천을 비롯한 복식 등이 들어간다. 복장을 안치하는 방식은 고려시대에 정립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간행된 <조상경(造像經)>에 그 절차와 품목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02<60. 조각승 해심이 만든 불상과 닮은 여래좌상, 목조석가여래좌상, 조선 17세기 중반, 국립중앙박물관>

귀가 크고 턱이 발달했으며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상체가 길고 가슴과 배가 적당히 부푼 신체 표현이 특징입니다. 이 여래좌상의 정확한 제작 연대와 원래 봉안되었던 사찰은 알 수 없으나, 이와 비슷한 불상으로 전라북도 고창 <문수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이나 고창 <상원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이 있습니다. 17세기에 활동한 조가승 무염 밑에서 배운 해심이 이 불상들을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시에 출품된 이 여래좌상도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상 안에서는 후령통과 직물로 만든 오보병(五寶甁), 경전과 다라니가 수습되었습니다. 수습 당시 후령통 안은 비어 있었습니다. 복장물이 완전한 형태로 전하지는 않지만, 조선 후기 복장물의 형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03<61. 석가여래좌상 몸 안에 있었던 신성한 물건, 목조석가여래좌상 복장물,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1. 후령통(핵심적인 복장을 넣는 통), 2. 원경(둥근거울), 3. 진언(불교의 주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04<4. 다라니(신비한 힘을 가진 주문)>

후령통(喉領筒)은 복장물의 핵심으로 그 안에는 사리를 비롯해 오보병, 오곡, 오보, 오약, 오향 등 오방과 진귀한 물품들이 들어간다. 동(청색), 남(적색), 서(백색), 북(흑색), 중앙(황색)으로 방위와 색을 규정한 <조상경(彫像經)>을 절차를 따르고 있다. 다섯가지 보물인 종자(씨앗), 금강저, 채번(깃발), 산개(양산), 보병(병)을 직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05 <5. 오보병(다섯가지 보물을 담는 병)>

불상 조성이 끝난 다음 종교적 예배 대상이 되려면 또 다른 의식과 절차가 필요합니다. 불사리나 경전처럼 종교적 상징이 담긴 물건과 조성 기록을 적은 발원문을 내부에 넣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이처럼 불상 내부에 성스럽게 넣은 물건을 복장물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목조석가여래좌상 몸 안에 넣었던 복장물의 일부입니다. 불상의 복장물로 빈 후령통과 오보병의 일부 그리고 내부 공간을 채우는 용도 등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경전과 다리니가 발견되었습니다. 오보병은 제 병이 아니라 다섯 가지 색깔의 직물로 만들었습니다. 동(청색), 남(적색), 서(백색), 북(흑색), 중앙(황색)으로 방위와 색을 규정한 <조상경(彫像經)>의 내용과 비슷합니다. 색깔별로 종자, 금강저, 채번, 산개, 보병의 형태를 한 세트로 만들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인조 때 일가족이 거의 몰살당할 때 살아남은 소현세자의 셋째아들을 모셨던 궁중 나인들이 발원한 보살상에 모셔졌던 복장물이다. 경안군이 오랜 귀향살이를 끝내고 결혼하게 되자 그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바램이 담겨 있다. 이 유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반영하고 있어 지금까지도 귀중하게 여겨지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06<62. 소현세자의 아들을 위해 궁중 나인이 발원한 보살상 복장물, 송광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 조선 1662년, 비단 등, 송광사 성보박물관, 보물, 1.저고리>

낡은 남색 저고리와 녹색 배자, 붉은색 비단 등은 모두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관음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 내부에서 나온 복장물입니다. 복장물의 중심은 갖가지 성물을 담은 후령통이지만, 함께 발견된 남색 저고리와 초록색 배자, 목숨 ‘수(壽)’자와 영지무늬를 화려한 금실로 수놓은 붉은색 비단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저고리 안쪽에는 1662년 정월 궁중 나인이었던 노예성이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경안군 부부 등의 장수를 기원하며 관음보살상을 발원했다는 내용이 정성스레 적혀 있습니다. 녹색 배자 안쪽에는 시주자 유씨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글도적혀 있습니다. 저고리와 같은 옷을 복장물에 넣는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 옷들은 시주자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동시에 핵심적인 복장을 넣은 후령통 같은 복장물을 고정하고 보호하며 공간을 채우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07<2.저고리 위에 덧입는 배자, 3. 발원문>

성품을 돌이켜 들으시고 원통을 깨우치셨네. 관음불이 관음의 이름 주시고 위로는 자비의 힘을 갖추고 아래로는 자애를 갖추게 하니 32응신(應身)이 온 누리에 두루 미치네. 경안군 이씨와 부인 허씨 두 분의 수명장원을, 경자생 박씨와 노씨의 수명장원을, 윤씨의 수명장원을 기원합니다. 신축생 나인 노예성이 발원하여 1662년 정월에 관음보살상을 삼가 조성하니 이로써 공덕이 두루 미치고 나를 비롯한 모든 중생이 함께 성불하기를 기원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08 <4. 후령통>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09<5. ‘수’자와 영지무늬가 있는 비단>

장수를 의미하는 ‘수(壽)’자 직물을 넣은 까닭
경안군의 아버지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귀국한 지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떴고, 어머니 강씨도 인조 독살 시도라는 누명을 쓰고 사사되었습니다. 1647년 네살이었던 경안군은 제주로 유배를 가고 이듬해 두 형마저 죽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1659년 그가 경안군으로 복권되고 1661년 허씨와 혼인한 점을 고려하면, 1662년 완성된 보살상에서 나온 장수를 상징하는 ‘수(壽)’자가 수놓아진 직물은 더욱 특별합니다. 한 많은 삶을 뒤로하고 혼인한 경안군의 평온한 미래와 무병장수를 간절히 바란 나인들의 염원이 깃든 복장물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10<63. 조각승 여찬 등이 불상을 만들며 넣은 바람이 담긴 글, 문경 쌍계사 불상 조성 발원문, 조선 1723년, 종이에 붉은 먹, 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문경 쌍계사에서 아미타여래삼존상을 조성하며 마련한 발원문입니다. 현재 이 절과 불상은 모두 확인되지 않고 발원문만 전합니다. 상을 만든 승려 장인은 여찬과 삼인, 신찰, 지찰, 성현입니다.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여찬은 강원도 고성 유점사 대종을 고쳐 만들떄는 화원으로, 경남 고성 <옥천사 시오아도>(1744년)와 서울 <봉은사 목조사천왕상>(1746년)을 조성할 때는 복장물 시주자로 참여하며 다양한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불상은 전하지 않으나, 이 발원문은 불상 조성에 관여한 이들의 정보와 발원문 구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11<65. 화승 신겸이 그린 시왕도의 복장물, 시왕도 복장물, 조선 1829년, 국립중앙박물관, 1. 발원문, 2. 후렴통>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12 <3. 열금강지방지도, 4. 진언>

시왕도에 봉안된 복장물입니다. 시왕도는 모두 열점으로 조성되었지만 복장물은 현재 다섯점만 남아 있습니다. 과학적 조사로 납작한 네모 형태의 종이 후령통 안에서 각종 곡물과 사리가 담긴 오보병, 불교의 주문인 진언과 여러 직물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함께 발견된 발원문으로 화승 신겸과 신선이 이 불화를 조성한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내부에 공간이 있어서 그 안에 복장물을 넣을 수 있는 불상과는 달리 불화는 낱장 형태여서 복장물을 넣기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불화의 복장물은 주머니에 담아 그림 상단에 걸거나, 그림 뒷면에 쉽게 부착할 수 있는 납작한 종이 상자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공간과 재질에 맞춰 복장물을 제작했던 승려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01
<64. 화승 신겸과 신선이 그린 지옥 풍경, 시왕도, 신겸 등 2명, 조선 1829년,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신겸과 신선이 1829년 북한산성의 중심 사찰인 중흥사에 봉안하려고 조성한 시왕도입니다. 신겸은 1828년에 의성 고운사에서 시왕도를 그렸습니다. 이때 그린 밑그림을 사용하여 1829년 중흥사 시왕도를 제작했습니다. 이 불화는 사후 세계를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중 두번째인 초강대왕과 지옥의 형벌장면을 묘사했습니다. 성곽으로 구획된 지옥 안에서는 죄를 지은 영혼이 뜨거운 가마솥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지옥문 바깥에는 그들을 구하려고 지장보살이 자리했습니다. 대부분 불화에 봉안된 복장물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불화는 종이로 된 납작한 후령통과 복장물이 함께 전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생명력을 불어넣다
불상과 불화가 일반 미술과 다른 차이점의 하나는 제작을 마친 다음 종교적 예배 대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식과 절차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불상과 불화는 각각 입체와 평면이라는 공간을 감안해 복장물을 넣었습니다. 복장물은 불상이나 불화를 예배대상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함께 봉안하는 여러 신성한 물건을 의미합니다. 불상과 불화에 복장물을 납입하고, 신비한 힘과 권위를 부여해 종교적 생명력을 불어 넣는 점안(點眼)의식이 거행되면 금빛 찬란한 불상과 화려한 색의 불화는 비로소 부처의 세계로 바뀝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13<67. 문수사 지장시왕도를 그리며 남긴 기록, 문수사 지장시왕도 발원문, 조선 1774년, 종이에 먹, 서산 문수사>

설훈과 화승 일곱 명을 비롯해 1774년 불사에 참여한 승려의 이름과 조성시기, 봉안될 공간을 적은 글입니다. 화승 설훈과 증명을 맡은 국밀은 불화 뒷면에서 나온 편지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14<문수사 지장시왕도에서 나온 편지, 문수사 지장시왕도 서신, 조선 1773~1774년, 종이에 먹, 서산 문수사>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15<문수사 지장시왕도에서 나온 편지>

<지장시왕도>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승려들이 주고받은 편지 여섯 통이 발견되었습니다. 그중에서 화승 설훈과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서산 삼길암의 승려 광률이 불상에 금을 다시 입히는 작업을 비밀스럽게 부탁하는 편지가 있습니다. 또한 광률이 문수사 청련암의 최고 어른 스님께 불상에 넣을 복장물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도 있습니다. 광률은 왜 비밀스럽게 요청했을까요? 어떤 이류로 불화 뒷면에 편지를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화가 완성되기 전 불사 현장의 이모저모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승려장인 복장물 20220125_16<66. 설훈 등이 그린 지장시왕도, 문수사 지장시왕도, 설훈 등 8명, 조선 1774년, 비단에 색, 서산 문수사>

뛰어난 그림 솜씨로 승려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던 화승 설훈이 충청남도 서산 문수사 청련암에 봉안하려고 조성한 지장시왕도입니다. 설훈은 불화뿐 아니라 불상 제작과 개금에도 참여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18세기에는 불상 제작 수요가 줄어 들면서 화승이 불상 중수와 개금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에는 다채롭게 뻗어가는 신비로운 빛과 구름 가운데 지옥의 영혼을 구원하는 지장보살, 지옥에서 죄를 심판하는 시왕과 무리를 그렸습니다. 이 불화의 뒷면에서는 제작 당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승려들의 편지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과거 불사 현장의 생생한 흔적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불사 현장의 이모저모
사찰에 필요한 것을 만드는 일인 ‘불사(佛事)’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을까요? 우리는 이미 완성된 불상과 불화만 접하므로 과거의 불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충청남도 서산 문수사 청련암에는 불화를 그릴 때 현장에서 승려들이 주고 받았던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이 편지는 18세기 후반 전문적인 화승 집단이 서로 어떻게 연락했는지, 불사 주문과 진행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알려 주며, 재료 수급 과정과 인맥에 따른 개인적인 요청 등 작업 현장의 이모저모를 생생히 보여 줍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3.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