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March 4, 2023

순천 송광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 관음전에 모셔진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보물)이다. 발원에 따르면 1662년 궁중나인 노예성이 소현세자의 셋째아들 경안군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되었던 불상이다.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성 혜희와 금문이 조각하여 조성하였는데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인 평범하면서 담백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복장유물로는 발원문과 함께 후령통, 글자가 적혀 있는 남색저고리, 초록색배자, 목숨 ‘수(壽)’자와 영지무늬를 화려한 금실로 수놓은 붉은색 비단 등이 있다.

순천_송광사_목조관음보살좌상<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이 불상 조성을 발원한 사람은 인조 때 일가족이 거의 몰살당할 때 살아남은 소현세자의 셋째아들을 모셨던 궁중 나인들이다. 경안군이 오랜 귀향살이를 끝내고 결혼하게 되자 그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바램이 담겨 있다. 이 유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반영하고 있어 지금까지도 귀중하게 여겨지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승려장인-복장물-20220125_06<저고리>

낡은 남색 저고리와 녹색 배자, 붉은색 비단 등은 모두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관음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 내부에서 나온 복장물입니다. 복장물의 중심은 갖가지 성물을 담은 후령통이지만, 함께 발견된 남색 저고리와 초록색 배자, 목숨 ‘수(壽)’자와 영지무늬를 화려한 금실로 수놓은 붉은색 비단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저고리 안쪽에는 1662년 정월 궁중 나인이었던 노예성이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경안군 부부 등의 장수를 기원하며 관음보살상을 발원했다는 내용이 정성스레 적혀 있습니다. 녹색 배자 안쪽에는 시주자 유씨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글도적혀 있습니다. 저고리와 같은 옷을 복장물에 넣는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 옷들은 시주자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동시에 핵심적인 복장을 넣은 후령통 같은 복장물을 고정하고 보호하며 공간을 채우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승려장인-복장물-20220125_07 <2.저고리 위에 덧입는 배자, 3. 발원문>

성품을 돌이켜 들으시고 원통을 깨우치셨네. 관음불이 관음의 이름 주시고 위로는 자비의 힘을 갖추고 아래로는 자애를 갖추게 하니 32응신(應身)이 온 누리에 두루 미치네. 경안군 이씨와 부인 허씨 두 분의 수명장원을, 경자생 박씨와 노씨의 수명장원을, 윤씨의 수명장원을 기원합니다. 신축생 나인 노예성이 발원하여 1662년 정월에 관음보살상을 삼가 조성하니 이로써 공덕이 두루 미치고 나를 비롯한 모든 중생이 함께 성불하기를 기원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승려장인-복장물-20220125_08<4. 후령통>

중앙박물관특별전-승려장인-복장물-20220125_09<5. ‘수’자와 영지무늬가 있는 비단>

장수를 의미하는 ‘수(壽)’자 직물을 넣은 까닭
경안군의 아버지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귀국한 지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떴고, 어머니 강씨도 인조 독살 시도라는 누명을 쓰고 사사되었습니다. 1647년 네살이었던 경안군은 제주로 유배를 가고 이듬해 두 형마저 죽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1659년 그가 경안군으로 복권되고 1661년 허씨와 혼인한 점을 고려하면, 1662년 완성된 보살상에서 나온 장수를 상징하는 ‘수(壽)’자가 수놓아진 직물은 더욱 특별합니다. 한 많은 삶을 뒤로하고 혼인한 경안군의 평온한 미래와 무병장수를 간절히 바란 나인들의 염원이 깃든 복장물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관음전>

송광사 관음전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聖壽殿)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 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3.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이다. 높이 117.5 cm의 큰 불상으로 지권인(智拳印) 수인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굴 표정은 순박하면서 위엄이 있다. 몸체는 약간 앞간 앞으로 굽었는데 옷주름의 표현이 부드러우면서 볼륨감이 있다. 발원문에 따르면 광해군 때 장열왕비가 11존의 불상과 불화를 조성했다고 한다. 이 불상은 11존의 불상 중 유일하게 그 내력이 밝혀진 불상이다. 당대 최고의 고승 벽암이 총감독을 했으며 현진, 수연 등 17세기를 대표하는 13명이 조각승들과 4명의 치장(治匠)이 참여한 작품이다.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01<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현진 등 17명, 조선 1622년,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03<옆에서 본 모습>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04<옆에서 본 모습>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05<뒤에서 본 모습>

광해군 비인 장렬왕후가 발원하여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히기 위해 제작한 불상 열한 구 중 하나입니다. 자수사와 인수사는 왕실 여인들의 말년 출가 수행처로, 권래에 있던 내불당과 달리 궐 밖에 있었습니다. 이 불사를 위해 현진, 응원, 수연, 법령을 비롯한 조각승 열세 명과 철을 다루는 승려장인 네 명이 모여 공동작업을 펼쳤습니다. 이 가운데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으로 평가받는 현진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설로 남은 조각가 영장에 비교되기도 합니다. 현진, 응원, 수연 등 조각승 집단을 이끄는 거장들이 협업하여 왕실 사찰의 존상을 만든 사례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발원문에 따르면 17세기 전반에는 승려들의 총대장이었던 벽암 각성(1575~1660년)이 전국에서 모인 승려 장인을 이끌고 광해군의 비 장렬왕후가 발원한 자수사와 인수사 불사를 감독했다. 재원은 왕실 내탕금으로 마련했고, 뛰어난 승려 장인을 모집해 불상 11구와 불화 7폭을 제작했다고 한다.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06<목조비로자나여래좌상 조성 발원문, 조선 1622년, 비단에 붉은 먹,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왕실 여인들의 말년 출가 수행처였던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할 불상과 불화를 조성하며 남긴 바람이 담긴 글(발원문)입니다. 이 글에 따르면 불사의 재원은 왕실 재산인 내탕금으로 마련했고, 뛰어난 장인을 모집해 불상 열한 구와 불화 일곱 폭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발원문 마지막 부분 상단에는 불사가 교리에 맞춰 진행됐는지를 확인하는 증명 역할에 당대 최고의 고승으로 존경받언 고한 희언과 벽암 각성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불상을 조각한 화원 13명과 철을 다루는 승려 장인 4명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불상안에는 노란 보자기에 싸인 후령통과 경전, 다리니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07<불상 안에서 나온 신성한 물건들, 목조비로자나여래좌상 복장물, 조선 1622년 무렵, 국립중앙박물관, 보물><1. 후령통과 오색실>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11<2. 다라니>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08<3. 오천오백물명신주재장밀죄경>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09<3. 오천오백물명신주재장밀죄경>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10<3. 오천오백물명신주재장밀죄경>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220125_12<4. 대방광불화엄경소>

12. 불상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복장물은 불상 조성의 역사도 보여주는 소중한 타임캡슐입니다. 불복장의 핵심인 노란 보자기에 싸인 후령통과 경전을 비롯한 다라니 수백 장으로 이 불상의 내부가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5,500명의 부처 이름과 신비한 주문으로 죄를 없애게 한다는 <오천오백불명주제장멸죄경>은 고려대장경을 다시 인출하여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화엄경> 주석서인 <대방광불화엄경소>는 불상 조성 이후인 1629 ~1631년에 연천 용복사에서 만든 목판을 그대로 찍은 것으로, 불상을 만든 다음에 다시 넣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구름무늬가 있는 감색 비단으로 표지를 감싸고 다섯개의 구멍을 뚫어 붉은 실로 묶었습니다. 이외에도 <묘법연화경>과 그 주석서인 <묘법연화경요해서>와 같은 경전이 불상 안에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서울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이다. 조성발원문과 불상대좌 밑면 명문에 따르면 15세기 후반과 1628년 경에 2번에 걸쳐 조성된 유물이다. 석가여래삼존좌상은 종의 후궁이 시주하고 성종의 후궁이 발원했으며, 1682년에 조성된 불상들은 인목대비가 발원하여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유물들은 조선시대 왕실의 후원을 받아 조성된 불상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3<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에서 출토된 불상들(보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은 조선전기에 조성된 석탑으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축소한 형태를 하고 있다. 탑의 기단부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불상 대좌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탑신은 팔각모서리에 기둥을 새겨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은 없다. 조각수법은 세밀하거나 정교하지 않으며, 장식적인 용도로 바뀐 조선전기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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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2<팔각오층석탑에서 출토된 불상들>

1층 몸돌에서는 감실이 있는 석가여래삼존좌상과 불상들은 15세기 후반 성종의 후궁 명민김씨가 발원하여 조성되었다. 이 불상들은 고려후기 불상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1<금동석가여래 삼존좌상, 15세기>

남양주_수종사_팔각오층석탑_출토유물_일괄
<감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13
<석가여래>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11
<관음보살>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12
<지장보살>

1682년 인목대비가 발원하고 조각승 성인이 제작인 20구을 불상들은 기단 가운데 받침, 1층 지붕돌, 2층 지붕돌, 3층 지붕돌에 봉안되었다. 이 불상들은 허리를 구부려 웅크린 자세를 하고 있으며 비례도 맞이 않은편이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5<기단 가운데 받침돌에 봉안되었던 불상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6<기단 가운데 받침돌에 봉안되었던 불상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4<1층 지붕돌에 봉안되었던 불상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7<2층 지붕돌에 봉안되었던 불상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유물(보물) 20220125_08<2층 지붕돌에 봉안되었던 불상들>

이 작은 금동불들은 1483년과 1628년에 왕실 여인들이 발원하여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안에 봉안했습니다. 1583년에 봉안된 석가여래삼존좌상은 제작자는 알 수 없지만, 태종의 후궁이 시주하고 성종의 후궁이 발원했습니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글에는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면서 금동석가여래좌상을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1628년의 불상들은 인목대비가 발원하고 조각승 성인이 제작했습니다. 조각승 성인은 1622년 광해군 비인 장렬왕후가 발원한 왕실 불사에도 참여했습니다. 둥글고 통통한 얼굴과 미소 띤 표정, 목을 앞으로 내밀고 허리를 구부려 웅크린 자세가 앞서 봉안되었던 석가여래삼존좌상과 다릅니다. 같은 탑에서 나온 불상이지만 서로 다른 시기의 불상양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국보)

경북 영주시 이산면 흑석사에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국보)이다. 1990년 대웅전에 있는 불상에서 많은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복장유물 중 발원문에 조선초 세조 때(1458년) 법천사 삼존불로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불상은 상투모양의 육계, 옷주름 등에서 조선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복장유물로는 <불상 조성 권고문>, <불상 조성 복장기>, <볼조삼경합부> 등이 나았다. 38종의 직물, 5향, 5곡, 유리, 호방 등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는 불상 복장에 관한 절차를 설명한 <조상경>에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국보_제282호_영주_흑석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_및_복장유물(2014년_국보_동산_앱사진)001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국보)>

 흑석사목조아미타불좌상병복장유물<복장유물>

<불상 조성 권고문>은 불성을 조성하게 된 경위, 시주항목, 주요 시주자, 불상 조성을 주도한 승려의 이름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의빈권씨, 효령대군 등 왕실 종친의 명단을 볼 수 있다.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 20220125_01<불상 조성을 위해 시주를 권하는 글, 아미타여래삼존상 조성 보권문, 조선 1457년, 종이에 먹, 영주 흑석사, 국보>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 20220125_02<앞부분>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 20220125_03<뒷부분>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 20220125_11<주요 내용>

지금부터 56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작은 책입니다. 쉽게 구겨지지 않는 딱딱한 장지를 썼고 표지는 초록색 비단을 덮어 공들여 만들었습니다. ‘대공덕소’라는 제목이 있는 면은 아코디언처럼 펼쳐집니다. 제목이 있는 앞표지를 넘기면 불상을 조성하게 된 연유와 공양.보시.채색.칠 등의 시주 항목이 차례로 나옵니다. 1457년 정암산 법천사에 봉안할 불상 제작에 시주를 권하기 위해 만든 이 책에는 시주자로 참여한 의빈 권씨, 명빈 김씨, 효령대군 등 내명부와 왕실 종친 명단, 불상 조성을 주도한 승려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상은 이 글이 작성된 후 1년 8개월 뒤에 완성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불상 조성 복장기>에는 효령대군을 비롯하여 발원과 제작과정에 관여한 인물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명단에는 불상조성에 참여한 화원, 부금, 칠, 각수, 등의 구체적인 업무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 20220125_04<불상 제작에 뜻을 모으고 참여한 사람들 명단, 아미타여래삼존상 조성 복장기, 조선 1458년, 명주와 종이에 먹, 영주 흑석사, 국보>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 20220125_05<가운데 부분>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 20220125_06<뒷부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