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March 11, 2023

송시열 초상(국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송시열 초상(국보)이다. 조선시대 초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가로 56.5cm, 세로 97cm로 비단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반신상이다. 과장되게 표현된 거구의 몸체와 개성적인 눈썹, 광대뼈의 주름에서 학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조선후기 지배계층이었던 서인이 영수이자 그들의 정신세계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송시열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송시열의 초상은 현재 5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이 초상화를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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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초상(宋時烈 肖像), 국보, 작가모름, 조선, 18세기, 비단에 색>

그림 오른쪽에는 그가 45세 때 쓴 글이 있고, 그 위쪽에 정조가 쓴 찬문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얼굴부분>

평상복 차림인 심의(深衣)에 복건을 쓰고 공수 자세로 오른쪽을 향한 반신상이다. 송시열(1607~1689)은 평생 주자의 학설을 잇는 것으로 자부했다. 그의 제자들은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형성하였고, 후학들은 송시열을 추앙하고 존승하였다. 화면 상단에 어제와 1778년 간기(干記)가 있어서 18세기에 그려진 이모본으로 보인다. 얼굴의 주름과 수염에 가해진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며, 옷 주름은 고른 선으로 간략히 표현되어 있다. 왼쪽 어깨가 오른쪽보다 약간 올라가 있으며 목이 앞으로 나온 구부정한 노인의 자세, 화면의 반을 차지하는 과장된 체구 등은 조선후기 학문과 사상을 지배한 거유(巨儒)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2. 국가문호유사포털, 문화재청, 2023년

 

혼천의 및 혼천시계(국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혼천의(渾天儀) 및 혼천시계(국보)이다. 조선후기 현종 때(1699년) 송이영이 만든 천문(天文)시계로, 시간측정과 천문학 교습을 위해 홍문관에 설치하여 사용하던 것이다. 시계의 지름은 40 cm이고 그 중심에 지구의가 있는데, 외형은 기조의 혼천의와 같은 형태이다. 2개의 축을 동력으로 하여 여러 톱니바퀴를 움직이는 시계장치와 혼천의가 연결되어 시간가 천제의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조선시대 천문시계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물이다. 조선의 전통적인 물레바퀴 원리를 동력으로 삼은 시계장치와 서양식 기계시계의 원리를 조화시켜 만들어 낸 독창적인 형태의 천문시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혼천의 및 혼천시계(국보)>

천문시계로 서양의 톱니바퀴 시계와 조선의 혼천시계를 결합하여 만든 독창적인 시계로 학자들에게 천문학 교육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천체와 별의 움직임을 이해하는데는 이 혼천시계의 원리가 상당히 유용했을 것이다. 시계 기능을 하는 톱니바퀴들로 구성된 기계장치는 나무상자속에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혼천의 혼의 또는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천체 위치측정기로서 일월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데 쓰였던 천체관측기기이다. 혼천의는 오래 전부터 천문관측에 사용하여 왔으나, 문헌상으로는 세종실록에 정초, 박연, 김진 등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 처음이다. 그 후 개량을 거듭하여 물레바퀴를 동력으로 하는 시계와 연결하여 혼천시계로 사용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타버린 것을 이민철, 송이영 등이 이를 개량하여 경희궁에 설치하였으나 대부분 소실되었다. 혼천시계의 일부인 혼천의가 현재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실물 혼천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혼천의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앞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고려대박물관,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창경궁 자격루 누기(淚器, 국보), 조선시대 물시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창경궁 자격루 누기(淚器, 국보)이다. 최근까지 덕수궁 마당 한편에 전시되어 있다가 최근에 고궁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보루각 자격루로 불렸던 이 자격루 누기는 중종 31년(1536)에 만든 것으로 창경궁에 있던 것이다. 조선 세종 때 (1434년) 장영실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 북이 자동으로 울리는 물시계가 제작되었으나 오래 사용하지 못하고 중종 때(1536년) 유전 등이 개량하여 만들었다. 현재는 자동시보장치는 남아 있지 않고 3개의 물그릇과 2개의 물받이통만 남아 있다. 중국 광동성에 남아 있는 명나라 물시계보나는 약간 늦게 만들어졌다. 자동시보장치가 있는 원래의 물시계는 복원되어 고궁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중국 베이징에도 시간을 알려주던 고루(鼓樓)에 비슷한 형태의 물시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창경궁 자격루 누기(국보)>

창경궁 자격루 누기는 중종 때(153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는 물을 받는 수수호와 2단의 파수호가 남아 있다. 중종대의 물시계는 2단의 파수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창경궁 명전전 뒤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며, 원래의 돌받침대는 명전전 뒤에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단의 파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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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그림 부조가 있는 수수호(물받이통)>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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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본 모습>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복원해 놓고 있는 자동물시계인 자격루를 볼 수 있다. 세종대에 장영실이 고안한 자동시보장치가 있는 시계을 물을 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계장치가 상당히 정밀하고 복잡하여 중종대 이후 고장난 것을 복구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국립고궁박물관에 복원해 놓은 보루각 자격루>

물시계는 누각 위에 물을 공급하는 3단의 파수호(왼쪽 상단)를 올려놓고 중간에 2개의 수수호(가운데), 자동시보장치를 동작하기 위한 각종 기계장치(오른쪽 하단), 기계장치에 의해 징,북,종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보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위에서 본 모습>

자격루가 울리는 시각
자격루의 시간을 알리는 장치는 하루 동안 2시간에 한번씩 시각을 알리는 종과, 밤 동안 시각을 알리는 북과 징으로 구성됩니다. 옛날에는 하루를 자시(밤11시~새벽1시)로 시작하여 해시(밤9시~11시)로 끝나는 시간 체계로 구분하였고 매시마다 자격루의 종을 울렸습니다. 야간에는 해지는 시각부터 해뜨는 시각(하지 때 19시48분~03시52분경)까지를 하루 밤으로 설정한 후 하루 밤을 다섯 등분하여 이를 ‘경’이라 부르고 북으로 알렸으며 1경을 다시 다섯 등분하여 ‘점’이라 부르고 징으로 알렸습니다. 밤의 길이는 게절에 따라 변화하므로 경과 점의 시각 역시 달라졌습니다. 지금 자격루의 시각은 사시(오전9시~11시)부터 시작하여 유시(오후5시~7시)까지로 맞추어 놓았고, 밤에만 울렸던 북과 징을 관람객들이 들을 수 있게 하지를 기준으로 삼아 14시간을 앞당겨 놓았습니다. 약600년 전에 제작된 물의 힘으로 움직이는 시계를 복원한 것이므로, 현대의 시계와 비교하여 1~3분 오차가 발생한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OLYMPUS DIGITAL CAMERA<시간 알림장치 내부>

 자격루의 복원 제작 과정에서 작동을 모의 시험하기 위해 만들었던 시보장치이다. 시보장치는 하루12시간과 밤 시간인 5경을 시각과 청각으로 알리는 장치이다. 물시계 쪽의 잣대 위에서 떨어진 작은 구슬이 상자 내부로 굴러 들어가 상자 안의 큰 구슬을 밀쳐 떨어뜨리고, 이 큰 구슬이 움직이면서 상자 위쪽의 인형이 종, 북, 징을 울리는 구조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OLYMPUS DIGITAL CAMERA<시보장치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시간을 알리는 12지신 인형>

OLYMPUS DIGITAL CAMERA<물시계에 물을 공급하는 파수호>

시간을 알려주는 시보장치는 인형이 북.종.징을 울리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시보장치>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 해시계, 별시계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시계 중의 하나이다. 물시계를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도 물시계가 사용되었으며, 중국과 인도 또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통일신라시대에 물시계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시간을 알려주던 고루에는 설치되어 있는 자동 물시계인 비루(碑漏, Beilou)가 있다. 우리나라의 자격루에 비해서 웅장한 면은 없지만, 삼단의 파수호와 시간츨 측정하는 자가 설치된 수수호, 시보를 작동하는 기계장치와 소리를 내는 시보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중국 베이징 고루에 있는 물시계(비루)>

자동 물시계, 자격루
조선시대 왕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각과 절기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제왕은 백성들의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시각제도는 권위와 질서의 상징이었고 통치의 수단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이용하던 물시계는 조선 태종대에 시각 알림 장치를 자동화하여 ‘스스로 치는 시계’라는 뜻으로 자격루가 제작되었다. 세종 임금의 명으로 1434년(세종16) 장영실이 완성하여 경회루 남쪽 보루각이라는 전각에 설치하였다. 자격루의 시각을 알려주는 인형이 치는 종소리와 북소리를 듣고, 이 신호를 광화문을 거쳐 종류에 전달하여 북과 종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 이에 따라 인정(통행금지 밤 시각)과 파루(통금해제 새벽시각)에 궁궐의 문과 한양의 도성문이 열리고 닫혔다. 낮에는 오정(낮12시)을 알려 주고, 밤에는 계절에 따라 밤의 길이가 변하게 되므로 계절마다 다르게 1경에서 5경까지의 밤 시간을 알려줌으로써 당시 한양의 사람들의 생활리듬을 편리하게 하는 표준시계가 되었다. 세종대의 자격루는 그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1536년(중종31)에 다시 만들어졌는데 그 일부인 물항아리(파수호, 수수호)가 현재 덕수궁에 남아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보물), 숙종 때 다시 새긴 천문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석(複刻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 보물)이다. 별자리를 돌에 새겨 놓은 천문대로 조선초 태조 때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다시 돌에 새긴 것이다. 둥글게 그린 하늘 안에 1,467개의 별이 그려져 있고 아래에는 천문도를 만들게 된 경위와 명단이 적혀 이다. 전체적인 구성의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태조 때 새긴 천문도와 완전히 같고 권근이 작성한 설명문이 그대로 적혀 있다. 대리석에 다시 새긴 것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새겨져 있는 글씨와 별이 대부분 판독 가능하다. 이 천문도를 만든 경위 등은 <증보문헌비고> 등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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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대에 다시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 보물, 조선 16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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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모습>

윗부분에는 별자리와 관련된 각종 설명등이 새겨져 있다. 제목이 위로 올라간 점이 바뀐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윗부분>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천문도>

OLYMPUS DIGITAL CAMERA<천문도 설명>

OLYMPUS DIGITAL CAMERA<아랫부분>

이 각석은 태조대에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모되어 숙종대에 다시 새긴 것이다. 영조 대에 편찬한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따르면 1687년(숙종13)에 태조대 각석을 바탕으로 새로 새겨서 관상감에 보관하였으며, 1770년(영조46)에는 관상감 내에 흠경각을 지어 신.구본을 함께 보관하였다고 한다. 각석의 내용은 태조대의 각석의 내용과 같고, 흰 대리석을 사용했다. 크기면에서는 숙종대의 각석이 태조대의 각석보다 높이는 낮고 너비는 작지만, 두께는 더 뚜껍다. 그리고 제목인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위치가 태조대 각석은 하단에 있고 숙종대 각석은 상단에 있는 차이점이 있다. 이 각석은 태조대에 제작한 것에 비해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새겨져 있는 글씨와 별이 대부분 판독 가능하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국보), 태조 때 만든 별자리를 새겨놓은 천문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천상분야열차지도각석(국보)이다. 석비형태의 직육면체 돌에 천문도를 새겨 놓은 것이다. 태조는 권근을 비롯한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조선의 개국이 하늘의 뜻임을 알리고자 제작하였다. 고구려가 만들었던 천문지도를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변화된 내용을 반영하여 새긴 것이다. 윗부분에느 짧은 설명과 함께 천문도가 새겨져 있고, 아랫부분에는 천문도 이름, 작성 배경과 과정, 제작에 참여한 사람의 명단과 날짜 등이 젹혀 있다.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 다음으로 오래된 천문도이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여 그 변화를 알아내어 계절의 변화 등을 예측하고 하늘을 뜻을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고대 이래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왕의 학문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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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대에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 국보, 조선 13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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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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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본 모습>

고구려의 천문지식을 기초로 하여 1395년(태조4)에 완성된 것으로 중국 남송 시대의 순우천문도(谆祐天文圖, 1241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하늘의 형상을 십이차(十二次)와 분야(分野)에 따라 그려 놓은 것’이란 뜻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돌의 뒷면에는 배치만 다른 천문도가 거꾸로 새겨져 있다. 한 면에 새겨진 글자수는 2,932자이며 별의 개수도 1,467개에 이른다. 천문도에 새겨진 권근의 글에 의하면 고구려의 각석천문도가 전란 중에 대동강에 빠졌는데 태조대에 종이로 된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고쳐 새겼다고 한다. 각석의 재질은 빛이 검고 광택이 있는 오석(흑요암)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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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 천상열차분야지도, 복제, 조선 15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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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

1571년(선조4)에 태조 대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의 천문도를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은 것이다. 이 천문도는 관상감에서 여러 점 제작되어 2품 이상의 문신들에게 하사되었다. 현재 동일한 본으로 일본의 텐리대학교 소장품이 알려져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윗부분에는 별자리와 관련된 각종 설명등이 새겨져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십이국분야급성수분야천구를 12개로 나눈 12차와 이에 대응하는 지역인 12분야를 기록(A1, A2), , 일수는 해의 궤도 운행에 대한 설명(B), 월수는 달의 궤도 운행과 황도와 적도가 만나는 설명(C), 북.서.남.동의 순서로 각 방위의 칠수에 해당하는 별의 숫자와 도수의 합(D1,D2,D3,D4), 24절기마다 저녁과 새벽에 남중하는 별자리가 기록(H1)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윗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목판본>

가운데 부분에는 천문도가 그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목판본>

OLYMPUS DIGITAL CAMERA<천문도 그림(설명)>

OLYMPUS DIGITAL CAMERA<천문도 설명 그림>

  1. 북극성, 북극은 자미원의 중심에 다섯 개의 별로 구성되는데 다섯번째 성이 하늘의 북극을 가리키는 천추성이다. 두번째 별은 해를 주관하며 하늘나라의 제왕이라고 한다.
  2. 북두칠성, 북쪽 하늘에 국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 7개의 별들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로 여겨졌다.
  3. 자미원, 북극을 중심으로 한 별자리로 옛 사람들은 북극성 주변을 하늘의 임금이 사는 궁궐인 자미궁이라 여겼고, 자미원에 있는 별은 궁궐으르 지키는 장군과 신하로 여겼다.
  4. 태미원, 북두칠성 남쪽에 위치하는 별자리로 하늘 나라 임금과 대신들이 모여서 나랏일을 의논하는 곳이다.
  5. 천시원, 자미원 옆에 위치하는 별자리로 하늘 나라의 백성들이 사는 하늘 나라의 도시이다.
  6. 견우별과 직녀별, 천시원의 위쪽으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별자리다.
  7. 규수, 하늘나라의 무기고에 해당하며 문필의 신으로 섬겨졌다.
  8. 삼수, 하늘 나라의 용맹한 장수를 뜻하는 별자리로 가운데 세별 중에 중심별이 대장군 별이고 좌우에 별은 참모별이다.
  9. 남두육성, 남쪽 하늘에 있는 곡식의 양을 재는 됫박이라는 듯으로 곡식의 양을 공평하게 하며 임금의 수명을 나타낸다고 여겼다.
  10. 익수, 하늘나라의 음악을 관장하는 별자리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별자리 그림
별자리 그림은 네 개의 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원을 내규(內規)라 하는데 항상 지평선 위에 나와 있기 때문에 계절과 같이 항상 관측이 가능한 영역이다. 두번째와 세번째 원은 서로 엇갈려 있는데 천구 북극을 중심으로 하는 원은 지구 적도면을 하늘에 연장한 것으로 천구 적도 또는 간단히 적도(赤道)라 한다. 적도와 중심이 어긋나 있으며 같은 크기를 가진 원은 태양이 천구 위를 운행하는 경로를 나타내는데 이를 황도(黃道)라 한다. 가장 바깥에 있는 네번째 동심원은 외규(外規)라 한다. 이 원은 관측이 가능한 남쪽 지평선에 올라올 수 있는 한계의 별들의 영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외규 밖에도 별이 있으나 한양의 위도에서는 관측할 수 없는 별들이 된다. 이 천문도에 있는 모든 별들은 4개의 영역으로 나뉜다. 천구 북극 중심에 있는 별들의 영역을 자미원(紫微垣)이라 하는데, 그 주위에 인접하여 태미원(太微垣)과 천시원이(天市垣)이 있다. 그 밖의 영역을 방사선의 형태로 28개 영역으로 나누어 이십팔수(二十八宿)라 한다. 별자리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별의 개수는 총 1,467개이고, 별자리는 모두 295개로 구성되어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아랫부분에는 별자리지도를 새긴 내력을 적어 놓고 있다. 논천이라는 제목으로 하늘과 땅의 관계, 하늘의 생김새에 대한 설명(G1), 권근이 짓고 설경수가 쓴 천문도의 유래와 제작과정, 의의가 기록됨, 서운관의 관리들과 천문도를 만든 시기(G2) 등이 적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랫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목판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개국이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천명을 경건하게 받들겠다는 의지를 온 백성에게 알리려는 목적으로 1395년(태조4)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를 제작하였다.(국보). 이 천문도는 고구려 시대 평양에 있었던 별자리판의 탁본을 기초로 하여 돌에 1,467개의 별을 새긴 천문도이다. 이 천문도는 오랫동안 경북궁에 보관되어 오다가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불타버리자 그 존재가 잊혀졌다. 그 후 돌에 새긴 천문도는 훼손이 심하여 1687년(숙종13)에 다시 돌에 새겨 창덕궁 밖 관상감에 보관하게 되었다.(보물837호) 이후 영조 때 경복궁 터에서 태조 때의 천문도 각석을 발견하고 관상감 안에 흠경각을 새로 지어 숙종본과 함께 보관하였다. ’천상’이라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들과 천문 현상을 의미하고, ‘열차’는 하늘의 구역을 12개로 나눠 차례로 순서에 따라 배열해 놓았음을 의미한다. 또 ‘분야’는 하늘의 별자리 영역을 지상의 각 영역과 서로 대응하여 나누어 놓은 영역을 말한다. 따라서 ‘하늘에 일어나는 천문 현상을 보여주는 별자리를 12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과 서로 대응하도록 별자리 이름들을 그려 놓은 그림’이라는 뜻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이 붙였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이 천문도는 경북궁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불타버리자 그 존재가 잊혀졌다. 그 후 숙종 때(1687년) 다시 돌에 새겨 창덕궁 밖 관상감에 보관하게 되었다. 이후 영조 때 경복궁 터에서 태조 때의 천문도 각석을 발견되어 관상감에 흠경각을 새로 지어 숙종본과 함께 보관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모습>

제작경위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개국이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천명을 경건하게 받들겠다는 의지를 온 백성에게 알리려는 목적으로 1395년(태조4) ‘천상열차 분야지도’라는 천문도를 제작하였다(국보). 이 천문도는 고구려 시대 평양에 있었던 별자리판의 탁본을 기초로 하여 돌에 1,467개의 별을 새긴 천문도이다. 이 천문도는 오랫동안 경복궁에 보관되어 오다가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불타버리자 그 존재가 잊혀졌다. 그후 돌에 새긴 천문도는 훼손이 심하여 1687년(숙종 13)에 다시 돌에 새겨 창덕궁 밖 관상감에 보관하게 되었다. 이후 영조 때 경복궁 터에에서 천문도 각석을 발견하고 관상감 안에 흠경각을 새로 지어 숙종본과 함께 보관하였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명칭과 뜻
‘천상(天象)’이란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들과 천문 현상을 의미하고 ‘열차(列次)’는 하늘의 구역을 12개로 나눠 차례로 순서에 따라 배열해 놓았음을 의미한다. 또 ‘분야(分野)’는 하늘의 별자리 영역을 지상의 각 영역과 서로 대응하여 나누어 놓은 영역을 말한다. 따라서 ‘하늘에 일어나는 천문 현상을 보여주는 별자리를 12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지상의 각 영역과 서로 대응하도록 별자리 이름들을 그려 놓은 그림’이라는 뜻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