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pril 2023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반송재, 청나라 말 학자의 서재(재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의 ‘반송재’라는 전시공간은 청나라말 중국 학자의 서재와 내실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당시 유행했던 고증학이 반영된 서재의 모습으로 수집한 골동품을 비롯하여 그림 등으로 방을 장식하고 있다. 당시 한국 선비들의 사랑방을 재현해 놓은 모습과 비교해 보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1<세계문화관 반송재>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3<책상과 문방구>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2<수집한 골동품으로 장식한 벽면>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4<산수화, 이사달, 1610년, 종이에 먹>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5<경태람동향로, 귀갑문/기린/보수문,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21
<1. 금동박산향훈로, 서한, 2. 동박산향훈로(소형), 한 1~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6<3. 박산훈향로, 남조 6세기, 강서홍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7
<4. 청자향훈로, 서진 월주요, 3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8
<5. 교태유도삼족정향로, 당 8세기초>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09
<6. 소형향로명기(5점), 원대 용천요, 13~14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10<7. 백자삼족향로, 송 복건건녕요, 12~13세기, 8. 석조향동자, 명 15~16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11
<9. 청화백자향로, 원말명초 14~15세기, 10. 남유묘금어문향로, 명초 14~15세기, 11. 삼족향로, 금-원 13~14세기, 균요계학벽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12
<12. 흑유향완, 명, 섬서요두요, 15~16세기, 13. 청자향로, 원말명초, 용천요, 14~15세기>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22
<백유쌍용쌍이병, 당>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13<고석도, 고양(17세기 활동), 목판화, 십죽재서화보(17세기 중엽), 현본 연대 미상>

중앙박물관 세계관 반송재 20220215_23
<수묵산수화, 사사표(1615~1698), 17세기 후반, 종이에 먹>

반송재(伴松齋)
반송재는 중국미술사학자이자 국립중앙박물관 제9대 관장을 역임한 김홍남박사가 세계문화관 개관을 기념하여 헌정한 전시실입니다. 중국 청말(18~19세기) 학자의 집을 서재와 내실을 중심으로 재현하고 그의 중국수집품을 배치하여 일상의 미학적 품격과 상고취향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자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명.청대 중국 회화

중국에서는 처음에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당대 후기부터 자연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실제 중송대 초기에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는 수준높은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북송 후기에는 화면을 단순화하여 느낌을 묘사하는 중국회화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명대 초기에는 송대 회화의 전통을 따르는 절파(浙派)가 궁정과 민간에서 활약했고, 중기 이후에는 원대의 문인화를 계승한 오파(吳派)가 소주(蘇州)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청대 초기  문인화의 전통 계승하는 화가들도 있었으며 반청의식을 가진 승려화가들은 개성적인 화법을 창조했다. 청대 중기 이후에는 주요 활동 지역별로 화파를 형성하면서 활발히 활동한다. 또한 서양화법이 소개되어 전통적인 중국화 재료에 서양화의 투시법, 명암법을 구사하는 동서 융합의 화풍이 출현하기도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01<산수, 동기창(1555~1636), 명, 비단에 먹>

동기창은 중국 명대의 화가로 자는 현재, 호는 사백, 향광거사이다. 그는 관리로서의 명성도 높았지만 시문에 능하며 서예와 그림에 뛰어났다. 화론에도 정통하여 중국 역대 회화를 남종화와 북종화로 구분하고, 문인화 중심의 남종화를 종통으로 삼는 ‘남북종론(南北宗論)’을 주장하여 후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기교에 치중하는 직업화가의 화풍을 비판하고 남종화의 시조인 왕유를 비롯하여 동원, 황공망 등의 수묵산수화법을 기초로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다. 또한 서화 감정에도 일가견이 있어 많은 작품을 감식하고 소장하기도 했다. 이 그림은 모두 8면으로 이루어진 산수 화첩으로 다양한 필법과 풍부한 먹색을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02<후적벽부, 문징명(1470~1559), 1558년 작, 종이에 먹>

문징명은 중국 명대의 서화가로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 어려서부터 왕희지, 구양순, 조맹부, 소식, 황정견 등과 같은 대가들의 서체를 스스로 습득하면서 문인화가로 갖추어야 할 소양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용필법의 기초를 다졌다. 이 작품은 소동파로 널리 알려진 북송시대 문학가 소식의 후적벽부를 문징명이 행초서체로 쓴 것이다. 소식의 적벽부는 중국의 화단과 서단에서 가장 애호된 문학작품으로 소식이 황주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현실을 잊고 자연을 만끽한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문징명의 나이 89세 때에 쓴 것으로 그의 고매한 성품과 함께 문인의 서권기 넘치는 필체가 잘 드러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03<산수, 석도(1642~1707), 1695년작, 종이에 먹>

석도의 본명은 주약극, 법명은 원제이며, 석도 이외에도 고과화상, 대척자 등의 여러 호를 사용하였다. 명나라 황실의 후예로 명나라가 망한 후 승려가 되어 여러 지방을 떠돌아 다녔다. 석도는 청대 초기 팔대산인, 곤잔, 홍인과 함께 네명의 승려화가, 즉 사승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석도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필치로 개성이 두드러진 인물, 산수, 화훼를 그렸다. 황산 등을 유람하며 실경을 다양하게 묘사하기도 했는데, 과감한 구도, 주름진 산의 표 현, 구불구불한 선묘, 강한 흑백대조 등이 석도 산수화의 특징이다. 또한 독창적인 화론을 내세워 회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는데, <고과화상어록>에서는 ‘일획론’을 주장하였다. 이 작품은 석도의 독특한 필치로 산, 나무, 바위 등을 묘사하여 개성 있는 그의 필법을 잘 보여주는 산수 화첩으로 모두 10면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04<화조도, 마원어(1669~1722), 1696년작, 종이에 엷은 채색>

마원어는 청대화가로 자는 부희, 호는 서하, 천우산인이다. 윤곽선을 그리지 않는 몰골기법의 화훼화로 명성을 얻은 운수평에게 직접 그림을 배웠으며, 사생을 잘했다. 그의 작품은 수묵화가 대부분이지만 아름다운 채색을 한 그림도 있어 많은 화가들이 모방했다. 이 작품은 종이의 질을 잘 활용하여 먹과 채색의 갈필 효과를 잘 나타내었는데, 부드러운 담채를 사용하여 몰골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각 화면마다 소재가 다양하고 감각적인 화풍을 잘 구사되어 있으며, 매화, 제비, 백모란, 꾀꼬리, 실과 괴석화조, 청죽, 국화, 새, 수국이 그려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05<잠자리와 나비, 제백석(1863~1975), 1934년작, 종이에 채색>

제백석은 20세기 중국의 저명한 화가로 시문, 서화, 전각에 모두 능통하였다. 본명은 순지였으나, 나중에 황으로 바꾸었다. 자는 위청이며, 호는 백석이다. 가난한 목공 출신이었던 그는 서위, 팔대산인, 석도, 오창석 등의 화법을 계승하면서도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활달한 필치에 강한 채색을 통하여 자신만의 개성있는 화풍을 이루었다. 사생을 중시하여 여행을 많이 하고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였다. 특히 화조하에서 중국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 했는데 그림의 소재, 내용, 형식 등에서 보수적인 화가들의 그림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 그림은 활달하고 능숙한 필치로 표현한 붉은 꽃과 정교하게 묘사한 곤충의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간결하고 세련된 구도에 선명하면서도 화려한 색채의 표현으로 화면전체에 생기가 넘친다. 관기에 ‘갑술춘이월’이라 적혀 있어 1934년 봄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06<새우, 제백석, 1934년작, 종이에 먹>

제백석은 인물, 산수, 화조, 초충 등의 모든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주괁거인 표현을 중시한 사의화조화가 가장 대표적이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초상화를 비롯하여 화조와 초충의 공필화(대상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리는 기법)를 그렸다. 그 후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자연의 여러 모습과 생물들의 특성을 관찰하여 수묵과 채색으로 사의화조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화조화에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새우는 제백석이 가장 즐겨 그리던 소재이다. 이 그림음 새우의 무리를 수묵으로 자유분방한 필치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수묵의 농담효과를 이용해 새우몸체의 투명감을 표현해 그의 비범한 필묵법을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21
<겨울산수, (전) 마원(1189~1225이전 활동) 축, 비단에 먹>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07<그림 중 선비가 동자와 함께 매화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마원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남송의 화원에서 활약한 화가로 그의 집안은 증조부로부터 5대에 걸쳐서 7명의 화원의 화가를 배출한 유명한 화가 집안이다. 마원은 이러한 가문의 대를 이어 그림을 업으로 삼으며, 가풍을 배우면서도 당시 새로운 화풍으로 각광받은 이당의 화풍을 계승하여, 웅장하면서도 기묘하고, 간략하면서도 세련된 자신만의 독창적인 마원화풍으로 발전시켰다. 화면의 구성은 복잡한 자연을 가장 아름다운 각도에서 포착하여 단순하고 시적인 구도로 구성하였으며 여백을 많이 살렸다. 이 그림은 사게산수도 중 겨울을 그린 작품으로 동자를 거느린 고사(高士)가 눈 속에 핀 매화를 찾아 심산유곡으로 나선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 왼쪽 하단에 ‘마원’의 서명이 있으나 친필로 보기는 어려우며 원대내 명초에 마원의 화풍을 따른 직업화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22
<눈내리는 산, 남영(1585~1664), 1640년작, 비단에 먹과 엷은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08<그림 중 선비가 다리를 건너는 모습>

남영은 명대 화가로 자는 전숙, 호는 접수, 석두타 등이다. 그는 저장성 항저우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문인과 교유하고, 스스로 시문도 쓰며 문인화한 직업화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1640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눈 내리는 깊은 걔곡의 다리를 건너는 선비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화면 가득 들어선 웅장한 산세, 자레 나누어진 바위의 모습, 명쾌한 윤곽, 그리고 눈꽃을 표현한 흰색 등 채색의 산뜻한 조화는 남영의 독자적인 화법이라 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23
<눈 속의 꽃과 새, 여기(약1477~ 약1503 활동), 명, 비단에 먹과 채색>

여기는 저장성 닝포(寧波) 출신으로 자는 정진이며 호는 낙우, 낙어이다. 명대 대표적인 궁정 화가이며 금의위지휘라는 관직에까지 오르며 활약하였다. 이 그림은 구륵전채(鉤勒塡彩, 윤곽선을 그리고 채색을 하는 화법) 기법으로 그려졌는데, 설경을 배경으로 한 쌍의 꿩과 대나마, 매화, 동백이 표현되어 있다. 굵은 매화나무 가지에는 산비둘기로 보이는 새 이외에도 작은 새가 여러 마리 앉아 있다. 꿩은 당나라 이래 화조화의 중요한 줒였는데 명대에 이르러 길상적인 의미가 더욱 부각되어 많이 그려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35
<겨울 숲 속 두마리 매, 임량(약1416~1480), 명, 비단에 먹>

임량은 명대화가로 광동 출신이며 자는 이선이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알려지면서 궁정의 화조화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변문진, 여기와 함께 명대 궁정 화조화의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화가이다. 힘차고 자유분방한 수묵화 조화에 뛰어나 사의를 중시하는 문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특히 독수리와 매를 비롯한 맹금류를 잘 그렸다. 이 그림은 추운 겨울에 눈이 쌓인 가지에 앉은 두 마리의 매를 묘사하였다. 화면 중앙에 두 마리의 매가 마주 앉아 있고 왼쪽 위로는 두 마리 새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있다. 그의 거칠고 빠른 필치는 마치 서예의 초서를 쓰는 듯 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24
<악기를 연주하다, 오위(1459~1508), 명, 비단에 먹>

오위는 후베이성 우창(武昌) 사람으로 자는 사영, 호는 소선이다. 문인집안 출신이었으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이 몰락하자 직업화가의 길을 택하였다. 궁정에 들어가 활동하였으나 성품이 괴팍하여 결국 조정의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궁정을 떠난 방랑하였다.. 오위는 대진에 뒤를 이은 절파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빠르고 거친 필법의 산수인물화를 잘 그렸다. 이 그림은 소략한 배경에 빠르고 거침없는 필법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두 인물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25
<현악기 연주를 듣다, 왕가(16세기 후반~17세기 초 활동), 1624년작, 종이에 먹과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10<그림 중 현악기 연주를 듣는 모습>

왕기는 명대의 화가로 장쑤성 쑤저우(蘇州)사람이며, 자는 이약이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영향을 받아 산수, 인물, 수석 등을 잘 그렸다. 화법에 구애되지 않고 고아하고 간결한 필치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은 문인의 정원에서 한 인물이 의자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고 다른 한 인물은 연주를 듣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상단 맨 오른쪽에 왕기가 1624년 12월 1일에 그렸음을 밝히고 있다. 화면 맨 아래 오른쪽과 왼쪽의 부분에는 각각 사송주(18세기 사람), 왕계천(1907년생)의 감장인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26
<겨울에 홀로 낚시하다. 왕봉원(16세기 중엽 활동), 명, 비단에 먹과 채색>

왕봉원은 명대의 서화가로 난징 출신이며 자는 자신 호는 길산이다.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고 서예로 이름이 높았다. ‘한강독조(寒江獨釣)’의 주제는 당대 유종원의 시로도 유명하다. 눈 덮인 추운 겨울에 강에서 홀로 낚시하는 장면은 매우 시적인 정취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은거하는 군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홀로 낚시하는 인물을 생동감 있게 배치하였으며, 강가에 자란 대나무와 매화는 은거하는 군자의 고고한 품성을 나타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27
<시냇물에 발을 씻다. 장굉(1580~1659), 1648년, 종이에 먹과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관 명청회화 20220215_12<그림 중 발을 씻는 모습>

장굉은 장쑤성 쑤저우 출신으로 자는 군도이며, 호는 학간이라 하였다. 그는 심주의 화법을 배워 먹색이 차분하면서 변화가 다양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장굉의 산수화 특색은 실경 묘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각지의 명승을 유람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점이다. 1648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깊은 산속의 시냇물에 나무를 걸치고 편한 자세로 앉아 더위를 식히며 사색에 잠긴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시냇물에 발을 씻는 ‘탁족(濯足)’은 세속을 초탈하여 자연에서 유유자적하는 선비를 상징하는 모습으로서 문인들이 매우 애오한 주제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명.청 회화
명.청대에는 송.원대의 전통회화를 계승하면서 다양한 화파와 화법이 새롭게 등장한다. 명대초기에는 송대 회화의 전통을 따르는 절파(浙派)가 궁정과 민간에서 활약했고, 중기 이후에는 원대의 문인화를 계승한 오파(吳派)가 소주(蘇州)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청대 초기에는 ‘사왕四王’이라고 불리는 왕시민, 왕감, 왕원기, 왕휘가 문인화의 정통을 잇는 반면에 반청의식을 지닌 네 명의 승려화가 팔대산인, 석도, 곤잔, 홍인 등은 개성적인 화법을 창조했다. 청대 중기 이후에는 주요 활동 지역의 이름을 딴 양주팔괴, 안휘파, 금릉팔가, 상해화파, 영남화파 등이 화파별 화가들이 활발히 활동한다. 또한 서양화법이 소개되어 전통적인 중국화 재료에 서양화의 투시법, 명암법을 구사하는 동서 융합의 화풍이 출현하기도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에 있는 불전인 대웅보전(보물)이다. 조선후기 효종 때(1651년) 각순대사가 마곡사 불전들을 중건할 때 다시 지은 건물이다. 불교 경전을 모시는 대장전으로 지은 건물인데 그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를 보시는 대웅전으로 바뀌었다. 중층 건물로 1층은 앞면 5칸, 옆면 4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불전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건물내부는 뚫려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넓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0406_06<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년>

OLYMPUS DIGITAL CAMERA<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11년>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0406_04<정면에서 본 모습>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0406_11<오른쪽에서 본 모습>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으며 밖으로 뻗어나온 부재 위에 연꽃을 조각해 조선중기 이후 건축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건물 2층에 걸려 있는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 한다. 팔작지붕을 네 모서리를 받쳐주기 위해 활주가  세워져 있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0406_12<대웅보전 현판>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0406_08<지붕을 받치는 공포>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0406_07<문살과 기둥>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0406_09<옆면>

중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쪽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0406_10<대웅전 내부>

마곡사(麻谷寺)는 수덕사와 함께 충남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중기 무인정권 시절 불교결사운동을 이끈 만든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되었다.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로 가람의 배치에 형식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층석탑(보물호), 영산전(보물), 대웅보전(보물), 대광보전(보물) 등의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20230406_03<마곡사 주불전이 있는 영역>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보물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에 의해 중수되었다. 중수기에는 대장전으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언제부터 대웅보전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 형태인 중층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건물 내부 중심에는 석가모니불을 좌우에는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시고 있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많지 않은 중층 건물로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안내문, 공주 마곡사, 2023년)

<출처>

  1. 안내문, 공주 마곡사,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국도자기

중국에서는 상나라 때 도자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회유도기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한나라때 녹유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당나라 때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당삼채가 제작되었다. 송나라부터는 중국은 전국 각지의 가마들에서 특색있는 도자기들이 생산되면서 국제교역에 있어서 중요한 거래품목이 되었다. 원나라 때에는 대량생산을 통해 선박을 이용한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도자의 길’이라는 해상실크로드가 생겨났다. 명.청대에는 경덕진을 중심으로 다양한 채색자기가 만들어졌다. 중국의 도자기 수출은 서구사회가 동방무역로 찾아 나서게 되는 대항해시대의 동기가 되기도 했으며, 유럽에 전해진 중국의 도자기들은 서구사회의 생활모습을 크게 바꾸기도 했다

중국의 주요 가마터와 도자기. 북송대까지는 중국 도자기는 황하 주변에서 많이 생산되었으나, 북방민족의 압박 등의 이유로 남송대 이후에는 월주요, 경덕진요 등이 중국도자기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0<1,2. 백자 완, 당/형요(邢窯)>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2<3. 청자 완, 당 말 ~ 오대(907~979년) 초 / 월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7
<4. 청자 참외모양 주자, 오대, 월요>

남청북백(南靑北白)
당대에 차 마시는 문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자기 문화도 함께 발전하였다. 남쪽 지방의 월요 청자, 북쪽 지방의 형요 백자를 중심으로 ‘남청북백’이라는 지역적 특징이 형성되어 자기의 문화적 가치를 더욱 높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자기(瓷器)
중국 자기는 한대 회유(灰釉) 계통의 시유 도자기에서 시작되었으며, 당대 저장성(浙江省) 월요(越窯) 청자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중국 북방 지역에서는 백자가 생산되어 ‘남청북백(南靑北白)’의 시대를 맞이한다. 청자와 백자의 제작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송대에는 전국 각 지역의 가마에서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가 생산되어 자기문화의 황금기를 이룬다. 이후 원대에는 백자와 청화백자를 주로 생산한 장시성(江西省) 경덕진요(景德鎭窯)가 자기 생산의 중심지가 되어 명대에는 화려한 채색 자기가 등장하였고, 청대에는 자기 생산의 모든 기술가 예술성이 집약되어 중국 자기 제작 발전의 정점에 이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송나라 이후 중국 각지에서는 각기 특색이 있는 도자기들을 생산하는 가마들이 생겨났는데, 북방지역에서는 백자계통을, 남방지역에서는 청자계통의 도자기를 많이 만들었다. 중국의 주요 가마로는 북방지역의 정요, 요주요, 여요, 균요, 자주요 등이 있고, 남방지역에서는 월주요, 용천요, 건요, 길주요, 경덕진요가 있다. 명대 이후에는 청화백자와 채색자기를 대량생산했던 경덕진요가 중국을 대표하는 곳으로 도자기 생산지가 되었으며, 서구의 도자기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서양에서 생산되는 많은 생활용품 도자기들에서 중국 경덕진요의 영향을 받은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요주요(耀州窑)는 산시성(山西省) 동천시(銅川)이 부근에 있던 가마이다. 송대에 문양이 이씨는 청자를 만들었다. 금대에는 황갈색 유약을 칠한 자기를 구웠다. 용천요와 비교해서 북방청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9<청자 인물무늬 주전자, 월요, 오대(907~960).>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0<월요, 요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7<월요, 요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8<모란꽃무늬대접, 넝쿨무늬대접, 국화넝쿨무늬잔, 국화 넝쿨무늬 항아리, 요주요, 북송>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5<연꽃잎무늬 침받이, 월요, 북송>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06<월요, 요주요>

월요(越窯)
월요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마로 저장성(浙江省) 일대에 위치한다. 당대에 월주(越州)에 속해 있어 월요 또는 월주요라고도 한다. 월요에서는 동한 말기에 처음 청자를 제작하기 시작하여, 당대에 이르러 독특한 풍격을 이룸으로써 남방 청자의 대표적인 가마가 되어싿. 우리나라 초기 청자의 원류로 추정되는 ‘옥벽저완玉璧底碗’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참외모양 주전자, 꽃모양 대접과 접시, 잔받침 등이 유명하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요주요(耀州窯)
요주요는 산시성(陝西省) 통촨(銅川) 일대에 위치한다. 당대부터 언대까지 700년간 자기를 생산하였다. 당대에는 흑자, 백자, 청자를 생산했고 송대에는 주로 청자를 제작했다. 도자기 표 면은 다양한 문양을 새기거나 찍어서 장식되었으며, 섬세하고 세련된 문양은 당시 도공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주로 반(盤), 완(碗), 병(甁), 잔(盞), 향로 등을 제작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용천요(龙泉窑)는저장성(浙江省) 부근에 있던 중국 최대의 청자가마이다. 북송대에 생겨 금,원때에 크게 흥성했다가 명대 정덕진에 밀려 쇠퇴하였다. 용천요는 장생일.장생이 형제가 만든 가요(哥窑)와 제요(弟窑)가 있다. 가요는 유약에 잔금효과(균열무늬)가 있는 검은색 자기이며, 제요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용천에서 만든 청차의 빛갈은 옥(玉)과 같은 빛깔을 내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2<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3<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4<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5<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6<용천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4<용천요>

용천요(龍泉窯)
용천요는 저장성 서남부에 있는 용천 지역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중국 청자의 상징이었던 월요가 쇠퇴의 길을 걷자 남송 시기에 용천요 청자가 절정기를 맞으며 중국 청자의 새로운 전통을 잇게 된다. 이 시기의 용천요 청자는 남송 관요(官窯)의 영향을 받아 바탕흙이 얇아지고 유약이 두터워지며 질 좋은 청자를 생산하기 시작한닫. 원대 용천요에서는 일상생활 용품에서 장식용 기물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의 청자를 제작했으며, 큰 화병, 접시 등을 제작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정요(定窑)는 중국 송대 5개 가마 중 하나로 백자를 만들었던 곳이다. 당나라말기부터 송대까지 상아와 같은 백자를 만들어 궁중에서도 사용했다고 한다. 가마터는 허베이성 곡양현 일대에 있다. 금.원대에 장인들이 강남으로 이주하면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8<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19<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0<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1<모란무늬 꽃모양 대접, 정요, 북송>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2<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3<헤엄치는 물고기무늬 대접,북송정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4<정요>

정요(定窯)
정요는 송대 5대 명요(名窯)의 하나로 지금의 헤베이성(河北省) 취양현(曲陽縣) 일대에 있었다. 당대에는 백자만 생산하였으며, 송대에는 백자를 주로 생산하면서 흑유(黑釉), 갈유(褐釉), 녹유(綠釉) 자기도 생산하였다. 북송 후기에 도장으로 무늬를 찍는 인화(印花) 기법이 등장하여 바탕흙이 마르기 전에 접시나 대접 안쪽에 도구를 이용해 무늬를 찍어 장식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자주요(磁周窑)는 하북성(河北省) 한단시(邯鄲)에 위치한 가마로, 송.금.원대 민간에서 선호한 자기들 생산하였으며 현재까지 민간용 자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자주요에서는 백유(白釉)를 많이 만들었고 흑유, 녹유, 삼채 등도 만들었다. 장식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음양각(陰陽刻), 가채(加彩) 등을 사용했다. 다양한 문양과 함께 자유롭고 소탈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5<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6<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7<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8<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29<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0<자주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1<자주요>

자주요(磁州窯)
자주요는 송.원대의 대표적인 민간 운영 가마로 헤베이성(河北省) 츠현(磁縣)에 위치한다. 자주요 자기 제작법이 특징은 흰 바탕에 검은 선으로 그림을 그리는 백지흑화(白地黑花) 장식기법으로 허난성과 산성 등에서도 이런 방법으로 자기를 제작했다. 자주요의 도자기는 일반 서민들이 사용했다. 자주요의 바탕흙은 정요 백자의 것과는 달리 거칠고 조잡하며 짙은 색을 띤다. 접시, 대접, 병, 항아리, 베개 등이 생산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경덕진요(景德镇窑)는 도자기를 생산했던 중국의 많은 가마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으로 장시성(江西省) 동북부 창강(昌江) 남부 부량현(浮梁縣)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조시대부터 시작하여 당대에는 백자를 만들었다. 송대에 경덕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우수한 백자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 청백자(靑白瓷)가 유명하다. 원대에는 청화백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백자가 만들어졌다. 명대에는 관요(官窯)가 설치되었으며 명말청초에는 이곳에서 만든 자기들에 세계각철 대량 수출되어 중국을 대표하는 생산품이 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2<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3<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4<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5<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6<경덕진요>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7<경덕진요>

경덕진요(景德鎭窯)
경덕진요는 장시성(江西省) 경덕진(景德鎭)에 위치하며 오대부터 청자와 백자를 생산하였다. 송대에는 ‘영청(影靑)’이라 불리는 청백자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원대에는 청백자에서 벗어나 난백유(卵白釉) 백자가 등장하고, 아울러 백자의 전성기를 이루는 청화백자가 제작되기 시작한다. 명.청대에는 청화백자가 대세를 이루면서 투채(鬪彩), 오채(五彩), 분채(粉彩), 법랑채(法朗彩) 등의 채색 자기(彩色瓷器) 제작이 활발해 진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오채(五彩)는 유약을 발라 구워낸 백자 표면에 적색, 녹색, 황색 등의 그림물감으로 문양을 그리고 다시 가마에 넣어 낮은 온도로 구워낸 것이다. 송나라때 처음 만들어졌으며, 원말~명초에 경덕진요에서 굽기 시작하였으며, 명나라 중기에 대량 생산하여 해외로 수출하였다. 청나라때에는 금채, 분채, 양채 등 다양한 수법이 개발되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6
<1. 팔선도가 그려진 오채병, 청>

병의 목부분에는 동자가, 몸체에는 여덟 명의 신선을 오채로 그렸다. 팔선은 종리권, 장과로, 한상자, 이철괴, 조국구, 여동빈 6명화 남채화, 하선고 두 여선을 합한 8명이 신선을 가리킨다. 이철괴의 호리병에서 사람의 영혼이 빠져 나오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8<2. 봉황무늬 분채 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39
<3. 경직도(耕織圖)를 그린 오채 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0<1,2 나비, 꽃무늬 오채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1<3. 인물, 꽃, 나비무늬 오채접시, 명>

투채(鬪彩)는 먼저 청화안료로 문양의 윤곽선을 그리고 투명유약을 입혀 구워낸 다음, 철화 윤곽선에 각종 채색안료로 도안을 완성하고 다시 저온으로 굽는다. 명나라 때(15세기) 가장 발달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2<4. 꽃무늬 투채 완, 청>

분채(粉彩)는 도자기 장식기법 중 하나로 오채(五彩)와 마찬가지로 백자 위에 채색하여 다시 굽는 방식으로 법랑채라고도 한다. 칠보에 사용하는 산화석을 썩은 재료를 사용하며 색의 수가 많고 세밀한 그림이나 농담(濃淡)의 표현이 쉽기때문에 화조(火鳥)나 인물을 표현하기 쉽다. 청나라 강희제때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3<5. 모란무늬 꽃모양 분채 완,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4<6. 모란무늬 법랑채 완, 청>

제홍유(霁紅釉)는 적색을 띠는 유약으로 ‘선홍유(鲜紅釉)’ 또는 ‘보석홍유’, ‘취홍유’ 등으로 불린다. 명 선덕(宣德, 선종)대에 동홍유가 만들어졌으며, 명청대에 주로 만들어졌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5
<1. 홍유 매병, 청>

자기 제작 기술과 유약의 개발 등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명대를 거쳐 청대에는 화려한 기교, 다양한 기종 등 새로운 발전 양상을 보여준다. 이 매병은 몸체 전면에 복숭아빛 연지색과 흐린 진홍색의 미세한 반점을 띤 유약을 시유(施釉)하였는데, 백색 유약을 사용한 구연부 및 그 안쪽의 흰 빛깔과 대비되어 매우 화려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5<2. 수탉무늬 잔, 청, 3. 용무늬 잔, 청>

녹유(綠釉)는 도자기를 굽는 온도가 낮가 납이 들어가서 구리로 녹색을 발색한다. 고대 로마에서 사용되었으며 한나라 때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대 녹유는 기와를 비롯하여 다양한 그릇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으며, 낙랑군과 고구려에도 전해졌다. 당삼채와 요(遼)의 녹유, 송의 자주요 등에서 녹유를 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6<1. 녹유 호, 요(遙, 916~1125년)>

말안장 모양이며,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었고 유약을 엷게 박락되었다. 원통형 입에 뚜껑이 있으며, 끈을 달 수 있도록 2개의 구멍을 뚤었다. 각각의 구멍에는 인물이 표현되었고, 몸통 부분에는 음각으로 꽃잎을 표현했다. 요대(遙代)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7<2. 법화자기 인물무늬 항아리, 명>

중국 도자는 다양한 유약 개발과 제작 기법을 통해 다채로운 양상을 보인다. 그중 매우 특별한 채색 자기인 법화(法花)자기이다. 법화 기법은 점토 문양 안에 다른 색깔의 유약을 넣어 만드는 독특한 기법으로, 금속공예의 법랑(琺瑯)기법, 칠보 기법을 도자기에 도입한 것이다. 우선 표면에 점토 문양 외곽선을 만들어 높은 온도에서 구운 뒤 문양 안에 감(紺), 황(黃), 청색(靑色) 등의 유약을 칠하고 다시 낮은 온도에서 구워 내는 제작 과정을 거친다. 이때 망간이 주재료인 진한 유색의 바탕 면과 원색을 채운 점토 문양들 간의 강한 색채 대비와 입체감이 살아 감각적인 효과가 돋보인다. 이 항아리에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말 탄 관리가 시총을 데리고 가는 장면을 표현하였다. 항아리의 목 부분에는 구름무늬가, 어깨에는 여의두 무늬 속에서 피어오른 연꽃이 묘사되어 있다. 법화자기는 산시성에서 처음 만들어져 하남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제작되었으며 특히 명대 후기 경덕진요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이 법화자기도 경덕진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8<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49<1. 신발모양 잔,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0<2. 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1<3. 손잡이가 달린 잔, 청>

채색자기(彩色瓷器)
경덕진요로 대표되는 명.청대 자기는 원대의 청화(靑花), 유리홍(釉里紅) 등의 장식 기법을 바탕으로 발전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기술적 성취는 유약 위에 채색을 가하는 채색자기의 탄생이다. 청화가 유약을 입히기 전 청화 안료로 무늬를 장식하는 것이라면, 채색자기는 유약을 입혀 구운 뒤 다양한 색채의 안료로 무늬르 ㄹ그린 후 저온에서 다시 구워 제작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발전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채색자기는 기본적으로 홍(紅), 황(黃), 녹(綠), 남(藍), 자(紫)의 다섯 가지 색채를 사용해 일반적으로 오채(五彩)라고 하며, 분채(粉彩), 투채(鬪彩), 법랑채(琺瑯彩) 등 다양한 기법으로 개발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청화(靑花)는 흰바탕에 청색의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그위에 투명유약을 입혀서 1300~1350℃의 고온에서 구워낸 자기이다. 당말기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원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명 만력제(재위, 1572~1620) 때 황금기를 이루었으며, 청나라 강희,건륭,옹정제 때 최고수준의 청화백자를 만들었다. 안료인 코발트는 16세기까지 서남아시아에서 수입하여 사용하였으며, 이후 중국산 토청을 사용하게 되면서 색이 나빠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전기에는 청화백자를 만들었으나, 안료의 수입이 어려워 많이 제작되지는 않았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2
<1. 인물고사가 그려진 항아리,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3
<2,3,4. 구름 용무늬 사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4
<5. 용무늬 필가, 명, 6. 산수 인물무늬 필통,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5<1. 용무늬 잔, 원>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6<2. 꽃 과일무늬 주전자, 명, 3. 연꽃 넝쿨무늬 완, 명>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7<4. 인물고사가 그려진 항아리, 명, 5. 꽃 구름 용무늬 접시, 명>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8<6. 매화무늬 접시, 청, 7. 산수무늬 접시, 청>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1
<8. 길상무늬 편병, 청>

세계를 매혹시킨 청화백자(靑畵白瓷)
경덕진의 청화백자는 원대 14세기부터 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무역의 경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코발트가 수입되고, 경덕진의 질 좋은 백자원료와 유약의 생산으로 아름다운 청화백자가 제작되었다. 우수한 원료와 다양한 제작 기술의 개발로 경덕진의 청화백자는 중국 내 뿐만 아니라 명.청대에는 전 세계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청화백자는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붓으로 무늬를 그린 후 투명유을 씌워 구워내면 흰바탕에 푸른색의 무늬가 강렬한 색상대비를 이룬다. 크기가 큰 대형의 자기부터 소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제작되었으며, 도자표면에 묘사된 무늬 역시 세밀하고 정교한 꽃과 과일무늬부터 회화성을 강조한 사군자, 산수, 인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3
<사자, 명, 대리석>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64
<사자, 명, 대리석>

명대 암수 한 쌍의 사자조각상이다. 수사자가 발로 누르고 있는 공은 권력을 상징하고 암사자의 새끼 사자는 계승자를 의미하여 자손이 흥성해져서 관직에 오르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사자상은 궁궐의 아문이나 대문에 배치되다가 송대 이후에는 벽사와 길상의 의미로 개인의 주택이나 공원 등에도 세워지게 되었다. 명.청대에 이르러 이와같이 암수 한 쌍의 사자상을 문 앞에 세우는 형식이 정착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흙, 돌, 금속으로 만든 다양한 제품에 옻칠을 하는 칠기(漆器) 역시 한(限)대에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하여 널리 보급되었다. 옻칠을 사용하면서 금, 안료 등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문양을 넣어 장식하였으며 후대에 도자기로 발전되는 기반이 되었다. 한나라의 영향을 받아 낙랑과 삼한 등 한반도에도 옻칠을 한 유물들이 발견되고있다.

중앙박물관 세계관 중앙아시아 중국자기 20220215_522. ‘대청건륭제’가 새겨진 합, 청

이 칠합(漆盒)은 다양한 제작 기법과 기교로써 최상의 화려함을 표현한 청대 공예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조칠(彫漆) 기법으로 만들었으며, 이 합은 여러 번 칠한 칠층의 색감 변화로 입체감과 화려함을 극대화했다. 뚜껑 윗면 중앙에는 칠보(七寶)가 감긴 화분의 오색찬란한 기운 위로 커다란 ;春’자가 있고, 글자 획 위로 소나무 아래 복숭아를 든 신선과 사습이 표현된 원을 배치하였다. 굽바닥에 ‘대청건륭년제’가 새겨져 있어 이 합이 청나라 건륭 연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칠기
중국 칠기고예는 일찍이 7천여 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존재했다. 이후 수천년간 끊임없이 발전하여 채회(彩繪), 전칠(塡漆), 상감(象嵌), 조칠(彫漆), 금칠(金漆) 등의 다양한 기법을 선보이며 중국 전통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전국시대의 옛 무덤에서는 일상생활 용구에서 제기, 악기, 무기 그리고 장례용 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칠기가 출토되어 중국 고대 칠공예의 제작 상황을 알려 준다. 당대에 시작된 조칠기법은 송.원대에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척홍(剔紅) 또는 조홍칠(彫紅漆)이라고도 불리는 조칠은 나무나 동으로 만든 몸체에 붉은색 칠을 수십번 한 후 조각하는 기법을 말한다. 붉은색의 화려한 효과를 내는 조칠은 명.청대에 이르러 일상생활 용기에서부터 병풍, 침상, 의자, 건축 장식에 이르기까지 제작 범위가 확대되면서 중국의 독보적인 공예 예술로 발전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2022년
  2. 안내문, 산동성박물관, 2014년
  3. 위키백과, 2023년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보물)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에 있는 불전인 대광보전(보물)이다. 마곡사의 주불전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상당히 큰 규모의 불전이다.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내부 불단은 서쪽에 배치되어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닫집을 꾸며 엄숙함을 더해주고 있다. 대광보전의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알 수 없고,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순조 때(1813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공주 마곡사 대적광전(보물) 20230406_01<공주 마곡사 대광보전(보물), 2023년>

OLYMPUS DIGITAL CAMERA<공주 마곡사 대광보전(보물),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공주 마곡사 대적광전(보물) 20230406_02<옆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뒤에서 본 모습>

공포는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 있는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는데 상당히 화려하다. 앞면 5칸에 3짝씩 문을 달았는데 문살의 꽃살 무늬가 화려하다.

공주 마곡사 대적광전(보물) 20230406_07<지붕을 받치는 공포>

공주 마곡사 대적광전(보물) 20230406_03<옆면 공포>

공주 마곡사 대적광전(보물) 20230406_04<문살과 기둥>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상을 단독으로 모시고 있는데 동쪽을 향하고 있다.  불상을 모시는 불단에는 닫집을 설치하였다. 전체적인 내부 모습은 부석사 무량수전을 연상시킨다.

공주 마곡사 대적광전(보물) 20230406_24<대광보전 내부>

공주 마곡사 대적광전(보물) 20230406_09<마곡사 대광보전과 오층석탑, 2023년>

OLYMPUS DIGITAL CAMERA<마곡사 대광보전과 오층석탑, 2011년>

마곡사(麻谷寺)는 수덕사와 함께 충남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중기 무인정권 시절 불교결사운동을 이끈 만든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되었다.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로 가람의 배치에 형식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층석탑(보물호), 영산전(보물), 대웅보전(보물), 대광보전(보물) 등의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공주 마곡사 대적광전(보물) 20230406_10<공주 마곡사 주불전이 있는 공간>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보물
이 건물은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本殿)이다. 임진왜란으로 불 타 없어진 것을 정조 9년(1758)에 다시 지었다. 건물 내부에는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동쪽을 바라보며 모셔져 있으며,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내부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으며 전면 창호에는 다양한 꽃살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대광보전은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내문, 공주 마곡사, 2023년)

<출처>

  1. 안내문, 공주 마곡사,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