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June 16, 2023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 절터에서 발견된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조불상으로 높이 2.8.m의 거대 불상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세부표현이나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고려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릎에 옻칠 흔적이 남아 있어 불상 전체에 옻칠을 한 다음 도금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초기 지방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성했던 거대 불상 중 하나이다.

불상이 발견된 절터에는 대좌의 일부가 남아 있다. 절터는 남한산성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절터 부근 춘궁동에는 2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 동사지가 있다. 하남시 일대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광주지역 호족의 근거지가 있었던 지역으로 부근이 이성산성(사적)과 남한산성(사적)이 있다.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20220803_01<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보물, 고려 10세기, 경기 하남 하사창동 절터 출토>

“보이지 않는 절대의 힘이 방안 분위기의 장엄함을 한층 조성해 준다는 느낌이다.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을 앞에서 우러러도 좋지만 고요한 시간에 먼 곳에서 옆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일점 속기(俗氣)없는 신비로운 검은 영상이 마치 슬픈 마음처럼 가슴을 일렁이게 해 줄 때가 있다.”
- 최순우, 『철조석가여래좌상』(1980년) -

고려초 지방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성된 거대 불상이다. 얼굴은 정형화된 석가여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20220803_04<얼굴부분>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20220803_03<왼쪽에서 본 모습>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20220803_02<오른쪽에서 본 모습>

철조불 좌상(鐵造 佛 坐像), 고려 10세기, 경기 하남 하사창동 절터, 보물
쇠로 만든 이 부처는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한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지금도 하사창동의 절터에는 돌로 만든 대좌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 부처는 높이가 2.88m에 무게가 6.2톤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형식의 옷차림과 손갖춤을 하고 있으나 허리가 급격히 가늘어진 조형감과 추상화된 세부 표현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불상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부처의 양 무릎에는 딱딱하게 굳은 옻칠의 흔적이 남아 있어, 원래 불상 전체에 두껍게 옻칠을 한 다음 도금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철불
우리나라의 철불(鐵佛)은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고려시대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중국은 수대(隋代)와 당대(唐代)에 많은 철불을 만들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송나라 이후의 것이다. 일본에서는 13세기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에 처음으로 철불을 만들었다. 이와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든 철불이 잘 보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철불을 만들기 시작한 통일신라 후기는 왕실의 권력기반이 흔들리고, 지방 호족들이 각기 세력을 키우던 시기였다. 이들이 불상을 많이 만들면서,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청동을 철이 대신하게 되었다. 또 철은 지방 호족들이 풍부하게 가지고 있던 농기구나 무기재료였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동(銅)보다 적은 비용으로 큰 불상을 만들 수 있는 경제적 이점을 가진 재료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석조 약사여래 좌상이다. 경주 남산 삼릉곡 6번째 절터에 있던 불상을 옮겨온 것이다.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석가여래가 도를 깨닫는 순간을 표현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약사여래는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로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광배에는 불상과 꽃무늬, 불꽃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으며 대좌에는 향로와 공양천인상을 새겨놓고 있다. 신체의 표현이나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화려한 광배 장식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같이 가지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5<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6
<왼쪽에서 본 모습>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8
<오른쪽 옆에서 본 모습>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9
<왼쪽 옆에서 본 모습>

광배에 불상과 불꽃무늬, 꽃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1<불상 모습>

불상을 올려 놓은 대좌는 아래, 위에 연쪽을 세워 놓았으며 가운데 받침돌은 팔각형을 하고 있다. 안상에는 공양자상과 화로 등을 새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2<불상을 올려 놓은 연화대좌>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3<공양자상>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20220803_04<공양자상>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있었던 남산 삼릉곡 정상 부근 제6사지 절터>

석조 약사불 좌상(石彫 藥師佛 坐像), 통일신라 9세기, 경주 남산 삼릉곡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릉곡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애대불(磨崖大佛) 건너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약사불은 질병을 고쳐주고 재난에서 구해주며 음식과 옷을 주는 부처로 왼손에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통통한 얼굴, 건장한 신체, 얌전하게 흘러내린 계단식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절정기인 8세기 불상의 여운이 보인다. 그러나 엄숙한 얼굴표현,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 화려하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 등은 9세기 불상의 특징이므로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감산사 절터에 있었던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조성한 불상이다. 신체의 비례는 인체에 비례와 비슷하며, 각 비례에서 주는 전체적인 조형미도 뛰어난 편이다. 얼굴의 세부 표현도 섬세하며 사실적이다. 광배 뒷면에 불상을 조성한 내력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1
<감산사 석조 아미타불 입상(石彫 阿彌陀佛 立像), 통일신라 719년 무렵, 경주 감산사터 출토, 국보>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2
<왼쪽에서 본 모습>

아미타여래의 얼굴을 풍만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눈.코.입 등 세부 표현 또한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8<얼굴 부분>

연화대좌는 맨아래에 8각형을 기본으로 그 위에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9<연화대좌>

경주 감산사지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20220803_06<감산사 아미타여래(국보), 미륵보살(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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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배 뒷편에 새겨진 글자 탁본>

아미타불에 새겨진 글
아버지 인장 일길찬이 47세에 돌아가시자 동해흔지(지금의 포항) 앞바다에 그의 유골을 뿌렸다. 후대에 그를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 착함이 그들을 도울 것이다. 중아찬 김지전(김지성)은 살아 있을 때 이미 이 착한 업을 이루었으므로 성덕왕 19년 4월 22일 김지성이 돌아가자 그를 위해서도 이것을 만든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감산사 미륵보살.아미타불,
두 불상은 경주의 감산사(甘山寺) 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 만든 목적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집사부시랑(執事部侍郞)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언덕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719)에 만들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미륵보살이다. 불상을 만들던 도중 성덕왕 19년(720)에 김지성이 죽자 김지성의 명복을 비는 내용도 아미타불 광배 뒷면에 함께 새겨졌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를 보이며, 이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8세기 전반 석조 조각의 수준을 잘 보여 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감산사(甘山寺)는 불국사와 신라 원성왕릉(괘릉)에서 멀지 않은 마을 뒷편에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창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조비로자불상을 모신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불전들이 들어서 있으며, 뒷편에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삼층석탑과 주변 공터만이 옛절터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출토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은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불상에 적힌 기록 외 감산사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감산사 절터>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국보 경주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감산사 절터에 있었던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조성한 불상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목에는 2줄의 화려한 목걸이가 새겨져 있는 등 화려한 장신구로 장식한 미륵보살의 형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신체의 비례는 인체의 비례와 비슷하게 사실적이며, 각 비례에서 주는 전체적인 조형미도 뛰어난 편이다. 광배 뒷면에 불상을 조성한 내력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1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甘山寺 石彫 彌勒菩薩 立像),  통일신라 719년 무렵, 경북 경주 감산사터 출토, 국보>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3
<왼쪽에서 본 모습>

보관을 비롯하여 화려한 장신구들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표현이 섬세하며 상당히 뛰어나다. 광배(光背)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배 모양이며, 3줄의 도드라진 선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였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6<보관을 쓰고 있는 얼굴부분>

대좌(臺座)는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맨 아래가 8각이고, 그 위에는 연꽃무늬를 간략하고 큼직하게 새기고 있다.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7<연화대좌>

경주 감산사지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20220803_09<감산사 미륵보살입상(국보), 아미타여래입상(국보)>

감산사 미륵보살.아미타불,
두 불상은 경주의 감산사(甘山寺) 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 만든 목적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집사부시랑(執事部侍郞)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언덕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719)에 만들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미륵보살이다. 불상을 만들던 도중 성덕왕 19년(720)에 김지성이 죽자 김지성의 명복을 비는 내용도 아미타불 광배 뒷면에 함께 새겨졌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를 보이며, 이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8세기 전반 석조 조각의 수준을 잘 보여 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미륵보살에 새겨진 글
개원 7년 기미년(719년) 2월 15일 중아찬 김지성이 돌아가신 아버지 인장 일길찬과 돌아가신 어머니 관초리 부인을 위하여 감산사와 석조아미타상 1구와 석조미륵상 1구를 삼가 만듭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감산사(甘山寺)는 불국사와 신라 원성왕릉(괘릉)에서 멀지 않은 마을 뒷편에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창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조비로자불상을 모신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불전들이 들어서 있으며, 뒷편에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삼층석탑과 주변 공터만이 옛절터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출토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은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불상에 적힌 기록 외 감산사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감산사 절터>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국보 경주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 개척촌] 구 마쓰하시 집안의 주택, 도시 상류층이 살던 집

일본 삿포로시 홋카이도 개척촌에 있는 ‘구 마쓰하시 집안의 주택(旧松橋家住宅)’이다. 삿포로시 도심에 있던 상류층이 살았던 저택으로 전체 80평 정도이다. 앞쪽에는 1897년에 지이진 일본식 주택으로 메이지시대 상류층이 살았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마쓰하시 집안은 메이지시대 초기 삿포로로 이주하여 농영을 경영했다고 하는데 대지주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01<구 마쓰하시 집안의 주택>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28<오른쪽에서 본 모습>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27<왼쪽에서 본 모습>

일본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주택 20230529_21<뒤에서 본 모습>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03<현관 출입문>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04<현관 내부>

현관을 들어서면 양쪽에 큰 방이 배치되어 있다. 서재와 거실, 통로의 기능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방은 탁자와 의자, 책상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서재로 사용하면서 손님을 접견하는 사랑방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05<오른쪽 방, 서양식 거실처럼 꾸며 놓았다.>

안쪽에는 와시쓰(和室)라 불리는 큰 규모의 다다미가 깔린 큰 방이 있다. 거실과는 후스마(襖)라 불리는 미닫이문으로 공간을 불리하고 있다. 한쪽벽에는 도코노마(床の間)라는 장식을 위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도코노마 옆 수납공간에는 영사기가 놓여 있어 근대 일본 상류층이었던 집주인의 취향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10<안쪽에 있는 큰 방>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07<도코노마(床の間)>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06<도코노마 옆 수납공간>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09<큰 방 앞 복도>

현관 오른쪽에는 큰 난로가 있는 거실이 있다. 서양식 난로처럼 만든 이로리(囲炉裏)를 중심으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가운데 방과 오른쪽 방, 부엌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볼 때 가족들의 생활 중심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23<현관 오른쪽 거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22<현관 앞 큰 길이 보이는 거실 창문>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11<가운데 방>

오른쪽 방에는 소형신사 역할을 하는 공간인 가미다나(神棚)를 볼 수 있다. 이 집에는 가미다나와 함께 큰 불상이 모셔진 닫집을 모시고 있어 독실한 불교신자 임을 알 수 있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18<오른쪽 방>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19<가미다나(神棚)와 불단(佛壇)>

오른쪽 방 옆에는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는 복도가 있다. 복도 앞쪽 끝에 부엌이 배치되어 있다. 부엌 앞에는 작은 방이 있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16<오른쪽 옆 복도>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21<부엌>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02<바깥에서 보이는 부엌>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20<부엌 앞 작은 방>

뒷편 안쪽에는 다다미가 깔린 큰 방이 있다.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12<안방이 있는 공간 앞 복도>

일본 삿포로 홋카이도개척촌 마쓰하시 주택  20230529_14<안방>

구 마쓰하시 집안의 주택
메이지~다이쇼~쇼와 시대에 이르는 도시생활자의 주택으로 1918년 이래 마쓰하시 가족이 거주하였다. 마쓰하시 집안은 메이지시대 초기에 아키타현에서 삿포로로 이주하여 농업 및 토지회사 경영에 종사했다. (한국어판 가이드, 홋카이도 개척촌, 2023년)

<출처>

  1. 한국어판 가이드, 홋카이도 개척촌, 2023년
  2. 홈페이지, 野外博物館 北海道開拓の村, 2023년

* 옛 소재지: 札幌市中央区北1条東7丁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