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September 26, 2023

춘천 칠층석탑(보물)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도심에 남아 있는 칠층석탑(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는 고려시대 칠층석탑이다. 어떤 사찰에 있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근처에서 ‘충원사(忠圓寺)’라 적힌 그릇이 발견되어 충원사에 속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2000년에 시행된 보수공사 이전에는 기단부가 땅에 묻혀 있어 불안정해 보였으나, 기단부가 드러나 있는 현재의 모습은 상당히 안정되어 보이며 비례도 적절한 편이다.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6
<춘천 칠층석탑(보물)>

춘천_칠층석탑
<2000년 이전, 기단부가 땅에 묻혀 있는 모습>

위층 기단인 1층 몸돌에 비해 넓게 만들어 상당히 땅에 묻혀 있을 때와는 달리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2<기단부>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3<탑신 1층 몸돌과 지붕돌>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4<2~7층 탑신>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1
<남쪽에서 본 모습>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9
<동쪽에서 본 모습>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8
<북쪽에서 본 모습>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7
<서쪽에서 본 모습>

춘천 칠층석탑(보물)
춘천 칠층석탑은 석탑에 장식된 연꽃무늬와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탑으로 추정된다. 탑이 속했던 사찰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봉의산 서쪽 기슭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충원사라는 절에 속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탑의 높이가 6.2m이며, 두 개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이 놓여 있다. 1층부터 4층까지 아래층 지붕돌과 위층 몸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이는 고려시대부터 강원도에서 많이 나타나는 석탑 양식이다. 지붕돌받침은 1층부터 3층까지는 여섯 단이고, 4층부터 7층까지는 다섯 단으로 일정하지 않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위층 기단이 탑 몸돌에 비하여 제법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그 위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널판 같은 돌을 놓아 1층 몸돌을 괴게 했다. 탑의 모양은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줄어드는데, 기단이 넓은 것에 비하면 몸돌은 작지만 높이가 7층이나 되어 비례의 불균형을 보완하고 안정감을 준다. 이 탑은 원래 기단부가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2000년 5월에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땅 위로 올라왔다. 2018년 12월에는 문화재 발굴조사를 반영하여 원래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30m 떨어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안내문, 춘천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춘천시청, 2023년
  2. ‘보물 춘천 칠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고택인 소대헌.호연재이다. 조선후기 유학자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분가하면서 지은 고택으로, 그의 아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조선중기 대전지역 대저택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앞쪽에 큰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나란히 배치하고 작은사랑채 안쪽에 ‘ㄱ’자형 안채를 두고 있다. 안채 뒷뜰에는 사당이 있다. 17세기에 지은 고택의 안채와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사당 등이 온전히 남아 있어 당시 유력 양반가 사람들이 살았던 집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대전 솓대헌.호연재 고택 20230727_03<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대전 솓대헌.호연재 고택 20230727_02<큰사랑채>

대전 솓대헌.호연재 고택 20230727_04<작은 사랑채>

대전_소대헌·호연재_고택<안채>

대전 솓대헌.호연재 고택 20230727_01<바깥에서 본 모습>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이 고택은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수오재 송병하가 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것을 그의 아들인 소대헌 송요화가 1714년 현 위치로 옮겨 지은 것이다. 송요화의 부인 호연재 김씨는 17~18세기의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한시 130여 수를 남겼다. 기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 사랑채(소대헌)와 오른쪽에 작은 사랑채(오숙재)를 별채로 지었다. 작은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옆에는 양반가에서도 보기 드문 서고(書庫)가 있다. 기호 지역 양반가의 특징이 잘 보이는 건물이다. (안내문, 대전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대전시청, 2023년
  2. ‘국가민속문화재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대전 동춘당 종택, 조선후기 유학자 송준길의 종택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동춘당 종택이다. 조선후기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송준길(1606~1672)이 살았던 고택이다. 이 집은 15세기 후반에 처음 지어졌으며 여러차례 이전과 중건을 거쳤다. 현재의 건물은 1835년에 중건한 것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충청지역 대저택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안채는 ‘ㄷ’자형 평면으로 6칸 규모의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사랑채는 ‘-’자형으로 평면으로 큰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이 별도의 마루를 두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담장을 두어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으로 공간을 넓게 쓰는 지역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전 동춘당 종택 20230727_06<대전 동춘당 종택>

대전 동춘당 종택 20230727_08<들어가는 길>

 

안채_전면_전경
<안채>

대전 동춘당 종택 20230727_03<사랑채>

대전 동춘당 종택 20230727_05<사랑방>

대전 동춘당 종택 20230727_04<사랑방 너머로 보이는 담장>

뒷편에는 일반적인 가묘와 함께 송준길을 모시는 별묘를 따로 두고 있다. 앞쪽에 별채인 동춘당(보물)이 있다.

대전 동춘당 종택 20230727_07<뒷편 사당이 있는 공간>

대전 동춘당 종택 20230727_01<별묘>

대전 동춘당 종택 20230727_02<가묘>

동춘당(同春堂, 보물)은 별당 건물로 규모는 크지 않고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오른쪽 2칸은 대청마루로, 왼쪽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온돌방에는 굴뚝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작은 연기구멍을 두어 소박함을 강조하고 있다. ‘동춘당’이라 적힌 현판은 송준길 사후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쓴 것이다.

대전 동춘당 종택 20230727_09<동춘당(보물)>

대전 동춘당 종택
동춘당 종택은 송준길의 5대조 송요년이 15세기 후반에 지었다고 전하며, 이후 몇 차례 옮겨 지었다. 현재의 고택은 1835년에 중건한 모습이다. 종택은 사랑채, 안채, 별당, 별묘, 가묘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사랑채는 일자형으로 규모가 크고 큰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에 따로 마루방이 있다. 안채는 ‘ㄷ’자 형 평면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서쪽에 부엌.안방.골방을 배치하였고, 동쪽에는 안쪽부터 건넌방.부엌.행랑방이 있다. 안마당과 사랑채 사이에 내외담을 두어 내외를 구분하였다. 별묘에는 송준길의 신위를 묘시었고, 가묘에는 제사를 받드는 4대의 신위를 모시었다. 동춘당 종택은 호화롭지 않고 검소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공간 배치가 넉넉한 기호지방 양반 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대전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대전시청, 2023년
  2. ‘국가민속문화재 대전 동춘당 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대전 회덕 동춘당(보물)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고택인 회덕 동춘당(同春堂, 보물)이다. 조선 효종 때 병조판서 등을 지낸 동춘당 송준길(1606~1672년)이 살았던 저택 별당 건물이다. 규모는 크지 않고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오른쪽 2칸은 대청마루로, 왼쪽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온돌방에는 굴뚝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작은 연기구멍을 두어 소박함을 강조하고 있다. ‘동춘당’이라 적힌 현판은 송준길 사후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쓴 것이다.

대전 회덕 동춘당(보물) 20230727_02<대전 회덕 동춘당(보물)>

대전 회덕 동춘당(보물) 20230727_01<오른쪽에서 본 모습>

대전 회덕 동춘당(보물) 20230727_03<왼쪽에서 본 모습>

대전 회덕 동춘당(보물) 20230727_05<뒷편>

대전 회덕 동춘당(보물) 20230727_06<동춘당 담장>

대전 회덕 동춘당(同春堂), 보물
동춘당은 송이창이 세웠던 건물을 아들인 동춘당 송준길이 38세 되던 해(164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별당이다. 건물 앞에 걸려 있는 ‘동춘당’ 현판은 송준길의 사후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동춘이란 ‘만물과 더불어 봄을 함께 한다.”는 뜻이다. 동춘당은 단아하면서도 균형감이 좋고, 우아한 지붕의 곡선 등에서 조선 시대의 별당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었다. 온돌방 측면에 구멍을 내어 굴뚝을 대신한 것은 ‘따뜻함’이라는 본래의 기능보다는 어려운 백성을 의식한 ‘겸양’의 덕목을 지키려 한 모습을 의미하고 있다. (안내문, 대전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대전시청, 2023년
  2. ‘보물 대전 회덕 동춘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