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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부여박물관건축물, 건축가 김수근의 초기 작품 경향을 볼 수 있는 건축물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옛 부여박물관 건물이다.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김수근의 초기 작품 성향이 잘 드러나 있는 건물로 1967년에 준공하였다. 서까래를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골조와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통 건축물 형태를 하고 있으며, 한국적인 문양 및 장식물 등을 표현하였다. 건물 규모는 크지 않지만 외형은 실제보다 더 웅장해 보인다. 초기 김수근 작품인 워커힐 힐탑바(1961년)나 남산자유센터(1963년)에서 볼 수 있는 구조나 디자인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맞배지붕의 한옥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지만, 외형이 한옥건물보다는 일본 신사와 비슷하고 하여 왜색 시비와 함께 한국 건축의 전통 건축 표현에 대한 논란이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이 건물은 1970년부터 부여박물관으로 사용되었으며, 부여박물관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이후 부여문화재연구소에 사용해 왔다. 현재는 부여군 고도문화사업소에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신사출입문인 도리이(torii,鳥居)를 연상시키는 정문과 담장은 철거되어 남아 있지 않다.

<옛 부여박물관 건물>

부소산성 아래 백제 왕궁터에 위치한 옛 부여박물관 건물.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1967년에 준공되어 1971년부터 부여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부여군고도문화사업소 건물로 관북리 유적지, 부여현 관아건물 등과 함께 문화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쪽에서 본 모습>

우리나라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로 그의 초창기 작품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건물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한옥을 형상화하였다고 하나 일본의 대표적인 신사인 이세신궁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어 건축 당시 왜색 논란이 있었다.

<남쪽 출입문>

남쪽편 줄입문과 한옥의 서까래를 연상시키는 콘크리이트 구조물. 실제로 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다.

<지붕>

지붕 위로 동그랗게 솟아오른 원형의 투명한 천창들을 배치하여 전시장 내부에 자연채광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창문>

창문 바깥쪽에 고분에 출토되는 등잔모양의 장식물을 걸어 두고 있다.

<동쪽에서 본 모습>

건물 동쪽편 측면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동쪽편 출입문>

<맞배지붕>

서까래 모양의 콘크리이트 구조물을 연결하여 ‘人’자 모양을 만들고 있는데 한옥의 맞배지붕보다는 일본 이세신궁 구조와 비슷하다.

<일본 이세신궁(사진출처:위키피디아)>

목조 구조물이 노출되어 있는 외관으로 박물관 설계시 참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편>

출입문을 두지 않고 바깥풍경을 볼 수 있는 넓은 창이 있는 큰 홀이 있다.

<2010년>

<담장 바깥에서 본 모습>

<계단과 정문>

외형과 필요에 비해 육중하게 만들어진 난간 등으로 인해 신사출입문인 도리이(torii,鳥居)와 닮았다고 비난을 받았다. 정문과 계단 난간은 지금은 철거되어 남아 있지 않다.

<철거된 후 모습>

<신사출입문인 도리이>

외관상 닮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2010년 옛 부여박물관 건물 전경>

구 부여박물관건축물,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구 박물관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계획안이 채택되어 3년간(1965~1967)의 공사를 통해 준공된 후, 1970년부터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김수근의 초기 작품성향인 전통의 내재미와 형식미 추구의 개념이 잘 드러나 있는 건물이다. 강력한 조형미와 극적인 공간감을 연출하였으며, 서까래를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골조와 한국적인 문양 및 장식물 등을 표현하였다. 특히 한옥의 기와지붕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지붕의 마룻대 중앙 상부에 천창을 두어 건물 내부에 자연광을 유입시키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의 지붕 형태와 육중한 계단난간, 정문의 형태 등이 한국의 전통적인 이미지보다는 일본의 신사건물과 비슷하다고 여겨져 건립 당시부터 왜색 시비 논란과 함께 한국건축의 전통성 표현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