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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목조문수보살좌상(보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종이 있는 오대산 상원사는 세조가 문수동자를 만나 피부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있는 사찰이다. 이런까닭에 상원사의 주불전은 문수보살을 모신 문수전(文殊殿)이다. 문수전에는 세조가 직접 만났다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문수동자(국보)와 문수보살(보물)를 모시고 있다. 문수보살은 석가모시 사후에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하고 ‘반야경’을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으며,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라 할 수 있다. 문수보살은 신라 고승 자장(慈藏)이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기도를 드렸던 중국 오대산(五臺山)에서 1만명의 보살과 함께 있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오대산을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으로 여겨진다.

<상원사 주불전인 문수전에 모셔진 문수동자와 문수보살>

문수동자좌상(文殊童子坐像)

상원사 문수동자상은 조선전기에 불상 가운데 조각수법이 가장 뛰어난 불상으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는 불상의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불상은 고개를 약간 숙인 상태를 하고 있으며,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올린 동자머리를 하고 있다. 얼굴은 볼을 도톰하게 하여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러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최근 이 동자상에서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12년(1466)에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유물을 비롯하여 많은 복장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문수동자가 오대산 계곡에서 세조의 등을 씻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

문수전 동쪽에 그려져 있다.

문수동자(국보)
조선 단종을 폐위한 세조가 즉위한지 100년째 되던 해인 1464년 등창(부스럼병)을 얻게 되자 신미대사의 권유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대산에 행차하게 되었다. 상원사에 도착한 다음날 계곡물(오대천)에 몸을 담그던 중 지나던 동자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목용을 마친 세조는 동자가 등을 밀어 몸이 날아갈듯이 가벼워지자 기뻐하며 임금의 몸을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동자가 미소를 지으며 대왕도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말라며 홀연히 사라졌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동자는 사라지고 어느새 자신의 병이 씻은듯이 나은것을 알았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등창 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기뻐하며 궁에 돌아와 화공을 불러 만났던 동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으나 제대로 그리는 화공들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와서 자신이 그려 보겠다고 하여 세조가 그 모습을 설명하자 노스님은 자신이 알아서 그리겠다고 하며 설명도 듣지 않고 그려온 동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똑같아 세조는 놀라 스님이 오신곳을 묻자 노스님은 영산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고 한다. 즉, 세조는 동자와 노스님으로 화현하여 나타난 문수볼살님을 두번이나 친견한 것이다. 이후 의숙공주와 효녕대군의 발원으로 세조의 수복(壽福)을 빌기 위해 문수동자상이 조성되어 1446년 상원사에 모셔졌다. 이렇듯 문수보살 감응설화는 조선시대까지 전수된 문수정토의 신앙과 문수화현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수동자상의 복장은 1984년 7월19일 문화재관리국의 주최아래 조사되었으며 총23점의 복장유물이 확인되었다. 복장유물에는 불사리와 수정 사리병, 불경, 발원문, 중창문, 다라니가 찍힌 황초폭자, 후령통, 비단 어의 2벌 등이 있다. 왕실발원으로 이루어진 복장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복장들보다 다양하게 복장물이 구성되었다.  <출처:상원사>

문수보살좌상(文殊菩薩)

목조문수보살좌상(보물)는 조선후기인 현종2년(1661)에 조성된 목조불상이다. 불상의 조성연대 등을 밝히는 발원문과 함께 많은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지물과 보과도 조성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불상의 조성에는 강진 무위사 지장보살상을 조성한 회감을 비롯한 여러 조각승들이 함께 참여하며 17세기 조각양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한다.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보물)>

여의(如意)를 들고 있으며, 섬세한 보관이 특징이다.

<문수전 바깥에 그려진 문수보살상>

보관을 쓰고 여주를 들고 있으며, 푸른 사자를 타고 있다.

문수보살(보물)
문수보살상 및 복장유물은 조선 1661년(현종2)의 조성연대와 문수보살좌상임을 밝히는 발원문과 함께 많은 복장유물을 동반하고 있는 중요한 보살상이다. 이외에도 발원문을 통해 같은 해 전라남도 강진의 무위사 지장보살상을 조상한 회감과 여러 명의 조각승이 함께 참여하여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원사 보살상은 여의를 들고 있는 문수보살상으로 희귀한 예에 속한다. 또한 지물 뿐만 아니라 섬세한 보관도 조성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주목된다. 특히 안정감 있는 신체, 조용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의 상호, 입체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선묘를 보이고 있어 조각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 발원문은 의천(義天)이 작성한 것인데, 상원사의 세번에 걸친 중창내력과 성격, 문수보살상의 조성과정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특히 이 불상을 조성한 회감은 17세기 중엽 인균과 함께 많은 불살을 제작했던 조각승이어서,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조각승 간의 교류관계 및 이에 따른 불상 양식의 흐름과 변천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편 1661년이라는 분명한 조성 시기는 이 상이 17세기 전반기와 후반기 양식을 이어주는 지점에 있는 불상이자 17세기 후반의 기준작으로 대표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 시기 불교 조각 및 조각승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인정된다고 하겠다. <출처:상원사>

<상원사 주불전인 문수전>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누마루가 있는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문수전 내부>

<문수전 한쪽편에 모셔진 보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