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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제비원 석불로도 불렸던 고려시대 거대 석불

안동시 안동과 영주를 연결하는 옛국도변에 위치한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이다. 불상은 자연암석에 불상의 몸체를 선으로 새기고, 머리는 따로 조각하여 올려놓은 거대한 불상이다. 머리에는 상투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아 있고 얼굴에는 미소가 흐르고 있다. 머리에 얼굴에 주홍색이 남아 있어 원래 채색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 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어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을 배에 대고 있는 수인(手印)을 하고 있어 아미타여래로 여겨진다. 제비원석불로도 알려져 있는 이 불상은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보물) 등과 함께 고려시대 초기 호족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성했던 거대한 불상 중 하나이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안동 도심에서 영주방향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이다. 이곳에는 연미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오른쪽에서 본 모습>

불상은 자연석에 부처의 신체를 새겨넣은 마애불이며, 머리는 따로 조각해 올려 놓았다. 불상에 새겨진 신체의 형태와 수인(手印) 등으로 볼 때 아미타불인 것으로 보인다.

<몸통 부분>

<아래쪽에서 본 모습>

신체에는 아미타불이 천의(天衣)를 입고 있는 모습을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해 놓고 있다.

<불상 아래>

바위에 여러 사람들이 글을 새겨놓고 있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보물, 경북 안동시 이천동
거대한 화강암 석벽에 조각된 불신(佛身) 위에 불두(佛頭)를 따로 제작하여 올린 특이한 형태의 마애불로 머리 뒷부분이 일부 손상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풍만한 얼굴, 큼직한 백호(白毫), 초승달 모양의 깊게 파인 눈섭, 날카롭게 우뚝 솟은 코, 붉게 채색된 도톰하고 굳게 다문 입술 등은 장중하고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손의 모양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취하고 있으며, 불상의 발 밑에는 큼직한 단판 연꽃무늬를 새겨 불상 받침으로 삼고 있다. 이 불상과 같은 형식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는 것으로 얼굴의 강한 윤곽이나 세부적인 조각양식으로 볼 때 11세기 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는 12.39m이다. 제비원은 성주풀이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전설도 지니고 있는데,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칼을 베어 불상의 목을 쳤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출처:문화채청>

<불상 아래 절터>

<불상 옆 사찰>

불상 옆에는 최근에 새로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사찰이 있다. 조선시대에 폐사된 연미사(燕尾寺)를 계승한다고 한다. 석탑이나 불상 등 중요한 문화재가 있는 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석불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

<예불을 올리는 공간>

<불상 뒷편에 있는 이천동 삼층석탑>

안동 이천동 삼층석탑,
이 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3.5m이다. 보물 제115호인 안동 이천동 석불상(일명 제비원 석불) 뒤쪽 산 위 암벽에 단층기단으로 쌓여진 삼층석탑이다. 원래 석불상 뒤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서 복원하였는데 기단부와 탑신부의 구성비례가 맞지 않고 부조화스러워서 각 부재 중에서 다른 부재가 섞여 있지 않나 추정된다. 그러나 초층몸돌 이상은 조법, 결구가 명확하고 완전한 상태이다. 하층 기단부가 생략되어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돌이고, 2층과 3층 몸돌은 초층의 거의 3분의 1의 높이로 급격히 얕아졌다. 3층 모두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어 있으나 희미하고 상륜부는 완전히 없어졌다. <출처:문화재청>

불상이 있는 이곳 이천동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연미사(燕尾寺)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출장가는 관원들을 위한 출장시설인 원(院)이 있었는데 연미사는 절이름과 합쳐서 제비원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곳은 ‘성주풀이’라는 민요에 가택신(家宅神)인 성주(城主)의 고향으로 설정된 곳이기도 하다.

<안동과 영주를 연결하는 길>

영남 지방에서 안동을 거쳐 죽령을 넘었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던 길이다. 원래는 5번국도였으나, 4차선 국도가 새로 생기면서 한적한 시골길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