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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의성김씨 종택(보물), 영남 4대길지로 손꼽히는 천전마을 종택

안동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내앞마을)의 종갓집인 의성김씨종택(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학봉 김성일(1538~1593년)이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이 저택은 경북지역 한옥의 ‘ㅁ’자형 주택이지만 사랑채와 안채가 붙어 있어 전체적으로 ‘巳’자 모양을 평면을 하고 있다. 이는 김성일이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오면서 중국 상류층 주택을 참고하여 지었기때문이다. 외부에서 보는 저택의 느낌과는 달리 내부는 검소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솟을대문을 두지 않고 있으며 마당 또한 다른 저택에 배해 넓지 않은 편이다. 학봉 김성일이 이 저택을 중건했지만, 그는 장남이 아니었고 처가가 후사를 잇지 못했기때문에 처가가 있던 서후면 금계리 마을에 터전을 잡았기때문에 학봉종택은 그곳에 있다.

<안동 의성김씨 종택(보물)>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남 4대 길지로 언급된 안동 천전마을 종택이다.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권문세가의 저택이지만 솟을대문이 없다. 건물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와 사당 등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고 형태는 一자 형이다.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맡았던 안채는 ㅁ자형이고 다른 주택과 달리 안방이 바깥쪽으로 높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행랑채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중문을 두고 있지 않아 사랑채는 건물을 바깥쪽으로 돌아서 들어갈 수 있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연결해 주는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서재로,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인다. 사랑채는 바로 옆에 있는 사당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정실과 경묘각을 바라보고 있는 구조이다. 사랑채 내부의 마루가 상당히 넓어서 많은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 같아 보인다.

<작은 사랑채와 행랑채>

저택 앞쪽에는 작은 사랭채와 행랑채가 있다. 작은 사랑채가 규모는 작지만 높게 지어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웅장해 보인다.

<행랑채>

대문은 행랑채 한칸을 사용하고 있는 평대문을 하고 있다.

<2009년 여름>

안채와 행랑채

이 집은 안동지역 주택의 특징인 ‘ㅁ’자형 주택이지만 사랑채와 안채가 붙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집안사람들의 생활공간인 안채는 ‘ㅁ’자형으로 안방이 바깥쪽에 높게 자리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안채 안뜰로 연결되는 중문이 없어 외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는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는 이 종택의 느낌과는 달리 내부는 검소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마당>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형성된 마당이 보인다. 안채를 구분하는 중문이 없이 실제로 이곳이 안마당이라 할 수 있다.

<안에서 본 모습>

대문 양쪽 행랑채는 농가와 마찬가지로 외양간과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마당>

<외양간 옆 창고와 아궁이>

<안채 작은사랑>

안채에 속한 방 앞으로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달아 놓았다.

<판문>

<안채 대청마루와 사랑채 사이를 오가는 작은 출입문>

<안채에서 사랑채 뒷마당으로 출입하는 작은 쪽문>

<바깥에서 본 안채(동쪽)>

행랑채 문을 제외하고는 바깥을 출입하는 문을 두고 있지 않다. 명나라 북경 주택양식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

사랑채는 다른 주택과는 달리 안채의 왼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행랑채 대문을 통해서 출입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왼쪽편을 돌아서 들어갈 수 있다. 사랑채는 ‘-‘자형 건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사랑방을 주변에 배치해 두고 있다. 대청마루는 많은 손님을 맞이하거나 문중회의를 할 수 있도록 상당히 넓게 만들었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연결해 주는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서재로,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인다. 행랑채 한쪽편에는 일상적인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작은 사랑채를 두고 있다.

<사랑채>

사랑채는 건물 뒷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깥쪽 행랑채와는 건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 내부>

종택답게 손님을 맞거나 문중회의를 할 수 있는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한쪽편에 사랑방이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에서 사랑채를 출입하는 문>

<날개채>

사랑채와 행랑채는 2층으로 된 건물로 연결되어 있다. 위층은 서재로,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인다.

<책 등이 보관되어 있는 2층을 오르는 작은 계단>

<대문 옆 작은 사랑채>

<2009년 사랑채>

<사랑채 앞 정원>

<작은 사랑채 앞 정원>

사당과 경모각(景慕閣)

이집은 천전마을 종갓집답게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경모각, 이름을 적어놓지 않은 작은 건물을 포함하여 3동의 건물이  손님이 드나드는 사랑채 주변에 자리잡고 있고 있다. 사당은 앞면 4칸에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툇간을 두고 있는 격식있는 건물이며, 경모각 또한 상당히 큰 규모이다.

<경모각>

사랑채 왼쪽편에는 사당으로 보이는 경모각과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이 있다.

<사랑채 뒷편에 있는 사당>

<영정실>

영정실은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툇간을 두고 있는 사당이다. 겹처마에 공포를 두고 있는 등 상당히 격식을 갖추고 있다. 한쪽편 방에는 영정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경모각에서 사당을 출입하는 작은 쪽문>

<경모각>

경모각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앞쪽에 툇간이 마련되어 있다. 아마도 중요한 유물을 보관하는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모각 앞 툇간>

향교 대성전 등에서 볼 수있는 건물 구조이다.

<경모각 앞에 있던 작은 건물>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다른 건물로 바뀌었다.

천전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남 사대 길지(吉地) 중 한 곳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안동 풍산에 터를 잡고 있던 의성김씨의 후손인 김만근이 처가가 있던 천전마을로 이사온 후 마을은 의성김씨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종택은 김만근의 손자 김진(金璡, 1500~1580년)을 불천위로 모시는 종가이다. 학봉 김성일을 비롯하여 많은 후손을 큰 벼슬에 오르거나 학문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사당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천전마을 주변>

<천전마을 종택으로 들어가는 길>

안동 의성김씨 종택, 보물,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이 건물은 16세기에 불타 없어졌던 것을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년)이 다시 건립한 것이다. 16세기 말 학봉이 사신으로 북경에 갔을 때 그 곳 상류층 주택이 설계도를 가져와서 완성했기 때문에 그 배치나 구조에 있어서 독특한 점이 많다. ‘ㅁ’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가 행랑채 및 다른 건물과 이어져서 전체적으로 ‘巳’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재는 다른 ‘ㅁ’자형 안채와 달리 안방이 사랑채보다 외부에 있다. 사랑채는 별채처럼 외진 곳에 배치되어 손님이 행랑채의 디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랑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지만 주인이 거처하는 방으로서의 기능은 약하다. 사랑채와 안채는 1.6m 가량의 기단 위에 세워져 바깥채보다 높다. 사랑채에 이어주는 부속채는 완전한 2층 구조인데 윗층은 서고(書庫)이며 아래층은 헛간으로 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