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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사후인문화, 철기시대 베트남 중.남부

1. 청동북, 동선문화 상징2. 홍강 유역 청동기문화3. 동더우, 고문문화4.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 5. 동선문화 사람들6. 사후인문화7.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사후인(Sa Huynh, 기원전 500 ~ 기원후 100년)문화는베트남 중부 꽝빈(Quang Binh)성에서부터 남부 메콩강 델타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번성했던 철기시대 문화이다. 사후인문화 사람들은 해을을 따라 농사짓기에 좋은 평양지대에 살았다.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북부 동선문화와는 달리 사후인문화는 인도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후인 문화 사람들은 북부 동선문화와는 달리 철기를 많이 만들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도끼, 칼, 창 등의 철기와 연옥 등으로 만든 동물머리 장식 귀걸이를 비롯한 장신구 등 이 있다. 또한 장례풍습으로는 화장을 하여 독무덤에 넣어 뚜껑을 덮여 매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무덤 주위에는 그릇을 깨뜨려 놓기도 하고, 생활 용기를 함께 매장하였다. 토기를 사용한 독무덤은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사후인문화를 대표하는 토기들>

토기제작기술이 비교적 뛰어나고 수준이 높은 편이다. 도기로 발전하는 전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후인 장신구
사후인의 대표적인 장신구는 연옥과 마노, 유리로 만들어진 동물머리 장식 귀걸이와 꼭지 장식 귀걸이이다. 사후인의 귀걸이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남부의 동나이 지여과 멀리 홍콩, 타이, 타이완,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도 출토되었다. 이것은 당시 연안 항로를 이용하여 사후인 사람들이 구축한 교역망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편 원석이 나지 않는 사후인 지역에서 유리, 홍옥, 마노, 감람석, 석류석으로 된 보석 장신구를 대량 제작했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 수입한 원석을 가공하여 장식품을 만든 후 재수출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출처:중앙박물관>

<1.꼭지장식 귀걸이(사후인문화 BC 500~0년, 돌.유리)>

<2.귀걸이(바이꼬이,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돌.수정)>

<3.목걸이(사후인문화 BC 500~0년, 유리.마노)>

<4.동물머리모양 귀걸이(사후인문화 BC 500~0년, 유리.연옥)>

<5.팔찌(사후인문화 BC 500~0년, 청동)>

<사후인 문화 귀걸이 분포도.>

베트남 중부와 남부지방의 청동기.철기시대 문화인 사후인 문화를 대표하는 장신구들이 출토된 지역들이다. 해안을 따라서 넓은 지역에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사후인 문화 사람들의 매장방식인 독무덤.>

토기로 만든 독에 시신을 묻는 방식으로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독무덤(왼쪽, 사후인문화, 동꾸응, 빈딘성), 독무덤(오른쪽, 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토기(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 이 토기들은 3호 독무덤과 함께 묻혀 있었던 부장용 토기이다.

<독무덤(전북 익산 석천리 유적, 청동기시대, 토제)>

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의 하나로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던 독(甕)을 사용하여 죽은 사람의 시신이나 뼈를 묻는 무덤양식이다. 토기의 크기나 형태로 볼 때 유아 전용 무덤이거나 성인의 시체가 썩은 후 뼈만 남은 유골을 안치하기 위한 무덤으로 보인다. 익산 석천리 무덤에서 발견된 독널은 골아가리무늬가 새겨진 토기를 사용하고 있고, 돌로 뚜껑을 덮었으며 세워서 수직으로 안치하였다. 베트남 사후인 문화의 독무덤과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서 세워져 안치하는 방식이 비교가 된다. <출처:중앙박물관>

<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독무덤(사후인문화, 출토지미상).>

<토기(사후인문화, 바이코이, 하틴성)>

독무덤과 함께 묻혀 있었던 부장용 토기이다.

<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 왼쪽 독무덤 안에는 작은 항아리가 들어있었다. 이 항아리는 화장용 뼈단지이다.

바이꼬이 유적의 특징
바이꼬이(Bai Coi)유적은 베트남 중북부의 대표적인 청동기~철기시대의 유적이다. 동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된 하틴(Ha Tinh)성의 해안 사구에 위치하며, 그동안은 동선 문화권의 남단에 포함된 지역으로 분류되어 왔다.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과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이 공동으로 발굴조사 한 결과 이 유적은 사후인 문화에 속하지만 동선문화의 특징도 가지고 있는 문화 접점으로서의 요소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바이꼬이 유적은 사후인의 귀걸이가 출토된 독무덤(甕棺墓)과 동선 팔찌를 채워 시신을 매장한 움무덤(土壙墓)이 혼재한 상태로 조사되었다. 또한 무덤안에서 출토된 청동 유물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표면에 붙어 있는 직물 조각을 발견하였다. 분석 결과 마직물로 확인 되었으며, 이를 통해 2000년 전 사후인 사람들이 직조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1.도끼 (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청동)>

<2.팔찌 (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청동)>

<3.직물(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마)>

<4.어망추(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토제)>

<5.삽날과 창(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철)>

사후인 사람들의 토기제작
사후인 사람들은 일찍부터 토기를 사용하여 무덤을 만들었다. 독무덤 주위에는 그릇을 깨뜨려 놓기도 하고, 생활 용기를 함께 매장하였다. 이처럼 사후인 지역에서 토기제작 기술이 발달한 원인은 토기를 좋아하는 문화적 풍토에서 시작되었다. 독무덤에 사용되는 대형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형을 만들고 굽는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독무덤에 사용된 토기를 통해 사후인 사람들이 좋은 점토를 선택할 줄 알았으며, 회전판을 이용하여 정교한 토기들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토기의 표면은 파상문이나 음각선을 이용하여 기하학적 문양과 점열문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한편 표면에 흑색칠을 하여 매끈하게 마연하는 등 장식에 많은 정성을 들여 제작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찜솥(바일로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사후인 문화의 토제 찜솥이다. 외형은 목이 긴 항아리처럼 생겼으나 토기 안쪽에 몸체와 목의 경계에 전이 달려 있다. 그 위에 성긴 발을 깔고 수증기로 음식을 쪄서 조리하는 용기이다. 생활용뿐만 아니라 부장용으로도 출토된다.

<1.뚜껑이 있는 단지(바일로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2.단지(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3.솥(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1.항아리(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2.굽다리단지(바일로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3.뚜껑이 있는 단지(티우도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4.새모양 토기(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사후인 문화, 해양 교역망을 형성하다.
사후인(Sa Huynh)문화는 기원전 500~기원후 100년경 베트남 중부의 해안과 도서 지역에서 번성했던 청동기~철기시대의 문화이다. 베트남 중부의 꽝빈(Quang Binh)성에서부터 남쪽으로 꽝나이(Quang Nai)성까지 해안을 따라 넓게 분포한다. 사람들은 농경에 유리한 평야지대에 주로 거주했으며, 사후인 문화는 해안에 위치한 지리적인 특징으로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의 영향을 받았다. 사후인 문화는 독특한 장례법이 특징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해서 독무덤에 넣어 뚜껑을 덮고 세워서 매장한다. 밀집된 공동묘지 대부분은 해안 사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으로 사용된 항아리는 지역에 따른 형태의 차이가 있다. 독무덤 주위에 제기와 같은 그릇들을 일부러 깨뜨리는 풍습도 확인되었다. 부장품으로 사용된 금속유물은 청동기보다 철기가 많았다. 이러한 특징은 같은 시기 북부의 문화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후인 사람들은 2세기 말 참파(Cham pa)국을 세운 참족의 선조이다. 참파국은 동남아시아의 강국이었던 캄보디아의 앙코르 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 지역은 15세기경 베트남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