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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보헤미아 유리] 유리 제작의 기원과 중세

1. 유리 제작 기원과 중세, 2. 체코의 기독교문화, 3.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4. 바르크와 로코코, 5. 19세기 보헤미아 유리, 6. 유리 장신구, 7. 20세기 유리공예, 8. 현대 체코의 유리공예

동유럽에 위치한 체코공화국은 북서쪽과 서쪽에는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동쪽과 동남쪽은 슬로바키아, 북쪽과 북동쪽은 폴란드와 접하고 있다. 인구 천만명 정도로 크게 서부에 보헤미아(Bohemia, 체코어 Čechy), 동부는 모라비아, 폴란드와 접하는 동북부의 슬레스코 지역이 있으며 수도는 프라하이다. 9세기부터 종교개혁과 30년전쟁 이전까지는 신성로마제국의 일원이었다. 종교개혁 당시 신교를 탄압했던 보헤미아 왕에 대항해 보헤비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그 결과 보헤미아지방은 많은 피해를 입고 합스부르크왕가의 지배에 들어갔다. 1차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벗으나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하였으며, 1993년 슬로바키아와 분리하였다. 체코의 서부지방인 보헤미아는 체히(Cechy)라고 부르며, 체코라는 이름은 기원이 되는 지방으로 수도인 프라르를 비롯하여 많은 공업도시가 있으며, 체코의 청치.경제.산업의 중심지 있다.

<요세프 융만(Josef Jungmann)에게 헌정된 잔(1836년경, 북부 보헤미아 노비스베트, 투명유리.도금.커팅.조각)>


<옆에서 본 모습>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섬세한 유리가공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노비스베트 유리 공방에서 제작한 것으로 정교한 세공 기술이 돋보이는 독장적인 작품이다. 이 잔은 요세프 융만(1773~1847년)을 위한 선물로 제작 되었는데, 그는 인문학자이자 작가로 체코의 민족 부흥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1835~1839년에 융만은 체코어-독일어 사전을 발간하여 체코어 문법의 토대를 만들었고, 이로써 체코어가 당시 지배적이었던 독일어와 동등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글귀가 잔에 장식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유리는 기원전 4000여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1500년 경부터 유리로 용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메소포타마이와 이집트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동지중해 연안 도시를 거쳐 지중해 전역에서 유리제품을 만들게 되었다. 유리공예는 고대문명이 발생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처음 생겨나 페르시아와 지중해 문화권에서 크게 융성하였다. 유리공예가 크게 발전했던 곳으로는 페르시아와 로마, 중세의 아랍과 베네치아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 만들어진 유리는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과 한반도까지 전파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수입된 유리제품들이 출토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유리는 도자기에 밀려 크게 발전하지 못했지만 유럽에서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던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유리제작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대롱불기 기법으로 유리를 가공하는 모습.>

“유리 공예가는 그저 도구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숨을 불어 넣어야 한다. 신이 흙으로 인간의 형상을 빚은 뒤 숨을 불어 넣었던 것처럼.”
유리공예가이자 설교자 요하네스 마테시우스

<대롱불기로 유리를 가공하는 방법.>

<1.눈모양 장식이 있는 구슬(기원전 5세기, 초기 철기시대 할슈타트문화, 보헤비아 중부 스트로도니체, 베로운). 2.눈모양 장식이 있는 구슬(기원전 5세기, 초기 철기시대 할슈타트 문화, 보헤미안 서부 비체니체, 클라토비)>

한반도에서 출토되고 있는 형태의 유리공예품이다. 로마나 페르시아에서 주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이다.

1.눈모양 장식이 있는 구슬, 다양한 색깔에 눈 모양 장식이 있는 구슬은 초기 청동기 시대 유럽 유리 중 대표적인 제품이다. 이 구슬은 체코에 수입된 것으로 그 기원은 동북 이탈리아 또는 지중해의 공방으로 추정된다. 2.눈모양 장식이 있는 구슬, 목걸이나 귀걸이에 사용하던 구슬이다. 무덤의 부장품으로도 사용되었는데, 눈 모양의 문양에는 벽사(僻邪)의 이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3.팔찌(기원전 3세기 후반 ~2세기 초, 후기 철기시대 라텐문화, 보헤미아 중북부 스트라도니체, 도우니; 립체베스, 로우니’ 투르스코, 프라하)>

이 팔찌는 켈트족의 최상급 생산품 중 하나이다. 지배계급 여성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는데, 장식 뿐 아니라 부적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4.원반모양 구슬(기원전 2세기 ~ 1세기, 후기 철기시대 라텐문화, 보헤미아 중부 스트라도니체, 베로운)>

화려한 색감의 무늬들로 장식되어 있다.

켈트족은 유리 팔찌 뿐 아니라 원반 모양 구슬도 제작하였다. 역시 장식적 의미뿐아니라 부적과 같은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출처:중앙박물관>

<5.목걸이(300년경, 후기 로마시대, 보헤미아 중부 즈볼레네베스우슬라네호, 뼈.유리.호박), 6.홈이 있는 구슬( 3~4세기 로마시대, 보헤비아 중부 도브로지호프 – 트르제비츠카). 7.원뿔 모양의 구슬(5세기 민족 대이동 시대, 프라하 – 포드바바, 마일베르코바 벽돌 공장)>

5.목걸이, 부유한 게르만 가족의 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목걸이는 뼈로 만든 구슬 및 보라색, 초록색 유리 구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에는 부적의 기능을 가진 호박 구술이 있다. 대칭적인 배열이 미적인 기준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8.목걸이(6세기 중반 민족 대이동 시대, 보헤미아 중부 잘루쥐, 첼라코비체 무덤, 유리.호박.석회암.청동), 9.옷핀장식(5세기 민족 대이동 시대, 프라하 포드바바, 은.도금.유리)>

8.목걸이, 유리구슬, 돌, 호박으로 만든 구슬 목걸이는 고대 게르만 족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 목걸이는 손상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민족 대이동 시대의 무덤들이 자주 도굴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9.옷핀장식, 강한 대비 효과를 위해 붉은 유리를 사용한 장신구이다. <출처:중앙박물관>

<10.새머리 모양 옷핀(5세기 전반, 민족 대이동 시대, 프라하 – 포드바바, 은.도금.유리.철), 11.동물 모양 옷핀(5세기 민족 대이동 시대, 보헤미아 중부 지역, 은.도금.유리.귀석류석.철)>

10.새머리 모양 옷핀, 이 옷핀은 측면을 바라보는 두 마리 새의 머리로 구성되어 있다. 새의 눈은 빨간 유리 원판으로 만들어졌다. 새 문양은 게르만의 주신 오딘(Odin)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유리 제작의 기원과 전파
유리는 규산, 소다, 석회 등을 배합하여 만든 물질이다. 인류가 유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00여년 전의 일이다. 초기에는 구슬처럼 작고 속이 꽉 찬 형태로 만들어 지다가 기원전 1500년 경 유리로만 된 용기가 처음 등장했다. 초기의 유리 제품은 대부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발견된다. 제작에 공이 많이 드는 유리는 상류층만 소유할 수 있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지중해 연안의 도시가 유리 제작의 중심지로 부상하였고, 점차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현재의 체코 영토에 정착한 켈트족은 당시 로마 지역에서 유리 제작 기술을 도입하여 기원전 2세기 무렵 유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유리 제작의 기원과 중세
체코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유리는 철기시대인 기원전 8세기~기원전 5세기의 것으로,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장식용 유리구슬이 대표적이다. 이후 체코 영토에 정착한 켈트족이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에 유리 팔찌와 구슬 등을 만들었으며, 기원후 9~10세기에는 대 모라비아 왕국을 세운 슬라브 인들이 켈트족의 전통에 따라 유리를 생산하였다. 체코의 유리 제작 기술은 중세에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체코가 경제적, 문화적으로 번영을 누리게 되면서 왕과 귀족, 교회와 상류층의 수요가 확대되어 유리의 제작이 급증했고, 고품질의 유리가 생산되었다. 이 시기의 유리 그릇으로는 길고 가느다란 형태에 진주 모양의 프룬트를 표면에 장식한 ‘체코식 술잔’이 대표적이다. 성당을 비롯한 각종 건물이 많이 지어지면서 색유리창인 스테인드글라스도 제작되었다. 색유리 조각을 납선으로 연결하고 검은색 선을 이용한 슈아르즐로기법으로 장식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보헤미아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게르만족 대이동이 있었던 시기 이후부터 중세까지 보헤미아 지역에서 출토되는 대표적인 유리로 만든 유물들이다. 로마에서 만들어진 것을 수입한 것도 있고, 일부는 로마 유리를 모방하여 자체적으로 만든 것도 있다. 르네상스 시기에 접어들면 체코 고유의 형태르 보이는 유리잔 등이 만들어진다.


<장식이 있는 술잔(5세기 초, 보헤미아 중부 티시체, 브란디스나트라벰),>

비슷한 시기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유리잔과 비슷하다. 당시 실크로드를 통한 활발했던 동서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술잔은 민족 대이동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유리잔이다. 서로마 지역의 고대 후기 유리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깔대기 모양 술잔(5세기, 프라하 코빌리시 무덤 4호)>

게르만 족 부유층의 무덤에서 발굴되었으며 당시 인기 있던 술잔의 형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원통형 잔(5세기)>

원통형 잔은 5~6세기 로마 제국 서부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형태이다. 유럽의 게르만 지방으로부터 이러한 잔이 많이 수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리의 황녹색은 제작할 때 별도의 첨가물 없이 자연스럽게 발색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주름 장식이 있는 병(5세기), 비스듬한 나선형의 주름이 장식된 병이다.>

 <1.구슬(9세기 후반 ~ 10세기), 2.구슬(9세기 후반~10세기 초반),>

1.구슬, 눈 모양의 무늬 두개가 장식된 긴 유리 구슬이다. 2.구슬, 유리나 돌로 만든 구슬뿐 아니라 누금세공 기법으로 문양을 넣은 금속 구슬도 목걸이에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3.펜던트(9세기~10세기초, 체코 동부 프라호프 홀리브로흐 무덤15호, 유리.철), 4.반지(10~11세기 추정),  5.가락바퀴(9~11세기 추정),>

3.펜던트, 이 펜던트는 초록색 유리로 만들어졌으며 철 고리의 일부가 남아 있다. 옷 장식이나 목걸이의 일부로 목 아래에 붙여 옷을 고정하는 기능이 있었을 것이다. 4.반지, 중세 초기의 유리 반지는 아주 드물게 발견된다. 보통 비철금속이나 귀금속으로 만든 반지를 더 자주 볼 수 있다. 5.가락바퀴, 락바퀴는 실을 잣는 가장 오래된 도구 중 하나이다. 유리 가락바퀴는 귀중품으로서 보통 높은 사회 계층이 거주했던 지역에서 발견된다. <출처:중앙박물관>

 <6.귀걸이(9세기 후반 ~10세기 초반, 중부 보헤미야 스타라코우르짐 무덤 129호, 은),  7.펜던트(9세기 후반 ~10세기 초반, 중부 보헤미아 스타라코우로짐 무덤 97호 129호, 금동),>

6.귀걸이, 중세 초기 체코에서 여성의 장신구 중 유리는 적은 편이었으며, 가장 비싸고 가장 인기 있는 재료는 금속이었다. 전문적인 공방에서 제작되는 비싼 장신구는 대개 금이나 은, 또는 도금한 금속으로 만들었다. 7.펜던트,공모양의 펜던트나 단추는 얇은 금속판으로 만든 반구 2개를 연결하여 만들었다. 기하학적 무늬나 동식물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옷의 어깨나 목 아래에 쌍으로 달아 사용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 8.고리장식(11세기)>

10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초까지 S자 모양의 고리가 달린 장식은 보헤미아에서 대표적인 장신구였다. 구리로 중심부를 만들고 겉에 은판을 씌워 만들었다. <출처:중앙박물관>

 <9.목걸이(9세기 후반 ~10세기 초반, 보헤미아 중부 스테헬체베스 우치헬니 무덤 3호, 유리.구리), 10.목걸이(9세기 후반 ~ 10세기 초반, 보헤미아 중부, 돌.유리), 11.목걸이(9세기 후반 ~10세기),>

9.목걸이, 이러한 목걸이는 체코에서 9세기~10세기 초반에 널리 제작된 대표적인 장신구 중 하나이다. 유리 구슬은 작은 구리 대롱에 유리를 씌우는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10.목걸이, 다양한 유리 구슬로 만든 이 목걸이는 고대의 요새화된 주거 지역에 딸린 넓은 묘지에 있던 여성의 무덤에서 발굴되었다. 11.목걸이, 대 모라비아 왕국의 한 묘지에 있는 어린아이의 무덤에서 발굴된 목걸이이다. <출처:중앙박물관>

<12.목걸이(10세기 후반, 프리하, 수정.호박.유리),>

호박구슬이 포함된 목걸이로서는 체코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이러한 유형의 목걸이는 남동부 발트 지역에서 들어왔는데, 이는 비단길을 통한 키예프 대공국과의 무역과 옛 호박길을 통한 폴란드와의 교역 덕분에 가능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프룬트 장식이 있는 술잔(14세기 후반, 보헤미아 서부지방 풀젠 프란티스칸스카 거리, 유리),>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면서 보헤미아 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리제품들이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술잔은 중세 전성기부터 후기까지 보헤미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대표적 기형을 보여준다. 가장 흔한 것은 지중해 동부 지방에서 유래된 통 모양이고, 대부분 진주 모양의 푸룬트 장식이 촘촘하게 붙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끈 장식이 있는 병(15세기 전반, 서부 보헤미아 풀젠 세틀라츠코바 거리 우물, 유리)>

병은 중세 유리 기물의 기본적인 형태 중 하나였다. 병의 몸체는 줄무늬가 있는 틀로 본을 뜨고 난 뒤 손질하여 마무리했다. 날씬한 병 목에는 가는 유리끈을 나선형으로 감았다. <출처:중앙박물관>


<체코식 술잔(15세기 전반, 서부 보헤미아 풀젠 프란티스칸스카 거리, 유리),>

체코 고유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리제품이다.

긴 체코식 술잔은 중세에 체코에서 대표적인 유리 제품이었다. 대부분 표면에 작은 프룬트를 붙여 장식하였다. 복잡한 공정이 요구되는 이러한 잔은 왕실에서 사용되었고, 좀더 단순한 형태의 잔은 귀족이나 부유한 시민 집안에서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체코식 술잔(15세기, 보헤미아 남부지방 세지모보우스티, 유리),>

체코식 술잔에 붙인 프룬트는 장식적인 기능뿐 아니라 식사할 때 기름 묻은 손으로도 잔을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체코의 주요 지방.>

독일과 국경을 맞댄 서쪽이 수도 프라하를 중심으로 한 보헤미아 지방이다. 체코는 중세 신성로마제국의 일원으로 17세기 종교개혁으로 발생한 30년 전쟁이 시발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보헤미아 유리의 고향, 체코
체코는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으며 크게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실레지아 지역으로 나뉜다. ‘보헤미아’라는 지명은 기원전 4세기에 켈트 보이 족이 정착하면서 이 지역이 보요해뭄이라 불린데서 유래한다. 체코 최초의 국가는 9세기에 슬라브족이 세운 대모라비아 왕국이었는데, 여기서 9세기 말에 체코공국이 분리되었다. 체코는 카렐4세(재위 1346~1378년)의 치세에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그는 체코의 왕인 동시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하여 프라하를 유럽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15세기 들어 체코는 후스 파의 종교 개혁으로 가톨릭 세력과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의 사정이 악화되었다.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2세(재위 1576~1612년) 시기에 체코는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되었고 수도 프라하는 르네상스 문화와 예술이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과 체코 귀족들이 대립하면서 벌어진 30년전쟁(1618~1648년)으로 말미아마, 체코인들은 근300년에 걸쳐 합스부르크가의 직접 지배를 받으며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톨릭을 강요받는 시련을 겪었다. 봉건사회가 막을 내리자 체코인들은 자치권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이후 나치 독일의 침공과 소련의 지배로 또 다른 시련을 겪었으나 1989년 비폭력 혁명인 ‘벨벳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았고, 1993년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이 분리되었다. 체코는 때로 역사적 고난을 겪었지만 자국의 전통과 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헤미아 유리는 체코의 자랑스러운 전통 중 하나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체코국립박물관
체코국립박물관은 체코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2백만점이 넘으며, 그 범위는 자연사, 역사, 광물학, 지질학, 고생물학, 동물학 및 다른 과학 분야를 아우른다. 체코국립박물관은 프라하 안팎에 위치한 16개의 건물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1818년 민족주의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후로 점차 개인 소장품을 기증받으면서 규모가 커졌다. 체코국립박물관이 본관은 현재 보수를 위해 휴관 중이지만, 박물관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공간들을 방문할 수 있다. 이전에 성 막달라 마리아 성당이 있던 곳에 위치한 프라하 소지구의 체코음악박물관, 체코의 전통과 풍습을 배울 수 있는 민족학박물관, 비트코프 언덕에 있는 신비한 국가 기념물, 이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나프르스텍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문화박물관, 낭만적인 브르쇼토비 야노비체 성, 그리고 프라하티체에 있는 체코인형서커스박물관이 바로 그러한 곳들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체코 국립박물관>

프라하장식미술관
프라하장식미술관은 1897년에서 1900년 사이에 건축가 요제프 슐츠의 디자인에 따라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설립되었다. 설립 이래로 프라하장식미술관은 체코 및 다른 나라의 장식미술, 디자인, 도서 문화, 사진 그리고 복식 분야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다. 프라하장식미술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이며 소장품은 총 25만여 점에 이른다. 그 중에서 유리와 도자기 소장품은 수량도 가장 많고 중요도도 높다. 2만여 점에 달하는 유리 소장품은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리 제조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며, 체코 유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프라하장식미술관은 현대의 응용미술과 디자인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직업 관련 학교들과도 긴밀한 협력을 맺고 있다. 또한 체코 국내에서의 전시 프로젝트 뿐 아니라 소장품의 국외 전시에도 관심을 가지고 주력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프라하 장식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라는 제목의 특별전시회를 2015년 봄에 개최하였다. 체코와의 외교관계 수립을 기념하여 체코의 문화와 전통을 소개하는 목적으로 체코 보헤미아 유리공예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들은 전시하였다. 체코에서는 기원전 4세기에 정착한 켈트족이 로마의 유리제작기술을 도입하여 기원전 2세기부터 유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체코의 의 유리제작기술은 중세에 크게 발전했는데, 중세 동방무역의 거점이었던 베니스와 교류를 통해 고품질의 유리를 생산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유럽 유리제품 중에서도 명품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의 스와로브스키는 1895년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동시대에 명성을 떨쳤던 보헤미아 유리공예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과 체코 간 외교관계 수립 25주년을 맞이하여 체코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체코 보헤미아 지역의 유리를 소개하는 특별전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체코 보헤미아 유리의 전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헤미아 유리는 장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기술 개발에 힘입어 유럽 유리 문화를 주도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보헤미아 유리의 다양한 색과 형태, 고도로 정밀한 세공은 실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유리 제작 전통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현대에도 유리를 매체로 한 예술 작품이 활발히 창작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이 체코의 문화와 아름다운 유리 작품을 직접 접하고 감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중앙박물관>

<“빛의 예술, 보헤미야 유리”>

2015년 봄, 중앙박물관에서는 “빛의 예술, 보헤미야 유리”라는 제목의 특별전시회를 개최하였다.

<“빛의 예술, 보헤미야 유리>

전시회에서는 체코을 대표하는 예술품이자 유물이 보헤미아 유리공예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된 유물들은 초기 철기시대부터 현대의 유리로 만든 예술작품까지 다양한 형태의 유물과 작품들을 전시했다.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