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박물관, 왕실 가구와 궁중음식(수라상)

고궁박물관은 조선왕실의 역사와 그들이 조선사회에서 차지했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을 소장.전시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는 조선 왕실을 생활상과 문화를 보여주는 각종 물품들은 당대 최고의 장인들인 만든 것들로 조선의 궁중 문화와 예술적인 감각 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사회에서는 왕실도 사치를 배제하고 검소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왕실이 사용했던 가구들에서도 이런 측면이 반영되어 붉은 주칠을 사용하여 일반인들과 구분하였던 점을 제외하면 대체로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색상과 디자인들을 하고 있다.

검소한 생활을 강조했던 일상 생활과는 달리 조선왕실에서는 왕과 왕비의 생신, 세자의 탄생이나 책봉 등 행사와 함께 하는 많은 잔치들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고 신하들과 친목을 도모하였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주관하는 잔치는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화려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궤에 기록으로 많이 남겨 놓고 있다. 잔치에 사용된 음식과 기물들은 일상생활에서 먹고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비교적 화려했던 것으로 보이며, 왕실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왕실 생활의 품위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였던 물품들은 격조 높은 왕실의 생활상과 문화를 잘 보여준다. 지상 최고의 존재인 국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을 위해 만든 의복과 음식, 각종 기물 등은 당대 최고의 장인에 의해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궁중에서 혼례나 제사, 축수연 등 중요한 왕실의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고, 의례에 사용하는 물품들은 엄격한 규정과 격식에 따라 제작되었다. 음식의 경우는 일상의 수라상과 잔칫상의 상차림을 달리하였고, 궁중의복은 왕과 왕실 인물들의 역할과 존엄성을 나타내는 복장으로 일상복과 특별한 의식을 치를 때 입는 예복이 달랐다. 왕실 의례물품은 물론 왕실에서 사용한 일상생활용 가구와 그릇, 복식, 장신구 등에도 역시 당대 문화의 정수가 담겨 있다. 그러나 조선은 사치를 금하고 국왕이 몸소 검약한 생활을 실천했기 때문에 궁중의 생활 물품에는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 보다는 우아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왕실의 엄격한 법도와 예절에 따라 재료와 색상, 그리고 장식문양에 차이를 두었다. <출처:고궁박물관>

 

왕실 가구
왕실용 가구는 일반 사가의 가구에 비해 크기가 크고, 가구 표면을 붉은 색으로 칠한 것이 많다. 붉은 주칠은 투명한 옻칠에 수은 성분의 붉은 가루를 섞어 만든 것으로 일반 사가에서는 사용을 금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붉은 주칠 외에도 검은 흑칠과 노란 황칠이 사용되었으며, 나전으로 여러가지 문양을 섬세하게 박아 넣거나 쇠뿔을 얇게 저며 그림을 그리는 화각 기법으로 정교하게 장식하기도 하였다. 가구의 장식문양으로는 용.십장생.박쥐.팔보문 등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것들이 주로 사용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붉은칠 서안(조선후기)

OLYMPUS DIGITAL CAMERA검은칠 자개 빗접(조선), 촛대(20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주칠 유리 초화문 좌등, 태극모양 부채

OLYMPUS DIGITAL CAMERA붉은칠 자개 문갑(대한제국)

OLYMPUS DIGITAL CAMERA붉은칠 자개 이층농(20세기초), 주칠삼층장(조선)

OLYMPUS DIGITAL CAMERA흑칠 나전 연상(조선)

궁중음식
궁중의 일상식은 하루 네 차례로,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 아침의 수라상, 점심의 낮것상, 저녁의 수라상으로 나뉜다. 초조반상은 죽이나 미음으로 간단히 차리고, 아침 수라는 오전 10시경에 올리며, 낮것상은 면이나 다과로 구성하고, 저년 수라는 오후 6시경에 올린다. 음식은 한곳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전.중전.대비전.세자빈전 등 각 전각마다 주방상궁이 음식을 만들었다. 주요 음식을 만드는 곳인 수라간은 소주방이라고도 하며, 음료와 떡 등 다과를 만드는 곳은 생과방이라고 한다. 궁중에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도감을 설치하고 잔치 음식을 만드는 전문 남자 요리사인 대령숙수가 조리를 하고 상을 차렸다. 잔치 음식은 높이 괴어 올린 고배상 차림으로 잔치가 끝난 후 신하들에게 하사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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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간 현판(조선)

수라상
수라상은 평상시 왕과 왕비에게 아침과 저녁으로 올리는 진지상을 말한다. 밥과 탕을 포함한 기본 음식과 12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12첩 나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고종과 순종을 모셨던 마지막 주방상궁과 순종비 윤황후를 모셨던 상궁들의 구전을 근거로 한다. 수라상은 기본적으로 세 개의 상으로 이루어졌다. 왕의 앞에는 대형의 둥근 밥상이,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검사하는 기미상궁 앞에는 소형의 둥근 밥상이, 식사를 시중드는 수라상궁 앞에는 네모난 책상반이 놓인다. 큰 상에는 쌀밥이 놓이고, 작은 상에는 팥밥이 놓였는데, 왕이 기호에 따라 선택하여 먹었다. 책상반에는 채소와 달걀 등을 차려 두었다가 즉석에서 전골을 만들어 왕에게 올렸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수라상 음식차림 중 국왕의 앞에 놓이는 대형 둥근 밥상

OLYMPUS DIGITAL CAMERA 수라상 음식 차림 중 식사를 시중드는 수라상궁 앞에에 놓이는 네모난 책상반과 전골

OLYMPUS DIGITAL CAMERA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검사하는 기미상궁 앞에 놓이는 소형의 둥근 밥상

OLYMPUS DIGITAL CAMERA경복궁 장고, 경복궁 옛 지도인 『북궐도향』에 의하면 함화당, 집경당 서쪽에 궁중 장을 담가 두었던 장고를 두었다. 이곳은 궁중의 연회나 제례에 사용하는 장을 보관하였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고에는 주로 장 종류와 술,물,젓갈 등을 담아 쓰던 옹기들이 많았고 장고를 관리하는 상궁을 ‘장고마마’라 불렀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주칠합(조선), 주칠을 하고 뚜껑 상단에는 금색의 용으로 장식하였다. 주칠은 일반 사가에서는 사용을 규제할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으며, 주로 왕실에서 사용되었다.  붉은칠 상(20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밥상 보자기(조선), 음식을 나를 때 오염되는 것을 막거나 겨울철 음식물을 따뜻하게 보온하기 위해 식판 위에 덮는 보자기이다. 모시 또는 솜을 두어 누벼 보온성을 높인 겨울용 보자기로 겉감 안에는 두터운 기름종이를 붙였다. 밥상보자기(조선), 음식을 나르는 식판 위에 덮는 보자기이다. 겉감 위에 원형의 기름종이를 붙여 음식에 물기와 먼지가 묻는 것을 막고 붉은색 끈을 달아 고정시켰다. 가장자리에 ‘경선당’이라는 묵서가 쓰여 있어 경희궁 경선당에서 사용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검은칠 상(조선, 1837년), 순조의 3녀인 덕온공주의 혼례 때 사용된 소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선사명찬갑(대한제국), 전선사에서 음식을 나르는데 사용했던 보관함인 찬갑이다. 전선사는 1895년 국왕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사공급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던 사옹원을 개편하여 궁내부 제용원 안에 설치했던 관청으로 대한제국기까지 존속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궁중 잔치에 쓰였던 여러가지 기물
왕과 왕비의 생신, 세자의 탄생이나 책봉, 외국 사신의 영접 등 경사스러운날에는 왕실 가족과 친인척, 신하들이 이를 경축하는 잔치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고, 문무백관들과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였다. 궁중잔치는 규모에 따라 진연, 진찬, 진작으로 불렀는데 진연이 가장 큰 규모이다. 잔치는 왕이 주인공이 되어 왕세자와 문무백관을 초대하는 외연과 왕비.왕대비.대왕대비 등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세자빈과 내외명부를 초대하는 내연으로 구별되었다. 잔치를 받는 주인공이 앉는 보좌의 뒤에는 십장생도 등의 그림 병풍을 세우고, 앞에는 음식상인 찬안을 차려 놓았다. 꽃으로 장식한 항아리와 문양촛대를 비롯한 각종 장식 기물들은 잔치의 분위기르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유리사각괘등(조선), 궁중에서 전각의 처마 밑에 풍경처럼 내걸도록 마련된 사각 유리등이다. 사각형태의 유리등은 1848년 『무신진찬의궤』에서부터 확인되며, 틀은 검은 옻칠을 하였으며, 4면의 유리에는 매화, 국화, 난조, 연꽃 등의 꽃을 그려 장식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효정왕후 고희(71세) 기념 축하잔치 병풍(1901년), 1901년(광무5) 5월 경운궁 중화전(현 덕수궁 즉조당)과 준명당에서 3일 동안 열린 효정왕후의 71세 축하잔치를 기록한 병풍이다. 『신축진찬의궤』에 의하면 3, 16, 18일 8일 동안 밤낮으로 잔치가 열렸다. 병풍의 9폭에 잔치의 장면을 그리고, 나머지 한 폭에는 행사를 준비한 진찬소 관리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황색의 기물, 태극기 등 대한제국기의 특징이 확인된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용촉, 촉은 등과 같이 연회장을 밝히는 기능을 한다. 연향에서 사용하였던 용촉은 원통형의 목재에 용을 그려 만들어 왕의 위엄과 궁중 연향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용촉의 위에는 심홍촉이라는 초를 끼워서 사용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주칠원형소반(1881년), 발이 3개 달린 원형소반으로 전체적으로 흑칠을 하고 상판의 중앙에는 주칠을 하였다.1881년 대전 곳간으로 납품된 대.중.소 소반 150벌 중하나임이 적혀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향받칩대, 연향 시 향을 놓는 용도로 사용하던 것이다. 향로를 놓는 상으로 향로상이 있었으나 향을 담았던 중대를 향좌아 위에 올려놓고 향을 피워 사용하였다. 육각형의 형태로 긴 호족형태의 다리에 당초문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궁중에서 사용한 여러가지 그릇
왕실에서는 일상생활에서나 잔치, 제사 등의 행사에 다양한 재질로 만든 고급 그릇을 사용하였다. 도자는 왕실의 검소한 기풍에 따라 일찍부터 선호되었으며 15세기 후반부터는 경기도 광주 지역에 관영 도자기 제작소인 사옹원의 분원을 설치하여 잔치용 예기와 제기, 생활 용기를 제작하였다. 그릇 표면에 코발트 계열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려 구워 낸 청화백자는 궁중 도화서 소속의 화원들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은제 그릇은 왕실 가족의 주발이나 술잔 등 식사 용도로 쓰이기도 했으나, 계속된 금과 은의 절용 정책으로 인하여 주로 행사용으로 제작되었다. 광물을 원료로 만든 유리질의 유약을 입혀 화려하게 장식한 법랑 그릇들을 청나라로부터 들여와 장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왕실 도자기 제작소, 분원은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사용되는 좋은 품질의 도자기를 제작하기 위해 사옹원에서 관리하던 도자기 제작소이다. 분원에서 제작된 도자기 굽바닥에 ‘천’, ‘지’, ‘황’이 새겨진 것이 발견되는데, 이 표식들은 경복궁 안의 창고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백자사발, 경기도 광주군 일대에 설치된 분원에서 제작된 백자사발이다. 밑면에는 각각 ‘천’, ‘황’자가 새겨져 있다. 백자제기(조선후기)

OLYMPUS DIGITAL CAMERA백자매화무늬병(19세기 후반), 백자주전자,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용무늬병(19세기 후반), 청화백자 ‘복’자 무늬 접시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모란무늬발, 청화백자수복무늬사발(19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용무늬항아리(18세기 후반), 백자에 청화로 왕을 상징하는 오조룡(발가락이 다섯개인 용)과 함께 구름무늬를 그린 청화백자운룡문항아리이다. 궁중의례에서 화준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귀한 항아리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꽃모양은잔(대한제국), 은제 연잎모양 식기(조선)

OLYMPUS DIGITAL CAMERA은제 오얏꽃 장식 병(20세기초), 칠보 꽃병(청나라)

OLYMPUS DIGITAL CAMERA칠보 탕그릇(청나라), 칠보 대접(청나라)

OLYMPUS DIGITAL CAMERA칠보 음식그릇(청나라), 칠보 종지 그릇(청나라)

OLYMPUS DIGITAL CAMERA칠보 대접(청나라), 

OLYMPUS DIGITAL CAMERA 칠보원형그릇(청나라), 법랑향로(청나라), 조선 후기 중국 청에서 수입하여 궁궐에 비치하였던 법랑 향로이다. 향로 전체에 화려한 꽃문양으로 장식 되었다. 법랑은 광물성의 유약을 금속기에 올리고 열처리를 하여 빛깔을 내는 기법으로 파란, 칠보라고도 부른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창덕궁 후운에서의 고종(1884년경),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농수정 앞에서 사진 촬영한 고종의 모습이다. 곤룡포에 익선관 차림의 고종은 카펫이 깔려 있는 돌계단 위에 서 있고, 좌우에 법랑 향로 한 쌍이 놓여 있다. 정자 안에는 서양식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로웰(1855~1916)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수록된 사진으로, 『윤치호일기』에는 1884년 3월10일과 13일에 로웰과 지운영이 고종의 사진을 찍었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모란무늬항아리(19세기 후반)

OLYMPUS DIGITAL CAMERA‘상실’명 청화백자 접시, 청화백자 박쥐구름무늬 침그릇(19세기말)

OLYMPUS DIGITAL CAMERA은제오얏무늬합(20세기초), 복숭아모양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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