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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궁중 여성들의 생활

조선시대 국왕은 신하들과 정치를 논하고, 학자들과 경연을 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다고 한다면, 국왕 가족을 비롯한 궁궐 내외에 거주하는 왕실가족,종친에 이르기까지 여성들과 관련된 대소사는 왕비를 중심으로 치러졌다고 볼 수 있다. 국왕을 중심으로 한 관료사회와 마찬가지로 궁중에서도 왕비를 중심으로 궁중내 생활하는 후궁, 상궁 등의 내명부와 공주, 옹주, 종친.관료 부인들을 포함하는 외명부에 속한 여성들 또한 1품에서 9품까지 품계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궁중에서 오아비의 역할 중 가장 큰 부분은 웃어른을 문안하고, 아랫사람의 문안을 받는 일이었으며, 왕실 친인척간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주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끊이지 않았으며, 왕비는 내.외명부에 속한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들 행사를 준비하고 지원하는 하였다.

오늘날 남아 있는 궁궐여성들은 흔적은 그리 많지 않지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민간에 전해진 한복을 비롯한 다양한 복식, 궁중음식이라 불리는 다양한 한식요리 등에서 그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로 1960년때까지 살았던 순정효황후와 황태자비로 1980년대까지 창덕궁에서 거주했던 영친왕비가 남긴 유품에서 조선왕실의 다양한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궁인들이 한글로 작성하였던 다양한 물품목록과 왕비의 서신을 대필하였던 편지 등에서 단정한 한글서체인 궁서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효정왕후(헌종 계비) 고희(71세) 축하잔치 병풍> 부분, 대한제국, 1901년

 내.외명부 품계표

궁중 여성의 복식은 신분에 따라 색상과 문양 장식에 차이를 두었다. 여성의 예복, 원삼의 경우 황후: 황원삼, 왕비:홍원삼 (대례복:오조룡보를 가슴, 등, 어깨에 부착, 소례복: 쌍봉문보를 가슴, 등에 부착), 비빈: 자적원삼, 공중.옹주:녹원삼을 입었다. <출처:고궁박물관>

왕비의 역할
왕비는 평상시에 왕실의 웃어른을 문안하고, 여러 사람들의 문안을 받는 일을 중시하였다. 또한 왕실 친인척들의 혼인이나 각종 행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겼다. 선왕과 선왕후를 추모하는 상례와 제례 때에는 제수를 살피고, 때로는 직접 참여도 하였다. 국왕이 백관들의 조하를 받고, 친경과 양로연을 열었듯이, 왕비는 내연에서 명부들의 하례를 받았으며, 뽕을 따고 길쌈을 하는 친잠례와 여성 노인들이 참석하는 양로연을 베풀었다. 왕비는 궁궐 안에서 여러 잔치를 열러 내.외명부 여성들의 화합을 도모하였으며, 이러한 행사를 통해 궁중의 문화가 사대부와 민가에 전해져 수준 높은 문화 국가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순정효황후의 가례행렬을 그린 그림(1906년),

순종의 황태자 시절 황태자비(순명효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1906년 유택영의 딸(순정효황후)을 새로 황태자비로 맞이하는 가례행렬을 그린 반차도이다. 대한제국기의 유일한 가례로 황실의 격에 맞춰 변화된 가례 모습이 확인된다. <출처:고궁박물관>

간택단자(1907년),

1907년 3월12일 영친왕비를 간택하기 위한 후보자를 적은 명단이다. 이후 민영돈의 딸 민갑완이 세자비로 간택되었으나 강제 파혼된 후 영친왕은 일본 왕조 마사코와 강제로 정략결혼 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왕비 책봉과 혼례
왕이나 왕세자가 일생의 배필인 왕비나 왕세자빈을 맞이하는 경사스러운 혼례식을 ‘가례’라고 하였다. 왕비를 간택할 때에는 국왕의 나이에 관계없이 15세 전후 처녀들의 혼인을 금하는 금혼령을 공포했다. 금혼령이 공포되면 전국 사대부 가문에서 사주단자와 함께 부, 조, 증조, 외조의 이력을 기록한 신고서를 올려야 했다. 간택은 세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보통 초간에서 선발된 대여섯명의 처녀들 중에서 두세 명을 재간하였고, 최종적으로 삼간에서 마지막 한 명을 뽑았다. 삼간에 뽑힌 처녀는 별궁에서 몇개월간 궁중의 예절과 법도 등을 교육받았다. 왕비 간택이 결정된 후에는 가례를 주관하는 임시 관청인 가례도감을 설치하고 혼례에 필요한 준비를 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혼례절차
초산택.재간택.삼간택
육례 1)납채:신부측에 청혼, 2) 납징:신부 집에 혼인 예물 보냄
3) 고기: 혼인날짜를 알림
4) 책비: 왕비책봉, 왕비에게 금보.옥책.교명을 전달
5) 친영: 왕이 직접 왕비를 맞이하러 감
6) 동뢰연: 왕과 왕비가 함께 술을 나누고 잔치를 베품
조현례: 왕실 어른들께 첫인사를 드림

단자지,

시전지 봉투

시전지 봉투

궁녀가 대필한 명성황후 한글편지,

봉서를 받자와 보고기후 태평하오신 일 알고 든든하오며 밤새 편안하지 못하온 일 오히려 답답하오며 어머니 제절 안녕하십니까. 여기서는 양전 문안 안녕 오오시니 축수 하옵고, 충경이는 무탈하옵니까? 여기서는 한가지옵고, 비녀 보아 계십니까? 화복에 꽂을 것이옵나이다. <출처:고궁박물관>

궁녀가 대필한 명성황후 한글편지, 

봉서를 받자와 보고 기후 태평하오신 일 알고 든든 축수하옵고 평안하지 않은 시절이 지나치신 가보오니 오히려 답답하기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양전 문안 안녕하오시니 축수하옵고, 충경이도 무탈합니까? 여기서는 눈이 내린 이후로 괴로이 지내옵니다. <출처:고궁박물관>

명성황후 자필 한글편지,

글씨 보고 밤사이에 아무 탈 없이 지낸 일 든든하며, 여기는 주상전하의 문안도 아주 평안하시고, 동궁의 정황도 매우 편안하니 축수하며 나는 한결 같으나 끝내 깨끗하지 아니하니 답답하다. 일기는 매우 맑고 화창하다.  <고궁박물관>

명성황후 자필 한글편지,

글씨보고 밤사이에 잘 잔일 든든하며, 여기는 주상전하의 문안도 아주 평안하시고, 동궁의 정황도 매우 편안하시니 축수하며 여기는 한결같다. 오늘 일기는 춥고 차다. 호삼이는 풍류까지 내려 주시니 더욱 감격스럽고 슬프다.

시전지(20세기초),

시전지는 ‘글이나 편지를 쓰는 작은 쪽지’를 뜻하는 것으로 중국 청나라 말기 시전지를 전문적으로 제작 판매한 상점에서 수입한 것이다. 색지에 옛 기물, 화조, 인물, 풍경 등을 장식하였다.

시전지

명성황후 한글편지와 시전지
명성황후(1851~1895년)의 한글 편지에는 황후의 일상적 모습과 친정인 여흥 민씨 집안에 보낸 개인적 부탁, 당시 정치적 상황과 개인의 생각 등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궁녀들이 대필하여 쓴 편지나 궁녀들의 간찰문 역시 당시의 궁궐 사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유려한 궁체가 흘림체로 쓰여 있어 한글 궁체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왕실에서는 서간을 보낼 때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종류의 문양으로 장식된 편지지와 봉투를 사용하였다. 이를 시전지 또는 화전지라고 부르는데, 현재 전하는 시전지들은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청나라에서 제작되었던 것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은비녀, 귀달린 옥잔(옥제쌍이잔, 청, 18세기)

녹색 유리병(녹유리자장경병, 청, 18세기), 황채장미무늬병(황채병, 청, 18세기), 청화백자잔과 합 (청, 18세기)

청화백자연꽃무늬합(청, 18세기), 은주전자(은제주자, 조선), 은제도금담배합(조선)

벼루.벼루집.연적

화유옹주 묘 출토품과 왕실 가족의 생활상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의 열번째 딸인 화유옹주(1740~1777년)와 남편 황인점(1740~1802년)의 합장묘에서 출토된 부장품이다. 1991년 6월 경기도 부천시 중구에 있던 묘를 옮기는 작업도중에 출토되었다. 이 유품들은 화유옹주 부부가 생전에 사용했던 것들로 도자를 비롯한 일부 유물들은 임금의 사위였던 황인점이 부마의 자격으로 여러 차례 청나라 연행을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왕실 가족의 생활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출처:고궁박물관>

궁중 여성과 내.외명부
조선시대에 나라의 정치는 왕실의 내치로부터 시작된다고 인식되었다. 국왕이 문무 백관의 보필을 받아 외정을 다스리듯이, 왕비는 1품에서 9품까지 품계를 가진 내.외명부 등 궁중 여성의 보필을 받아 내정을 다스렸다. 내명부는 궁궐 안의 후궁과 상궁 이하 여관들을 이르고, 외명부는 궐 밖에서 생활하던 공주와 옹주, 그리고 종친.문무 관료의 부인들을 이른다. 그리고 품계없이 궁궐 안에서 여러 일을 하는 잡역 궁인들도 있었다. 궁중의 여성들은 계절에 따른 옷과 식기, 그리고 음식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살림살이들을 마련하고, 궁궐의 다양한 행사를 치렀다. 왕비는 위로 대비를 받들고 후궁들을 거느려 행사를 주관하였고, 여관과 궁인들은 각각의 직분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