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마한에서 백제로

마한연맹체는 천안지역의 목지국이 중심이었다가 고구려에서 남하한 세력과 토착세력이 연합한 한강유역의 백제가 중심이 되었다. 4세기 중후반경에는 마한지역 대부분이 백제에 완전 복속하게 되었으며 지방세력들은 백제의 귀족으로 그 세력을 유지하였다. 이 시기 한성백제에서 지방귀족세력에 협력의 표시로 보내준 금동관모,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 등이 서산 부장리, 공주 수촌리 등 다양한 지역 지배세력의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공주박물관에서는 한성백제기 지방세력과 중앙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적지로 공주 수촌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 유물들로는 금동관모, 금동신발, 금동제허리띠 뀌개 등의 위세품과 중국에서 수입한 단지, 각종 토기류, 철제 무기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공주읍 북쪽에 위치한 수촌리 고분. 철기시대부터 한성백제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이 모여 있다. 특히, 한성백제기 무덤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를 비롯하여 금관, 금동신발같은 위세품들이 출토되었다.

마한에서 백제로
마한은 한강유역에서 세력을 크게 키운 백제에 의해 점차 그 힘이 약화되어 4세기 중후반 백제 최전성기에 의해 완전히 복속되었다. 충남과 전라지역의 마한의 여러 나라는 백제에 흡수되었지만 마한의 세력가들은 백제의 귀족으로 세력을 유지하였다. 천안, 공주, 서산 등 새롭게 백제가 된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형태의 무덤 내에서 한성백제 양식의 토기를 비롯하여 백제식 금동관모와 신발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중국제 도자기 등 백제가 중국에서 수입하여 내려보낸 물품도 같이 발견되었다. 이것을은 모두 백제 중앙과 지방 세력과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들로 백제가 훗날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중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도움이 뒷받침되었던 것이다. <출처:공주박물관>

충남지역의 한성백제토기
3~4세기경 한성백제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 한성백제 양식의 토기도 함께 보급되면서 토기제작기술이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한성백제 토기의 지방 확산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종으로는 곧은입단지.세발토기.굽다리접시.꼭지달린 뚜껑 등을 들 수 있다. 이 토기들은 4세기 중.후반에 충청남도 북부와 서해안, 금강유역으로 확산되면서 항아리.독.사발 등의 일상생활용 그릇이 중심을 이루고 있던 마한 토기문화를 변화시켰으며, 한성백제 토기의 양식을 모방한 그릇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기존의 마한토기문화 속에 한성백제 양식이 공존하거나 지역 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는 마한토기가 백제토기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단절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가 누적되면서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처럼 서울 인근과 지방은 토기기종의 구성, 출현시점, 기형 등에서 지역 간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충남지역에서 출토된 한성백제기 토기들.

OLYMPUS DIGITAL CAMERA곧은입항아리, 천안 화성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어깨단지, 천안 용원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입큰 항아리,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 손잡이잔,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흑색마연토기, 천안 용원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세발토기,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꾸껑있는 완,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입큰단지와 그릇받침,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흑유닭모양 단지, 공주 수촌리,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단지이다. 닭머리 모양의 주구를 가지고 있는 주전자로 한성백제기 공주지역에도 중국의 도교사상이 전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흑유닭모양 단지는 반구호의 어깨 부분에 닭머리 모양의 주구와 손잡이를 붙인 형태로 천계형주전자라고도 한다. 옛 중국 설화에 도인들이 단약을 먹고 신선이 될 때 닭과 새 모이를 쪼아 먹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닭모양 단지는 신선사상이 풍미하던 중국 서진(西晉)부터 남조때까지 많이 사용되다가 그 이후에는 점차 줄어든다. 동진때까지는 몸통이 둥근 모양이 중심을 이루다가 남조에 들어서면 목이 길어지는 등 실용적인 모양으로 변해간다. <출처:공주박물관>

공주 수촌리 유적
공주 수촌리 백제 고분군은 공주시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작은 구릉의 서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철기시대의 무덤부터 한성백제시기의 널무덤, 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무덤 안에서 당시 공주지역 최고 세력가들이 사용하였던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귀걸이, 각종 말갖춤과 무기류, 토기류 등 화려한 백제 유물과 중국제 도자기들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수촌리 유적은 한성백제의 중앙정부가 지방을 간접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으로 4~5세기 충남지역의 지방 세력이 백제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점차 백제의 중앙귀족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금동관모,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복원한 금동관모.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신발,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복원한 금동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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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 대롱옥, 곱은옥, 구슬,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구슬목걸이,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제허리띠꾸미개, 공주 수촌리, 백제

수촌리 금동제허리띠꾸미개는 표면에 귀신 혹은 짐승얼굴문양이 주조로 표현된 매우 정교한 공예품으로 한성백제 중앙에서 제작해 지방 유력자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나 주변국에서는 이보다 이른 시기의 귀면 허리띠꾸미개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5세기 전반 무렵에는 중국과 구별되는 백제적인 금속제 허리띠가 제작되었고, 이로서 이 시기부터는 백제적인 관복문화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금동귀걸이,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살포,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쇠투겁창, 화살촉,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도끼,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발걸이, 공주 수촌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재갈, 공주 수촌리, 백제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