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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보물), 통일신라 비석의 원형을 보여주는 탑비

남원 실상사에 증각대사탑과 함께 세워져 있는 탑비(보물)이다. 실상사를 창건한 홍척(洪陟)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몸은 남아 있지 않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받침돌은 무열왕릉비처럼 거북 형상을 하고 있다. 조각수법이 섬세한 편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비석받침돌을 고전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머릿돌은 조각수법이 뛰어난 편으로 앞쪽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 졌다.

증각(證覺)은 홍척국사의 시호이며 남한조사(南韓祖師)라고 부린다. 통일신라대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귀국하여 선종을 크게 일으켰다. 그가 창건한 실상사는 통일신라 말 크게 번창했던 선종계열 구산선문을 대표하는 사찰로 실상산파 본사이다. 통일신라말 선종은 지방호족 세력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후삼국을 거쳐 고려가 개국하는데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다.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보물)>

통일신라 말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종을 크게 일으킨 증각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비이다. 글이 새겨진 비몸은 남아 있지 않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

거북받침돌은 용머리를 하고 있는 후대의 탑비와는 달리 거북머리를 하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편은 아니나 무열왕릉비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비석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머릿돌>

머릿돌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닳고, 훼손되기는 했지만 조각수법이 섬세하고 뛰어난 편이다. 중앙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앞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증각대사탑(보물)>

지리산 실상사는 통일신라 말 구산선문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 화재로 소실되면서 폐사되었다.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과 석등이 큰 사찰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남원 실상사>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 보물,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이 비석은 홍척스님을 추모하여 옆의 부도탑과 함께 세운 것이다. 증각은 홍척(洪陟)스님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이 공덕을 기려 임금이 내린 칭호이며, 일명 남한(南漢)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통일신라시대 유명한 스님으로 이곳 지리산 자락에 실상사를 처음 세웠다. 아쉽게도 현재 비의 몸체는 없어지고 비 머리와 받침돌만 남아 있다. 받침돌에는 용머리 모양으로 표현하던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거북머리를 그대로 조각하였다. 비의 장식이 전체적으로 과장되지 않고 사실적이어서 우리나라 고전 비석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