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섬진강변 석주관성에 있는 칠의사묘(사적)이다. 칠의사는 정유재란 때 호남지방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출신 의산 7명과 당시 구례 현감의 무덤이다. 정유재란 당시 진주에서 섬진강을 따라 호남지방으로 진격할때 구례 출신 왕득인이 의병을 일으켰으나 전사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이 구례 지역인사들과 함께 의병을 모으고, 화엄사 승병들의 지원을 받아 석주관에서 왜군과 접전을 벌였으며, 이듬해 왜군이 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조선후기 순조때 조정에서는 의병을 이끌었던 7인에게 관즉을 추증하였다.
이곳에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4대 관문 중 하나로 고려말 이곳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진(進)이 설치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이곳에 성벽을 보강하여 석주관성을 쌓았다. 노고단에서 왕시루봉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맥에 위치한 석주관성(石柱關城)은 칠봉산 남쪽 봉우리 20m 아래에서부터 칠의각 주차장 후면까지 이어져 있다. 석주관성 아래에는 사당이 있으며, 맞은편 언덕에 8기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이곳을 지키다 순절한 칠의사와 당시 구례현감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 조선후기 순조때 이들에게 관직이 추증되었으며, 이후에 사당 등이 세워졌다.
구례 석주관 칠의사묘, 사적 106호,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1957년 8월3일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고 진주 손경례 집에서 떠나 구례현에 입성한다. 하동에서 구례로 들어가는 초소인 석주관에서 구례 현감 이원춘을 만난다. 이순신은 일본군 10만 병력이 섬진강을 따라 구례 방향으로 북상한다는 급박한 전황을 보고 받는다. 석주관은 전라도의 구례와 경상도의 하동을 잇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내륙으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에서 현감 이원춘이 이끄는 의병, 승병들과 일본군의 호남 내륙 진출을 차단하기 위해 죽기를 맹세하고 방어진을 쳤다. 지금 이곳에는 당시 처절하게 싸우다 순절한 이를 기리는 석주관 사우, 순절묘, 그리고 석주관성(사적 385호)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