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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보물), 통일신라 불상양식이 남아 있는 고려시대 불상

전북 남원시 왕정동 만복사 절터에 남아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이다. 이 불상은 만복사가 창건된 고려 문종 때 같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위 위에 부처가 서 있는 입상 형태의 불상으로 뒷편에는 광배를 두고 있다.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부드러운 옷자락을 묘사하고 있다. 입체감있게 조각한 것이 아니라 마애불상과 조각상의 중간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면부만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뒷면에도 그림 형태로 간략하게 불상을 새겨 놓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 등은 약간 세련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옷주름이나 자세 등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통일신라 불상 형태를 계승하고 있으나 조각수법이나 조형미 등이 쇠퇴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원 만복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

통일신라 불상 양식이 남아 있는 높이 2m 규모의 불상이다. 고려초 만복사가 창건될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예수상이나 불상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것이다. 중동의 고대 신(神)이나 황제의 뒷편에 둥근 모양의 빛을 형상화한데서 유래하였다. 불교에서는 1세기 간다라미술에서 표현되기 시작하였으며,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열도에까지 전해졌다. 불교의 전래와 함께 서역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광에는 서역을 영향을 많이 받은 듯 비천상 등이 새겨진 경우가 많다.

<광배와 얼굴부분>

민머리의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가 둥글게 솟아 있다. 얼굴은 눈·코·입의 자연스러운 표현과 함께 원만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뒷편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이루어져 있으며 굵은 선으로 구분되고 있다. 머리광배에는 연꽃잎과 연꽃줄기가 새겨져 있다. 바깥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는 각각 2구씩의 작은 부처가 들어 있다.

<몸통 부분>

어깨에서 팔로 내려오는 곡선, 몸의 굴곡 등도 아주 원만하고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다. 광배에는 연꽃줄기가, 그 바깥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옷주름이나 자세의 표현에 있어 부자연스러운 면이 보인다.

<불상이 올려진 대좌>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고 있다.


<뒷면에 얇은 선으로 새겨진 불상>


<왼쪽에서 본 모습>


<오른쪽에서 본 모습>

남원 만복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한 평지사찰로 상당한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기록에 목탑, 금당 등 여러 전각들과 금동불상 등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버린 후 폐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터에는 오층석탑(보물), 당간지주(보물), 석좌(보물), 석불입상(보물) 등 석재로 만든 유물들이 남아 있다. 조선전기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중 ‘만복사 저포기’에 등장할 정도로 상당히 유명한 사찰이었다.

<만복사 절터>

목탑을 중심으로 좌.우.뒷편에 3개의 금당을 두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이는 만복사의 성격이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계열의 사찰이 아니라 기도를 하러 절을 찾은 사람을 위한 불전을 중심으로한 사찰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남원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 보물, 전북 남원시 왕정동
전라북도 남원시 만복사 절터에 서 있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2m의 불상이다. 만복사는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때 창건된 사찰이고, 이 석불입상도 창건 때 같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 에 의하면 만복사에는 동쪽에 5층의 전각, 서쪽에 2층의 전각이 있고 그 안에 35척(尺)의 금동불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기록으로 보아 만복사가 매우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민머리의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둥글게 솟아 있다. 살이 오른 타원형의 얼굴은 눈·코·입의 자연스러운 표현과 함께 원만한 인상을 보여준다. 어깨에서 팔로 내려오는 곡선, 몸의 굴곡 등도 아주 원만하고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둥근 칼라와 같은 독특한 옷깃의 접힘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둥근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오른팔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팔은 아래로 내려서 역시 손바닥을 보이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손은 따로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진 상태이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이루어져 있으며 굵은 선으로 구분되고 있다. 윗부분이 없어진 머리광배에는 활짝 핀 연꽃잎과 연꽃줄기가 새겨져 있고, 몸광배에는 연꽃줄기만이 새겨져 있다. 이들의 바깥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는 각각 2구씩의 작은 부처가 들어 있다. 만복사지 석불입상은 얼굴이나 몸 등에서 매우 원만하고 부드러운 성격이 드러나 있지만 옷주름이나 몸의 자세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이 보인다.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쇠퇴해가는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