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보물),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석탑

경남 함양군 수동면 승안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고려 초에 조성된 석탑으로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에는 부처, 보살, 비천 등의 모습을 새겨 놓고 있는데, 의미를 두고 질서있게 배치한 것 같지는 않다. 1층 탑신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다. 머리장식으로는 받침과 복발, 연꽃모양장식이 남아 있다. 기단과 1층 몸돌에 부조상을 새겨놓고 있는 등 통일신라 말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기단과 탑신의 비례에서 보이는 조형미가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고려전기 특색을 보여주는 장식들이 여러곳 있다.

승안사(昇安寺) 절터는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 북쪽에 승안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초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조선중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절터에는 조선초 문신이자 학자로 남계서원에 모셔진 정여창의 묘소를 비롯하여 집안 재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1962년 탑을 옮길 때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그 중 글자가 적힌 종이를 통해 조선 성종 때(1494년) 석탑을 옮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기는 정여창이 관료로서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경남 함양군 수동면 승안산 기슭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294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탑신 몸돌을 두껍게 만들어 기단과 탑신의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기단부와 1층 몸돌에 부조상을 새겨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부처,보살, 비천상 등을 새겨놓고 있는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질서있게 배치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탑신을 받치는 2층 기단 윗받침돌에 불상 대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꽃을 조각해 놓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에는 볼 수 없는 형태로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 1층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서 조각수법이나 표현 등이 많이 떨어진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 몸돌과 지붕돌.

OLYMPUS DIGITAL CAMERA남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기단부.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기단부.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기단부.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조선 성종 때 탑을 옮기는 과정에 봉안한 것으로 보이는 사리함과 구슬(국립진주박물관 소장.전시). 1962년 탑을 현재의 위치로 옮길때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리병과 반지.

OLYMPUS DIGITAL CAMERA경남 함양군 수동면 승안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절터. 사찰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조선 초 정여창이 활동하던 시기에 탑의 위치를 옮겼고, 그의 묘역이 절터 남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보물 294호,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으나,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을 계승하고 있다. 상층기단에 불(佛).보살(菩薩).비천(飛天)을 조각하였으나 조각수법은 다소 떨어지며 격식에도 벗어나 있다. 1층 탑의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수법을 구사하고, 장엄한 조형미 구성에 힘쓴 점에서 고려 초기의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1962년에 현재의 장소로 탑을 옮길 때 홍치 7년(1494)의 중수에 관한 내용이 한지에 먹으로 쓴 문서에서 발견되어 조선시대에 탑이 옮겨졌음이 확인되었다. 1층 몸돌 위에 만들어진 사리구멍에서는 원통형사리함, 녹유사리병, 비단조각과 주머니, 유리구슬 등이 발견되었다. 현재 탑의 높이는 4.3m로, 길쭉한 모습에 지나치게 두꺼워 균형을 잃고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6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