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수동면 승안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좌상이다. 높이 2.8m 의 거대한 불상으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마모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다. 불상은 머리를 크게, 신체는 작게 만들어 어색한 느낌을 주고 있다. 신체에 새겨진 옷주름 등은 간략하게 선으로 새겨놓고 있다. 불상의 조각수법이나 표현에서 예술적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다. 고려 초 지방호족들이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발원하여 조성된 거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승안사(昇安寺) 절터는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 북쪽에 승안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초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조선중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절터에는 조선초 문신이자 학자로 남계서원에 모셔진 정여창의 묘소를 비롯하여 집안 재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1962년 탑을 옮길 때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그 중 글자가 적힌 종이를 통해 조선 성종 때(1494년) 석탑을 옮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기는 정여창이 관료로서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함양 승안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좌상이다. 높이 2.8m 의 거대 불상으로 얼굴은 크고 몸체는 왜소하여 신체의 비례가 맞지 않는다. 고려 초 지방호족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거대 석조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얼굴 표현이 세밀하지 못하며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다. 유난히 큰 코와 일자로 다문 입 때문에 엄격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원래 개천가에 불상이 땅에 묻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보호각에 모셔져 있다.
함양군 수동면 승안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절터. 사찰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조선 초 정여창이 활동하던 시기에 탑의 위치를 옮겼고, 그의 묘역이 절터 남쪽편에 자리잡은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폐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양 승안사지 석조여래좌상,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불상이 있는 현재의 위치는 통일신라 때 번창하였다고 전해지는 승안사의 옛 절터이다. 승안사는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지만, 약 300년 뒤인 1799년(정조 23)에 간행한 「범우고」에 이미 절이 없어졌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사이에 어떤 연유에서이든 절이 소멸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반신이 땅에 묻힌 채 상반신만 남아 있는 이 불상은 현재의 크기만으로도 280cm나 되는 거대한 불상으로서, 오른팔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마모가 심해 자세한 모습을 알아보기 곤란할 정도인 머리는 몸체와 비례가 맞지 않아 매우 어색한 느낌을 준다. 다소 좁은 어깨로 인해 왜소해 보이는 체구, 그리고 유난히 큰 코와 일자로 다문 입 때문에 엄격하다는 인상을 준다. 또 선에 가까운 옷 주름과 직선적인 신체의 윤곽선으로 인해 불상은 생동감이 없어 보인다. 이것은 고려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나타나는 조형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석불 좌상이다. 이 불상에서 20m 가량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승안사지 3층석탑은 보물 294호이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