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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개평마을 일두고택, 정여창이 살았던 곳에 다시 지은 대저택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있는 일두고택이다. 이 집은 조선중기 유학자이자 문신인 일두 정여창이 살았던 터에 후손들이 다시 지은 집이다. 넓은 부지에 사랑채, 안사랑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을 고루 갖추고 있는 집으로 이 지방을 대표하는 대저택이다. 안채는 약 300년 전에 다시 지었으며, 사랑채는 구한말에 지은 건물이다.  ‘ㅁ’자형으로 폐쇄적이며 좁은 경북지역의 한옥과는 달리 ‘-‘자형으로 넓은 마당을 쓰고 있는 남부지방 대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충신.효자를 기리는 4개의 정려가 걸려 있는 솟을대문을 지나면 인공으로 꾸며놓은 정원이 인상적인 넓은 마당과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는 높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ㄱ’자형으로 집을 지었는데, 누마루를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구한말 대저택 사랑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랑채 옆 중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있는 안채, 별당, 사당, 안사랑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함양 개평마을 일두고택>

넓은 부지에 사랑채, 안채, 별당, 사당 등을 고루 갖추고 있는 대저택이다. 사랑채 앞 마당에는 자연석과 나무를 심어 인공적으로 정원을 꾸며놓고 있다.

<솟을대문이 있는 대문채>

효자,충신을 기리는 4개의 정려가 이 저택의 내력을 자랑하고 있다. 대문채 옆에 문간방을 배치하고 있는데, 구한말 한양의 도시형 한옥을 모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마구간이나 외양간이 있는 전통적인 대문채와는 달리 문간방을 양쪽에 2개씩 두고 있다.

<안에서 본 모습>

<사랑채>

사랑채는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는데 ‘ㄱ’형을 하고 있다.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로 정자 역할을 하는 누마루를 설치하는 등 조선후기 대저택들에서 유행했던 건축양식들이 반영되어 있다. TV드라마 ‘토지’를 비롯하여 사극에 자주 등장했던 장소이다.

<누마루>

마당이나 마을 경치를 감상하면서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인 누마루. 구한말에 지어진 대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누마루 내부>

<사랑채 마루>

<사랑채 마당>

일두고택의 가장 큰 특징으로 다양한 나무와 돌들을 가져다 놓은 정원이다. 원래는 현재보다 더 다양하게 크고 작은 나무를 심어 인공적으로 정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사랑채 마당>

<마당 한쪽편 곳간채>

<사랑채 왼쪽 출입문>

중문 앞 마당으로 들어가는 작은 출입문이다. 사랑채가 있는 마당과 중문 앞 마당을 분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담장을 쌓고 있다.

<작은 사랑>

중문 안쪽에는 2칸짜리 마루와 온돌방이 있는 작은 사랑이 있다. 사랑채의 규모와 공간배치 등을 볼 때 여자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중문>

<중문 사이로 보이는 안마당>

안채를 중심으로 사당, 별당 등이 들어서 있다. 넓은 마당에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중문 옆에는 작은 사랑을 출입하는 문이 있다. 안채 쪽에는 마루를 두고 있지는 않다.

<안채가 있는 안마당>

<안채>

‘-‘자형 건물으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앞면 8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300년 전 이 저택을 중건할 때 지은 건물이다.

<안채 대청마루>

<통로로 사용하는 안채 툇마루>

<안채 뒷마당>

장독대가 있고, 뒤쪽에도 통로로 사용하는 툇마루와 작은 마당이 있다. 궁궐 후원같은 느낌을 준다.

<아래채>

안채 왼쪽에 앞면 3칸 규모의 아래채가 있다. 독립된 생활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자식들이 분가하기 전 머물기에 적합한 구조이다.

<중문 옆 곳간채>

<사랑채 뒷편>

사랑방으로 출입하는 문들 있다. 앞쪽에서 본 웅장한 모습의 사랑채와는 달리 뒷편에서는 소박하게 보인다.

<안채 옆 통로>

안채 뒷편 사당과 안사랑채로 연결된다.

<안채 뒷편 사당>

<곳간채>

안채 뒷편에는 별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곳간채가 들어서 있다.

<사랑채 옆에 있는 안사랑채>

앞면 4칸 규모의 건물로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안사랑채 앞 마당>

사랑채와는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다.

개평마을은 안동과 함께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함양의 대표적인 양반들이 세거지이다. 하동정씨, 풍천노씨와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다. 조선중기 유학자이자 문신인 일두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일두고택, 풍천노씨 대종가, 오담고택을 비롯하여 많은 전통 한옥들이 남아 있다. 개평(介坪)이란 말은 두개의 하천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마을 특산물로는 정여창 종가에서 손님을 접대했던 지리산 솔송주가 있다.

<골목길 입구에 세워진 기념관>

<일두고택 들어가는 길>

시골마을이지만 골목이 꽤 넓은 편이며, 길에는 넓직하고 평평한 돌을 깔아 놓았다.

<솔송주 문화관>

고택 앞에는 솔송주 문화관이 자리잡고 있다. 솔송주는 봄에 나는 소나무 순과 찹쌀, 솔잎을 이용해서 만드는 술로 정여창 종가에서 전해내려오는 전통주이다.

<일두고택 앞 골목길과 담장>

 함양 일두고택,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조선 오현 중의 한 분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1450~1504년) 선생의 고택으로 현재의 집은 그가 죽은 후 선조 무렵(1570년대)에 건축된 것이다. 10,000㎡ 정도의 넓은 집터에는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의 여러 채의 건물 등이 서 있어 양반대가로서의 면모를 고루 갖춘 경남 지방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솟을대문에는 5개의 충신.효자의 정려패가 걸려 있어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 이 집은 공간구획 배치가 가장 최적화 되어 있고, 세간 살림살이들이 비교적 예스러운 대로 제자리에 보존되고 있어서 당시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