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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안의 광풍루(光風樓), 옛 안의현 관아에서 운영했던 누각

경남 함양군 암의면 금천리 금호강변에 세워져 있는 2층 누각인 광풍루(光風樓)이다. 조선 초인 1421년에 선화루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진 여러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의현 관아에서 공식적인 연회나 회의를 위해서 세운 누각으로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비교적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연회 등을 목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내부는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사방이 뚫려 있다. 시골이지만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금호강과 읍치의 옛 풍경은 남아 있지 않지만, 관아에서 운영했던 웅장한 누각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안의 광풍루>

안의현 관아에서 연회나 집회 등을 목적으로 세운 누각으로 경치가 빼어난 금호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상당히 큰 편이나,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꾸미지는 않고 있다.

<앞에서 본 모습>

<앞에서 본 모습>

<누각 내부>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사방이 뚫려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연회를 갖기 좋은 규모와 형태를 하고 있다.

<천장에 걸려 있는 ‘광풍루’현판>

<광풍루에서 내려 보이는 금호강>

안의현(安義縣)은 경남 함양군 안의면과 주변지역이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지방행정 조직이다. 이 지역은 덕유산 남쪽의 여러 갈래 산줄기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을 중심으로 마을이나 농경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백두대간 주요 교통로인 육십령을 통해 전북 무안, 장수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안의면 소재지가 옛 안의현 읍치로 다른 면에 비해서 도심의 규모가 큰 편이다. 화림동 계곡을 비롯하여 경치가 빼어난 명소가 많은 편이다.

<광풍루 앞 비석>

광풍루가 있는 이곳에는 2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상무좌우사접장 하경순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고, 다른 하나는 의병대장 문태서를 기리는 비석이다.

상무좌우사접장 하경순포선불망비, 경남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안의를 중심으로 한 상무좌우사의 접장 하경순(1875~1945)의 공적을 기려 안의 상인들이 1911년 세운 비석. 상무사는 1899년 설립된 상업 관장 기관이다. 이보다 앞서 1883년에 설립된 혜상공국이 2년 뒤 상리국으로 개칭되면서 등짐장수인 부상의 단체를 좌단, 봇짐장수인 보상의 단체를 우단으로 불렀다. 상무사는 좌단을 좌사, 우단을 우사로 고쳐 불렀다. 지역 경제사 연구의 자료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함양군청>

<광풍루 앞을 흐르는 금호강>

덕유산에 발원하여 흘러 내려온 남강을 이곳에서는 금호강이라 부른다.

<금호강을 건너는 다리>

안의 광풍루(光風樓),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이 누각은 1412년(태종12)에 당시 이안(안의 옛이름) 현감이던 전우가 건립하였는데 당시의 이름은 선화루였다. 그후 1425년(세종7)에 김홍의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1494년(성종25)에 안의현감이던 정여창 선생이 중건하면서 이름을 광풍루로 바꾸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불타는 등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풍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기둥의 주춧돌은 둥글게 깎아 만들었다. 지붕의 경사면에 처마를 하나 덧댄 팔작지붕을 연출하였으나, 처마 돌출이 작기 때문에 호방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소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함양 읍내의 학사루와 유사한 건축 양식이다. 광풍루는 금호강을 앞으로 하고 안의 읍내를 뒤로하면서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 강은 하천 개발로 그 모습을 잃어버렸고, 후면에 상가와 민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겨을 풍류는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누각 위에 걸리 옛 시인의 글귀만이 옛 금호강변의 아름다운 빛과 바람의 느낌을 전해줄 뿐이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