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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지리산 화엄사(사적), 화엄십찰로 지리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자리잡고 있는 화엄사(華嚴寺, 사적, 명승)이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화엄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있으나,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발문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때 황룡사 승려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화엄십찰 중 한곳으로 화엄사상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으며, 도선국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화엄사는 세종 때(1424년)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어 지역의 중심 사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참전하면서 전각들이 불어 타 버리는 등 큰 피해를 있었으나 벽암선사에 의해 크게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례 화엄사(사적)>

삼국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한곳으로 지리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들어가는 길

구례는 섬진강변에서 가장 넓은 평지가 있는 곳으로 명산과, 강, 들판이 모두 있는 곳이다. 비교적 넓은 농지와 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수백명의 승려가 머물렀던 화엄사를 유지할 수 있는경제적 기반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엄사를 찾아가는 길은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길인 성삼재를 오르는 길목에서 옆으로 조금 빠져 나가면 찾을 수 있다. 사찰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찾아간 보람을 느낄 수 있고 계곡에 발을 담그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각황전(국보), 각황전 앞 석등(국보), 사사자 삼층석탑(국보)를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지리산의 유서깊은 사찰이다.

<지리산 노고단 남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화엄사>

삼국시대에 처음 창건된 사찰로 섬진강을 끼고 있는 구례의 풍부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지역의 중심사찰로 자리잡고 있다.

<화엄사 사찰 앞을 흐르는 지리산 계곡>

풍부한 수량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계곡으로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들어가는 길>

화엄사는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부지를 조성했다. 아래쪽에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요사채와 강당, 위쪽에서는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금강문, 천왕문, 강당인 보제루와 대웅전이 일직선에 가깝게 배치되어 있다. 양쪽으로는 많은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 수백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던 사찰답게 많은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화엄사 입구에 남아 있는 돌항아리>

돌항아리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돌항아리는 네모난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항아리처럼 만든 것이다. 법주사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는데, 용도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풍수지리로 볼 때 화엄사는 전체적인 형국이 항해하는 배의 모양을 닮아 있어 항해 중에 필요한 물을 담는 항아리를 조성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안내문, 화엄사, 2016년)

<금강문 앞에 세워진 벽암대사비>

조선중기 승려인 벽암선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비석은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전통적인 탑비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벽암은 승려로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고, 전국 각처에 산성을 축성하는데 참여하여 불교가 정치적으로 인정받고 조선후기에 새로이 부흥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화엄사 금강문>

<금강역사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의 모습으로 표현된 보현보살상>

<금강역사와 사자를 타고 있는 동자의 모습으로 표현된 문수보살상>

금강역사, 문수.보현동자상, 조선후기
금강역사는 절을 수호하는 신장으로 2구 한 쌍이며, 인왕(仁王)이라고도 불리운다. 인왕상의 옆에는 문수(文殊)와 보현(普賢)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각각 사자와 코끼리 위에 앉아 있다. (안내문, 화엄사, 2016년)

<금강문 오른쪽에 위치한 성보박물관>

화엄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금강문 왼쪽 요사채>

덕장전, 성행당, 광학전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 지은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 건물들이다. 화엄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금강문고 천왕문 사이>

금강문을 들어서면 일직선 상에서 약간 벗어나게 천왕문이 들어서 있고, 양쪽에 큰 요사채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화엄사 천왕문>

<천왕문 왼쪽 만월당>

넓은 마당이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이다.

<천왕문 왼쪽 원융료>

담장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강당 건물인 보제루(普劑樓)>

화엄사 경내 입구에 누각형식으로 세워졌다. 단청을 하지 않았으며, 목조구조물에 색칠도 하지 않아 절제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대웅전 쪽 창문은 7칸 모두 큰 두짝의 빗살문을 달고 그 반대쪽 5칸은 널판지문을 달았으며 좌우 양칸은 문을 생략하였다. 대웅전과 각황전이 있는 마당 보다 한단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층 기둥을 낮게 하여 각황전과 대웅전이 있는 중심영역의 경관을 막지 않도록 하고 있다.

<여름철 판문이 열려 있는 보제루>

화엄사를 찾은 신도들이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지리산 계곡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각황전에서 내려다 본 보제루>

앞에서 본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크고 웅장한 건물이다.

주불전과 석탑이 있는 중심영역

화엄사는 화업십찰 중 한곳으로 기존의 탑과 금당이 중심으로 평지에 건물을 배치한 기존 사찰의 가람배치와는 달리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높은 곳에 불전이, 아래쪽에는 수행공간인 요사채와 강당이 배치된 전형적인 산지사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대웅전과 강당을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이 배치된 동서축이 직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각황전(국보)은 현존하는 옛 불전 건물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옛 장륙전의 형태를 계승하고 있다. 남향을 하고 있는 일반 사찰의 주불전과는 달리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는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대적광전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옛 장륙전에는 통일신라말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에 화엄경을 새긴 석경(보물)이 벽에 있었는데 지금도 석경이 일부가 남아 있다.

<화엄사 중심영역(대웅전)>

<화엄사 중심영역(각황전)>

보제루의 오른쪽을 돌아서 오르는 이곳은 화엄사의 중심 영역이다. 주위를 둘러싼 전각의 지붕이 꽃잎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내어 마치 연꽃 속에 있는 듯한 아늑함을 준다. 대웅전과 동오층석탑, 각황전과 서오층석탑으로 이어지는 2개의 축은 두개의 일탑일금당을 한곳에 모아 둔 듯하다. 주불전인 대웅전보다 각황전이 훨씬 큰 기형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의도된 화엄사만의 매력이다. (안내문, 화엄사, 2016년)

화엄사는 탑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삼국시대 평지사찰과는 달리 불전을 높은 곳에, 탑을 아래쪽에 배치하였다.양쪽에 동.서오층석탑이 배치되어 불국사 등에서 볼 수 있는 두개의 탑이 배치된 것처럼 보이지만 동오층석탑과 대웅전이, 서오층석탑과 각황전이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2008년 여름>

<각황전 앞에서 내려다 본 동.서오층석탑>

<서오층석탑(보물)>

각황전 아래에 위치한 이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오층석탑이다. 전체적으로 탑을 높게 만들고, 지붕돌을 경쾌하게 처리하여 날렵한 느낌을 준다. 기단 1층에는 12지신상을, 기단 2층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탑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놓고 있다. 부조가 새겨진 석탑은 통일신라 말인 8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경주 원원사지, 남원 실상사 백장암, 양양 진전사지, 영양 현일동과 화천동 등에 이런 형태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선종계열 사찰에서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오층석탑(보물)>

대웅전 아래 마당에 세워져 있는 이 탑은 전통적인 오층석탑과는 달리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1층 몸돌을 크게 만들고 2층부터는 몸돌을 낮게 하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에서 신앙의 중심이 탑에서 불상으로 바뀌는 통일신라 말 정형화된 석탑과 백제계 석탑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적묵당>

<동오층석탑과 대웅전>

일렬로 배치되어 있지는 않지만 삼국시대 1탑 1금당의 가람배치 형식이 남아 있는 부분이다.

<화엄사 주불전에 해당하는 대웅전(보물)>

조선 인조 때 벽암대사가 화엄사를 중건할 때 세운 불전으로 이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삼국시대 금당의 모습을 하고 있는 각황전보다는 작지만 일반적인 사찰 불전에 비해서 큰 규모이다. 대웅전은 석가여래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에서는 화엄십찰의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비로자나여래를 모시고 있다. 일반적인 사찰의 가람배치로 볼 때 각황전 자리에 있던 장륙전에 비로자나여래가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영역>

주불전이 대웅전 주변으로 명부전, 영전, 원통전이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대웅전 뒷편 요사채>

보통 지위가 높은 승려나 고승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영전>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전>

<화엄사 각황전 영역>

금강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축과 직각이 되는 방향으로 각황전, 석등, 서오층 석탑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담장으로 분리하지는 않았지만 1탑 1금당의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화엄사 주불전인 각황전(覺皇殿, 국보)>

조선후기 숙종대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불전 중 가장 큰 규모로 건축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건축물이다. 옛 장륙전 기단 위에 중수한 건축물로 삼국시대 금당 건물을 계승하고 있다. 원래 있던 장륙전은 금산사 미륵전처럼 여래입상이 모셔진 3층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는 비로자나여래을 모셨던 것으로 보이며, 불전의 방향도 해가 떠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유명한 황룡사 장륙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볼 수 있는 곳이다. 장륙전이 임진왜란 때까지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으로나마 복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엄사 석경(보물)>

장륙전 내벽에는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으로 둘려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파괴된 석경(보물)조각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각황전 오른쪽에 위치한 나한전>

<각황전 앞에 세워진 석등과 사자탑>

<각황전 앞에 세워진 석등(국보)>

이 석등은 높의 6.4m로 현존하는 석등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전체적으로 8각을 기본으로, 3단의 받침돌 위에 화사석, 지붕돌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은 전형적이 석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석등에서 볼 수 있는 장고 모양은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양식으로 이 석등의 조성 연대(860~873년)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삼국시대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각황전의 규모에 걸맞는 석등이다.

<원통전 앞에 세워져 있는 사자탑(보물)>

이 탑은 네마리의 사자가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1층 기단은 네모난 돌을, 2층 기단은 4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받치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탑신은 아래에는 연꽃받침, 몸돌은 직육면체를 하고 있다.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얕은 부조로 새겨 놓았다.

<대웅전 앞에서 본 각황전>

<원통전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화엄사>


<각황전 뒷편 언덕에 위치한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에 4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받치고 있는 특이한 형태로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지반 침하 등으로 인해 수리를 하고 있어 당분간 볼 수 없는 문화재이다.

<탑전 복원 계획>

사사자 삼층석탑을 수리하면서 화엄사에너는 탑전을 복원할 계획을 하고 있다.

구례 화엄사(華嚴寺). 사적, 명승,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는 6세기 중엽(544년) 인도에서 온 연기(緣起)조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라의 자장율사와 의상대사,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에 의해 중창되어 조선 세종 6년(1424)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의 건물이 전소되고 주지였던 설홍대사는 300여 명의 승려를 이끌고 왜군에 대항하다 전하하는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석조물을 제외하고 현재 남아 있는 전각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세우진 것들이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 보제루 앞마당에 들어서면 높이 쌓아 올린 대석단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승방과 강당 등의 수행공간이, 위로는 대웅전과 각황전을 비롯한 예불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각황전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조화된 가람배치의 아름다움이다. 또한 사사자삼층석탑과 공양석등에 전해오는 연기조사와 어머니의 효 이야기도 발길을 끌고, 각황전 앞의 석등과 모과나무 기둥이 독특한 구층암 등도 화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들이다. (안내문, 화엄사, 2016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