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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대웅전(보물), 조선후기 불교 건축양식이 잘 반영된 불전

하동 쌍계사 주불전인 대웅전(보물)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으로 벽암대사가 인조 때 중건하였다.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기둥을 높게 만들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다포계를 사용하고 있으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3개소의 불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삼세불이 모셔진 주불단에는 닫집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중건한 불전건물로 당시 건축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하동 쌍계사 대웅전(보물)>

<오른쪽에서 본 모습>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벽암선사가 중건하였다. 불국사 대웅전처럼 전형적인 조선후기 대웅전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경사진 지형에 건물 기둥을 높게 세워 웅장한 느낌을 준다.

<처마와 공포>

겹처마에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창호>

문살은 빗창살과 정자창살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단정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 내부>

내부에는 3개의 불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닫집이 있는 가운데 불단에는 삼세불과 사보살입상(보물)이 모셔져 있다.

<하동 쌍계사>

쌍계사는 통일신라 때 의상의 제자인 삼법화상과 대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혜능대사의 머리를 모셔다가 지금의 금당자리에 모셨다고 전해진다. 이후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차를 들여와 절 주위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옥천사(玉泉寺)였는데, 정강왕 때 두개의 계곡이 만나는 자리라 하여 쌍계사(雙磎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한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불교음악인 범패를 가려쳤기때문에 우리나라의 불교음악을 이끌어 온 사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동 쌍계사 대웅전, 보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772년에 신라의 대비화상과 삼법화상이 옥천사를 세운 것이 기원이다. 정강왕(886~887)이 두 계곡이 만나는 절의 지형을 보고 이름을 쌍계사로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1632년에 벽암대사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의 중심인 대웅전은 부처를 모신 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다포 양식으로 가운데 세 칸에는 두 개의 공간포를, 좌우 끝 칸에는 한 개의 공간포를 올려 놓았다.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우물 ‘井’자 모양으로 천장 안쪽을 가닐 우물천장으로 꾸며 놓았다. 쌍계사 대웅전 내부에는 3개소의 불단이 마련되었는데, 삼세불좌상과 사보살입상을 봉안한 주불단과 영가단, 신중단으로 나뉜다. 주불단 상부에는 닫집이 구성되었는데, 짧은 기둥 사이에 창방을 두르고 평방을 얹은 후 다포계의 공포대를 형성하였고, 추녀 및 사래를 걸아 겹처마를 구성하였다. 이 대웅전은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우리나라 건축사와 미술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