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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국보), 가장 오래된 신라 석굴사원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단석산(斷石山, 해발 827 m) 중턱에 있는 신선사 마애불상군(국보)이다. 7세기 초에 조성된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사원이다. 거대한 자연암석이 ‘ㄷ’자형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 석굴사원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굴 내부 바위에는 10구의 부처와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본존불인 미륵보살(여래입상)이 북쪽면에 새겨져 있으며, 동쪽에는 관음보살, 남쪽에는 지장보살을 새겨 삼존불을 이루고 있다. 지장보살이 새겨진 남쪽면에 ‘신선사(神仙寺)에 미륵석상 1구과 삼장보살상 2구를 조각하였다.’는 400여 자의 글자가 새겨 있어 이곳에 신선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경주 단석산 마애불상군(국보)>

<삼국사기>에 따르면 단석산은 삼국시대 신라 화랑들이 수련했던 곳으로 김유신이 검으로 바위를 내려쳐 바위가 갈라졌다고 해서 단석산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신라의 오악 중 중악에 해당하는 산으로 부악(父岳)이라고 불렸다. 신라 수도 경주와 청도군을 연결하는 20번 국도가 지나가며, 북쪽편에는 선덕여왕이 백제군을 물쳤다는 여근곡(女根谷) 전설이 전해오는 오봉산(해발 634 m) 부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삼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 백제군의 침입이 예상되는 주요 교통로이자 문화교류의 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 단석산>

중악 석굴에 들어가 기도하다 ( 611년 (음) )
진평왕 건복 28년 신미(611년) 공의 나이 17세에 고구려·백제·말갈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쳐들어온 적을 평정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홀로 중악(中嶽) 석굴로 들어가 몸을 깨끗이 하고는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였다. “적국이 도가 없어 승냥이와 호랑이처럼 우리 영역을 침략하여 어지럽힘으로써 편안한 해가 없었습니다. 저는 한낱 미미한 신하로 재주와 힘은 헤아릴 수 없이 적지만 재앙과 난리를 없애고자 마음먹었으니 오직 하늘은 굽어 살피시어 저를 도와주소서.” (삼국사기 권 제41 열전 제1 김유신 상,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중사로 지내는 5악
중사(中祀) 5악은 동쪽의 토함산(吐含山), 남쪽의 지리산(地理山), 서쪽의 계룡산(雞龍山), 북쪽의 태백산(太伯山), 중앙의 부악(父岳)이다. (삼국사기 권 제32 잡지 제1 제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석굴사원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함양, 거창, 합천, 청도를 거쳐 경주와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단석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사원로 불상의 조각수법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충남 서해안 지역 서산이나 태안의 삼존불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서역에서 전래되어 중국 낙양이나 산동성지방에서 크게 유행했던 석굴사원이 백제를 거쳐 신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석굴사원은 경주 골굴암, 군위 석굴암을 거쳐 토함산 석굴암에서 신라의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다.

<석굴사원으로 들어가는 길>

<바깥쪽에서 본 석굴사원>


<북쪽 암벽에 입체감있게 새겨진 주존불>

주존불은 높이 8.2m의 거대한 불상으로 머리에 육계(肉髻)가 솟아 있으며,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시무외여인원을 하고 있다. 외형상 여래입상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바위에 새겨진 글씨에는 미륵보살을 새겼다고 한다. 당시 많이 조성되었던 미륵장륙존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둥근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은 백제의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을 연상시킨다.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둥근 얼굴>

동쪽벽에 새겨진 보살입상은 주존불에 비해 얕게 새겨 놓고 있다. 오른손 몸앞에 보병(寶甁)을 쥐고 있어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동쪽벽에 새겨진 보살입상>

남쪽벽에 새겨진 보살입상은 특별한 설명이 없으나 이곳에서는 지장보살으로 보고 있다. 옆에는 신선사를 조성한 내력을 적은 400여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남쪽벽에 새겨진 보살입상>

주존불 왼쪽편 암벽에는 여래입상과 반가사유상이 있는 삼존불상이 얕게 새겨져 있다. 반가사유상을 제외하고는 주존불을 안내하고 있는 듯한 손모양을 하고 있다. 그 아래에 모자를 쓰고 공양을 올리는 공양상 2구와 승려를 새겨 놓고 있다. 반가사유상이 있는 삼존불상은 백제의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에서 볼 수 있는 배치이다

<주존불 왼쪽편 여래입상과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이 있는 삼존불상>

<석굴사원 아래에 있는 단석산 신선사>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국보, 신라, 7세기 전반,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단석산은 신라시대 때 화랑들의 수련장소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산 이름은 김유신이 검으로 바위를 내려쳤더니 바위가 갈라졌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이곳은 거대한 암벽이 ‘ㄷ’모양으로 높이 솟아 하나의 돌방을 이루고 있으며,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 법당을 만든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다. 남쪽 바위 보살상 안쪽에 새겨진 명문에 의해 이곳이 신선사였고, 본존불은 높이가 일 장 육척인 미륵장륙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안쪽 바위 표면에는 반가사유상과 함께 삼존불상이 있으며, 삼존불상은 왼손으로 동쪽을 가르키고 있어 본존불로 인도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 밑으로는 버선같은 모자를 쓰고 손에 나뭇가지와 향로를 든 공양상 2구가 있으며, 모두 불.보살 10구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7세기 전반기의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이 마애불상군은 신라의 불교미술과 신앙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6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
  4. 삼국사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