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진덕여왕릉(사적), 신라 28대 진덕여왕

경북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에 있는 신라 28대 진덕여왕 능이다. 능은 직경 14m규모로 흙으로 덮어 둥근 봉분을 반들고 아래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였다. 둘레돌에는 기둥역할을 하는 12지신상을 새긴 탱석을 끼워넣었다. 둘레석 바깥에는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무덤형식은 김유신묘, 성덕왕릉, 경덕왕릉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진덕여왕릉이 처음인것처럼 보이지만 조각수법 등으로 볼 때 가장 늦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덤의 위치 또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무열왕릉이나 김유신묘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진덕여왕릉과 관련이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나원리오층석탑(국보39호)가 남아 있는 절터가 부근에 남아 있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신라의 2번째 여왕이자 마지막 성골출신 왕이다. 왕위에 있는 7년 동안 김춘추, 김유신과 함께 국력을 키워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사량부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사량부는 실제 경주 서남쪽 일대로 추정하고 있어 진덕여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신라 24대 진덕여왕릉(사적)>

진덕왕이 왕위에 오르다 ( 647년 01월(음) ), 진덕왕(眞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승만(勝曼)이고, 진평왕(眞平王)의 친동생인 국반(國飯) 갈문왕(葛文王)의 딸이다. 어머니는 박씨(朴氏) 월명부인(月明夫人)이다. 승만은 생김새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7척이었고 손을 내려뜨리면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

진덕왕이 죽다 ( 654년 03월(음) ), 8년(654) 봄 3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시호(諡號)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粱部)에 장사를 지냈다. 당(唐)나라의 고종(高宗)이 〔소식을〕 듣고 영광문(永光門)에서 애도를 표하고 태상승(太常丞) 장문수(張文收)를 사신으로 보내서 부절(符節)을 가지고 조문하게 하였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하고 비단 300단(段)을 내려 주었다. 나라 사람들[國人]은 시조(始祖) 혁거세(赫居世)부터 진덕왕(眞德王)까지의 28명의 왕을 일컬어 성골(聖骨)이라 하고, 무열왕(武烈王)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진골(眞骨)이라고 하였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는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삼국사기 기록이나 무덤양식으로 볼 때 진덕여왕릉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으나, 동시대에 활동한 무열왕릉이나 김유신묘가 근처에 자리잡고 있으며, 나즈막한 구릉 중턱에 조성한 낭산의 선덕여왕릉과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덕여왕릉이 있는 나즈막한 구릉>

OLYMPUS DIGITAL CAMERA<왕릉을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울창한 소나무숲이 왕릉 주변에 조성되어 있다.>

둥근 봉분에 12지신상이 있는 둘레석을 하고 있으며, 바깥쪽에는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12지신상 조각수법이 김유신묘나 성덕왕릉 등에 비해 떨어지고 있어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봉분 주위 둘레석>

OLYMPUS DIGITAL CAMERA<둘레석에 새겨진 12지신상. 얕게 조각되었으며 조각수법 또한 떨어지는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12지신상이 새겨지지 않은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왕릉 주위에서 출토된 석재들>

경주 진덕여왕릉, 사적24호, 경북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이 능은 신라 28대 진덕여왕(재위 647~ 654년)을 모신 곳이다. 현곡면 오류마을의 뒤편에 있는 안태봉이 남쪽으로 뻗어내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의 두번째 여왕이며 마지막 성골 출신의 왕이다. 김춘추와 김유신이 국력을 키워 삼국통일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았으며, 삼국사기에는 왕을 사량부(沙梁部)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능의 규모는 지름이 약 14m, 높이 약 4m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렸으며, 봉분의 둘레에는 둥근 지대석을 설치하였다. 그 위로는 안기둥을 놓고 사이사이에 직사각형의 약간 둥근 면석을 끼웠으며 눈썹돌을 얹어 봉분 아랫부분을 보호하였다. 이 안기둥 면에는 십이지신상을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6년_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6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
  3. 삼국사기 권 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