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시 백성읍 방성리에 있는 대모산성(大母山城, 사적)이다. 파주 칠중성이 있는 적성면을 통해 임진강와 의정부를 거쳐 중량천을 따라 한강유역과 연결되는 중요한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 동쪽과 북쪽 지역을 관장하던 양주목 관아가 있던 양주시 유양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성은 한강유역 장악에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방어적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을 다스리는 행정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주청된다. 현재의 산성은 삼국시대 신라가 축성하였으며, 그 이전에 백제가 수도인 위례성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를 주둔시키거나 산성을 쌓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 조선시대까지 수리.보수를 하면서 계속 사용되어 왔다.
산성은 대모산(해발 213m) 정상부에 석축을 쌓았는데 둘레 410m 정도의 규모이다. 성벽은 잘 다듬을 돌로 약 7.5m의 석축을 쌓았으며, 바깥쪽에 4~5m 정도 보축을 덧대었다. 성문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현문식 성문을 하고 있는데, 신라가 쌓은 산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1980년 이후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청동팔찌, 청동도장, 각종 농구류, 공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대모산성은 『삼국사기』의 매초성(買肖城)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매초성으로 추정되기도 하며,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는 대모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통일 후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당나라군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결정적 승리였던 매초성전투가 벌어졌던 매초성은 정확한 위치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초까지 양주목 읍치였던 양주시 고읍동이라는 의견과 연천군 대전리산성이라는 견해도 있다. 매초성은 당나라 장수 이근행이 20만 대군을 끌고 주던하고 있던 곳으로 신라군이 당나라군을 크게 무찔렀다. 당시 당나라군은 보급을 임진강 수로에 크게 의존했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이곳 대모산성이 유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양주 대모산성(사적 526호). 삼국시대 신라가 쌓은 산성으로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보수하면서 사용했던 산성이다. 중간크기의 돌을 다듬어 촘촘하게 쌓은 석축, 사다리를 이용한 현문식 성문 등 신라 산성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 많이 있다.
산성이 있는 대모산. 임진강의 주요 교통로인 파주 적성면 일대에서 중랑천을 따라 한강유역 아차산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213m의 나즈막한 야산이지만, 북쪽 불곡산과 남쪽 호명산 사이의 통로를 막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대모산성 올라가는 길. 역사유적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아 길이 잘 정비되지 않은 편이며, 서쪽편 방성리 마을에서 산성까지 연결되는 길이 있다.
대모산성 서쪽 출입문. 이곳에 성문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는 이곳을 통해 산성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양쪽으로 대모산성 석축을 볼 수 있다. 석축들은 조선시대까지 보수하면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많이 허물어져 있다. 정비되지 않은 산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다리를 이용해 출입할 수 있는 현문식 성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성문 북쪽편 석축. 아래쪽 바깥에 보축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석축을 쌓았다. 전체적으로 성벽이 높고 안정적이다.
성문 안쪽에 서면 백석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 호명산에서 멀리 파주와 고양지역까지 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문 안쪽에 넓지는 않지만 평탄한 공터가 있다. 우물 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산성 북쪽. 멀리 감악산이 보이며, 불곡산(해발 465m)이 북쪽을 막고 있다. 임진강 중류 적성현 일대 교통요지인 칠중성에서 이곳까지 교통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남동쪽으로 중량천을 따라 한강유역과 연결된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신라가 산성을 쌓기 이전에 백제군의 주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대모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부 부근에서 건물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모산성 북동쪽 양주시 유양동 일대. 조선시대 양주목 관아가 있던 곳이다. 대모산성이 조선시대까지 이 지역을 다스리는 치성(治城)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양주목은 이곳부터 한양 동쪽 아차산성이 있는 곳까지 다스렸던 상당히 큰 규모의 지방고을이었다.
양주 대모산성, 사적 526호, 경기도 양주시 백성읍 방성리
이 성은 일명 양주산성(揚州山城)이라고도 하는데, 대모산의 정상부를 에워싸고 있다. 이곳은 북서 방향의 유일한 통행로인 광적면 일대를 굽어볼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자 의정부쪽에서 오는 적을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현재의 석축 성벽은 삼국시대 때 신라에 의하여 쌓여져 고려.조선 시대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북문 터 북쪽에서는 백제계 토기가 많이 출토되어 석축 성벽이 축조되기 이전에 이미 이곳에는 토루나 목책 등의 방어시설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