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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사적), 금오산 정상 부근 능선길.

경주 남산(사적)은 북쪽의 금오산(해발 466m)와 남쪽 고위산(해발 495m)을 연결하는 남북으로 약 8km, 동서로 약 4km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남산에 있는 많은 골짜기들에는 다양한 불상과 석탑 등 많은 불교유적들이 남아 있다. 남산의 많은 골짜기에서는 불교 유적들을 돌아볼 수 있는 문화탐방이 되었다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에서는 남산의 자연과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자연탐방을 할 수 있다.

<삼릉계곡 정상부 제9사지에서 바둑바위로 들어가는 길.>

남산에는 서북쪽에 위치한 포석정에서 출발하여 동쪽 서출지 부근으로 연결되는 일주도로가 있으며, 능선을 따라서 많은 계곡들과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다. 남산일주도로 주변으로 해목령, 이영재와 같은 고갯길과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한 바둑바위, 상사바위와 같은 명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남산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용장사지와 칠불암 또한 남산 능선에서 가까운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바둑바위>

바둑바위는 경주 남산에서도 전망이 좋은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신선이 앉아서 바둑을 두며 놓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남산 서쪽과 북쪽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둑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상사바위>

상사바위는 남산신이 살고 있다고 전설을 비롯하여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는 남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이곳에는 작은 석불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작은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사바위와 포석곡 제9사지 석조여래입상
상선암 뒤로 높이 솟아 있는 깎아지는 듯한 바위 봉우리가 남산신 상심이 살고 있는 상사바위이다. 남쪽편은 산아당으로서 사람들이 아이 낳기를 기도하였는데 영험이 있었다 한다. 1856년에 새긴 ‘산신당(産神堂)’이라는 명문이 있다. 상심은 신라 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기도 하였다. 동쪽 면에는 남근석과 기도용 감실이 있는데 상사병이 걸리 사람이 빌면 영험이 있다고 한다. 감실 앞에 머리와 대좌를 잃어버린 작은 석불이 있는데 남산에서 발견된 가장 작은 석불이다. 통인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고신라 불상일 가능성도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판단하기 어렵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금오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능선길>

상사바위에서 금오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연결하는 능선길은 걷기에 좋은 곳이지만, 숲이 울창해서 주변 경치를 보기는 힘들다.

<남산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큰 바위>

 <능선을 따라서 이어지는 숲길>

<능선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삼릉계곡>

<삼릉계곡 남쪽 비파골 능선>

능선의 모양이 비파같이 생겼다고 하여 비파골이라 부른다.

<남산 서쪽편에 위치한 단석산(해발 827m), 벽도산(해발 424m), 망산(해발 232m) 등>

망산(望山)은 나즈막한 야산이지만 남산과 쌍을 이루는 산이다. 남산의 유래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남신은 남산으로, 여신은 망산으로 바뀌어 이곳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남산(南山)과 망산(望山)의 유래.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 또는 ‘새벌’이라 했으며 새벌은 동이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처주는 광명에 찬 당이라는 뜻으로 아침 햇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갖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땅이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날 두 신이 찾아 왔다. 한 신을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신(男神)이었고, 또 한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 반짝 빛나는 눈동자, 예쁜 웃음이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두 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 하고 외쳤고, 이 소리는 너무 우렁차 새벌의 들판을 진동하였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 족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겁에 질려 “산 봐라!”하고 소리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 “산 같이 큰 사람 봐라!”라고 해야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하고 외쳤던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두신도 깜짝 놀라 그자리에 발을 멈췄는데 그만 왠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두 신은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이곳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하고 강하게 생긴 남산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이 되었다고 전해져온다. (안내문, 경주국립공원사무소, 2016년)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숲길>

<금오산 정상 부근>

<금오산 정상>

주변에 숲이 우거져서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다.>

<남산일주도로 방향으로 내려가는 숲길>

일주도로는 금오산 정상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금오산 정상에서 비파골로 내려가는 길>

비파골에 대한 안내표지판이 있다.

<정상 뒷편 남산일주도로>

남산 일주도로는 비포장이지만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은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금오산 정상에서 남산 동쪽 서출지로 이어지는 일주도로>

<일주도로 주변의 남산 봉우리>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일주도로>

<일주도로에서 남산 서남쪽 용장사지 절터가 있는 용장골로 연결되는 등산로>

<용장골로 이어지는 숲길>

<용장사 절터가 있는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경주 남산 일원, 사적
남산은 남북으로 약 8km, 동서로 약 4km 지름을 가진 타원형의 화강암 바위산으로 조상들이 남긴 수많은 문화유산과 다양한 지질경관들이 공존하고 있다. 남산은 한국에서 가장 젊은 편에 속하는 신생대 제3기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은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서서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단단한 암석이다. 남산과 남산의 여러 석조 문화재들이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화강암 때문이다. 암석이 힘을 받아 깨진 틈을 단열이라고 부르는데, 남산의 화강암에는 약 51만 년전에 있었던 강력한 단층활동에 의해 생긴 단열들이 존재한다. 선각육존불이나 마애석가여래좌상 등의 불상은 이러한 단열면에 새겨진 불상이다. 한편, 남산의 북서쪽에는 넘어져 있는 불상인 선각보살입상이 있는데, 이는 신라시대에 발생한 지진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2. 안내문, 경주국립공원사무소,2016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