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경주 남산 용장사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경주 남산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손꼽히는 석탑이다. 바위를 1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2층기단과 탑신을 올려놓은 특이한 삼층석탑이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정형화된 삼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위의 자연환경이나 경치와 함께 아름다운 조형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웠다고 하며, 사리장치는 남아 있지않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은 주위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 풍경과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절터에 있는 큰 바위를 1층 기단부를 사용하고 있다. 탑신은 1층은 높게, 2,3층은 낮게 만들었다.
<기단부. 모서리와 가운데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에 특별한 장식이 없다.>
<탑신, 몸돌과 기둥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용장사는 금오산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용장사 계곡 정상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절터에는 삼층석탑으로 비롯하여 석조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이 남아 있다. 조선초 천재이자 생육신 중 한명인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저술한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경주 남산은 경주시 남쪽에 솟은 금오산(해발 466m)과 고위산을 비롯하여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북으로 약 8km에 이른다. 신라에서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되었으며 불교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남산 북서쪽 기슭에 신라을 건국한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과 포석정이 있으며, 서쪽에는 배리삼릉을 비롯하여 박씨 왕위에 올랐던 왕들의 능들이 있다. 불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부처님이 거처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중되어 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지배계층과 관련된 사찰들이 주를 이루는 경주 도심의 평지 사찰과는 달리 일반 민중들과 관련된 작은 암자 등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불교유적지 가운데에서 조선시대 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생육신 김시습이 머물렀다는 용장사와 큰 바위에 7개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칠불암이 잘 알려져 있다.
<위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용장사곡 삼층석탑.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면이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보물 186호, 통일신라시대 후기
용장사의 법당터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랫기단으로 삼아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고안되었다. 윗부분이 없어져 탑의 높이는 4.42m 밖에 되지 않지만 하늘에 맞닿은 듯이 높게 보여 자연과의 조화미가 돋보이며,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우수작으로 꼽힌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6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