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용장사지,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저술했던 곳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용장계곡 정상부 아래에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이곳은 통일신라 때 승려 대현이 머물렀다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남아 있으며, 조선초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저술한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중기까지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절터에서 ‘용장사(茸長寺)’라고 적힌 기와가 발견되어 사찰 이름이 확인되었다.

용장사는 전통적인 산지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계곡과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지형에 맞게 불전과 요사를 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석조여래좌상(보물)과 마애여래좌상(보물)가 있는 공간이 불전이 있던 중심 영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꽃무늬로 장식한 원형의 높은 대좌에 불상이 앉아 있는 석조여래좌상이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미륵장육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불상 위쪽에 삼층석탑과 석탑부재가 남아 있는 터가 남아 있는데, 불전 위에 석탑을 두는 특이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남산 계곡과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삼층석탑은 경주 남산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손꼽힌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남산 용장사지>

유가종의 개조 대현(大賢) 대덕은 남산(南山) 용장사(茸長寺)에 거하였다. 절에 미륵석조장육상이 있었는데 대현이 항상 그 둘레를 돌면 불상 또한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대현은 지혜롭고 분명하고 정밀하고 민첩해서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이 명백했다. 대개 법상종(法相宗)의 전량(銓量)은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깊어서 나누어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 때문에 중국의 명사 백거이(白居易)도 일찍이 이것을 궁구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고 이에 말하였다. “유식(唯識)은 그윽하여 풀이하기 어렵고 인명(因明)은 나누어도 열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자들이 이어받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현은 홀로 그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잠시 그윽한 뜻을 깨우쳐 여유있게 이치를 분석하였다. 동국의 후학들은 다 그 가르침을 따랐고, 중국의 학사들도 종종 이를 얻어 안목(眼目)으로 삼았다. (삼국유사 권 제4 제5 의해 현유가해화엄,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남산의 많은 절터 가운데에서도 역사적인 내력이 있으며, 문화재도 많이 남아있으며,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미륙장육상으로 여겨지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이곳이 불전이 있는 중심영역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석조여래좌상>

마른 우물에 물을 샘솟게 한 대현스님
신라 경덕왕 12년(753) 여름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곡식들이 모두 말라죽게 되어 임금님은 대현스님을 대궐로 불러들여 단비를 내려 달라고 빌게 했다고 한다. 부처님께 재를 올리기 위해 공양드릴 음식을 차려 놓았으나 정수 그릇에 물이 없어 재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대현스님이 향을 피워 받쳐 들고 잠깐 염불을 외우니 메마른 우물속에서 갑자기 물이 솟아오르는데 일곱길이나 솟아올랐다고 한다. (안내문, 경주국립공원관리공단,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불상 뒷편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은 경주시 남쪽에 솟은 금오산(해발 466 m)과 고위산을 비롯하여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북으로 약 8 km에 이른다. 신라에서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되었으며 불교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남산 북서쪽 기슭에 신라을 건국한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과 포석정이 있으며, 서쪽에는 배리삼릉을 비롯하여 박씨 왕위에 올랐던 왕들의 능들이 있다. 불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부처님이 거처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중되어 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지배계층과 관련된 사찰들이 주를 이루는 경주 도심의 평지 사찰과는 달리 일반 민중들과 관련된 작은 암자 등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불교유적지 가운데에서 조선시대 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생육신 김시습이 머물렀다는 용장사와 큰 바위에 7개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칠불암이 잘 알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용장계곡과 들판>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있는 공간에서 석탑이 있는 윗쪽으로 연결되는 산길>

용장사 삼층석탑(보물)은 남산 남쪽 고위산을 배경으로 경주 남산을 대표하는 웅장한 장면을 연출한다. 삼층석탑은 바위를 1층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2층 기단과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용장사 삼층석탑(보물)>

삼층석탑 위쪽에도 약간의 공터가 있으며 석탑부재들이 남아 있다. 이곳에도 석탑이 세워졌으며, 주위에 건물이 세워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윗쪽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공터에 남아 있는 석탑 부재.>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있는 공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위쪽으로 보이는 용장사지>

<아래쪽에는 비교적 넓은 터가 있는데, 이곳에 승려들이 머물렀던 요사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건물이 들어설 수 있을만큼 공간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건물터>

용장사지
용장사는 신라 경덕왕 때의 고승 대현과 조선시대의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시대에 폐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초기 설잠스님(김시습)이 이곳에 오래 머물고 있으면서 금오신화를 썼다고 하니 조선중기까지는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절터 축대들과 기와 조각들만이 폐허를 뒹굴고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2. 안내문, 국립공원관리공단, 2016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
  4. 삼국유사 권 제4 제5 의해 현유가해화엄,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