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복사지, 낭산 북동쪽에 자리잡은 절터

경북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옛 절터인 황복사지이다. 황복사에 대해서는 의상이 출가한 사찰이며, 경문왕이 이곳에서 화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국보)과 일부 석조유물 외에는 옛 절터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삼층석탑에서 금제여래좌상(국보)과 금제여래입상(국보)을 비롯하여 탑을 조성한 내력을 기록한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사리함의 기록에 따르면 삼층석탑은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으며, 효소왕이 죽자 아우 성덕왕이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불상과 보물등을 탑의 2층에 넣었다고 한다. 이는 황복사가 신라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사찰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주 낭산(해발 108 m)은 보문동.구황동.배반동 일대에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누에고치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나즈막한 야산으로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겼던 숲이다. 북쪽으로는 황룡사와 분황사가 있고 서쪽편으로는 경주의 궁궐이 월성이, 동쪽편으로는 명활산성 아래 신라 6촌 중 하나로 설씨성을 받은 명활산 고야촌이 있다. 남쪽으로는 울산으로 연결되는 도로와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북쪽편에는 황복사, 미탄사, 남쪽편에는 사천왕사, 망덕사가 있었고 중앙에는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되는 능지탑과 남쪽편 정상부에 선덕여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거문고의 명인 백결선생이 낭산자락에 살았으며, 최치원이 공부했던 독서당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국보)만 남아 있는 황복사 절터>

OLYMPUS DIGITAL CAMERA<황복사가 있는 낭산 북쪽 끝자락>

낭산 북쪽 끝자락 동쪽에 황복사, 서쪽에 미탄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시골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도심에 위치한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옛 경주의 모형>

삼층석탑 조성 내력이 자세히 적혀 있는 사리함 뚜겅에는 성덕왕이 부왕인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상 2구를 비롯하여 사리 등을 넣었음을 기록해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조성 내력이 자세히 적혀 있는 사리함 뚜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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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여래좌상(국보)과  금제 여래입상(국보)>

황복사(皇福寺)로 전해오는 절터의 삼층석탑 사리함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사리함 뚜껑에 새긴 글에 따르면 신문왕(神文王)이 세상을 떠나자 692년 아들인 효소왕(孝昭王)이 어머니 신목태후와 함께 석탑을 세웠고, 효소왕이 승하하자 706년 성덕왕(聖德王)이 금제 아미타상 1구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권을 석탑에 안치하였다. 불입상은 얼굴 이목구비의 경계와 윤곽이 부드럽고, 두툼한 옷주름에 가려 신체가 드러나지 않는 등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이 남아 있어 692년 석탑을 세울 당시에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얇은 옷주름으로 강조된 불좌상의 풍만한 신체는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므로 706년에 봉인한 아미타상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황복사지 절터에서 출토된 글자가 적힌 비석편>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6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