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대표적인 석굴사원이자 불교미술의 걸작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토함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 석굴(국보 24호)이다. ‘석불사’라고 불린 이 석굴암은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이 불국사와 함께 건립한 것으로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석굴의 구조는 앞쪽은 전실은 사각형을, 본존불이 모셔진 주실은 원형을 하고 있다. 이는 동양의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실에는 그 존재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천부상.보살상.나한상이, 전실에는 인왕상(금강역사)과 팔부중상이, 복도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본존불에 대해서 앉은 자세나 손갖춤 등이 정형화된 불상과는 달라 석가여래라는 의견도 있고, 비로자나여래라는 의견도 있다.

석굴암 석굴(국보)은 지금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2차례에 걸친 보수공사 결과로 본존불은 유리창안에 있고, 그 앞에는 보호각을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토함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 석굴>

석굴암 석굴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석굴사원이다. 석굴사원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대승불교의 전파경로인 아프카니칸.중앙아시.중국을 거져 한국으로 전해진 대표적인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전파의 형태이기도 하다. 인도에는 1,200여개이 석굴사원이 있다고 하며,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의 수행자들이 수도를 하는 곳이다. 인도나 중앙아시아 사막에서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때 만들어진 바라바르 언덕의 석굴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며, 인도의 아잔타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석굴, 중국 둔황 석굴, 윈강석굴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인도나 중앙아시아, 중국의 석굴들은 바위산에 굴을 파서 석굴을 조성한 것과는 달리 석굴암은 화강암 석재를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석굴을 조성하여 만든 것이다. 이런 형식은 한대(漢代) 이후 중국과 고구려 고분에서 볼 수 있는 돌로 만든 돌방무덤과 비슷한 형태이다. 이를 석굴사원에 응용한 점에서 독창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석굴사원에는 부처의 일생이나 설법내용을 그린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석굴암 석굴에는 화강석을 조각해서 만든 본존불을 비롯하여 많은 조각상들로 석굴 내부가 채워져 있다.

석굴암 석굴 내부는 앞쪽 전실 벽면에 팔부중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복도 입구에는 인왕상이 본존불이 모셔진 주실을 지키고 있다.

석굴암 석굴<석굴암 석굴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석굴의 공간배치>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석실 내부(2004년)>

범천상은 석굴암 석굴 본존불이 모셔진 주실 입구 좌.우에 제석천상과 함께 부조로 새겨져 있다. 범천은 고대 인도의 종교인 바라문 교에서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어졌던 최고의 천신이다. 몸에는 승려와 같은 가사를 입은 뒤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왼손을 내려 깨끗한 물을 담은 정병을 쥐었고, 오른팔은 굽혀 먼지떨이인 불자를 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석굴암 범천상 복제품(탁본)>

제석천은 고대 인도의 종교인 바라문 교(敎)에서 신들의 제왕으로 신앙되었다. 벼락을 무기로 사용하여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 신과 비슷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석굴암 제석천상은 신들의 제왕답게 몸에는 임금처럼 소매가 길고 화려한 도포식의 옷을 입었고, 왼손바닥 위에는 제석천의 무기인 벼락을 형상화한 금강저(金剛杵)를 올려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
<석굴암 제석천상 복제품(탁본), 1910년 제작. >

OLYMPUS DIGITAL CAMERA
<본존불 뒷쪽에 배치된 십일면관세음보살상 복제품(탁본), 1910년 제작>

OLYMPUS DIGITAL CAMERA
<문수보살입상 복제품(탁본), 1910년 제작. 앞쪽에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보현보살입상 복제품(탁본), 1910년 제작.>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석굴을 배경으로 수학여행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학생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석굴로 올라가는 길.>

석굴암 석굴로 올라가는 계단길 옆에는 석굴암을 수리(1913~1915, 1962~1964) 할 때 교체된 옛 석굴건축부재들과 기타 주변 석물이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석굴건축부재들과 기타 주변 석물>

OLYMPUS DIGITAL CAMERA<감실벽석>

OLYMPUS DIGITAL CAMERA<감실벽석>

OLYMPUS DIGITAL CAMERA<감실 천정석>

OLYMPUS DIGITAL CAMERA<석상받침석>

OLYMPUS DIGITAL CAMERA<석상받침석>

OLYMPUS DIGITAL CAMERA<홍예석편, 간석>

OLYMPUS DIGITAL CAMERA<기둥을 받치는 초석형 석재>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석굴 앞으로 올라가는 학생들.>

2차례에 걸친 석굴암 석불 수리과정에서 이 석굴사원의 보호를 위해 보호각이 세워져 있다. 오랜세월동안 동해를 바라보고 있던 석굴암 본존불은 지금은 이 보호각으로 시야가 막혀 있다고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보호각>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석굴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해 방향의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앞 마당. 마당전체에 연등을 달아놓고 초파일 준비에 한창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마당에 남아 있는 석등 하대석.>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석굴에서 내려오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내려오는 길에도 석굴암 석재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불전인 수광전>

OLYMPUS DIGITAL CAMERA<수광전 앞 석등>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석굴 아래 요사채>

천불탑은 서역에서 동아시아로 전래되는 과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탑의 형태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많지 않은 유물이다. 탑(Pagoda)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탑파’의 준말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상징물이기도 하다. 서역에서는 사리를 모시는 반구형이 대부분이었으나 중국을 거치면서 목조건축물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으며 중국에는 벽돌을 쌓은 전탑, 한국에서는 화강암을 깍아 만든 석탑, 일본에서는 목탑이 많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불소탑, 석굴암 출토, 751년>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출토 수막새>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출토 인왕상(금강역사)>

석굴암은 불국사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등산로로 3km 정도 떨어진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토함산 정상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본존불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문무왕 수중왕릉인 대왕암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석굴암이 자리한 토함산은 신라천년 고도인 경주 동쪽편에 백두대간에 자리잡고 있는 큰 산으로 해발 745m의 높은 산이다. 토함산이라는 명칭은 바다 가까이에 있어 안개가 자주 끼고, 산이 바다에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 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표현 것이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입구 주차장. 토함산 능선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각>

OLYMPUS DIGITAL CAMERA<주차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주>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들어가는 길 입구에 세워진 일주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일주문>

석굴암 입구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는 20여분을 걸어들어가는데 숲이 우거져서 그늘이 많고 동쪽편으로 경치도 좋아서 우니나라에서 걷기좋은 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암 들어가는 길>

경주 석굴암 석굴, 국보, 경주시 진현동
이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던 김대성이 처음 건립하였는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렸다. 경덕왕때에는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황룡사대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만들어져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룬다. 석굴의 평면구조는 앞쪽이 네모났고 뒤쪽은 둥글다. 석굴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둘레에 천부상.보살상.나한상.거사상.사천왕상.인왕상.팔부신중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인도나 중국의 석굴 사원과는 달리 화강암을 인공으로 다듬어 조립한 이 석굴은 불교 세계의 이상과 과학기술 그리고 세련된 조각 솜씨가 어우러진 걸작이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둥근 형태의 주실 천장을 교묘하게 축조한 것이다. 이 건축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드문 뛰어난 기술이다. <삼국유사>에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석굴암은 신라 예술의 극치이자 동양 불교미술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되었다.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