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광한루원(명승 33호), 신선이 사는 삼신산을 구현해 놓은 인공정원

전북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광한루원(廣寒樓苑, 명승 33호)이다. 남원도호부 관아에서 지은 광한루(보물 281호)를 중심으로 조성한 인공정원이다. 선조때 정철이 전라관찰사로 재임할 때 조성한 정원을 근간으로 해서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원은 신선의 세계와 우주관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송강 정철의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관아에서 조성한 정원은 그리 많지 않으며, 개인이 조성한 정원은 작은 규모를 하고 있는데 반해, 광한루원은 그 규모에 있어서 궁궐 정원 못지 않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관아에 조성한 인공정원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인취향의 신선사상이 잘 구현된 정원이다.

정원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 반영하여 사각형의 연못에 삼신산인 3개의 섬과 홍예교인 오작교로 구성되어 있다. 세종 때 이곳은 세종 때 황희가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겼으며, 세조 때 남원부사 장의국이 지리산에서 흘러내려온 요천(蓼川)의 물을 끌어다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오작교를 설치하였다. 선조 때 전라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조성했다.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정자와 연못, 다양한 수목들은 직선과 곡선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정원에 심은 수목들에서 인공적인 모습보다는 자연스럽게 자라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정원은 백제의 궁남지와 경주의 임해전지(안압지)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원 광한루원(명승 33호). 조선초 명재상 황희가 이곳에 정자를 짓고 경치를 즐기던 곳이다. 남원도호부 관아에서 운영했던 광한루(보물 281호)를 중심으로 인공적으로 조성한 정원으로 궁궐 정원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원 광한루원 입구.

SANYO DIGITAL CAMERA정원 연못 너머로 보이는 광한루. 연못은 인근 요천에서 물을 끌어다 조성한 인공연못으로 정철은 연못에 봉래·방장·영주섬을 조성했다.

삼신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삼신을 섬으로 만들어 조성하였다. 왼쪽 섬이 영주산(瀛州山), 가운데는 봉래산(蓬萊山), 오른쪽 오작교 옆에 있는 섬이 방장산(方丈山)이다. 섬과 섬 사이에는 아담한 구름다리가 있고 영주산에는 영주각이, 방장산에는 6각의 방장정이 소담하게 지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은 영주산, 금강산은 봉래산, 지리산은 방장산에 해당한다. <출처: 남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3개의 섬 중 가운데 위치한 금강산을 상징하는 봉래산을 구현해 놓은 섬. 대나무를 심어 놓고 있으며, 정자는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지리산을 상징하는 방장산을 구현해 놓은 섬. 원래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60년대 광한루원을 관광지로 확장하면서 방장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놓았다. 연못과 인공섬에서 자란 수령이 상당히 되어 보이는 고목들과 함께 한국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방장섬 너머로 보이는 광한루.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한라산을 상징하는 영주산을 구현한 섬이다. 선조때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정철 선생이 관찰사로 재직시 남원 광한루원을 확장할 때 세운 정자인 영주각이 있다. 현재의 정자는 정조 때 세운 누각를 60년대에 크게 수리한 것이다. 광한루와 함께 이 정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누각이다.

영주각은 광한루와 더불어 누원내 신선사상 배경의 정원으로 가꾸기 위해 축조된 상징적 누각으로서 <용성지>의 누정편에 보면, “전라관찰사 정철이 요천에서 끌어온 물이 누앞을 좁다랗게 흐르고 있던 개울을 넓혀서 평호로 하고 은하수를 상징케 했으며 주위를 석축으로 하고 호중에 세 개의 섬을 만들어 하나에는 녹죽을 심고, 하나에는 백일홍을 심었으며, 다른 하나에는 연정을 세우고 호중에 여러 종류의 꽃을 가득 심었다”고 되어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영주각은 관찰사 정철이 주도한 광한루 확장 공사시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이때는 한주섬(漢州)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현재의 영주각은 정조 19년(1795)에 부사 이만길이 재건하고 영주각이란 편액을 손수 써서 걸었다고 <증보 남원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63년부터 경내가 확장, 정화되면서 1965년에 36회 춘향제를 준비하면서 지금과 같은 단청이 되었다. <출처:남원광한루원>

OLYMPUS DIGITAL CAMERA연못을 건너는 다리인 오작교. 세종때 이곳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조성할 때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길이 57m 로 4개의 홍예를 두고 있는데, 연못에 세워진 다리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라고 한다. 오작교를 밟으면 금실이 좋아 진다는 전설도 있고, 춘향전의 무대이기도 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다리이다.

오작교
칠월 칠석 날(음력 7월 7일) 견우와 직녀, 두 별이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들이 은하수에 모여, 몸을 이어 만들었다는 전설의 다리이다. 지리산 계곡물이 모여 강이 된 요천(蓼川)수를 유입시켜 만든 호수는 은하수를 상징한다. 전설과 함께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오작교를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출처: 남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오작교에서 보이는 광한루. 남원도호부 관아에서 공식적인 행사를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지은 누각이다. 세종 때 황희 정승이 처음 세웠다고 전해지며, 현재의 건물은 인조 때 중건한 것이라 한다. 지방 관아에서 운영했던 누각 중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광한루는 동쪽으로 앞면 3칸 규모의 온돌방이 있는 부속건물을 달아놓았다. 겨울에도 이곳에서 열리는 행사나 모임이 많았던 것 같다.

SANYO DIGITAL CAMERA광한루 앞 연못가에 있는 자라돌. 남원지방의 화재를 막기 위한 바램으로 갖다 놓은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광한루에서 본 오작교.

OLYMPUS DIGITAL CAMERA연못에 있는 작은 섬. 오래된 고목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원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못은 천원지방 사상을 반영하아 직선적으로 조성되었다. 경회루 연못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상당히 크고 화려하게 연못과 정원을 꾸며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자유스럽게 뻗어나가는 가지가 정원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광한루 연못과 광한루.

OLYMPUS DIGITAL CAMERA연못 주위에는 수령 백년이 넘는 고목들이 많이 남아 있다. 연못에 비친 고목이 색다른 그림을 만들어 낸다.

완월정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가 계신 옥경(玉京)에는 광한전이 있고, 은하수 위에 오작교가 놓여 있다. 계관(달나라 궁전)의 절경 속에서 아름다운 선녀들이 노닐었다고 한다. 이를 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완월정은 이 달나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누각이다.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통적 조선 건출 양식이다. 완월정에서는 남원의 민속행사인 춘향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출처: 남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입구쪽 연못에 있는 작은 정자인 완월정. 1960년대 남한루원을 관광지로 개발할  때 신축되었다. 달이 뜨는 동을 향하고 있는 ‘ㅗ’형 2층 누각으로 앞면이 6칸이며, 그 중 2칸은 앞쪽으로 돌출되었으며 기둥은 연못속에 잠겨 있다. 비록 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래된 누각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달이 떠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북쪽으로는 기존의 광한루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광한루 뒷편에는 역대 남원부사들의 공덕비들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광한루 뒷편 춘향 사당. 1930년대 지역 유지들이 돈을 모아서 건립한 사당으로 역사적인 의미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사당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전국의 많은 기생들이 사당 건립 모금에 참여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에 모셔진 춘향이 영정.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유명 화가인 김은호가 그렸다. 일제강점기 이후 그려진 대표적인 영정 그림이다. 진품을 남원시 향토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광한루원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부지위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960년대 이후 주변 토지를 매입하여 크게 확장하였다. 방문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며, 춘향이가 놀았던 그네와 월매집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재현해 놓은 그네.

OLYMPUS DIGITAL CAMERA춘향이가 살던 집을 재현해 놓은 초가집이다. 춘향이 모녀가 살았던 집을 재현해 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선시대 중.상계층이 살았던 비교적 큰 규모의 저택이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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